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블로는 한국사회의 어떤지점을 간과했나?

타블로 학력논쟁. 엘리트에 대한 한국인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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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찬호(och7896)등록 2010.10.10 16:21
내처럼 허접쓰레기 글을 쓰는 사람에게 최근 '타블로와 타진요 관련 글'을 요구하는 매체 및 단체가 꽤 있었다. 그만큼 '탑이슈'였나 보다. 사람 가지리 않고 청탁하는걸 보아선. 너무 정신이 없는 터라 다 거절했지만, 사실 타블로의 노래 하나도 모르고, 또 그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논쟁에 대한 해석이 좀 뻔하게 그려지는 것도 거절이유 중에 하나였다. 그 애기를 지금 하겠다. 한번쯤은 기록에 남겨두어야 할 것 같아서.

타블로를 올해의 인물로

한국사람들은 흩어져 있을 때는 '개인' 그 자체에 불과하지만, '모이게 되면' 정말로 '개인의 합' 이상의 힘을 표출한다.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이러한 '민족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지만 우리는 '더' 심하다. 그런데 '사이버공간'에서는 이것이 굉장히 이상한 방향으로 확장되는 경우가 있다. '타진요'가 대표적인 경우라는 것은 두 말하면 잔소리. (너무 뻔하지?)

타블로는 '처음부터' 이러한 타진요를 상대하지 말았어야 했다. '의혹'이 있다고 '의혹을 해명'하는 것은 국회청문회에서 할 일이다. 해명을 해도, 의혹이 엄청나게 불어나는 '사이버공간'의 무식한 특성이 애초부터 문제 아니었던가. 굳이 '정상이 아닌 루트'에 심각하게 응대할 필요가 없다. 타진요는 결국에는 '아무런 힘이 없는' 개체로 흩어질 운명이었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내가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배부르게 할 수 있는 소리. 이런 공포의 분위기를 무덤담하게 받아들일 강심장은 없다.

그러나 타블로는 명백히 '올해의 인물'이다. 그는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로 공식 인증받았다. 지금까지, 네티즌 '광기'로 인한 피해사례는 무수히 많다. 그런데 너무나도 가해자가 광범위하니, 딱히 피해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할 수 없었다. "넌 참 불쌍하다~" 정도.

하지만 타블로는 대박이다. 이제 모두가 '타진요의 WHATBECOMES'의 정체를 궁금해 하고 있다. 신상만 까발려지면 능지처참도 할 기세다. 누구의 표현처럼 이는 '네티즌들의 역습'이다. 이제 '타블로의 귀환'만이 남았을 뿐. 이 사건이 대한민국 네티즌들에게 약간의 교훈으로서 학습되길 기대한다. 지금까지 어떤 이도 손을 쓸수가 없었던 이 '거대한 사이버 공간'에 타블로가 처음으로 성찰의 메세지를 던져 준 것이다.

타블로 ⓒ 인터넷캡처


하지만 왜 이런 '타진요의 광기'가 약간이라도 통했던 것일까?

그런데 사회학적 관점으로 이 사건을 볼 때, 사실 '타진요'가 옳으니, 그르니는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그러한 '헛소리'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최소 몇 개월동안 대중들과 공명한 이유를 찾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

지금에야 '네티즌의 역습'이다 뭐다 그러면서, 타진요를 탓하는 분위기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또 다른 매체인 <MBC 스페셜> 영향 아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이 사건을 단지 '운영자 누구와 그를 추종하는 누구들'의 심각한 인성의 문제로만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분명 한국사회는 이 '타진요'를 "너무 심한 것 아니야?"라고 질타하면서도 "타블로의 진짜"를 의심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 모든 사람을 '미친놈'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잖아?

아무리 왜곡된 논의라 하더라도 이 왜곡된 공격을 받는 대상에게서도 '일정한 맥락'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타블로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를 '개인'이 아닌, 하나의 '일반화'된 캐릭터로서 볼 필요도 있다. 도대체 타블로의 어떤 특성때문에, 그는 이런 기구한 운명에 처했단 말인가?

