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6일, 안중근 서거 101주년에 생각하는 ‘일본’

“차분한 대처와 질서가 과연 최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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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희(jajaknamu)등록 2011.03.25 15:33
일본 열도를 흔들었던 대지진이 25일로 발생 보름을 맞았다. 대지진 후 일본의 참상은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전해졌다. 참상에 대한 보도와 함께 대두된 것은 일본인들의 차분한 대처와 질서의식에 대한 극찬들이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일본의 시민의식에 대해 '인류의 정신이 진화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평했고, 중국 또한 '일본인에게는 도덕의 피가 흐른다'고 찬사를 보냈다. <뉴욕타임스>도 '극단적일 정도로 일본인들은 침착했다'며 일본의 질서의식을 높게 평가했다.

더불어 우리나라에서는 참사를 당한 일본인들을 위한 모금활동이 활발하다. 83년 만에 연말이 아닌 계절에 구세군 냄비가 등장했고, 모금을 시작한 지 불과 5일 만에 100억 원을 모으는 기염을 토했다.

여야 의원들도 지진 발생 3일만에 정부에 실효성 있는 지원책을 요구했고, 한류 스타들의 기부 또한 잇따르고 있다. 동영상으로 생생하게 전달된 참사 앞에 국민들은 기어이 자발적인 모금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일본을 돕자는 인도주의적 차원의 우리 국민들의 실천은 우리 민족의 성정(性情)을 보여준다. 그것은 기본적인 인간이 인간에게 갖는 '인간에 대한 예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인들의 질서의식과 차분한 대처에 대한 극찬 앞에서 또 다른 의견이 있어 전한다. 정말 자연의 대재앙 앞의 일본인의 모습이 극찬 받을 만한 최선의 모습일까, 반문해보는 것이다.   

# 우리 국민들이라면 어땠을까?

이번 일본인들의 침착한 대처 앞에서 그들의 국민성을 비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대한 이야기다. 가족들의 죽음 앞에서 눈물도 감추고, 난방이 되지 않는 대피소에서 가만히 앉아 대기하고 있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결론적으로 수천,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자연재해 앞에서 진정 필요한 것은 지금 일본인들의 '질서'와 '침착'보다는 어쩌면 '뜨거운 인간애'의 발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우리 국민을 대비해보면 그 차이는 극명해진다. 2007년 12월, 충남 태안군 앞바다에서 유조선 '허베이 스피릿호'와 삼성중공업 소속 1만 2000t급 대형 크레인선이 충돌하면서 원유 1만 5천㎘가 태안 바다에 유출되었을 때 우리 국민들은 어떠했던가?

사고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었지만, 사고 직후 우리 국민들은 너나없이 태안을 찾았다. 전국 100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태안을 찾아 기름을 제거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땅으로 스며든 기름은 어찌할 수 없었지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은 자원봉사자들은 바다에 엎드려 헌옷으로 일일이 바위의 기름들을 닦아냈다. 그 덕분에 발생 한 달여 만에 눈에 보이는 기름을 제거하는 기염을 토했다. 해외언론들은 그러한 우리들의 모습을 '기적'이라 평했다.  

한 시민은 그때를 회상하며 오늘의 일본과 대비했다. "우리 국민 같으면 쓰나미가 물러간 자리에 사람이나 가족이 묻혀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면 너나없이 달려가 폐허 속을 뒤졌을 것이다. 나 같아도 그러했을 것이다. 또 피해지역에 구호물품이 전달되지 않는 경우는 우리는 상상해볼 수 없다. 우리 국민이라면 인간띠를 만들어서라도 구호물품이 전달되게 하지 않았겠느냐"고 그는 반문했다. 

일본의 국민성을 말할 때 흔히 언급되는 것이 '메이와쿠 가케루나'다.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기를 극도로 싫어하는 일본인들의 특성을 일컫는 말이다. 이것은 내가 당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는 선의에서 시작된 것일 테지만, 오늘의 일본을 보면 '메이와쿠 가케루나'가 오히려 극단적인 개인주의로 변질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며칠 전 지진피해 현장에서 구조된 할머니는 구조대원에게 "폐를 끼쳐서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국민성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차이의 문제이겠지만, 적어도 우리 국민들에게서는 그 자리에 맞춤한 말이 폐를 끼쳐 미안하다가 아니라, "정말 고맙다"였을 것이다. 그와 함께 아마도 할머니는 구조대원의 손을 부여잡고 눈물을 머금었으리라.

그러하니 "경직된 국민성과 개인주의의 또 다른 표현일 수도 있는 일본인들의 행동을 극찬하는 우리의 시선은 21세기 대한민국의 또 다른 '사대주의'일 수도 있다"는 어느 시민의 말은 곱씹어 볼 만했다.   

# 유엔, 북한 긴급 식량지원 권고

유엔에서는 24일, 600만 명 이상의 북한 주민들에게 긴급 식량지원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유엔은 지난달부터 이달 초까지 북한 식량실태를 조사한 보고서를 통해 여름의 홍수와 혹독한 겨울을 보내면서 북한을 식량위기에 취약하게 만들었다고 전하면서, 식량 43만t(M/T)의 국제적 지원을 권고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기아에 가장 취약한 계층은 어린이와 여성, 노인들이라고 했다.

한 시민은 "분별 짓는 것 같아 말하기 어려우나, 북한에서 수많은 사람이 굶주릴 때 쌀을 보내자는 것은 막아버리면서, 일본은 이토록 발 빠르게 나서 도우려 드는 정부를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기도 했다. 수만 명의 일본 이재민들에게 인도주의적 구호가 전해지는 것과 같이, 북의 굶주리는 600만 동포에게도 적어도 같은 인도주의적 손길이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뜻이었다.

3월 26일은 안중근 서거 101주년이 되는 날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국권회복 운동을 벌이다 초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는 국제법에 따라 재판을 받았어야 했으나, 국제법이 아닌 일본법을 적용한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안중근은 법정에서 자신을 "한국의병 참모중장"이라고 밝히고, "이토가 대한의 독립주권을 침탈한 원흉이며 동양평화의 교란자이므로 대한의용군사령의 자격으로 총살했다"고 진술했다. 일본은 과거의 역사에 대해 사과한 적이 없으며, 지금 독도를 일본 영토라 교과서에 기록하려 하고 있다.

#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 주체적일 필요 있어

길은 처음부터 있는 게 아니라 했다. 여러 사람이 가면 그것이 곧 길이 된다고도 했다. 우리 국민은 구호물품을 전달할 길이 없다면 길을 만들었을 것이다. 일본인들의 질서의식은 질서의식 대로 본받을 만할지라도, 혹여 극단적인 개인주의인 것은 아닌지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거대한 참사 앞에서 진정 필요한 것은 '질서'보다는 '뜨거운 인간애'의 발로일지 모른다.

일본을 바라보는 지금 우리의 시각을 돌이켜보자. 이웃의 아픔을 내 것처럼 여기는 아름다운 국민성은 저기가 아니라, 여기 이곳에 있다. 뜨거운 인간애가 만들어낸 감동의 역사는 이곳에 있는 것이다. 그것으로 우리 민족은 이 땅에서 반만 년 내 나라를 지켜왔다. 지금 일본에 대한 칭찬 일색의 시선은 교정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것이 우리 민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지 않을까 한다.  
덧붙이는 글 '안성신문'에 아직 실리지 않았으나 이후 실릴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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