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우는 문풍지

아파트 생활에 유리 창문 옛날 한옥 문 겨울엔 덕지덕지 문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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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화(leehh1940)등록 2010.11.08 13:45
               밤새워 우는 문풍지
                                                                            이희화
문풍지 떠는 소리와 방 문고리가 딸각거리는 소리에 겁을 먹고 검정 무명 솜이불을 파고들던 겨울밤 산꼭대기로부터 골짜기를 쓸고 내리던 겨울바람은 참으로 혹독하다.
뒷산 고목 밤나무에서는 짝 잃은 부엉이 밤새도록 울어대고 홀아비는 들창문에 기대서서 길 건너 청산과부댁 구둘 짱이 꺼질듯 한숨소리 들리고 가물거리는 등잔불 울어대는 문풍지 소리가 암혹천지를 흔든다.
겨울 앞마당은 은빛서리가 깔리면서 서슬이 새파란 하늘이 내려앉아서  기세등등한 바람이 처마 밑 시래기 타래에 매달려 줄기 한줌 남기고 부스러트리고, 등을 돌리자 등잔불 주위로 방안 가득 입김이 날리던 밤, 화롯불을 품에 안은 채 등잔불 밑에서 아버지가 우리들 옷을 벗겨서 보리알 같은 이를 잡아서 손톱을 맞대고 자근 지근 죽이고 꽁꽁 언 손으로 버선 벌을 받든 어머니 잠이 든 추운 겨울밤 오래전에 작은 소년들도 벌써 70대 후반의 노령에 접어들었다.
문풍지를 겹겹이 앞쪽 문은 물론 뒤쪽 문도 그렇게 겹겹이 바른다.
문은 그 집안 식구들이 일상 드나드는 출입구이기도 하지만, 채광구로서의 역할도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곳에 해가 뜨고 달이 뜨는 것은 물론 풍설에 이르기까지 거기와 부딪침으로써 계절의 변화를 민감하게 느끼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넉넉하게 종이를 잘라 두툼한 문풍지를 만들어 붙였다. 문살 없는 문짝에는 무늬도 향기도 없었다. 창호지에 붙은 문풍지가 들어오는 겨울바람을 막느라고 힘에 겨워서 밤새도록 울어대는 문풍지소리 애간장 저려서 울음에 밤잠을 못 이루는 홀로 아낙네는 잣베개 모서리에 눈물 자국 얼룩 쩌도 찾아오는 임도 없이  밤을 지새우는 독수공방의 애환이 서려있기 때문이다.
민족의 울음이 쌓이고 쌓인 한의 표현을 대신하기도 했다. 동지섣달 긴긴밤을 운 것도 문풍지요, 밤마다. 부엉이 울어대는 밤에 떠난 임을 그리워 운 것도 문풍지였다.
그래서 우리 문화는 문풍지 문화라고도 한다.  밤마다 머리를 풀고 울던 갈 숲과 칼을 갈던 댓잎, 한숨처럼 떠오르던 새벽달과 꽹과리 소리 앞세워 굿을 하던 단골패의 풍물과 한 많은 이 세상 못 떠나 울던 처녀귀신이 서럽게 울던 흐느낌처럼 느끼하게 들리기도 했다.
문풍지는 강풀을 많이 쒀서 묻히고 튼튼히 붙이는 것이 비바람에도 떨어지지 않고 손가락구멍도 잘 나지 않게 하는 비결이다. 문종이는 닥종이 두꺼운 창호지를 써야 강풍에도 찢어지지 않으면서 겨우내 여닫아도 헐지 않는다. 그리고 문풍지는 창호지로 사방팔방 문을 도배하듯 다 발라도 답답하지 않다는 특징이 있다.
요즘에는 날씨가 조금만 추워도 춥다고 호들갑을 떨지만 우리네 옛적 겨울은 지금보다 훨씬 추웠다. 오죽했으면 살을 에는 추위라 했을까. 겨울이 그렇게 추웠던 것은 지금처럼 난방시설이 잘 되어있지 않은 데에다 옷이 얇고 배가 고파서였으리라. 바늘구멍으로 황소바람이 들어온다. 하면서 어머니께서는 문을 꽉 닫으라고 하셨다.
비뚤어진 문틈 사이로 여기저기 찢어진 문구멍으로 들어오는 칼바람은 어찌나 춥던지, 아랫목은 뜨겁고 윗목은 냉골이었다. 아랫목은 올망졸망 아이들 자고 윗목은 아버지 차지다. 밤새 울어대는 문풍지소리는 저승사자의 우는소리 같았다.
세월은 많이 갔지만 문풍지 울리던 그날이 그립다.  지금도 내 귀엔
무슨 음악곡조인양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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