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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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dwkim)등록 2010.11.01 13:55
머리 좋은 사람은 열심히 하는 사람을 못 이기고, 열심히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따라가지 못한다.

고시 합격자의 수기나 자기 개발서 같은 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글입니다. 주어진 환경을 피하려 하거나 요령 없이 우직하기보다는 그 속에 스며들라는, 일종의 계급부정을 위한 최면 같은 거지요.

'열심히' 하는 사람을 이기는 '즐기는' 사람에게 우리는 언제부턴가 '달인' 칭호를 붙이고 있습니다. 머리 위에 3층 4층 밥상을 이고 복잡한 시장 골목을 달리는 밥집 아주머니를 우리는 그렇게 부르고, 뜨거운 기름 프라이팬 위에서 사철 손 식을 새 없이 한번에 10개 20개의 만두를 구워내는 분식집 주인을 우리는 또 그렇게 부릅니다.

요즘 꽤 시청률이 높다는 한 방송사의 어떤 프로그램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고 있는 거지요. 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숨 막히고 아찔한 신자유주의 세상과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달인' 프로그램은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의 동요(혹은 소요, 더 나아가 혁명)를 원천차단 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란 걸 많은 인민들이 잘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본이나 권력을 가진 지배계급들은 '네가 처해 있는 환경에 불만 갖지 말고 그저 네 할 일이나 열심히 하라'는 윽박지름보다, 인민들을 순한 양으로 만들기에는 이 방법이 더 쉽고 편하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달인'을 보는 인민들이 '저 사람 참 열심히, 또 즐겁게 일하면서 사네. 나도 저렇게 살아야 되는데……' 생각하게 만드는 거지요. 

우리는 '개천에서 용 나기란 이미 그른 세상이 됐다'는 걸 가끔, 그러나 아주 찔끔 느끼기도 합니다. 장관 딸의 '맞춤채용' 같은 뉴스를 볼 때 말입니다. 그러나 곧 잊어버립니다. 매주 한 번씩 방송되는 '달인'들의 경지에 숙연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같은 오락 프로그램이라 해도 어떤 개그프로그램에 나오는 '달인'은 앞의 달인과는 좀 다르지요. '16년을 줄에 매달려 살면서 아직 한 번도 땅을 밟지 않은……' 같은 걸 볼 때면 안쓰럽다는 생각도 듭니다.

비약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이 개그프로그램에 나오는 달인이 지배계급의 교묘한 '인민 최면술'을 고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티브이 속 이쪽 달인과 저쪽 달인은 결국 같다는 걸 말 하려는 게 아닐까, 이쪽 달인에게는 찬사를 보내고, 저쪽 달인은 마냥 비웃는 우리들의 착시현상을 일깨우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월간낚시21 11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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