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에서 전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원숭이에 죄인이었죠."

퇴출프로그램 통해 비인간적 구조조정 당한 KT 노동자들의 피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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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희(laborworld)등록 2011.04.18 18:03
"KT 안에서 저는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kt 직원 한미희씨의 오열은 조용했으나 뼈아팠다. 1981년 입사해 청주지사 고객서비스팀에서 일하던 한 씨는 지난 2001년 상품판매업무를 하다가 갑자기 전화, 인터넷 개통업무로 전보되었다. 직접 전주를 타고 오르내려야 하기에 숙련도와 체력을 요구받는 업무였지만 교육과정조차 없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옮겨 높은 전신주에 올라가서는, 사다리가 발에 안 닿아 비 오는 날 고압전선이 설치된 옆 전봇대에 한쪽 발을 걸치고 몇 시간을 버틴 적도 있었다. 하루는 왼손을 다쳤다. 팀장의 말대로 연차를 쓰고 병원에 갔다. 그러나 이는 '직무태만' 사유로 기록되었다. 심지어 왼손에 깁스를 한 한 씨에게 팀장은 전신주 업무를 계속 시켰다. 도저히 못하겠다는 한 씨에게 "그럼 사람을 사서 시키라."며 다른 사람을 알선해 주기까지 했다. 한 씨는 사비 57만원을 들여 다른 사람에게 전신주 일을 시켜야만 했다.
더욱 괴로운 것은 인간적인 모멸이었다. 전체 필수교육시간이면 사회자는 일부러 마이크로 "한미희 씨는 해당사항 없으니 나가세요."라고 방송했다. 아무도 한 씨에게 말을 붙이지 않았다. 회식 장소조차 혼자 모르기 일쑤였다. 심지어 팀장은 한 씨더러 전화국 앞 국기계양대에 오르라고 시켰다. "작업 시범을 보이라."는 것이었다. 한 씨는 안전벨트와 안전모를 하고 '원숭이처럼' 국기계양대에 올랐다. "엉덩이 뒤로 빼! 더 빼!" 팀장의 호령과 지나가는 사람들의 비웃음이 쏟아졌다. 간신히 눈물을 참고 내려온 한 씨에게 팀장은 소리를 질렀다. "누가 내려오래? 다시 올라가! 엉덩이 더 빼고!" 그 야만 속에서, 오로지 한 가지 생각만이 그녀를 버티게 했다. '난 kt 다녀야 돼. 우리 애들이 있잖아. kt 다녀야 돼...' 동시에 그 생각이 그녀의 '죄'였다.

육춘임 씨도 그녀와 같은 '죄인'이다. 육 씨는 청주에서 영동으로 전보되어 하루에 4시간 걸려 출퇴근을 하며 일하지만, 계속해 업무경고장과 퇴출면담을 받고 있다. "내근직이었는데 갑자기 생전 안 해봤던 인터넷, 전화 개통 업무를 하래요. 전 50대거든요. 처음에 영동대학교에 인터넷 개설을 하러 가래요. 저만 차를 안 줘서 배낭에 장비 넣고, 허리에 케이블 감고 걸어갔어요. 산을 하나 넘어도 학교가 안 나오는 거예요." 학교는 5km 밖에 있었다.
"제가 50대인데 전신주에 오르다 보면 다리에 쥐가 자주 났어요. 한 번은 쥐가 나서 오르지도 내리지도 못하고 죽기살기로 매달려서 버텼어요. 그 다음부터는요...핀 갖고 다니면서...쥐 나면 제 허벅지 찔러서 내려왔어요....그래도, 그래도 회사는 일을 적게 한다고 업무촉구서를 내리는 거예요..."지금도 퇴직 면담에 시달리는 육 씨는 결국 울고 말았다.

결국 2010년 1월 징계해고당한 김옥희 씨는 그녀들의 암울한 미래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지난 2007년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 신장 기능 마비를 앓으며 이렇게 적었다. "사표 안 내는 죄가 이렇게 클까? 당장 이 자리서 죽고 싶다. 오늘도 아침부터 악담을 해댄다. '양심도 없는 뻔뻔한 아줌마, 여기가 당신 요양원인 줄 아냐'... 오늘은 창고에 있으란다."

그녀들은 어떻게 죄인이 되었는가. 단초는 2002년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민영화를 앞둔 kt(당시 한국전기통신공사)가 외국 투자자들에게 제시한 기업비전에는 한 가지 그래프가 포함돼 있었다. 매출액 대비 인건비를 15%로 내리겠다는 내용이었다. 실제 2002년 이전부터 수 차례의 인력구조조정을 통해 2만여 명을 퇴출했고, 이후에는 7차례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해 *만여 명을 강제 퇴출했다.
이러한 강제퇴출 과정에 KT는 'CP 프로그램'(부진인력관리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그 실체는 익명의 관리자가 지난 2008년 당시 KT민동 회장이었던 조태욱 씨에게 제보함으로써 처음 드러났다.

