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노출의상, 속옷이야 비키니야?

"괜한 참견은 표현의 자유 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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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진(lredl)등록 2011.08.08 18:03
'아뿔싸!'
하지만 상황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자리다. 그만 그녀와 마주하는 자리에 앉아버린 까닭이다. 애써 시선을 돌려봤자, 수군거리며 이 상황을 지켜보는 남성들의 압도할만한 눈빛에서 피할 방도는 없다. 짐짓 조용하고 근엄한 자세로 앉아 있는 사람을 찾노라면, 여성 몇 명이 고작이다. 함께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어보지만, 전철이 몇 정거장을 지나 사람이 모여들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할 뿐이다.

급기야는 갈색으로 물들인 긴 머리카락을 앞으로 내려뜨리고 하체를 시원하게 드러낸 그녀를 보며, '휴가를 맞아 시원한 물놀이를 즐기다 귀가하는 길인가 보다', '멋진 패션이군!', '시원하겠다!' 같은 남성들의 생각에 견주던 내 시야에 그녀의 분홍 팬티가 훤희 눈에 들어오고야 말았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아찔과 쪽팔림 사이, 노출
꼰 다리를 잠결에 풀어버린 그 순간에도 그녀는 잠에서 깨어나 자세를 바로 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렘수면 상태여서일 것이다. 할 수 없이, 불필요한 참견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난 그녀에게 다가가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잠에 취한 눈빛으로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살피는 그녀에게 나는 얼른 귓속말로 "언니, 속옷 다 보여요!"라고 말해줬다.

하지만 역시 괜한 참견이었나 보다. 그녀는 날 한번 찌르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비키니에요!"라는 단 한마디를 쏘아붙이고 다시 잠을 자기 시작했다.
'비, 비키니라고?!!!'
당황한 나는 달아오른 얼굴을 진정시키며 얼른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호흡을 가다듬고 고개를 찬찬히 드니 그녀에게 향하던 눈빛들이 이번에는 나로 향하고 있었다. '왜 괜한 참견하느냐?'라는 듯…….

노출 기준, '네'가 아닌 '나' 때문
그렇다. 생각해보면 괜한 참견이 맞다. 그녀가 어떤 옷을 어떻게 입든 그것은 표현의 자유인 것이다. 하지만 막상 그녀의 팬티가 아닌 삼각 비키니가 보였을 때, 마치 내 치부를 드러낸 것만 같이 부끄러웠고 훑어 내리는 남성들의 시선으로부터 얼른 감춰주고 싶었다. 또 아무리 자기표현이 자유로운 시대라지만 예를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적정 수위는 서로가 지켜줘야 한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문득 지난달 광화문에서 있었던 '슬럿워크'행진을 떠올려본다. 그녀들은 그 자리에서 '내 몸은 내 거다'라고 외치며, "입고 싶은 것은 입어야 하고, 그것으로 인해 성범죄 등의 피해를 보는 여성은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말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자기표현의 기준이 애매하다. '내 몸이니까 내 맘대로 옷을 입는 것'이 표현의 자유라면, 길거리를 벗고 다녀도 표현의 자유이니 침해하지 말라는 말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뜻이 왜곡될 여지를 만들어 놓고 성범죄 등의 피해를 오로지 남성 탓으로 돌리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이 같은 표현의 자유만 앞세우다가는 성범죄는 끊이지 않고 증가할 것이다. 이것이 지금껏 내가 같은 여자면서도 노출에 당당한 이들에게 지녀왔던 편견이며, 괜한 참견을 한 이유다.

노출에 대한 착한 생각
하지만 몇 정거장을 좀 더 지났을까, 지하철 안 숙덕이는 소리 가운데 "왜? 귀엽기만 하구만…."라는 소리를 듣게 되면서 조금은 내 잘못된 편견을 씻어 내리게 됐다. '귀여워? 도대체 누가 이다지도 "착하게" 생각한다 말인가?'싶어 고개를 돌려 보니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함께 탄 친구들에게 던진 말이다. 추행하는 듯 한 시선 또한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의 눈빛에는 이해와 자유만이 충만했다.

우리사회는 어쩌면, 누군가 굳이 퍼포먼스를 펼치지 않아도 스스로 올바른 길을 찾아 변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세대 차이가 아닌 진정한 이해와 자유를 갈망하는 이들에 의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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