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승리, 손학규의 승리

단일화 협상, 과연 누가 승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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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욱(silchun615)등록 2011.04.13 17:33
4.27 재보궐 선거 김해을에서 이봉수 국민참여당 후보가 야권 단일후보로 선출됐다.

지난 4월10~1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봉수 후보는 곽진업 민주당 후보와 민주노동당 김근태 후보를 근소한 차이로 따돌리고 야권 단일후보가 되었다. 이봉수 후보와 곽진업 후보의 지지율 차이는 3.5%에 불과했다. 단 수 십 표 차이로 희비가 엇갈린 것이다.

이날 <국민일보> 여론조사에 의하면 이봉수 후보는 김태호 후보와의 가상 대결에서 55.4%를 얻어 34.6%를 얻은 김태호 후보를 20%이상 앞질렀다. 사실상 당선을 예약해 놓은 셈이다. 천재지변이 없는 한 유시민 대표와 국민참여당의 숙원인 원내 진출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그래서 이번 경선 결과를 "유시민의 승리"로 평가한다. 유시민 대표는 김해을을 얻기 위해 자신의 모든 걸 걸었다. "방사능비"도 마다하지 않았다.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온갖 비난이 쏟아졌지만 오직 1승을 위해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갔다. 때문에 승리의 영광은 당연히 유시민 대표에게 돌아가야 할 듯하다.

하지만 과연 유시민 대표는 승리했을까?

유시민의 소탐대실, 손학규의 소실대득

단순히 협상만 결과를 놓고 보면 4.27보궐선거 야권후보 단일화의 최대 수혜자는 국민참여당이다. 민주노동당도 적지 않은 실리를 챙겼다. 하지만 진짜 수혜자는 민주당의 손학규 대표였다. 작은 판 - 김해을 보궐선거 - 에서는 패배했는지 모르지만 큰 판 - 2012년 총선과 대선 - 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손학규 대표의 분당을 출마는 어쩌면 모험수였다. 분당이 한나라당의 천당이라면 야권에게는 지옥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제1야당의 대표라고 해도 지옥에서 살아 돌아오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김해을에서 여론조사에 의한 단일화방식을 수용한 것도 역시 모험이었다.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후보가 승리할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 그 모험은 실패하였다. 김해을 협상 결과만 놓고 보면 손학규 대표는 패배한 셈이다.

하지만 전술적으로 패배했는지는 몰라도 전략적으로 그의 승부는 적중했다.

민주당은 이번 기회에 "욕심쟁이 큰 형"라는 인식을 상당부분 불식시켰다. 그리고 손학규 대표는 대의를 위해 소아를 버릴 줄 아는 "통 큰 정치인"이라는 소중한 정치적 평판을 얻었다. 이런 평판은 1석 이상의 가치가 있다.

유시민 대표는 원내진출의 숙원을 이룰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소수정당의 속 좁은 정치인이라는 인상만 심어주었다. 유시민의 승부수로 김해을을 얻었는지는 모르지만 큰 판을 생각하면 오히려 그것은 어리석은 승부수였다. 한마디로 소탐대실이다.

단일화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지난 4월초 유시민 대표는 "저희의 큰 잘못은 강자의 횡포에 굴종하지 않은 것"이고 "민주당이 요구하는 현장투표는 '묻지 마 동원선거', 돈으로 동원선거를 하는 것"이라며 "부당하고 불합리한 경선에 맞선 것을 정략적으로 보기 시작하면 이 세상에 정의가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시민단체에 대해서도 "공정성 잃었다", "시민단체가 옳고 그름의 잣대를 잃고 무조건 단일화만 성사시키면 된다는 생각에 빠졌다"며 자신과 국민참여당을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다 맞는 말이다. 소수정당의 비애도 충분히 공감한다. "강자의 횡포"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다. 정의가 무엇인지는 유시민 대표만 아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정치는 옳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다. 유시민 대표의 단점은 오히려 옳은 말만하는 것이다. 때문에 유시민 대표는 말 잘 하는 "지식소매상"으로는 보일지 모르지만 나라를 책임질 큰 그릇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2002년 대선에서 열광적인 지지를 끌어낸 것은 말을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때문이었다.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는 노무현의 진정성이야말로 노무현정신의 요체이다. 유시민 대표는 노무현의 적자를 자처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가 물려받은 정치적 유산은 많지 않은 듯하다.

