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압봉 대신 노동권을 들고 싶다

노동3권보장, 전의경제 폐지 등으로 경찰 개혁 주장하는 경찰노조 추진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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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세상(laborworld)등록 2011.06.16 11:10

2002년 독일 베를린에서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시위에 참가한 경찰관 ⓒ 노동세상


인기 미국드라마 'CSI(과학수사대) 마이애미'의 호라시오 반장은 노동조합 조합원일까, 아닐까? 답은 '조합원'이다. 유럽 여러 나라와 북미는 경찰노동조합(이하 경찰노조)이 설립되어 있다. 파업을 허용하지 않는 영국을 제외하고는 단결권, 단체 교섭권, 단체 행동권 등 노동3권을 모두 보장한다. 이들 나라에서는 시위대열에 함께 하고 있는 경찰 조합원들을 빈번히 볼 수 있다. 우리에게는 낯선 경찰노동조합이 세계에서는 용인되고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길게는 임시정부수립으로부터 92년, 짧게는 대한민국 정부수립으로부터 63년 동안 이어져 온 우리나라 경찰의 역사에서 '경찰'과 '노조'란 서로 적대적인 관계였다. 이런 역사를 뒤집는 일이 지난 4월 12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있었다. 경찰노동조합추진위원회와 전국공무원노조, 진보신당, 민주노동당이 '경찰노동조합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토론회를 개최한 것이다.

파리 목숨에 철밥통이 무슨 소용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문성호 한국자치경찰연구소 소장은 "경찰노조를 추진하는 이유 중 처우 개선이라는 현안은 여느 노동조합과 다르지 않다."며 4조 2교대 근무 실시, 전의경제도 폐지, 경찰대학폐지 등의 안을 내놓았다.
퇴직경찰의 평균 수명은 일반인보다 16살이나 짧다. 처음 임용될 때는 신체적으로 건장했던 이들이 수명조차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은 3교대 업무의 노동 강도가 얼마나 높은지 여실히 보여준다. 실제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주6일제로 근무를 해야 하는데도 야간 수당, 주말 수당 등의 초과 수당은 '당연히' 없는 것으로 치부된다. 문 소장은 "지난 해 진행했던 G20에서 예산이 크게 절감되었다면서 정권이 자랑삼아 홍보한 적이 있죠. 그 때 동원되었던 경찰인력에 수당을 지급하지 않아서 그럴 수 있었던 겁니다. 사실은 부끄러워해야 하는 일이죠."라며 의장국으로서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노동착취와 수당·임금의 미지급은 현직 경찰들만 당하는 것은 아니다. 병역의 의무를 내세워 전의경들에게는 유노동 무임금을 강요한다. 국방의 의무를 경찰업무로 대신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서도 없는데도 유독 한국에서만 시행되고 있는 것이 전의경제도이다. 그가 전의경제도도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이유다.
그는 또한 경찰대학 폐지를 요구한다. 경찰대 출신자들은 군미필자로 경찰에 입문하게 되는데도 경위로 임용된다. 이들은 병역 특혜를 받고 있을뿐더러 현장경험이 적어 전의경 가혹행위 등의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또한 국가고시를 거쳐 순경부터 시작해야 하는, 다른 4년제 대학 경찰행정과 졸업자들의 사기를 꺾어놓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경찰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일반 입시생은 수능 및 자체시험을 통해 입학할 수 있지만 현직 경찰은 입학시험조차 응시할 수 없다. 여러 정황을 보건대 경찰대학 출신자에 대한 전면적인 특혜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 밖에도 검찰로부터의 수사권 독립 등의 현안을 제시하고 있다. 경찰의 사기 진작 측면에서의 제안이다.

