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교과서 도입 취지에 어긋나는 이상한 교과서 주문

-한 번 선정하면 교육과정 바뀔 때까지 쓰는 거야?

검토 완료

한희정(lifenamoo)등록 2011.09.02 16:42
지난 2008년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는 영어 사교육비 경감을 위해 교육과정 개정을 추진했고, 그 결과 초등학교 영어 수업시수는 3․4학년 주당 1시간에서 2시간으로, 5․6학년은 주당 2시간에서 3시간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다른 교과나 교과외 활동 시수는 그대로 둔 채 영어 수업 시수만을 늘려서 다양한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지만 더 큰 문제는 교육과정 내용과 이를 가르치는 중요한 도구 중 하나인 교과서였다. 갑자기 늘어난 시수를 어떤 내용을 채울 것인가는 초등 영어 교육의 질을 담보하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교과부가 이런 '어륀지 교육과정' 개정을 추진한다고 할 때 현장 교사들은 교육과정 내용과 교과서 때문에 쉽지 않을 거라 예견했다. 그렇지만 이런 현장의 우려를 무시하고 교과부는 4대강 방식으로 교육과정 개정을 추진했는데 바로 기존 교과서를 짜깁기해 만든 1년짜리 임시 교과서 사용과 초등학교 영어 교과서의 검정 체제 도입이었다.

2009년부터 내년까지 적용되는 다양한 교과서와 교육과정 2011년 현재 3-4학년은 2008개정영어교육과정에 따른 검정교과서를 사용하고 있고, 5-6학년은 임시국정교과서를 사용하고 있다. ⓒ 한희정


기존 교과서를 짜깁기해서 만든 1년짜리 임시교과서는 기존 4학년 과정에 있던 내용을 3학년으로 내려 보내고, 5학년에 있던 내용을 4학년으로, 6학년에 있던 내용을 5학년으로 내려보내는 식의 땜질 교과서였다. 올해 그 교과서를 사용하고 있는 5․6학년 아이들의 교과서는 그야 말로 대학 교재 수준의 두께와 무게를 자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임시 교과서라는 명목 하에 모든 불만을 잠재웠고, 새로 도입되는 검정 교과서는 우리 현실에 맞는 바람직한 교과서들이 다양하게 나와서 학교 영어교육의 새로운 장을 열면 좋겠다는 기대를 모았다.

기대가 너무 큰 탓이었을까? 2011년 처음 도입된 초등학교 3․4학년 영어 검정교과서는 모두 14종이었다. 회화의 토픽 중심 단원 설정과 단원의 차시 구성의 측면에서 봤을 때 기존의 7차 교육과정에 따른 국정교과서의 구성과 다를 게 없었다. 우리 아이들이, 이제 갓 10살 된 아이들이 학교에서 외국어로 영어를 배우게 될 때 무엇을 먼저,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 주체적 시각으로 고민한 흔적이 있는 교과서는 단 한 종도 없었다. 천편일률적인 단원 구성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서 조금 벗어나면, 결국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래픽이었다. 어떤 캐릭터를 써서 아이들의 흥미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나, 결국 얼마를 들여 만들었나, 출판사의 자본력이 문제였던 거다.

그렇게 도입된 검정 교과서를 일선의 모든 학교 현장에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한 번 선정된 3․4학년 교과서를 내년에도 그대로 사용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거다. 학교의 교과서 담당자에게 확인해보니 3․4학년 영어 교과서는 지난 7월 말에 기존에 선정된 출판사의 것으로 내년도 사용분 신청을 마쳤다는 것이다. 다른 학교에 확인하니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번 9월 중으로 5․6학년 영어 검정 교과서 선정위원회를 마련해서 교과서 선정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검정 교과서 도입 취지가 다양한 교과서로 영어를 배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인데 방학 중에 이렇게 구렁이 담 넘듯 넘겨 버리나 싶어서 교과부 교과서 담당 연구사와 전화 통화를 했다. 1) 5․6학년만 선정하라는 것은 검정교과서 도입 취지에 맞지 않다. 2) 7월말 2012학년용 교과서 신청 공문에 3․4학년 재선정 가능성 여부에 대해 명기하지 않은 것은 결국 기존 교과서를 그대로 쓰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3) 이로 인해, 교과서를 사용해 본 결과 그 학교의 실정과 맞지 않아 바꾸고 싶은 교과서도 결국 바꾸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렇게 세 가지 정도로 문제 제기를 했고 담당 연구사는 1) 5․6학년 교과서를 선정하면서 3․4학년 교과서도 바꿀 수 있다. 2) 교과서 선정 매뉴얼이 있는데 그 매뉴얼에 따르면 된다. 3) 내년도 교과서 신청 관련해서는 담당자가 다르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있었던 거 같다고 했다.

초등학교 영어 검정교과서 도입은 학교와 학생의 선택권 보장이라는 명목 이면에 교과서 개발 책임을 민간에 전가해서 부실한 교과서 개발이라는 비판을 모면해 보려는 것은 아니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교과부는 지금이라도 다시 공문을 시행해서,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 3․4학년 영어 교과서도 새롭게 선정할 수 있도록 각 학교에 알려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닌가?

덧붙이는 글 초등학교 영어 검정교과서에 대한 다른 문제를 후속 기사로 다룰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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