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매일 밤마다 일어났다, 그것도 몇 번씩

'육아'가 일상인 여자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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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찬호(och7896)등록 2011.04.21 14:23
육아는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일상은 좀 다르다. 경제활동을 주로 책임지는 남자는 현실적으로 도와주는 것 이상의 물리적 시간을 내기 어렵다.

그리고 문제는 경제활동을 책임진다는 그 변수 하나에 대한 의존도가 무척이나 높다는 것이다. 당연히 많은 남자들은 "왜 육아를 도와주는 것 이상으로 해야 하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육아를 '함께' 한다고 겉으로는 말하더라도 실상 까놓고 보면, '약간' 도와주고 생색내는 것이 태반이다. 그리고 이 '자뻑'의 강도가 높을수록 제대로 도와주는 경우는 드물다. 말만 번지르하게 생색내는 것이다. 나처럼.

아내는 매일 밤마다 일어났다, 그것도 몇 번씩

딸이 태어나고 아내의 모유수유가 한창일 때다. 육아는 함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또 그렇게 실천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나. 어느 날, 우연히 새벽 3시에 일어나보니 아내가 방 한 구석에서 수유 중이었다. 누가 수유 중인 여자의 뒤태가 아름답다고 구라를 쳤을까? 에어컨도 없던 한여름의 열대야. 습기 가득한 한밤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젖을 주고 있는 아내의 뒷모습은 불쌍함 그 자체였다.

아무리 남자가 도와준다고 한들 여자의 부담은 더한 거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다음 날 만난 사람에게 이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다. "아내가 밤마다 모유수유 때문에 한 번씩 일어나는 것이 안쓰럽다"고.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은 남녀에 따라서 전혀 달랐다. 남자는 "그래? 그게 여자의 운명이지. 그래서 엄마를 위대하다고 그러는 거 아니겠어?"라면서 전혀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기 일쑤였다. 개뿔.

하지만 여자들의 대답은 좀 달랐다. 일단 그녀들은 굉장히 의아해했다. "밤중에 한번만 수유해요? 그거 참 착한 아기네요." 엥?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그래서 아내한테 우리 아기가 그렇게 효녀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내는 미친놈한테 별 미친 소릴 듣는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무슨 소리야? 평균 3~4번은 일어나는데. 어제도 그때가 세 번째였어. 어구, 어쩌다가 한번 일어나서 보고 나서 별 소릴 다하고 다니네."

으허허. 나는 그 중에 한 번을 보았네 그려. 그리고 이 한번도 '어쩌다' 본 것이었네. 그 한 번도 힘들어 보였는데, 아내는 그걸 '시도 때도 없이'하고 있다니.

오늘은 하루 종일 혼자 아이를 보는 날

오늘은 나 혼자 세 살 짜리 딸을 하루 종일 본다. 그것도 아내가 새벽에 나가서 늦은 밤에 들어오기 때문에, 말 그대로 내가 잠도 깨워야 하고 밥도 먹이고 놀아도 주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씻기고 잠도 재워야 한다. 풀타임 육아를 해야된다는 거다. 아내는 걱정이 많다. 그러나 나는 안심시켰다. 내가 누군가. 육아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 아닌가.

"걱정 마세요. 박 여사님. 해서(딸 이름)는 오늘 천국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내일부터 내가 없으면, 아빠 찾을 딸 때문에 당신이 고생 좀 할 것이라고 협박까지 했다. 물론, 이건 앞으로 내가 무슨 일을 겪을지 전혀 모르고 저지른 입방정이었다.

해서는 일단 울기 시작했다. 이 녀석은 '그냥' 기분 좋게 일어나면 될 것인데, 왜 일어나면서부터 우는 것일까? 하긴, '그냥'을 '그냥' 이해할 나이는 아니다만. 멋도 모르고 난 "오늘, 엄마 없어! 나랑 하루 종일 있어야 해! 좋지?" 하면서 염장을 질렀다. 그러니 더 운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운다. 배가 고파서 그런가?

말이 또래보다 늦은 내 딸 해서, 평소에도 의사소통에는 상당한 집중이 필요한데 이렇게 울고불고 난리를 치고 있으니 난 도무지 이 녀석이 무엇을 원하는지 감이 오질 않는다. 하긴 오늘이 사실상 처음인데, 감이 어찌 하루아침에 오겠냐만. 대충 눈치를 살피니, 혹시 기저귀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저귀를 만져보니 묵직하다. 난 이해했다. 이 녀석이 찝찝해서 그런 거라고.

