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군의 영화씹어먹기]아는 것이 힘이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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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홍선(i2krs)등록 2011.01.17 14:21

R군의 영화씹어먹기-<예언자> ⓒ 황홍선


※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기대했던 영화에 대한 실망보다, 기대 안했던 영화에 대한 환호가 더 후회스럽다면?

기대했던 영화, 극장사수를 했지만 별로인 완성도로 실망한 만큼/기대 안했던 영화, 극장에서 놓치고 작은 모니터로 본 뒤 엄청난 완성도에 왜 이걸 개봉 때 보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은 거의 비슷하다. 아니, 전자는 그래도 "실망"정도지만 후자는 "후회"까지 할 정니 이쪽이 더 크다. 지금 소개할 <예언자>도 그런 작품이다. 왜 나는 이 작품을 미처 보지 못했을까? 리뷰에 앞서 후회에 자책을 해 본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 와....

칸은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영화제다. 그러나 매해 황금종려상[칸의 1등상] 선정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너무 칸 위주의 취향과 대중을 고려하지 않는 예술성의 강박에 가끔 의외의 작품들을 선택할 때가 있다. 하지만 칸이 선택한 진정 그 해 최고의 영화는 "심사위원대상"[칸의 2등상]에 많다. "심사위원대상"의 구체적인 선택기준은 잘 모르겠지만 대체적으로 작품성과 오락성이 절묘하게 결합된 그 해 경쟁작에게 주는 게 대부분이다. 실제로 우리 영화 <올드보이>도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으며 [또 드립 하지만(?)] 직접 참관했던 61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도 평론가와 관객 모두에게 극찬을 받은 <고모라>가 상을 탔다[그런 평가를 받았기에 당시 가장 유력한 황금종려상 부보였기도 했다.<클래스>가 받을줄이야, 당시 꽤 이변이라고 생각했음] 그리고 <예언자> 역시, 유력한 황금종려상 후보였고 실제 평점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아쉬운 2등상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결국 심시위원들이 칸의 기준을 떠나 자체적으로 평가 했을때 최고의 작품에게 주는 상이 "심사위원 대상"이 아닌가 싶다.

어째든 그렇기에 <예언자>는 작품성과 오락성을 동시에 잡은 수작이다. 글도 제대로 못 읽는 사회 부적응자 말리크의 정글 같은 감옥에서 살아남기를 그린 <예언자>는 그동안 수차례 영화의 소재가 되었지만 감옥 실상에 대한 제대로 고발과 스케치를 못한 다른 영화와는 차원이 다른 현실성을 보여준다. 아무것도 몰랐던 약자 밀라크의 시선으로, 사회와 격리 된 감옥이지만 오히려 현실 사회보다 더 치열하고 냉정한 권력투쟁의 장으로 그린 감옥을 만나게 되고, 그 속에 절대 권력인 세자르를 만나. 밀라크는 많은 것에 눈을 뜨게 된다. 이런 구조가 <대부>랑 비슷하다고 하여 <예언자>를 21세기 판 <대부>라고도 말하는데, 그 속뜻은 단순히 구조만 비슷해서 말하는 것은 아닐 것 이다. 그만큼 <예언자>가 가지고 있는 작품의 힘은 <대부> 못지않았다.

<예언자>는 한 마디로, "우리 말리크가 달라졌어요" 프리즌 브레이크 버전? ⓒ 판씨네마㈜(배급), 판씨네마㈜(수입)


하지만 칸이라고 해도 엄연히 그 이름에서 발생되는 문화적 부담감은 상당하다. 칸에서 상 받았기에 어려운 영화가 아닐까? 또한 영화도 예술영화의 끝판대장 프랑스에서 만들었으니 감옥이라는 이름하에 초현실적인 문답이 계속되는 거 아닐까? 걱정되지만, <예언자>는 단연 근래 나온 헐리웃 범죄 스릴러와도 비교해도 결코 재미에서 뒤쳐지지 않는다. 어리버리 밀라크가 "먼저 먹지 않으면 자기가 먹히는" 냉정한 세계 속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고, 그것이 시스템의 핵심 권력에 가까이 가며, 감옥안에서 여러미션[?]과 퀘스트를 통해 점점 이야기가 확장되는 면은 장르적으로도 엄청난 재미를 선보인다. 언어적 차이로 모든 것을 이해 할 수는 없겠지만 주인공 밀라크와 절대 권력 세자르와의 협력속 미묘한 대립이나, 영화 중간마다 등장하는 조연캐릭터들의 연기는, 실제 감옥의 누군가라고 해도 믿을 만큼 탄탄한 구성에 제대로 양념을 더한다. 스토리와 연기의 앙상블로 <예언자>는 150여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도 단 1초라도 지루한 징역살이를[?] 용서하지 않는다.

