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구제역’ 난리에 ‘고병원성AI’는 잊었나

야생동물 폐사체 처리요령, 관계 공무원도 잘 몰라 ‘얼렁뚱땅’

검토 완료

하병주(news4000)등록 2010.12.28 16:50

사천시 환경보호과 직원들이 다소 위험한 상황임에도 주문양수장에서 죽은 청둥오리들을 건지고 있다. 하지만 '야생조류 폐사체 처리 지침'을 얼마나 지켰는지 따진다면 별로 할 말이 없을 듯하다. ⓒ 하병주


지난해에는 '신종 플루'가 창궐해 온 나라를 뒤집어 놓더니 올해는 그 악역을 구제역이 맡았다. 사람에게는 피해를 덜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재산피해가 엄청난 모양이다.

구제역은 지난 달 29일 경북 안동에서 발병한 뒤 한 달 만에 경기, 인천, 강원의 27개 기초단체로 확산됐다. 이 과정에 2100여 농가에서 47만 마리의 소와 돼지 등이 매몰 처리됐다. 결국 예방 백신까지 투여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으나 구제역 확산 추세가 언제쯤 그칠지는 미지수다.

사천시에서도 구제역 대응태세가 '준 심각' 단계로 격상된 상태에서 확산 방지를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러나 겨울 추위 탓에 소독액이 얼어붙는 등 효과적 방역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계기관과 축산농민들의 노고를 생각해서라도 우리지역에서는 구제역이 발병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고병원성AI는 겨울철에 발병 가능성이 가장 높다. ⓒ 하병주


그러나 구제역과 함께 축산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는 또 다른 불청객이 있으니 조류인플루엔자다. 그 중에서도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즉 HPAI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이달 초 전북 만경강과 충남 천수만에서 잡은 천둥오리와 수리부엉이에서 고병원성인 H5N1 항원이 검출되자 전국에 고병원성AI 발생주의보가 내려진 상황이다.

다행히 아직은 고병원성AI 피해가 그리 크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단 가금류에 발병하면 그 피해는 치명적이다. 특히 지금은 겨울철새들이 한반도를 지나거나 월동하고 있어, 경계를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어제(27일) 사천시 용현면 들판에서 야생조류 5마리가 죽은 채 발견됐다. 마을주민과 환경단체의 제보에 따라 기자도 현장에 나가봤다. 야생조류 사체가 있다는 현장인 주문양수장에는 사천시 환경보호과 직원도 2명 나와 있었다.

특별한 장비도 갖추지 않았던 이들 공무원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사체를 직접 수거하기로 결정했다. 현장 여건상 사체수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음에도 과감한 결단력과 용감한 모습을 보인 셈이다.

지난 27일 청둥오리 5마리가 죽은 채 발견된 사천시 용현면 주문리 주문양수장. ⓒ 하병주


수거한 야생조류 사체는 경상대 수의학과에 있는 경남야생동물센터를 거쳐 국립수의과학검역원으로 보내졌다. 검역원에서는 조만간 이들 야생조류의 사망원인이 무엇인지를 밝혀 사천시로 통보해줄 예정이다.

현장에 출동했던 공무원들은 환경보호과 직원들로, 평소 야생동물에 관한 업무를 보던 분들이다. 따라서 이번 조치는 어찌 보면 무난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뭔가 께름칙함을 지울 수 없다. 다름 아니라 '야생조류 사체를 발견했을 경우 어떻게 조치해야 한다'는 지침 같은 게 있을 법 한데, 현장 분위기는 전혀 그런 인상을 풍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취재과정에서 확인하기로는, 검역원에서는 '야생조류 폐사체 처리 지침'이란 걸 만들어 운용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는 '야생동물 폐사체 신고 요령'이란 홍보자료로 만들어져 일선 지자체에 전달된 모양이다.

이에 따르면, 야생에서 조류 사체를 발견하면 일반 시민들은 환경신문고 전화번호인 128번으로 전화하면 된다. 그리고 지자체에서는 축산방역담당부서 또는 가축방역기관에서 현장에 출동해 정해진 요령에 따라 시료를 채집해 검역원으로 보내면 되는 것이다.