"기저귀 갈아줄까?"그러니 "응" 그런다. 우와. 통했다. 그런데 기저귀 가는 것이 만만치 않다. 입혀 놓은 옷은 왜 이리 많은지. 벗기다가 시간 다 간다. 게다가 가만있지도 않는다. 레슬링 선수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이리저리 뒤집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기저귀를 벗겨보니 밤새 발진이 생긴 듯하다. 약을 발라주어야겠다. 약통을 열었다. 그런데 '아기사진'이 있는 약이 왜 그렇게 종류가 많지? 도대체 무슨 약을 발라주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고민만 10분. 아내는 전화불통.

에라이, 오늘 하루 안 발라준다고 별 일 있겠냐. 그래서 그냥 기저귀 채운다. 그런데 기저귀 하나 채웠는데 뭐랄까, 굉장히 큰 일을 한 듯한 느낌이다. 

밥을 먹여야 할 시간이다. 이건 자상한 아빠인지 아닌지를 떠나 기본적인 인권에 관한 문제 아니겠는가. 아니 그런데, 왜 밥을 안 먹겠다고 그러지? 이 녀석은 자기 권리도 못 챙겨먹는단 말인가. 결국 내가 그걸 다 먹었다. 아줌마들이 왜 살찌는지 잘 알겠더라. 어쨌든 계획대로 되는 것이 전혀 없으니 이거 체면이 영 말이 아니다. 아니, 체면을 떠나 아빠로서 무엇인가 의기소침해진다.

하지만 힘내자. 난 아빠 아닌가. 기저귀 갈고 밥 먹이고 이런 것은 소소한 영역이니 못한다고 너무 그러지 마라. 아빠답게 야외활동을 통해 오전의 마이너스 점수를 만회하리. 그래서 놀이터까지는 (매우 어렵게) 갔다. 물론 외출복을 입히다가 이미 또 기진맥진.

그런데 이 녀석은 내가 뭐 좀 같이 하려고 하면 갑자기 울상이다. 무엇인가 자기가 원하는 패턴이 있는데 나 때문에 흐름이 깨졌다는 분위기다. 기차놀이를 해도, 그네를 타도 일정한 상황극에 따른 역할이 있는데 내가 그걸 잘 못한다는 그런 느낌. 그런데 내가 그 패턴을 알 턱이 없다. 그러니 내가 신경 쓸수록 현장은 완전 유괴범한테 아이가 납치되는 분위기다. 결국 힘만 빼고 다시 귀가.

씻기기라도 해야겠다. 그런데 해서의 몸은 거지꼴인데 안 씻는단다. 화장실에 안 들어온단다.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이건 내 문제가 아니다. 저 녀석이 지금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 확실하다. 전문기관의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내 자식이 이 정도인 줄도 모르고 내가 너무 무관심했다. 미안했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해서가 이상해."
"왜?"
"아무것도 안 해. 짜증만 내고. 심각한 것 같아."
"뽀로로 가지고 달래면서 잘 해봐. 그럼 될 거야."
"지금 장난해? 해서가 조금 이상한 것 같다니까!"
"(버럭 화를 내면서) 아 그러니까! 뽀로로 젓가락으로 먹여 보라니까!"

뽀로로에게 노벨 평화상을 주자

뭐라고 뽀로로? 이건 내가 마트에 갈 때마다 욕하던 그 펭귄대가리에 수경 덮은 그 캐릭터가 아닌가. 장난감 중에 뽀로로 마크가 붙으면 동일기능 제품이라도 가격이 최소 30% 이상 비싸다.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난 이 놈이 싫었다. 뽀로로, 토마스, 코코몽 등 다들 돈만 챙겨먹는 나쁜 놈들. 그런데 지금 아내는 무슨 소리인가?

그런데 어라? 해서가 말을 듣는다. 뽀로로 젓가락을 놓으니 밥을 먹는다. 더 웃긴 것은 뽀로로 인형을 들고 내가 상황극을 하니 더 잘 먹는다. 좋다. 다시 하루를 시작해보자! 결과론이지만 이 친구들이 없었으면 난 이 글도 못 쓰고 장렬히 전사했을 듯.

항간에 뽀로로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해야 한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무엇보다도 왜 이렇게 우리집에 뽀로로가 많은지도 이제야 알았다. 그래서 소개한다. 우리집 뽀로로들을.

먼저 도열. 뽀로로책상, 뽀로로바구니, 뽀로로 주방놀이, 뽀로로 블록, 뽀로로 인형, 뽀로로 가방, 뽀로로 비행기, 뽀로로 책, 뽀로로 야구방방이, 뽀로로 공, 뽀로로 슬리퍼, 뽀로로 치약, 뽀로로 칫솔, 뽀로로 젓가락, 뽀로로 숟가락, 뽀로로 포크, 뽀로로 음료수. 많이도 있구나. 하지만 이건 어디 명함도 못 내민다는 수준이니, 아이들의 뽀로로 사랑이 왜 대단한지 알겠다.