CP는 C-Player(성과 부진자)의 약자로 AP(A-Player), BP(B-Player)와 함께 직원 분류 방식 중 하나다. 퇴출 및 관리대상인 C-Player는 114 분사 당시 잔류자, KT 민주동문회(이하 KT민동회) 관련자, 명예퇴직 거부자, 업무 부진자 등이 포함되고, 그 단계는 핵심대상, 중점대상, 주요관찰대상, 잠재대상, 콜센터 전출대상으로 분류된다. 이 프로그램에 의하면 대상자를 파면 조치할 때까지 1)대상자에게 단독 업무를 내리고, 2)업무지시서, 업무촉구서, 서면주의, 경고, 징계처리 등의 절차를 3회 반복해 시행하게끔 하고 있다. 3)이를 감사실에 통보하면 징계 조치한 후 다른 본부로 발령해 또 다시 1)을 반복한다. 결국 관리대상자가 견딜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스스로 퇴사하도록 압박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관리 SOP(Standard operating procesure)'라고 한다.
여기엔 * 단독업무를 부여하되 개인별 취약점 등을 분석해 부여할 것 * 2차 업무지시 때는 1차보다 짧은 기간에 더 강도 높은 업무량을 부과할 것 *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중징계를 유도할 것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나이가 많거나, 명예퇴직을 거부했거나, 회사 내 민주성을 보장하라는 목소리를 내는 등 '회사 눈 밖에 난' 모든 이들은 이 프로그램의 희생자가 되는 것이다.

4월18일 반기룡씨는 기자회견을 통해 회사 전체 퇴출목표와 본부, 지사별 퇴출목표, 구체적 퇴출 방안이 기록된 '부진인력 퇴출 및 관리방안 문건'을 폭로했다. 반 씨는 2007년 이 프로그램의 담당자였고, 자신 역시 이를 통해 2009년 퇴출되었다.
반 씨가 공개한 관련 문건에는 대상자의 주간 활동 보고, 개인별 실적표, 업무지시서, 징계처분 요구서, 면담요령 및 시나리오 등 세세한 징계, 퇴출 처리지침이 담겨 있다. 주간 활동보고서에는 (퇴출) 대상자에게 지시한 업무내용과 추진 실태, 사생활 동향에 대한 기록까지 하도록 되어 있고, 개인별 시나리오 보고서에는 가족사항이나 경제적 상황은 물론 사생활의 약점까지 조사해 보고하도록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업무능력 부진 및 근무태도 불량 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주의·경고 처분을 한 후 1차 명퇴를 권유하고 불응할 시 징계를 내린 뒤 다시 2차 명퇴를 권유할 것, 그래도 불응할 경우 직위 미부여 또는 해임 처리하라는 추진 시나리오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퇴출대상을 선별할 권리는 팀장에게 없었다. 본사에서 지침과 핵심관리대상이 내려왔다. 여기엔 114 잔류자와 민동회 회원이 포함되었고, 이들은 반드시 퇴출해야만 했다. 하달된 문서에는 대상자의 인적사항이 상세히 기록돼 있었다. 계속해 개인 사생활을 조사해 매일 관찰일지를 쓰고, '타 직원들과 격리해 소외감을 주라'고 명시해놓고 있었다. 또한 스트레스를 주는 식으로 관리하도록 했다. 휴대폰 개통이 늦어지건, 동료랑 말다툼을 하건 무조건 구두경고를 내렸고, 따로 불러서 kt를 퇴직하고 자회사에 가라는 압력을 넣는 식이다."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본사는 관리자에게 정신교육을 받게 했고, 목표를 달성하면 인사고과에 상위등급을 부여하겠다고 했다. 반면 목표를 미달하면 경고 이상 징계, 보직 미부여, 타 기관이나 본부 전보, 심지어는 퇴사까지 권고하겠다고 했다. 지난 2007년 KT 전체 퇴출목표는 550명이었고, 당시 팀장으로 있었던 그에게도 '핵심퇴출대상자' 1명이 배정되었다. 내키지 않은 업무였다. 더구나 대상자인 장아무개 씨는 그의 고등학교 후배였다. 그 탓에 '세게' 관리를 못한 반 씨는 상품판매 1위를 달성했음에도 부진팀장으로 낙인찍혀 07년 12월 음성지역에서 제천지역으로 전보되었다. 전보 다음 날엔 '퇴출인력을 제대로 관리 못하면 나중에 어떤 인사 상 불이익도 감수하겠다.'는 각서를 충북지사장 앞에서 작성했다.

이쯤 되자 반 씨도 절박해졌다. "저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장아무개씨를 심하게 다루기 시작했습니다....(울음)" 그는 매일 장 씨의 행동을 일지에 기록하고 출퇴근시간을 체크했다. 판매량이 적다고 모욕을 주고 밤늦게까지 따로 남게 해 개별 시험을 치렀다. 충주지사는 이러한 내용을 모두 받아 장 씨에게 경고장을 발부했다. 그 과정은 장 씨 뿐 아니라 반 씨에게도 고통이었다. 반 씨는 2008년부터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해 2009년엔 휴직해 2차례 입원치료까지 받았다. 그런 그에게 인사담당자는 "누구누구도 퇴직했다던데... 라며 말을 흘렸다." 반 씨는 결국 인사담당자의 차 안에서 명예퇴직 동의서에 서명했다.

kt 노동인권위원회 조태욱 집행위원장은 "2008년, 2010년에 이어 이번 양심선언까지, 총 3회 CP 관련 자료가 입수되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관리 SOP'가 노동자들의 퇴출과정에 핵심적으로 작용하며 회사 전체의 경영평가 지표로 반영되었다는 점, 또 퇴출실적이 관리자 인사고과에 반영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CP 퇴출지침을 본사에서 제작하여 하달했음을 입증한다."고 주장했다.

