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에게도 개성이 있다

일본 이세신궁에서 본 빨간 치마 아가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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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규(becher)등록 2011.02.17 19:18
우리가 그녀를 처음 본 것은 나고야역에서였다. 이른 아침 출근길의 인파로 북적이는 나고야역에서 이세신궁으로 가는 긴테츠선을 찾기 위해 행선안내표지를 살피며 걷고 있을 때, 같이 걷던 아내가 어깨를 툭 치며 속삭였다. "오빠, 저기 좀 봐!"

고개를 돌려 보니 여덟살인 우리 둘째 딸이 좋아서 소리칠 법한 동화속 공주 패션을 한 젊은 처녀가 지나갔다. 어깨에는 하얀 털망토 비슷한 것을 두르고, 새빨간 치마와 구두 그리고 검은색 타이즈를 하고 있었다. 타인과 다르거나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하는 일본인의 성향을 생각하면, 매우 파격적인 복장으로 보였다.

이세신궁의 젊은 연인 2001년 1월 14일, 일본 미에현 이세시 이세신궁 ⓒ 김대규


이세신궁에서 다시 만난 빨간 치마 아가씨

그리고 그녀를 다시 보게 된 곳은 한시간 가량 열차를 타고 도착한 미에현의 이세신궁에서였다. 신궁 입구에 있는 우치교를 건너서 일본 왕실의 조상신이라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거처인 '정궁' 방향으로 걷고 있을 때였다. 우리 앞쪽에 나고야역에서 보았던 그 아가씨가 남자친구인 듯한 사람과 손을 잡고 나란히 걷고 있었다. 마치 대도시 근교의 명승지에 소풍 나온 연인들처럼 헝겁으로 된 주머니에 보온병이랑 이러 저러한 간식거리도 가지고 말이다.

일본의 신도(神道)에서 최상위 신이라는 아마테라스가 거한다는 '정궁'에서는 사진촬영을 금하고 있었다. 그래서 방문객들 대부분이 정궁으로 오르는 돌계단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마침 빨간 치마 아가씨도 돌계단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어서 앞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시 보아도 눈에 띄는 차림이었다. 다른 곳보다 정숙함이 더 요구될 것 같은 이세신궁에서 이런 튀는 차림이어도 괜찮은걸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다.

그러나 생각만큼 눈총을 받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름 즐겁게 사진 찍는 그녀에 비해 핑크색 여행용 트렁크를 들고 다니는 내가 더 많이 튀어 보이는 것은 아닐까 싶은 걱정이 일었다. 하기야 자기만 괜찮다면 무엇을 입든, 무슨 가방을 들고 다니든 누가 뭐라 할 수 있을까?

 

방문기념사진 2011년 1월 14일 일본 미에현 이세신궁 ⓒ 김대규


다만 개성을 표출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일본어를 배울 때 일본인들이 한국인에 비해 개성이 없고, 타인에게 묻어가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생각하곤 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일본인을 접하면서 사소한 취미이지만 전력을 다하거나, 사고의 깊이와 폭이 남다른 사람들도 적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솔직히 일본 사람들도 생각하며 사는 인간인데 왜 각자의 고유한 개성이 없겠는가? 다만, 자신의 개성을 표출하는 방식이나 과정이 우리와 다를 뿐이다.

어느 글에서, 한 일본 아주머니가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장사치 아줌마들의 불같은 싸움을 보고, 열정적인 한국인의 심성에 반해 한글을 배우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시장 아주머니들이 물을 뿌리고 격렬하게 댓거리 하면서 싸우다가도 끝내는 서로 부둥켜 안고 우는 모습에서 뭔가 강한 인간적인 생명력을 느꼈다는 이야기였다. 어쩌면 일본인에 비해 한국인이 성격이 불같고 직설적인 면이 강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도 사람의 생김만큼 성격도 천차만별이니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언어습관을 살펴보면, 대체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관철하려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수동태와 능동태 문장의 사용빈도가 확연히 다른 두 나랏사람들의 언어습관에서 어느 정도 확인된다. 그럼에도 한국인의 생각이 일본사람보다 더 개성적이고 자유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어느 면에서는 학교 교육이나 언론이 조장한 것인지 몰라도 획일적인 전형성이 있다. 최근 여행기를 비롯해 일본과 일본인에 관한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지만, 그 인식의 기저에는 뭔가 일정하게 정형화된 선입감이 작용하지 않나 싶을때가 많다. 

흔히 일본 사람들을 개미에 비유한다. 이는 그만큼 개성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로 어느 개미 한마리를 잡아서 그 신체적 특징을 살펴보면 같은 개미종내에서도 다른 개미들에게 없는 고유한 개체 특징이 자주 포착된다고 한다. 즉, 개미에게도 개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일본의 수필가인 요네하라 마리는 <교양노트>라는 책에서 "개성에는 만인에게 알기 쉬운 형태로 바로 표면에 드러나는 유형과, 개성임을 알아채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유형이 있다." 라고 말한다. 단지 그뿐이라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교양노트>, 요네하라 마리/2010-11-10/마음산책/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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