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은 언제나 행복할까?

[리뷰] 히가시노 게이고-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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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모(champione)등록 2011.03.03 11:14

히가시노 게이고- 변신 책 표지 ⓒ 창해

내가 어렸을 적 '변신'이라는 단어에는 선망이 깃들어 있었다.

어렸을 적 나의 영웅 후뢰시맨은 악을 물리칠 힘을 필요로 할 때마다 '변신'을 통해 초인적 힘을 꽤나 합리적으로 얻어왔다.

형형색색의 쫄쫄이를 입자 생겨난 의문스런 초인적 힘은 '변신'이라는 이유 덕분에 어떻게 초인적 힘을 얻었는가에 관한 물음에 관해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만약 누군가 물어본다면 이렇게 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변신'했으니까!".

그러나 후뢰시맨을 내 맘속에서 떠나보낸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변신'이라는 단어가 후뢰시맨의 절대적인 도우미 역할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평범한 지구인들에게는 절대로 무조건적인 도우미는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조금 억울하게도 악당들은 후뢰시맨에게는 아무리 긴 시간 변신을 해도 공격하지 않는 꽤나 인자한 모습을 보였으나 후뢰시 혹성에서 자라지 않은 우리에게는 적들은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빠르게 변신을 해도 조금의 틈이라도 보이면 그 틈을 비집고 공격해 오곤 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변신을 끝내 성공하지 못하고 변신이전 상태로 돌아가거나 변신을 안 하니만 못한 상태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세계 속 한 남자…….

한 남자가 있다. 이름은 나루세 준이치 그다지 특이할거 없는 이 남자는 불합리한 회사에 대해 반항보다는 순종을 하는 수동적이고 소심한 사람이다. 그에게는 가족이 없다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다. 준이치를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은 그의 여자친구 메구미 뿐이다. 물론 준이치 역시 그녀를 가슴깊이 사랑하고 있다. 조금은 소심하고 순종적이며 수동적인 이 남자는 그가 살고 있는 세상과 아무런 불협화음 없이 그 나름의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러던 중 불의의 사고로 그는 뇌수술을 하게 된다. 세계최초로 시행되는 뇌 이식 수술. 그리고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난다. 학계는 그를 주목했고 언론 역시 그에게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름도 성도 모르는 어떤 도너의 뇌에게 자신의 머리 일부 자리를 내어준 준이치는 자신의 살아가는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언제나 같은 색을 간직하고 있던 준이치의 세상은 뇌수술 이후 전혀 다른 색깔로 칠해지고 있다. 그의 의지와 상관없는 그의 변신은 성공하게 될까?

나루세 준이치의 변신

변신의 주인공 나루세 준이치는 뇌 이식 수술 후 얼마간 병원에 머문다. 그곳에서 준이치가 만나는 사람은 그의 뇌수술을 담당했던 도겐 박사와 그의 조수 나오코 뿐이다, 소통의 범위가 좁다. 그가 생활하는 병원은 그의 변신을 자극할 촉매제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퇴원 후 준이치는 과거 자신이 관계를 맺던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관계를 맺는 수많은 사람들은 준이치의 변신에 촉매제 역할을 한다. 결국 준이치는 변신을 자각하게 되고 변신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사람들과의 갈등은 심해지게 된다. 과거 준이치의 눈으로 보면 문제가 없던 것들이 변신 중 준이치의 눈으로 봤을 때는 문제가 된다. 심지어 메구미의 사랑스럽던 주근께도 보기가 싫다.

변신은 준이치에게 심각한 고민을 안겨준다. 아니 고민을 넘어 절망을 안겨준다. 이에 대한 가장 큰 원인은 그 변신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본적인 윤리적 기준의 틀에서 심하게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준이치는 별거 아닌 일에도 쉽게 살의를 느끼고 화를 참지 못한다. 이 문제는 주변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정도로 심각해진다. 예전의 성실했던 준이치의 인격변화에 주변사람들은 의아해하고 그는 고립된다. 그리고 그가 사랑했던 메구미는 변한 준이치의 모습에 슬퍼하며 그를 떠난다. 이제 그의 변신은 점점 가속이 붙는다.

