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넌 할 수 있어

<니모를 찾아서>를 통해 본 픽사가 전하는 참교육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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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홍선(i2krs)등록 2011.04.09 15:36
넌 할 수 없어,니모!

<니모를 찾아서>의 말린은 트라우마가 있다. 자신의 자식들을 보호하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게 보호한 자식 중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이는 한 쪽 지느러미에 장애를 가진 '니모'뿐이다. 그래서 먼저 떠나간 아내를 위해서, 그리고 장애를 가진 아이가 세상에서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무엇보다 보호하려고 한다. 그래서 말린은 니모에게 항상 말한다. '넌 하지 못 한다' .

이건 자식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번 다시 누군가를 잃는 비극을 맞고 싶지 않고 또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선척적인 몸의 장애로 할 수 없는 니모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보호가 니모를 더욱 자극하고 결국 엄청난 비극을 맞이한다. 물론 이 비극으로 인해 <니모를 찾아서>의 신나는 바다 속 모험담이 시작되지만.

그렇게 모험을 떠나는 중 말린은 도리를 만난다. 그런데 이 친구, 여간 바보가 아니다. 하지만 선택의 순간 주저하지 않는다. 그냥 자신의 믿고 자신이 하고자하는 것에 무조건 향한다. 말린은 그런 도리를 보면서 답답하지만 많은 힘들을 함께 겪으면서 둘을 가까워진다. 그러면서 말린 스스로도 깨닫고 있었다. 앞뒤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할 수 있다고 말하는 도리의 모습은 흡사 니모를 닮았다.

그런데 둘은 그만 고래에게 잡아먹히고 만다. 이때 도리는 자신의 고래의 말을 들을 수 있기에 지금이 탈출할 수 있는 기회라고 한다. 바로 고래의 목구멍 속으로. 말린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고래의 목구멍 속으로 들어가면 잡아먹힐 게 뻔한데. 도리가 지금 미쳤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도리는 할 수 있다고 한다. 너무나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계속하는 도리에게 결국 말린은 폭발한다,

<니모를찾아서>중 ⓒ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제작)


"넌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지만, 넌 할 수 없어 니모!"

순간, 말린은 느낀다. 니모를 정말 아끼고 보호하려고 했던 그 말의 진심은 결국 이런 거였나? 아이가 다른 곳에서 상처를 받지 않으려고 내가 먼저 그 애에게 상처 준 것은 아닌가? 그러면서 말린은 도리에게 묻는다.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외친다고, 최악의 상황이 없을 거란 보장은 있는가? 하지만 이 영화에서 도리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현명한 대답을 한다. "몰라요(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해서는 안 되죠)" 

결국 말린과 니모는 감동의 재회를 한다. 하지만 도리가 오히려 위험에 처한다. 니모는 도리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안다며, 다시 위험 속으로 들어가려한다. 내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얼마나 찾고 싶었던 아들인가, 그런데 다시 위험 속으로 간다니. 도리한테는 미안하지만 니모를 막고 싶은 말린이다. 하지만 니모는 계속 외친다.

"난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오랜모험 끝에 ,진정 자식를 위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말린은 니모에게 이 말을 한다.

<니모를찾아서>중 ⓒ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제작)


"그래, 넌 할 수 있어"



픽사가 전하는 참교육이란?

첫 장편 애니매이션 <토이스토리>때부터 픽사는 어른들을 위한 메시지를 남겼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픽사가 진짜 어른들을 향해 외친 작품은 <니모를 찾아서>라고 생각한다. 아니, 이건 어른들이라기보다는 부모를 위한 작품같다. 잃어버린 아들을 찾기 위한 부성애 가득한 아버지의 모험담이라고 하기에는 <니모를 찾아서>를 너무 평면적으로 보는 것이다. 오히려 이 작품은 그런 모헙담을 통해, 진정 아이들을 위한 참교육은 무엇인가를 애들 손을 잡고 극장에 들어선 부모에게 묻는 작품이다.

니모는 한쪽 지느러미가 작다. 소위 장애 아동이다. 더군다나 아버지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 아내를 잃었고, 트라우마에 갇혀있다. 그래서 어느 누구 보다 세상이 무섭다는 것을 안다. 아이의 자신감을 길러주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 힘든 세상에 더 다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에 아이를 과잉보호한다. 넌 할 수 없다고. 그래서 아이 스스로가 현실을 깨닫고 조심하길 원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마인드가 아이를 외부의 상처로부터는 보호할지 몰라도, 결국 내부의 상처에 곪아가고 있었다는 거다. 세상 누구보다 자신을 믿어줄 것이라 생각하는 아버지가, 세상 누구보다 자신을 믿지 않고 있다는 거, 버텨내기 힘들다.