이날 죽은 청둥오리들은 근처에 뒹굴던 비닐봉지에 담겼다. ⓒ 하병주


그럼에도 이런 내용을 관계공무원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따라서 사천시농업기술센터 축산과에 업무협조를 요청하지도 않은 채 직접 용감한(?) 행동을 보여 준 셈이다. 이날 수거된 천둥오리 사체는 현장 주변에 버려져 있던 비닐봉지에 담겨 경남야생동물센터로 보내졌다.

더 놀라운 것은 사천시 환경보호과 환경관리담당의 말이다. 평소에는 야생조류 사체가 발견되면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물음에 "그냥 폐기물로 처리해왔다"며 대수롭지 않은 태도를 보인 것이다.

물론 야생조류는 고병원성AI를 몸에 지녔다 해도 잘 죽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 야생조류의 사인이 고병원성AI가 아닌, 독극물이나 다른 원인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한 번 발병하면 걷잡을 수 없는 피해를 가져올 수 있는 고병원성AI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같은 장소에 여러 마리가 시간을 달리해 죽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AI가 가장 발병하기 쉬운 계절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관계기관과 그 종사자부터 고병원성AI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대처 요령 또한 잘 익혀야 할 것이다.

청둥오리 사체. 이번 기회에 죽은 야생조류를 발견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익힐 필요가 있겠다. ⓒ 하병주


사천시 용현면 주문리 들판에 있는 양수장에서 야생조류(청둥오리) 5마리가 죽은 채 발견됐다. 사천시는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 정확한 사인을 의뢰했다. ⓒ 하병주


들판 한가운데 있는 작은 웅덩이에서 야생조류 5마리가 죽은 채로 발견됐다. 사천시는 정확한 사인을 찾기 위해 수거한 조류 사체를 국립수의과학검역원으로 보냈다.

죽은 야생조류가 발견된 곳은 사천시 용현면 주문리 들판에 있는 양수장. 이 양수장은 한국농어촌공사가 관리하는 것으로, 한 변이 10미터 남짓한 사각형 모양을 했다.

주문마을의 한 주민은 지난 26일 이곳에서 야생조류 여러 마리가 죽은 채 떠 있는 것을 보고는 즉시 사천환경운동연합에 제보했다. 이에 사천환경련은 현장을 확인한 뒤 월요일인 27일, 사천시 환경보호과에 이 사실을 알렸다.

신고를 받은 사천시 환경보호과에서는 이날 오후 3시께 물 위에 떠 있는 사체를 수거했다. 죽은 조류 가운데 4마리는 부패가 제법 진행된 반면 1마리는 비교적 최근에 죽은 것으로 추정됐다.

수거된 청둥오리 사체는 경상대 수의학과에 설치돼 있는 경남야생동물센터를 거쳐 국립수의과학검역원으로 보내졌다. 이들의 사인이 정확히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함이다. 나아가 이들의 몸속에 조류인플루엔자(=AI)가 있는지도 확인할 참이다.

사인으로는 독극물, 세균, 영양결핍 등이 거론되는 가운데 최근 국내 서산시와 일본 등에서 AI 항원을 지닌 새들이 발견되고 있어 조류인플루엔자 감염 여부도 주요 관심사다.

한편 검역원은 조류인플루엔자 감염과 확산 방지를 위해 '야생조류 폐사체 신고 요령'을 만들어 홍보하고 있다.

일반 시민들이 야생조류 사체를 발견했을 때는 국번 없이 128번(환경신문고)으로 신고하면 된다. 그러면 해당지자체 환경부서로 전해지고 다시 축산방역담당부서로 전달돼, 현장에 출동하게 된다.

가축방역기관이 시료를 채취해 검역원으로 보내고, 만일 검역원에서 HPAI 즉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로 판명 날 경우 야생조류 폐사체 발견장소를 중심으로 반경 10킬로미터 이내에 방역을 실시하게 된다.

이 과정에 폐사체를 다룰 때는 반드시 일회용 보호장갑을 착용해야 하고, 폐사체는 방수용 비닐봉투에 넣어 묶은 뒤 다시 비닐봉투에 넣어야 한다. 또 사용한 보호장갑은 소각 또는 매몰 처리해야 한다.

폐사체와 접촉한 손과 옷은 깨끗이 씻어야 하며, 폐사체 접촉 후 최소 2주 동안은 가금류 사육농장에 방문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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