초등영어검정교과서제도, 부진아만 양산하겠네!

-3학년 영어 교과서를 바꾸려고 하는 이유

검토 완료

한희정(lifenamoo)등록 2011.09.20 18:45
지금 전국의 초등학교에서는 2012년도에 사용할 5~6학년 영어 검정교과서 선정 작업이 한창이다. 지난 기사(골라먹는 재미보다 학습 부담만 더 늘었네)에서 다루었듯이 실제로 3~4학년 교과서 내용 분석을 해 본 결과 학년마다 사용하는 교과서가 다를 경우 심각한 학습 결손이 발생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우리 학교는 3학년은 A출판사의 교과서를 사용하고 있고, 4학년은 B 출판사의 교과서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내년에 사용할 5~6학년 교과서 선정을 하다 보니 학습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이 필요할 것 같아서 올해 A와 B 출판사의 교과서를 직접 가르친 3~4학년 영어 교사들이 모여 '1 학기' 내용만 분석해 보니 다음과 같은 학습 결손이 발생했다.

A 출판사 3학년 B 출판사 4학년 내용 비교 분석
① A출판사 3학년 교과서는 12단원으로 구성, B출판사은 15단원으로 구성 : B출판사의 3학년 교과서에서 배워야 할 6단원, 7단원, 10단원, 11단원 내용이 그대로 누락됨. 이로 인해 3학년 B출판사으로 학습한 것을 가정하고 집필된 B출판사 4학년 교과서 사용 시 학습 결손 발생

② 중복이나 누락의 구체적인 예 : 4-1학기 내용만 분석함
-1단원 My name is _____ : 중복(3학년 A출판사 1단원)
        Nice to meet you. : 누락(3학년 B출판사 1단원)
-2단원 gloves : 누락(3학년 B출판사 16단원), ball : 누락(3학년 B출판사 2단원)
        cap : 중복(3학년 A출판사 7단원)
        You're late. I'm late : 중복(3학년 A출판사 9단원)
-3단원 cookie : 누락(3학년 B출판사 9단원) green : 누락(3학년 B출판사 14단원)
        Are you OK? Yes, I'm OK : 중복(3학년 A출판사 12단원)
        Watch out! : 중복(3학년 A출판사 12단원)
-4단원 what time is it? : 중복(3학년 A출판사 9단원)
         o'clock : 중복(3학년 A출판사 9단원), time : 중복 (3학년 A출판사 9단원)
-5단원  I'm happy[sad, angry] : 중복(3학년 A출판사 4단원, 단원 학습 내용 75% 중복됨)
-7단원  window : 누락(3학년 B출판사 3단원) big : 누락(3학년 B출판사 10단원)
-8단원  small : 누락(3학년 B출판사 10단원)


즉, 학년마다 서로 다른 출판사의 교과서를 사용할 경우 중복(이건 그래도 괜찮겠지만)되거나 누락되는 어휘나 표현들이 상당수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 학기 내용만 갖고 분석했는데 이렇게 많은 중복이나 누락이 나타났는데 3~6학년 전 교과서 내용을 갖고 분석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참으로 우려스럽다.  이런 문제를 확인한 이상 현행대로 3~4학년이 서로 다른 교과서를 사용하는 문제를 그대로 둘 수 없었다. 그래서 교육과학기술부에 민원 신청도 내고, 교과서 선정위원회를 다시 열어서 3학년 교과서를 다시 선정하는 '번거로운' 일을 해야만 했다.

3학년 영어교과서 재선정 과정
① 2011년 영어 교과서 사용 현황 : 3학년 A출판사, 4학년 B출판사
② 9월 5일 5~6학년 영어 교과서 선정위원회 : B출판사 교과서로 선정
③ 3학년 교과서만 A출판사 교과서를 사용하고 4~6학년은 B출판사로 사용할 때 발생하는 문제점 제기
④ 학년간 내용 연계성을 위해 3학년 A출판사와 4학년 B출판사 교과서 분석 작업
⑤ 교과서 분석 결과 누락 중복되는 표현 다수 발견
⑥ 학습자의 내용 연계성, 학년 간 위계성을 고려하여 3학년 교과서 재선정 작업
⑦ 선정위원회 결과 3학년 B출판사로 선정.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앞두고 있음.


우리 사회에서 사교육비 문제만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감당해야만 하는 문제가 또 있을까? 사교육비 중에서도 영어만큼 많은 돈과 노력이 드는 교과가 또 있을까? 그래서 정부도 '공교육 강화-사교육 강화 선순환 방안'(관련기사 공교육 강화-사교육 경감 선순환' 이게 뭥미?, 방과후학교 관리 명목으로 1학년부터 영어교육?) 같은 희한한 정책을 무리하면서 추진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왜 영어 공교육에서 이렇게 엇박자 나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일까?

검정교과서 선정 작업에서 유의할 점에 대한 민원 제기에 대한 교과부의 답변 내용
검정교과서는 교과서 개발 주체를 다양화함으로써 교과목별 다양한 입장을 반영하며, 교수자와 학습자에게 교과서 선택권을 부여함으로써 각각의 상황과 여건에 맞는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경쟁체제의 도입으로 교과서의 질을 높이기 위함입니다.

검정교과서는 교육과정과 편찬상의 유의점, 검정기준, 편수자료, 집필기준 등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므로, 검정심사를 통과한 교과서는 어떠한 교과서로 수업을 하더라도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을 달성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용하는 교과서가 바뀌면서 나타나는 세부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하지만, 광의적으로 교육과정의 성취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교과서로 학습하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는 것으로 판단합니다.

초등학교에서 익숙하지 않으신 검정교과서 선정 작업과 전학생에 대한 문제들로 어려움이 있으시겠지만, 앞서 말씀드린 검정도서의 취지를 잘 이해해 주시기 바라며, 보다 다양하고 창의적인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만으로도 실용영어능력을 갖추도록 하겠다고 공언하면서 집필진마다 고유의 학년 연계성이나 위계성을 설정하고 집필했을 교과서는 학년마다 다 다르게 선정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답변하고 있는 이 현실이 오히려 영어 사교육을 부추기고 있는 것 아닌가? '교과서가 학년마다 달라서 누락되는 표현이 있어서 중복되는 표현이 있어도 괜찮다. 사교육에서 다 채우면 되는데 뭐가 문제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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