형식적인 면에서도 <예언자>는 멋지다. 오락적 재미와 확고한 주제 의식 속에 가끔 몽환적인 이미지의 나열은, 으레 예술영화라면 머리 아픈 그럴듯한 형식이 아니라 영화에서도 큰 주제를 담는 상징으로 나타내 이해하기도 쉬우며 의미도 깊다. 또한 밀라크가 상황에 부딪혀 좌절하거나 위기의 순간에 울려퍼지는 공허한 멜로디가 그의 심리를 반영하며, 특히 밀라크가 살해한 레이번을 일종의 죄책감의 상징으로 영화 곳곳에 등장해 대화하는 씬 들은 영화적 장치로서도 효과적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예술적 형식이 가장 빛나는 것은 영화 끝날 때 까지 왜 제목이 "예언자"일까에 대한 대답이기에 적절한 제목과 적절한 기법으로 영화를 근사하게 만든다.

죽은 레예븐과의 대화는 말리크의 심리를 표현하는 동시에 영화의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 판씨네마㈜(배급), 판씨네마㈜(수입)


■아는 것이 힘이다, 그러나....

하지만 <예언자>가 21세기 대부, 칸이 인정한 걸작이라는 살짝 민망한 칭찬에도 부끄러울 것이 없는 것은, 주제의식에 있다. <예언자>는 단순히 감옥에서의 권력투쟁을 단게임의 승자를 위해 그리지만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감옥이라는 곳도 사람이 있는 곳이며 사람이 있는 곳은 곧 사회가 되는, 적자생존을 뿌리로, 반복되는 인종갈등과 부당거래 등 현 사회의 암묵적 합의를 그대로 영상에 담아 재미의 홀릭 모드 속 강렬한 비판을 퍼붓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언자>에는 감옥과 범죄 영화와는 어울리지 않는 "성장담"이 담겨있다. 그것을 주인공 밀라크로 통해 보여주는데, 이것이 으레 어떤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그런 구조가 아닌 진짜 "지식"의 "배움"을 통해 그가 "진화" 하고 있다는 것을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극중 밀라크는 첫 살인을 하게 되는데 이때 희생자가 밀라크 인생을 바꿀 지대한 한 마디를 한다. "배워라"!

글도 읽지 못하는 밀라크가 그 죄책감으로 배움을 택하고 언어를 습득하며 경제학까지 도달하는 과정을 시간순대로 배열한다. 또한 밀라크는 의외로 똑똑한 면이 발휘되어 세자르의 수족이 되고 또한 세자르의 사각지대를 이용, 결국 감옥에서 지배자가 되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말한 베이컨이 이 영화를 보면 무덤에서 흐뭇하게 미소 지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아는 것의 힘이 범죄와 배신, 음모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씁쓸하겠지만. [하지만 사실 베이컨은 사회가 이렇게 될 것을 알고 만든게 우상론을 아닌가? 음.... 어디서 안 어울리는 철학드립을 (버럭!)].

근래 그 어떤 영화보다 "학습"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작품."공부,공부만이 지옥같은 세상에서 살 길이다!" ⓒ 판씨네마㈜(배급), 판씨네마㈜(수입)


<예언자>는 영화가 끝날 때 오락적으로 굉장히 재미있는 작품을 본 동시에, 밀라크의 복수에[?] 쾌감과 공허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어리버리 밀라크가 보란 듯이 감옥에서 성공하는 이야기는 주인공에 대한 감정이입으로 관객에게도 보편적인 즐거움이 되겠지만, 그런 성공이 결코 올바르지 못한 시스템의 어두운 보수적인 면이라, 결국 밀라크도 그가 증오했던 세자르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모습이 씁쓸하게 다가온다.

학습으로 세상에 눈을 뜬 말리크는 더이상 보스 세자르에게 복종만 하지 않는다.무엇을 자신을 위해 좋은건지,그렇게 영악해지고 또한 타락해간다 ⓒ 판씨네마㈜(배급), 판씨네마㈜(수입)


<예언자>는 감옥으로 위장한[?] 사회 시스템에 대한 상징적인 고발 속에 결국 그 시스템에서 살아남으려면 부작용을 이용, 스스로가 더 큰 종양 덩어리로 "비도덕적 진화"가 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이야기한다. 악은 악으로밖에 처단할 수없는 지금과 별 다른 것 없는. 그래서 <예언자>는 좋은 작품을 만났다는 희열과 동시에 안타까움이 진하게 묻어있는 작품이었다. 마지막, 겉으론 형수를 걱정하지만 뒤로는 그를 호위하는 수많은 갱들에게 손을 저으며 저리가라는 이중적인 모습, 사회에 적응한다는 건 결국 도덕적으로 타락한다는 것인가?라는 무거운 생각으로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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