'경찰노동조합, 어떻게 할 것인가?' 국회토론회 ⓒ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모두가 'Yes'할 때 'Yes'만 해야

경찰노조추진위는 지난 2010년 9월11일 경찰개혁시민연대, 경찰발전협의회, 자치경찰시민연대, 대한민국무궁화클럽 등의 경찰관련 4개 단체가 청계산에 모여 결성했다.
경찰노조추진위를 설립하는 데 공이 컸던 사람 중에는 박윤근(45) 경사가 있다. 경기도 안산상록서에서 근무하던 2008년 당시, 그는 촛불시위에 지원을 나갔다가 30시간이 넘는 살인적인 근무를 강요당했다. 이에 "이렇게 일을 시키다간 경찰 쓰러진다. 잠을 재우면서 근무를 시켜달라."는 글을 경찰 인트라넷(내부 인터넷 연결망)에 올렸다. 또한 2009년에는 '조현오 식 성과주의'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후 박 경사는 경찰 지휘부를 저속한 표현으로 비방했다는 점과 절도 사건을 6차례 묵살했다는 이유 등으로 해임당했다. 보복성 인사가 의심되는 처우다.
이때부터 박 경사는 해임처분 취소 소송을 내면서 복직을 위한 투쟁을 하는 한편, 뜻을 같이하는 경찰 내·외부의 인사들과 함께 경찰노조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경찰계급은 순경부터 경장, 경사, 경위, 경감, 경정, 총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중 경정까지, 즉 전체의 80~90%에 해당하는 인원이 조합원 대상자이다. 광대한 조직이 될 수 있음에도 아직 은 초기 단계라 경찰 내부에서 동조하는 이들은 많지 않은 상황이었다. 또한 이런 활동이 드러났다가는 파면, 해임, 정직 등의 징계를 면치 못할 것이 빤했기 때문에 경찰노조추진위의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경찰노조추진위 결성 초기에 현직 경찰로만 구성되어 있는 대한민국무궁화클럽은 연대·연합을 번복한 일도 있었다. 그래서 현재 경찰노조추진위에서 대내외적으로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는 문성호 소장은 "시민사회단체의 연대가 중요합니다."라며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한다.

문성호 한국자치경찰연구소 소장 ⓒ 한국자치경찰 연구소


경찰 조직의 민주화, 가능한가?

경찰노조추진위의 최상위 목표는 '경찰조직의 민주화'다.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면서 사회 전반의 민주화는 어느 정도 진행되었다. 반면, 경찰 내부의 민주화는 이루어지지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못한 부분이었다. 견고한 상명하복 체계에서는 경찰 개개인의 의사는 무시되고 표현의 자유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선 경찰이 스스로 노조를 만들고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수적이라는 것이 경찰노조추진위 측의 주장이다. 이렇게 되면 중하계급 경찰들이 국민 인권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고 정책에 반영시킬 수도 있다. 따라서 국민과 경찰, 양측을 죽음으로 내모는 극렬한 폭력사태는 없으리라는 거다.
지구대와 파출소 폐지 또한 주장한다. 문 소장은 "지구대와 파출소는 일제가 식민지 민중수탈 및 독립운동 감시·탄압을 위해 만든 것입니다. 경찰통치 차원에서 지금껏 고수해 온 이 제도는 다른 나라는 물론 일본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는 것"이라며 그 최하조직을 '경찰서'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찰서의 상급 단위인 시·도 지방경찰청의 청장을 주민직선으로 선출해야 한다고도 한다. 현재의 중앙집권적 결정 체계 안에서는 민주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문 소장은 지방지치를 완성하는 측면에서도 이는 중요한 문제라면서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제도는 현재처럼 국회만으로는 철저한 감시감독이 불가능합니다. 지역경찰은 지역주민이 통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시도 경찰청장의 주민직선과 더불어 선출된 경찰청장 및 경찰 조직을 감시할 수 있는 독립적인 기관도 필요하다. 현재는 대통령 소속의 국민권익위원회 경찰민원고충처리 소위원회가 있으나 제대로 감시를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경찰 내부 인트라넷을 통한 비판은 징계를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경찰노조추진위에서 생각해낸 것이 '경찰 옴부즈맨 제도'이다. 경찰조직으로부터 독립된 기관과 주민도 참여할 수 있는 제도를 통해 민주적 경찰로 거듭나겠다는 의지이다.