출신성분(?)의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손학규 대표는 이제 노무현이라는 상표(brand)를 당당히 내걸 수 있게 되었다. 노무현정신을 말이 아닌 실천으로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지옥으로 보란 듯이 걸어 들어가는 배짱과 대의를 위해 소아를 버릴 줄 아는 진정성이야말로 유시민 대표가 말하는 노무현다움이다.

손학규 대표는 마침내 서자 딱지를 땠다. 야권의 대선주자로 그의 가장 큰 약점은 정통성이었다. "철새정치인"이라는 주홍글씨는 아마도 내년 대선까지 그를 집요하게 괴롭힐 것이다. 하지만 이번 보궐선거를 통해 그 주홍글씨가 조금은 탈색될 것이다. 손학규 대표는 비록 김해를 잃었지만 청와대로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되었다. 1석의 대가로는 상당히 가치 있는 정치적 소득이다.

바보야, 문제는 큰 판이야!

유시민 대표는 작은 것을 탐내다가 큰 것을 잃었다. 손학규 대표는 작은 것을 잃었지만 - 실제로는 별로 잃은 것도 없다. 지옥에서 살아 돌아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 큰 것을 얻었다.

김해을은 기껏해야 일 년짜리 금배지다. 진짜 큰 판은 2012년 총선과 대선이다. 손학규 대표와 유시민 대표는 자타가 공인하는 야권의 이른바 "잠룡"이다. 용은 코끼리를 사냥하는 법이다. 생쥐를 가지고 아옹다옹하는 것은 구렁이나 하는 짓이다. 용이 용답게 놀지 않으면 구렁이나 다름없다.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은 치지 않는 법이다.

손학규 대표가 분당에서 살아 돌아온다면 야권의 대선 후보로써 그의 위상은 크게 높아질 것이다. 만일 4.27보궐선거에서 전승을 이끌 낸다면 차기 주자로써 확고히 치고 나갈 수 있다. 반면 유시민 대표는 김해을에서 승리하더라도 1석짜리 원내정당 대표라는 영예(?)외는 별로 얻을 것이 없다.

유시민 대표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야권의 차기 주자로 앞서가고 있지만 여전히 한 자리 수 지지율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한 자리 수 지지율로는 죽어다 깨도 대통령이 될 수 없다.  유시민 대표가 야권의 차기 대선주자로 치고 나가려면 한 자리 수 지지율의 벽을 깨 한다. 열광자(mania)층의 지지만으로는 결코 한 자리 수 지지율을 넘어설 수 없다. 국민 다수의 지지를 이끌어 내야 한다.

지금 국민은 MB심판과 정권교체를 원한다. 국민의 마음을 얻으려면 국민의 원하는 것을 해야 한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말 잘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책임 있는 정치인이다. 국민은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진정한 지도자를 원하고 있다.

유시민 대표가 큰 판에서 살아남으려면 더 큰 정치를 해야 한다. 작은 판에서는 속 좁은 정치인이 통할지 모르지만 큰 판에서는 다르다. 큰 판에서는 큰 정치인만 살아남는 법이다.

유시민 대표와 국민참여당은 지금 작은 승리에 도취할 때가 아니다. 한 석의 대가로 민심을 잃었기 때문이다. 금배지가 없어도 정치를 할 수 있지만 민심을 잃으면 정치판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유시민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승리의 축배가 아니라 노무현정신이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필자의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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