우리집 뽀로로들 ⓒ 오찬호


인형도 크기에 따라 다양하다. 큰 놈을 지겨워하면 다른 놈을 이용하자.

다양한 뽀로로들 ⓒ 오찬호


육아가 피곤한가. 그럼 아래 장난감을 추천한다. 최소 1시간은 버틴다. 함께 놀아주면 더 버틴다. 그리고 그 사이에 밥을 먹일 수도 있으니 이런 걸 보고 일석이조라 하지. 다만, 억지로 놀아주면 안 됨. 아이들의 엄청난 상상력을 방해하지는 말길.

뽀로로가 사시는(?) 얼음나라의 제도적 특성에 대한 공부가 약간 필요하고 뽀로로 친구들, 그러니까 포비, 루피, 에디, 해리, 로디, 패티, 크롱 등의 서열과 성격, 역할 등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작정 생뚱맞은 상황극을 만들다가는 완전히 왕따 당하니 명심할 것. 참고로 크롱은 말을 할 수 없으니 유의할 것. 

뽀로로 스쿨버스 (블럭놀이) ⓒ 오찬호


이런, '요리' 놀이도구는 '혼자'서도 잘 놀게끔 한다.

뽀로로 주방놀이 ⓒ 오찬호


참고로, 이 비행기 놀이는 탑승객의 이름 정도는 알아야지 재미있단다. 이게 아마도 우유신청하고 받았던 것인가?

뽀로로 비행기 ⓒ 오찬호


집안에서만 노는 건 진정한 육아가 아니라고 했다. 밖으로 나가자! 오감을 자극시키자! 이 가방으로 유인해라!

뽀로로 가방 ⓒ 오찬호


활동놀이를 할 수 있는 도구가 있으면 금상첨화!

뽀로로 야구세트 + 뽀로로 공 ⓒ 오찬호


놀이에는 음료수가 있으면 '더' 노는 거 알지?

뽀로로 음료수 ⓒ 오찬호


집에 오면 씻어야겠지? 요즈음 수족구병 유행이라잖아. 뽀로로의 친구 '루피'는 알고 있지? 루피는 친구 잘 만난 덕택에 노벨평화상감.

뽀로로 치약, 칫솔 ⓒ 오찬호


화장실로 유인은 이걸로 하면 만사 오케이!

뽀로로 슬리퍼 ⓒ 오찬호


이제 공부할 시간!

뽀로로 책들 ⓒ 오찬호


상황극 놀이 한번 해볼까? 오늘은 마트체험!

뽀로로 마트놀이 ⓒ 오찬호


밥 먹자!

뽀로로 수저 ⓒ 오찬호


밥 다 먹었으면 배 꺼질 때까지 노래나 부르자.

뽀로로 템버린 ⓒ 오찬호


똥 싼 줄도 모르고 기저귀 갈았다고 큰 소리

그러나 폭풍이 계속된다. 울음의 폭풍이 웃음의 폭풍으로 변했을 뿐이다. 주체할 수 없다는 것은 같다. 울음에 맞추는 것도 힘들지만, 웃음에 맞추는 것도 상당히 힘들다. 진정제 차원에서 TV를 틀었다. 이런. TV에는 <뽀로로와 노래해요>가 방송되고 있다. 그렇게 기나긴 사투의 끝은 뽀로로가 외계인에게 납치돼 구출된다는 SF 창작 구연동화를 하면서 마무리된다. 드디어 잠이 들었다.

밤 11시. 아내가 들어온다.
"나 왔어~"라는 소리에, 내가 버럭 소리부터 지른다. "조용하라고! 해서 잔단 말이야!" 이 목소리가 얼마나 절박해 보였는지, 아내가 웃는다.

아내는 해서에게 가면서 "내 새끼, 기저귀 한번 볼까?" 그런다. 나는 화들짝 놀라 "괜찮아! 내가 기저귀 갈았다니까!"라고 고함을 지른다. 그런데 이 소리에 얼마나 많은 자신감과 비장함이 묻어 있는지, 내가 말해놓고도 민망하다. 나의 표정은 '임무를 완수'한 제임스 본드와 싱크로율 100%.

그런데 아내 왈,

"기저귀 갈았다고 하지 않았어? 똥 쌌는데? 언제 갈았어? 오래된 것 같은데."
"어? 아까 저녁 6시에 갈았는데."
"해서 언제 잠 들었는데?"
"10시."

그리고 아내의 마지막 한마디.

"그래, 됐다. 오늘 하루 욕봤다."

휴~ 나는 그냥 돈만 열심히 벌어야겠다. 딱 하루에 KO다. 그것도 뽀로로 덕택에 '하루' 겨우 버티었을 뿐.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온라인 이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온라인 이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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