"용산, 쌍용차에 사죄할 것"

경찰노조추진위 측 주장과 요구가 옳다고 해도 노조 설립까지는 여러 모로 난항이 예상된다. '경찰의 노동조합'은 우리나라 국민 정서 상 대중적인 호응을 얻기 어려운 데다가 현재까지 경찰의 이미지는 '폭력'이나 '비리', 그 자체였다. 따라서 경찰 조직 구성원들의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지역 사회 단체와 겉으로 드러나게 연대할 수는 없는 실정이지만 주민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그 지역의 사정에 맞게, 주민의 요구를 중심으로 경찰 행정을 하고 있죠."라며 문 소장은 경찰의 이미지 쇄신뿐만 아니라 진정한 민주화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많다고 했다.
특히 진보진영과의 화해가 필요하다. 비상식적인 강경진압으로 문제가 되었던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투쟁 현장 등과 관련하여 문 소장은 "언젠가는 피해자 분들이나 노동자들을 찾아가서 사죄할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정권의 하수인 NO! 민중의 지팡이 YES!'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펼쳐 보이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참교육'을,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공직사회비리 척결'을 내세웠듯이 경찰은 실질적 '민중의 지팡이'가 되기 위해 사력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

노광표부소장 ⓒ 노동세상

경찰노조가 취할 수 있는 정치적 목표는?
경찰노조도 민간부분노조와 동일하게 근로조건 개선, 인력 확충 및 교대제 개선 등 처우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국민들이 느끼는 경찰에 대한 고정관념 및 현 실태를 개선하지 않는 한 국민 일반의 동의를 얻는 것이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에 따라 경찰노조를 준비하는 측도 '경찰의 민주화(문민화)', '국민의 봉사자'로 거듭나는 경찰상 확립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최대의 정치적 목표는 '자치경찰제' 도입이다.

파업 등의 단체행동은 노조의 무기이다. 경찰노조가 설립되었을 경우, 투쟁 방법은?
일반직공무원노조에게 단체행동권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찰노조의 단체행동권 보장은 현재의 조건에서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된다. 다만, 경찰노조도 일반직공무원노조와 동일하게 그들의 요구를 사회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집단적인 '의사표현'의 자유 및 근무시간 이외의 집회 등은 국민일반의 권리로서 보장되어야 한다. 특히 공공부문노조의 경우 정부를 압도할 수 있는 정책적 대응이 요구된다.

유럽의 경찰노조를 롤모델로 하고 있다. 다른 나라의 경찰노조와는 다른, 한국지형에 맞는 경찰노조를 만들기 위해 어떠한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하며,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특수직공무원인 경찰에 대한 국민일반의 인식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공권력 사용에 대한 부정적 인식, 고압적인 태도, 만성적인 부정부패 등이 그 원인이다. 국민일반의 동의를 획득하기 위한 경찰노조의 목표 정립이 필요하다. 경찰에게 노조가 보장되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대국민 선언 및 약속이 가시화돼야 한다.

'사회적 인정'을 받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려 하나?
경찰노조가 사회적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노동조합의 지향점을 제시하는 것과 같다. 노동조합은 '정의의 칼'과 '기득권의 이해'라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경찰노조가 기득권의 이해라는 권익대변 기구 역할만을 수행할 경우, 국민들의 지지(보다 냉정하게는 노동계의 지지)도 받지 못한다. 사회적 인정을 위한 첫 출발은 과거의 청산과 미래의 비전 제시이다. 일회적인 사과가 아닌 현업에서 인권을 지키는 경찰, 국민의 봉사자로 거듭나기 위한 자기 실천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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