그의 특성을 대표하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스탠포드라는 학력이다. 물론 이것은 아무런 문제가 아니다. 다음의 특성은 이런 학력을 가지고 가수로 활동한다는 것이다. 이것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두 변수는 서로 인과관계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박사학위가 교수가 되는데 당연한 요소라고 하자. 그런데 스탠포드 박사라는 이유가 '무조건' 국내박사보다 '더 좋은' 점수를 받는 조건이 된다면 이는 문제가 된다. 하지만 가수로 성공하는 것과 스탠포드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러니 '스탠포드 출신 가수 타블로'는 '대구 출신 방송인 김제동'이라는 것과 같은 말이다.

문제는 이 상관없는 인관관계를 '관련'시키면서 발생한다. 타블로는 데뷔이후 이러한 '전혀 상관없는 관계'를 자꾸만 '상관성 있게끔' 하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물론 이는 타블로의 '의지'가 아니다. 여론이 그렇게 만들어지니 어떡하냐 말이다. 하지만 대중 연예인이면 이를 자꾸만 부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당연한 임무'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한국에서 대접받고 싶으면' 이렇게 하는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서울대 출신 개그맨 서경석이 그랬다. 모든 언론이 그를 '서울대 출신'이라는 타이틀로 접근했지만, 그는 '개그맨 자체'로서 인정받길 원했다. 그런 의지를 대중들은 읽었다. "서경석은 서울대라는 타이틀이 오히려 그의 꿈을 완성시키는데 걸림돌인것도 같아 보여"라는 그의 대한 평가는 바로 개그맨으로서 인정받는데 학력이라는 타이틀을 직접관련시키지 않기 위한 서경석의 엄청난 '거리두기'의 결과인 것이다.

하지만 타블로는 등장하는 매체마다 스탠포드를 연결시켰다. 에픽하이의 노래를 하나도 모르는 내가, 타블로가 4개국어를 시트콤에서 보여주고, 스탠포드 재학시절 작성한 소설을 TV에서 감정받고, 또 (그것이) 시중에도 유통되고, 그가 무릎팍에서 '즐기면서 공부하는' 등의 (절대 한국에서는 이해못할) 헛소리를 한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단적인 예다.

그는 애초에 이런 프로를 나갔으면 안된다. 그는 본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방송이 그렇게 포장되었다고 변명하겠지만 그렇다면 정말 실망이다. 미디어의 속성이 원래 이렇다는 것은 스탠포드가 아니라 고등학교만 나와도 다 아는 사실이니까. 결국 그는 미디어의 그러한 속성을 '잘' 이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시청자들은 서경석을 바라보면서는 '서울대 출신이지만 개그맨이 되기 위해서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서울대라는 타이틀 하나로 세상을 다 가져버리는' 그러한 세상분위기의 '반증사례'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블로를 바라보면서는 '쟤는 스탠포드로 정말 많이 우려먹는구나'라는 느낌을 안 가질 수 없었다. 일반적인 대중은 자신의 직업과 '상관성있는' 과거를 연결시키는것조차 그 기회가 제한되어 있는데, 타블로는 가수와는 전혀 상관없는 '고학력, 고학력집안'이라는 배경을 무수히도 재탕, 삼탕했다. 이처럼, 대중들에게는 겉으로는 "타블로 참 똑똑해~"라고 말하며서도 속으로는 "지가 가수하는 것하고 스탠포드가 무슨 상관이야?"라는 불만이 잠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엘리트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에 대한 '감'이 있어야 하는건가

그의 가족 역시 이번 사건에 한 축이기도 하다. 타블로의 가족은 다 고학력자다. 당연 이는 아무런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그런 집안이 '다른나라 시민'이 되었다. 이것도 문제가 안된다. 그러니 '한국의 의무'를 따지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그런데 그런 '다른나라 사람'이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와서 산다. 그것도 '잘'.

그런데 잘 살수 있는 이유가 한국에서 '그저' 살았던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네이티브 영어실력과 학력'이라면 이건 얘기가 달라진다. 특정실력을 취득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왜 그 실력을 한국에 와서 사용하느냐는 거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가진자가 계속 가져가는' 구조를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은 없다. '짜증'이 난다. 