말린이 아무리 니모를 보호한다고 한들 영원할 수 없다. 니모는 자라고 말린은 늙어갈 것이다. 장애아동이라고 해도 언젠가 말린 보다 니모 스스로 해야 할 일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도 부모가 자식에게 영원히 할 수 없다고 가르친다면 과연 그 자식의 마음은 어떻게 될까? 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상처를 내는 이 교육의 끝은 아이의 모든 것을 뺏아 갈지도 모른다.

경험치라는 것이 있다. 상처에 쓰라리지만 그것이 치유될 때 더 강한 새 살이 돋아나는 것처럼, 장애아동이지만 니모 스스로가 밖으로 나가 좌절하고 그것을 또 이겨내며 스스로 삶의 경험치를 얻는 것이다. 물론 다른 아이보다 배 이상 힘든 니모에게 말린은 어느 정도 "서포터"는 될 수 있다. 그러나 결코 "대신"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아이 스스로가 역경을 이기고 도와주는 거기에서만 바라봐야만 하는 것이다. 물고기 잡는 법은 가르쳐주되, 결코 물고기를 "대신"잡아줘서는 안 되는 것처럼.

그래서 영화 중간 말린이 도리를 보며 "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넌 할 수 없어"라는 말이 니모에게는 얼마나 큰 상처를 준 말이었고, 말린 스스로도 내가 니모에게 얼마나 부끄러운 부모였나를 깨닫게 한다. 니모를 위해서 열심히 보호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세상 누구보다 자식을 믿어야 하는 아버지조차도 자식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모든 것을 "대신" 해주기만 한 건 아닌지, 보호라는 이름하에 내 자식은 절대 할 수 없다고 못을 박은 것이다.

이 생각은 지금의 부모에게도 마찬가지다. 아이에게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은 세상 어떤 부모도 같다. 하지만 어느 순간 부모는 아이에게 "서포터"이상으로 "대신"이 되고 있다. 작은 좌절에도 쉽게 포기하는 아이에게 그저 보담아주고 그저 아이 대신 해주고만 있다. 아이를 무척 아끼기에 상처 받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그런 과잉 보호사이, 부모는 스스로 아이들에게 "넌 할 수 없다"고 말한 건 아닌지 반성을 해보게 한다. <니모를 찾아서>의 저 대사는....

그래서 <니모를 찾아서>의 마지막은 진정 부모의 참교육이란 무엇인가를 가르쳐준다. 고생 끝에 만난 니모와 말린. 하지만 위기에 처한 도리를 구하기 위해 니모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심지어 목숨까지] 아버지에게 다시 한 번 묻는다. "난 도리를 구할 수 있어요. 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빠 생각은 어때요?" 이건 일상의 작은 일을 보호하고 막았던 문제와 차원이 다르다. 그야말로 지금 니모에게 모든 것을 건 인생의 질문이고, 아버지의 서포터를 바란다. 이때 밀란은 자신의 모험담으로 깨달았던 그 경험을 니모에게 던져 참 가르침과 진정한 니모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준다. "모든 것을 걸어, 잃을지 몰라도, 그래, 아버진, 너를 믿는다. 넌 할 수 있으니깐". 이 메시지가 니모를 구한 말린의 부성애 보다 훨씬 큰 감동으로 스크린을 울려 퍼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늘 말하지만 픽사는 정말 대단하다. <니모를 찾아서>는 니모를 구하기 위한 밀란의 모험담만으로도 빅 재미를 선사한다. 적절한 코미디에 화려한 스펙타클, 거기에 진한 부성애까지. 이 정도만 해도 재미와 주제를 동시에 잡은 웰메이드 영화다. 하지만 픽사는 대단한 모험 속에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진정한 참교육이란 무엇인가까지 깨닫게 해준다. 그래서 아이들은 마냥 이 영화가 신날지 모르겠지만, 어른들, 특히 부모입장에서 <니모를 찾아서>는 그 어떤 교양 프로그램도 할 수 없는, 아이를 위한 마음가짐이나 교육의 의미를 전해준다.

또한 이때부터 진정 픽사는 어른들을 위한 메시지를 매 작품마다 확실히 놔두고 있다. 그래서 <니모를 찾아서>이후부터 애들보다 어른들이 픽사에 더 감명 깊게 보는 이유인지도 .

아참, 이야기가 너무 부모한테 훈계하는 식으로 적었지만[?], 결국 그런 참교육에 바탕에는 부모의 진정한 사랑이 있었다. 그것이 영화 초반에는 과잉보호로 그 의미가 퇴색되었지만 "난 할 수 있다"고 생각한 니모를 그래도 끝까지 버티게 해준 건, 말린의 자식 사랑이었으니깐. 이렇듯 <니모를 찾아서>는 부모에게 참교육의 작은 조언을 던지면서도, 아이에게 세상 어느것보다 소중한 건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을 동시에 전해주는 작품이었다.

<니모를찾아서>중 ⓒ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제작)


(설사 자식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상처 받아도)

괜찮아,아빠가 왔어, 아빠가 널 잡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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