그리고 변신의 정점에 달았을 때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일을 저지른다. 그리고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그에게 다시 메구미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찾아온다. 그러나 이미 변신이 거의 끝이 난 준이치를 바꿀 수는 없었다. 대신 메구미를 통해 가끔씩 표출되던 잠재의식 속 준이치에 희망을 건 나루세 준이치는 자신을 지배하는 망령을 제거하고 스스로 무의식의 세계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이 처럼 그의 변신은 결국 실패였고 그는 자신을 희생해서 예전으로 돌아가게 됐다.

대부분의 변신에는 자신의 의지가 들어간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든, 발전을 위해서든 자신의 의지가 있기 때문에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변신을 하는 사람들은 변신 후 모습도 예측이 가능하고 실패의 두려움도 각오하고 있다.

그러나 나루세 준이치에게 변신은 자신의 의지도 없었고 심지어 그 변신방향 마저 매우 부정적이었다. 이런 상황의 그에게 비극적 결말은 당연한 결과일 수밖에 없다. 다행인 것 하나는 변신을 막기 위해 무의식의 세계로 돌아간 준이치에게 메구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끝내 나루세 준이치는 스스로 변신을 거부하고 자신을 찾았다는 것이다.

나루세의 변신은 왜 뇌 이식에서 시작되는가?

뇌는 우리 신체 중 가장 미스터리한 부분이다. 다른 신체부위와는 달리 현대 의학은 뇌에 대한 물음표를 여전히 지우지 못하고 있다. 뇌는 단순히 신체의 기능을 담당하는 기관일까? 아니면 그 사람의 가치관 태도 성격 모든 것을 담고 있는 하나의 감정체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책속에서의 뇌는 후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주인공은 도너의 뇌에 의해 지배당하기 시작하고 변신한다. 뇌 이식을 통한 변신이라는 소재는 매우 급격한 인격변화로 인해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겪는 주인공의 내면을 다루고 있음을 생각하면 매우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만약 뇌수술이외의 환경변화나 기타 사건들로 주인공 내면의 갈등을 그려내고자 했다면 변화 과정이 지나치게 장기화되어 천천히 변화함으로 인해 주인공 내면의 갈등을 극적으로 표현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랐을 것이다.

방구석이 처박아 놓은 풍선에서 힘없이 빠져나가는 공기나 바늘로 찔러 터뜨려서 빠져나가는 공기나 공기가 나간다는 사실은 같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풍선에서 바람을 빼는 과정에서는 커다란 소리가 난다. 그리고 풍선은 찢어진다. 작가는 풍선이 바늘로 찔러 터뜨릴 때의 자극적이고 강렬한 순간을 그리려했고 이를 위한 도구로써의 뇌 이식은 적절한 소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변신'

미스터리 혹은 추리물을 주로 쓰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변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음울함이 새벽 안개처럼 깔려있다. 중간 중간 소름끼치는 장면도 등장한다. 그래도 이 소설은 독자의 몰입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도한다. 독자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연스레 책 속 세상으로 빠져들게 된다. 이는 소재의 특이성과 이 소재를 적절히 이용하여 작품을 전개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가적 역량이 가장 큰 이유이다. 중간 중간 나오는 짧은 메모들은 소설의 중간 중간 가려진 사건이나 주인공이 아닌 사람들의 내면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며 재밌는 방식으로 소설의 완성도를 높인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변해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아날로그시계의 시침이 움직이듯 표현했다. 아날로그시계를 가만히 보면 시계바늘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지만 어느 순간 처음 있던 곳에서 멀찍이 떨어진 것을 느끼게 된다. 초침이 1초를 움직일 때마다 시침이 아주 조금씩 움직여 큰 변화를 만드는 것이다. 이와 같이 히가시노 게이고는 나루세 준이치의 변신을 아주 작은 단위마다 섬세하게 표현하여 자칫 어색해 보일 수 있는 변신 과정이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했다. 때문에 독자들은 글을 읽으며 변해가는 그의 모습이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조금 아쉬운 점은 작품의 절정에 나루세 준이치가 자신이 아직 완전히 변신하지 않았음을 자각하게 되는 부분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찾지 못하던 나루세 준이치는 메구미를 통해 무의식속에서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결국 그에게 해결책을 내려준 것이 사랑이라는 점은 '사랑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힘이다.' 라는 식상하고 조금은 유치한 명제의 재탕일 수밖에 없다. 이는 소재의 신선함과 비교 되어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물론 사랑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힘이라는 데에는 동의하나 자신을 찾는 장면에서 식상한 이야기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한 것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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