문제는 아무리 짜증이 난들, 타블로가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인데, 바로 여기에서 타블로가 '대스타'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순간이 등장한다. 당연히, 타블로의 이런 '과거'(?)와 지금의 '행보'를 개인적으로 가치판단은 할 수 있지만, '비난의 합리적 근거'가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과 별도의 '민감한 지점'이 대중들에게는 있다.

이 지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어떻게 유리한 고지를 '미리' 세팅하느냐에 따라, 이번의 논쟁은 애초에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타블로는 본인이 공부잘했고, 집안이 공부잘했고 그런 자신이 한국에서 돈 버는 것에 "난 잘못이 없으니 신경 안쓸꺼야~"보다, "내가 잘못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칫 오해할수도 있으니 내가 먼저~"라는 분위기를 만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타블로는 줄곧 '전자'의 입장에서 활동을 했다. 정확히는 전자라기보다는 '후자'를 너무 신경쓰지 않았다는 표현이 옳을 듯 하다. 예전에 그의 형 '데이브'가 무한도전의 뉴욕방문에 대해, 마치 과거 서구에서 동양을 바라보는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으로 이들을 비난한 적이 있었다. 물론, 개인 미니홈피의 글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인종적 '우위'가 스스로에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왜 이런 '형'의 일을 연관시키느냐 하겠지만, 한국사회는 연관된다. 그게 한국의 맥락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를 '타블로 집안의 문제'로 볼 수 밖에 없다. 그러니 군대를 기피하기 위해 영주권을 얻었다는 등의 논의가 학력문제와 함께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른바 '부패한 특권측에 대한 무조건적인 공격'의 대상으로서 타블로라는 캐릭터가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본다면, 타블로에게 이런 형의 에피소드는 '오해의 증폭'을 사전에 막을 수 있었던 기회이기도 했다. 100번 사과는 물론이고 자신들이 너무 어릴때부터 외국에서 살아서 한국의 소중한 정서를 너무나 몰랐다고 빌었어야 했다. 그리고 알고보니 오히려 자신들이 우물 안 개구리였다고 고백해야 했다. 최소한 겉으로는 이렇게 석고대죄했어야 했다.

그러면 대중들은 알아서 "괜찮아요~ 괜찮아~ 가수활동 하는데 왜 이런것을 신경쓰나?"면서 오히려 위로를 했을 것이다. 그게 한국사회가 '엘리트'에게 원하는 "한번만 겸손해주세요~"라는 맥락이다. 그래서 엘리트는 한번만 고개를 숙이면, 그때부터는 엘리트 자격을 잃더라도 평생 남에게 '존경'받게 된다.

타블로는 한국사회'안'에서 '엘리트 타블로'가 되면서 필연적으로 '살얼음판'을 걷게 되었다. 물론 이는 서구의 시각에서는 '어처구니 없는' 살얼음판일수도 있다. 그런데 그건 서구의 시각이고 우리의 시각에서는 어찌되었든 수백년간 '유지된' 얼음판인것이 분명하다.

이것이 옳고 그름을 따지기전에 대중들은 이 얼음이 깨지느냐 아니냐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한국적 상황을 이성의 논리가 아니라, '감성의 차원'에서 짚어 주는것이 바로 한국사회에서 엘리트가 '단지 엘리트를 넘어서는 존경의 대상'이 되는 요건인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엘리트가 가진 '냉철한 이성'이 대중들에게 스며들 개연성이 한층 더 높아질 수 있는 것이다.

이만큼 어느 사회이든 '성공'은 대중이 의심하는 바를 '미리' 해소할 능력을 가진 자에게 주어졌다. 나는 그런 차원에서 '스탠포드'라는 수식어와 자신이 함께 설명되는 것을 그렇게 마다하지 않았던 타블로가 한국인들을 너무 만만하게 본 것은 아닌지 한번쯤은 묻고 싶다. 한국인은 '잘 난 사람'을 존중하는 그런 문화가 분명 서구와는 '다르다'. 이게 문제든 아니든, 어쨌든 한국은 그렇다. 그만큼 '제대로 잘 난 사람'은 너무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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