'살아남은 자'들은 무사할까. 그렇지만은 않아 보인다. 이러한 개인 퇴출지침은 지사, 본부별 '경영평가제도'나 '성과급제'와 맞물려 더욱 커다란 위력을 발휘한다. "다른 본부나 지사보다 못하면 안 된다."는 관리자들의 독촉은 임금과 인사로 연결되어 노동자 스스로 매출액과 순이익을 걱정하며 자발적으로 노동 강도를 높이게 되는 것이다.
경영평가에서 핵심항목이 된 '상품 판매'와 '고객만족도 조사(CVA)'는 노동자들을 극심한 스트레스로 내몰고 있다. 새로운 상품이 출시되거나 경쟁사와 비교해 실적이 저조하면 어김없이 강매 할당이 떨어진다. 영업팀을 넘어서 일반 부서에도 할당량이 떨어지는 경우가 자주 있는데, 아침저녁으로 점검회의가 잡히고 부서 전체가 비상이 걸린다고 한다. 주말에도 '자발적으로' 휴일영업행사에 참석하는 일이 빈번하다. 물론 휴일근무수당은 지급되지 않는다. 조회 때마다 사내 메신저인 KT-iman으로 실적을 공개하며 독려하고 있어 사용하지도 않을 핸드폰을 자비로 개통해 실적으로 올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통증을 겪으면서 kt는 얼마나 성장했는가. 확실히 '성장'은 했다. 2002년 민영화 이후 초고속인터넷망 구축사업을 비롯해 이동통신 분야에도 진출하는 등 사업을 크게 확장했고, 2010년 당기순이익은 11,719억에 달한다.
그러나 그 뒤엔 정리해고로 내쫓긴 1만여 명의 노동자가 있다. 수익성에 과도하게 치중하고, 주주 환원율이 너무 높다는 지적 또한 존재한다. 2010년 kt의 배당성향은 50%였다. 수익의 절반이 주주의 배당금으로 지급된 것이다. 이석채 사장은 ""자사주를 매입·소각해 주당 순이익을 증가시킬 것이며 주주환원정책을 유지하고 인적비용을 절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결국 주주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노동착취를 더욱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과거 국가기간통신망의 유지, 보수를 담당해온 경영방식 또한 '매출지상주의'로 바뀌었다. 시설투자 대신 영업, 마케팅에 집중하면서 가개통, 강매 등 불법 마케팅이 만연하고 통신서비스의 질이 갈수록 저하되고 있다는 지적 또한 끊이지 않는다.

민변 노동위원회 권영국 변호사는 kt의 이러한 노무관리와 노동탄압을 "민영화 이후 야기되는 심각한 노동탄압 사례"로 보고 우려한다. "'경영상 필요'라는 목적을 갖고 정리해고 단계에 집중 이뤄졌던 인력구조조정이, 합리적 목적 없이도 상시적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해고하는 퇴출프로그램이 되어 진행되는 거다.이건 민영화 이후에 나타나게 된, kt뿐 아니라 다른 대기업에도 해당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권 변호사는 kt 대책위를 꾸려 민영화 이후 나타난 기업의 문제적 경영방식과 노동탄압에 대해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 씨는 지난 2009년 결국 해고당했으나 부당해고 판결을 받아 복직해 지금도 일하고 있다. 노골적인 홀대는 줄었지만 그는 여전히 '죄인'이다. 여전히 상시 면담을 통해 명예퇴직을 강요받고, 업무실적도 낮은 평가를 받는다. 18일 기자회견 참석을 위해 낸 연차도 승인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진짜 고통은 따로 있다고 한 씨는 말했다. 이를 악물고 버티게 한 실낱같던 희망, 노력하면 찾을 수 있으리라 믿었던 출구가 애초에 존재조차 없었다는 절망이 그것이다.

"차라리 이런 게 있다고 몰랐을 땐, 그러려니 했어요. 전 한 번도 kt에게 인간으로 대우받은 적이 없었으니까. 그냥 그런가보다...그냥 자식들 먹여 살려야 하니까 일하려고 하는 게 죄라면 죄지...저는요... 아직 (퇴출프로그램 자료) 못 읽었어요. 이거 읽으면 제가 무너질 거 같아서... 그래도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언젠간 인정해 주겠거니 했던 희망이, 제 그동안의 노력이 다 무너질 거 같아서.... 그런데 이거 보니까...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 지 모르겠어요..." 겨우 울음을 삭인 한 씨와 육 씨의 눈가가 다시금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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