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비 줄이자는 정부 정책에 반하는 지방자치단체의 관립학원

관립학원 운영에 대한 공립학교 교사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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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주(ericrow)등록 2010.12.01 15:40
우리 학교가 있는 지역에는 "학당"이라는 관립학원이 있다. 이 학원은 시청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지역학교에서 우수한 학생들을 내신 성적과 모의고사 점수를 기준으로 뽑아 무료로 입시 지도를 해주는 곳이다. 우리 지역은 지방 중심도시의 위성도시로 우수학생 유출이 심하다. 시청은 이로 인해 지역 경제의 침체가 왔다고 진단하고, 지역의 활성화를 위해 이 학원을 세웠다.

우리 학교는 공립학교로 인근의 사립학교보다 상대적으로 입학성적이 낮다. 따라서 우리 학교 학생들이 그 "학당"에 들어갈 확률은 당연히 상대 학교보다 낮다. 또 당연하게 그 학원은 그 사립학교 중심으로 운영된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수업의 중심에서 은근히 소외되고, 수능 성적을 올리러 간 그곳에서 수능 성적이 오른 경우보다 내신 성적이 떨어진 경우가 더 많다.  학생들은 대학에 가기 위해 "학당"을 찾는데, 외려 대학 가기가 힘들어진다. 그래서 우리 학교 학생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학당을 기피하게 된다. 같은 학교의 학생 숫자가 줄어들다 보니 당연히 우리 학생들은 더 소외된다.

며칠 전에 학당을 그만 둔 한 3학년 학생에게 학당의 한 선생님이 전화를 하셨다. 학당의 수료식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 학생은 2학년 1학기에 학당을 그만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졸업식과 같은 그 자리에 왜 초대되는가? 작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우리 학교에서 서울 시내 상위권 대학 진학에 성공한 몇 학생이 예전에 학당을 다녔다는 이유로 학당의 입시 결과를 홍보하는 플래카드에 버젓이 올라있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불쾌해했다. 자신들은 학당에 다니면서 내신도 많이 떨어지고, 학교 다니는 것도 힘들었는데, 외려 학당 때문에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처럼 광고한다는 것은 어이없다는 반응들이었다. 예전에 우리 학교를 다니다가 다른 학교로 전학 가서 좋은 대학에 가면 그 학생이 우리 학교 학생이란 말인가?

왜 이런 일들을 하는지 학당 관계자에게 물어보고 싶은 맘도 있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학당으로 실패한 아이들도 실적에 넣고 싶어 한다는 것을. 실적은 학당의 존폐와 직결되기 때문일 것이다.

특정 학교의 우수학생들을 위주로 관립학원을 운영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형평성 차원에서 혜택을 한 학교에서 거의 독점한다는 것도 문제다. 그것이 공정한 선발 과정을 거쳤다 해도 그 과정이 애초에 한 학교에 유리하다면 그것은 유명환 외교부 장관의 딸이 봤던 그 '공정한' 시험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일부 엄청난 혜택을 공부 잘하는 학생들에게 몰아주는 것도 또한 문제다. 외려 시에서 공부가 부족한 학생들을 위한 공부방에 대폭적인 지원을 한다면, 학부모들에게 환영 받을 일이 될 것이다.

그럼 왜 그런 일을 추진하는가? 서울대 1명 입학한 것이 우수학생 유치에 도움이 되고 이는 입학생의 수준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대학들이 우수 학생 모셔오기 경쟁을 하듯 고등학교도 우수 학생을 모셔 와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학당은 입학 성적을 내기 위해 서울의 유명 학원 강사들을 불러오는데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고 있다. 하룻밤 3시간 정도 수업해주고 몇 십 만원의 강의료를 지불하고 있다고 한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수업이 아무리 질이 떨어진다고 해도 그 차이가 돈으로 환산해서 몇 배가 차이 날 정도인가? 그 예산을 학생들 무상급식이라든가, 보충 수업비 지원 등 보다 보편적인 교육 예산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계속되는 학력경쟁으로 인해 학생들의 스트레스는 갈수록 더해가고 있다. 인성교육이나 전인교육 같은 말은 순진한 사람들이나 하는 얘기가 되어버렸다. 이명박 정부에서 실시했던 수능 성적 공개의 영향이 이런 지점에서 나타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우리학교는 현재 기숙형 공립고등학교에 선정되어 기숙사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 기숙사는 사교육비 절감을 그 목표로 하는 국가 정책이다. 시에서는 이 기숙사를 운영하는데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학당을 운영하는데 많은 예산을 쓰고 있다. 그 학당이란 곳은  사교육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과연 시청은 기숙형 공립고등학교에 도움을 주는 일 보다 학원에 돈을 투자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 생각하는가? 

물론 시청이 학생들의 공부를 도와준다는 의도는 좋다. 공교육을 위협한다는 등의 어떤 악의를 가지고 있다고 보지도 않는다. 공교육이 믿음을 못 줘서 그런 면도 있는 게 사실이니까. 오히려 공교육의 모자란 면을 채워주는 게 학생들이나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고마울지 모른다. 교육 서비스의 소비자의 입장에서 공교육과 관립학원이 경쟁하면 질 좋은 입시교육에 도움을 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공교육은 단지 입시경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아이들에게 바른 인성과 적절한 교양과 각박한 세계에서 살아남을 생존전략 이 모두에 기초를 제공해야 한다. 정말 모순적이게도 교사는 이 모든 일을 해야 한다. 학교 밖의 시선은 이미 공교육을 외면하고 있다. 하지만 희망은 공교육이다. 사교육은 절대 인성교육과 교양을 쌓는 일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공교육에 신뢰를 주는 일은 공교육이 잘해서가 아니다. 앞으로 잘하라고 또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주기 위해서라도 신뢰를 주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인성, 교양, 기술 이 모두를 가르치는 것이 가능한 곳은 강남 등지의 있는 집과 배운 집일뿐이다.

덧붙이는 글 교육희망에 송고 예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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