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행복의 경제학은 곧 지역화”

<오래된 미래> 후속작 들고 방한해 상영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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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언(ecoshop)등록 2011.03.04 18:08

지난주 25일 오후2시 이화여대에서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행복의 경제학 상영회가 열렸다. ⓒ 이지언


지난주 25일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행복의 경제학> 상영회에 동료 그리고 자원활동가들과 함께 참석했다. 올해 서울환경영화제에서도 상영될 예정이지만,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그녀를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세계화와 행복의 관계에 대한 이 다큐는 (역시) 라다크에서부터 질문을 시작한다. 히말라야 고원지대에 있는 이 작은 공동체의 조화로운 삶은 그녀의 유명한 책 <오래된 미래>에 이미 자세히 소개됐다. 라다크 사람들에 대한 묘사에서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대목은 화를 내는 일이 몹시 드물며 '부끄러운 감정'으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기업이 아이를 키운다"

이런 심리적 안정감과 낙천성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호지는 우리의 자아는 어떻게 만들어지에 주목하자고 말한다. 라다크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나 공동체를 통해 자아를 형성해왔다는 것이다. 반면 세계화된 사회에서는 "기업이 아이를 키운다." 영화는 전형적인 서구 미인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제 나의 정체성은 가까운 이웃이나 문화보다는 광고나 상품의 이미지를 통한 모방욕구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파티는 끝났다>의 저자 리처드 하인버그는 더 구체적으로 이를 미국식 소비생활의 모방이라고 표현한다. 인터뷰에 응한 한 중국 청소년이 상기된 표정으로 말하듯 우린 미국의 '풍요로움'을 원한다. 여기서 우리가 닮으려는 대상이 얼마나 획일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뉴욕과 같은 도시의 일상에 가까워지려면 더 많이 소비하면 된다. 도시는 밀집된 개발을 통해 오히려 자연을 보존하고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이용하게 할 수도 있다. 국토를 이곳저곳 마구잡이로 개발하기보다는 일부에만 집중해 파괴를 최소화한다는 논리다. 휴, 일면 타당해보인다. 그런데 영화는 "오직 근교와 비교했을 때만 맞다"고 꼬집는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왼쪽) ⓒ 이지언


고도로 세계화된 도시에서의 삶의 방식은 앞서 말한 '긍정적인 취지'와는 이미 몹시 동떨어져있다. 영화에 따르면 '세계화의 논리 자체가 생산지와 소비지 사이에 긴 이동거리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농부는 그 첫 피해자로서 농사짓던 땅에서 쫓겨나 도시 실업자가 되거나 초국적 기업에 값싼 노동력을 제공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긴 이동거리를 이동하는 상품들은 어떻게 꽤 저렴한 가격을 유지할 수 있을까? <행복의 경제학>은 '숨은 비용'을 들추어내는 것으로 이를 설명한다. 대규모 단작농업(플랜테이션)이나 화석연료와 관련된 대기업에 보조금이 지원되기 때문이라는 것. 여기에 더해 국가는 기업에 대해 이중잣대를, 즉 대기업에겐 지원을 중소기업에겐 규제를 들이댄다.

빈곤, 실업, 환경을 비롯한 문제 해결에 대해서 주류 경제학은 국내총생산(GDP)의 성장이란 해법을 내놓는다. 지난해 멕시코만 원유 유출사고가 나고 몇달 뒤 제이피 모건(JP Morgan)은 방제 작업으로 수천명의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며 GDP 상승 전망을 발표했다. 탄소 거래제도 역시 기후변화란 환경문제 해결에 기업의 경제활동을 중점에 뒀다. 경제성장이 곧 해답이란 주장은 문제를 일으킨 애초 방식을 더 강화할 뿐이란 비판에 직면했다. GDP를 대신해 사회적 공동체와 자연자원을 반영한 GPI와 같은 대안적인 사회 진보의 지표들이 꾸준히 우리에게 소개되는 이유다.

세계화에 대한 문제 제기가 국제무역 철폐를 의미하진 않는다. 대신 호지는 "도시와 농촌, 지역생산과 국제무역 사이의 균형"을 찾자고 말한다. 눈 먼 기업과 국가에 우리의 삶을 내맡기는 것이 아니라 더 쉽게 인지가능한 '인간적인 규모'로 경제활동을 지역화하자는 주장이다.

이날 상영회에 이어 열린 토론회에는 이화여대 남영숙 교수(왼쪽)가 진행을, 장필화 교수가 토론을 맡았다. ⓒ 이지언


'인간적인 규모'의 경제가 불러오는 행복
딱딱한 이야기가 아니다. 호지는 농산물 직거래 장터의 풍경을 일례로 언급한다. 우선 대화가 늘어난다. 상품이 뻔한 슈퍼마켓과 달리 직거래 장터에서는 농부들 자신이 직접 재배한 다양한 농산물을 놓고 정보와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대화 시간은 슈퍼마켓과 비교해 10배 가까이 길다. 작물을 직접 재배하는 도시텃밭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변호사, 작가, 정보기술(IT) 노동자들도 이를 더 즐기게 됐다.

농산물 이야기를 더 해보자. 생태 여성학자로 알려진 반다나 시바는 인도 소농장을 분석하며 생태적 농법이 일반 농법보다 면적당 3배 높은 생산량을 냈다고 말한다. 여러 이점에도 불구하고 우린 이른바 유기농 농산물에 대해 여전히 의문을 품고 있다. 유기농은 비싸다는 흔한 불평도 그중 하나다.

그런데 이런 불평은 얼마나 타당할까? 당장 우리 사회를 돌아보자. 지난해 배추 파동으로 시중의 배추 가격이 치솟고 물량이 모자라 급기야 중국산 배추까지 수입하는 상황이었다. 배추 가격은 포기당 최고 1만원까지 올랐다. 그런데 생협을 통해 유통된 배추는 세 포기에 5천원 가격으로 유지했다.

이상기후로 농산물은 수확량과 가격으로 이어지는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먼 이동거리에 필요한 석유와 같은 연료비가 상승하게 되면 이런 현상은 더욱 불안정해지고 심화될 수밖에 없다. 앞서 '숨은 비용'에 대해 언급했듯, 이에 대해 호지는 "지역 먹거리가 더 비싸다는 것은 신화에 불과하며, 더 큰 경제구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주장하는 '행복의 경제학'은 지역화(localization)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운송거리의 축소(그녀는 축소의 규모를 '걸어다닐 만한 거리'라는 다소 이상적인 수준을 주장하지만)인 동시에 이웃과 자연과의 교감과 우리가 하나라는 소속감을 다시 회복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녀는 문제를 우리가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관점보다는 집단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탈석유 전환 문화운동을 소개하며 "교육이 곧 행동주의"라는 언급은 강연이나 다큐 제작이 곧 그녀의 행동 양식이라는 점을 엿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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