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잔치

전국(소년)체전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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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룡(realjr)등록 2010.10.06 12:41
경남 사천에 내려왔다. 제91회 전국체육대회 농구부와 펜싱부 아이들이 경기에 참가하기 때문이다. 객지에서 잠이 제대로 올 리가 없다. 피곤하기도 하지만 사소하고 시답잖은 어떤 것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그 무엇. 그래서 술이라고 한 잔 하기도 하지만 어제는 음주운전을 할 수 없어 알코올기를 집어넣을 수 없었다. 게다가 배가 부르면 제아무리 좋은 술도 단호하게 거부하는 좋은 생리적 시스템을 지니고 있다. 어제는 전국체전에 참가한 강원도 출전학교장 회의가 있었다. 대부분 학교장을 체육부장들이 '모시고'와 교육감이 내는 저녁 만찬을 하는 자리였다. 진짜 주인공들일지도 모르는 체육부장들을 뺀 현수막도 웃긴다. 

올 초에 무슨 전국단위 인문학 학술대회에서 발표를 한 일이 있었다. 체육과 스포츠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한 가지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 있었는데, 그 어떤 공부를 하는 사람들도 체육이나 스포츠에는 대략 무지하다는 것이었다. 저마다 자기들만의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 그들의 세상도 한 발 들여놓고 보면, 내가 사는 체육이나 스포츠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민교육감은 이러한 것을 잘 아는 분 같았다. 어차피 강원중등체육의 수장이 되어있는 그 양반의 이야기는 전임교육감의 이야기와도 확연히 달랐다. 특히 메달, 성적에 연연하지 말고 편하게, 경기를 즐기라며 U17세 이하 여자월드컵대표임 최덕주 감독의 이야기를 하며 '모든 것은 내가 책임진다'라는 이야기의 초심을 기대하게 하는 것이다. 

91회라고 하지만 지금과 같은 형태의 전국체육대회가 출현한 것은 5.16 이후 군사정부가 들어서고 엘리트스포츠시스템이 정착되면서부터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 전국체육대회는 16개 시도를 순환하며 개최되고 있는데, 그 규모나 내용면에서 긍정적이고 더 고양시켜야 될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성장과 발전이라는 그 케케묵은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며, 지역 혹은 주변인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의 성장과 발전에 대한 기대와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끝없이 스펙터클을 증폭시켜왔던 것이다.      

그러나 전국체전에서 드러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정작 그 주인공들인 학생운동선수들이, 기본권과 학습권에 심각한 침해를 받으며 일반 학생들과 끊임없이 유리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전국(소년)체전이 "그들만의 잔치"가 되기 시작하면서 더 심해지고 있는데, 그 중 전문계중고의 학생운동 선수들은 그래도 형편이 나은 편이나, 일반계 학교의 학생운동선수들의 일상적 삶은 체육선생인 나의 일상처럼 한심하기 짝이 없다.

몇 년 전부터 전국(소년)체전에 대하여 그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이야기가 적극적으로 제기되었고, 실천에 옮기기 위한 세부적인 대안도 제시되어 있다. 그 핵심은 전국체전에서는 고등부를 분리시켜야 한다는 것이고, 전국단위의 소년체전은 지역단위로 하되 종합순위제를 폐지하고 지역간·학교간 과열 경쟁을 더 이상 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한 경쟁에 내몰린 운동부의 감독·지도자를 비롯한 기성세대들이 학생운동 선수들을 다시 비인간적이고 반인권적인 지도방법으로 학생운동선수들을 경쟁으로 내모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국(소년)체전의 패러다임 변화에는 수없이 많은 장애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학생운동 선수들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이것은 한국사회 경쟁구조, 입시구조, 성장과 발전이라는 탐욕과 공포의 기제를 허물 수 있는 가장 첨단의 변혁기제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너무 앞서가는 것일까?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오늘 전국체전 개막식에는 분명히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하게 될 것이다. 이 자리에는 문광부 장관을 비롯 대한체육회장을 비롯한 정권의 실세들이 대거 참석할 것이다. 이와 함께 16개시도 시장과 지사, 교육감들이 배석하게 될 것이다.

삼엄한 경호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로열박스에 들어서는 대통령. 어디서 많이 보아왔지 않은가? 이러한 모습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도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이 권위주의적 국가운용시스템의 가장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하면 과장일까? 스포츠의 역사는 불과 150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스포츠행사에서 권력자들이 힘과 권위를 과시하고 확인하고 강화하며, 대중들의 환호 속에 권력의 달콤하게 누리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퍼포먼스가 되는 것이다.

나는 지난번 이광재 지사와 민병희 교육감이 어깨를 나란히 한 강원도선수단 결단식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다. 그들이 함께 학생선수들과 파이팅을 외치며, 경쟁을 떠나 경기를 즐기라고 이야기 했지만 가슴 한 편으로는 서늘한 것이 지나가기도 했다. 우리학교 아이들은 경기 참가 선수들로서 그 결단식에 참석했다. 그런데, 체육고등학교 운동선수들은 다르다. 200여명의 학생들 중에 올해에 도대표로 선발된 선수들은 87명이다. 선발된 학생들은 운동을 하거나 전지적응훈련을 떠났기 십상이었다. 그 날 도 대표 선발에서 제외되고 다음을 기약하며 선발 선수들 대신해 결단식에 참석한 학생들이, 가슴에 커다란 슬픔을 간직한 아이들이었음을 이 지사나 민교육감이 알았을 턱이 없을 것이다.
http://blog.ohmynews.com/contemporize/rmfdurrl/345074

이것은 결코 학생운동선수들의 잔치가 아니다. "그들만의 잔치"일뿐이다. 나는 운동선수 아이들도 일반 아이들처럼 정말 어우러지며 즐기는 한바탕 축제 한마당을 만들어 갈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어른들이 학생들에게 돌려주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다음의 사진들은 내가 재직하고 있는 학생들의 체육대회 모습이다. 이런 행사에도 운동부 아이들이 대부분 참여하지 않고 소외되고 있는 것이 한국사회 체육·스포츠의 진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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