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목숨이다.

사랑은 상대방이 잘 사는 게 행복해서 내 목숨이 사라져도 아쉽지 않는 맘과 행동

검토 완료

김종성(연암박지원)등록 2010.11.27 20:46
**내용에 이 드라마에 줄거리가 들어있습니다. 그래도 읽으시려면... 계속

내 나이 30대 중반. 결혼한 다섯 살 된 딸아이의 아빠다.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설렘은 희미해지고 가족이라는 익숙함이 더 어울리는 즈음, 아내와 함께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여친구)를 보게 되었다. 사랑이라는 말이 이제는 쑥스러워질 정도로 어른이 되어버린 나. 그런 나에게 이 드라마는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방송가에서 홍자매 극본이라고 하면 이미 매니아층이 형성되어 있다. 최근 일본에서도 그들이 쓴 <미남이시네요>가 히트를 기록했다고 한다. 나에게 그들이 쓴 최고의 작품은 <환상의 커플>이다. <환상의 커플>이 흔한 자장면이라도 누구와 자장면을 먹느냐에 따라 천국을 경험하기도 한다는 깨달음을 주었다면 <여친구>는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목숨이 실체임을 깨닫게 해 주었다.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캡쳐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목숨이다 ⓒ sbs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목숨이다.

<여친구>는 500년간 그림 속에 갇혀있는 구미호(신민아)가 2010년 대웅(이승기)을 통해 세상에 나오게 되지만 자신을 꺼내준 대웅이 사고로 죽어가는 것을 보며 자신의 몸에서 꺼낸 분신과 같은 구슬을 대웅의 몸 속에 넣어 대웅이를 치료하게 되면서 인연이 엮이게 된다는 이야기다.

<여친구>에서 구슬은 사랑을 상징한다. 동시에 구슬은 구체적인 몸의 기운을 상징한다. 그래서 구미호가 대웅이에게 구슬을 주자 미호(대웅이가 지어준 구미호의 이름)의 신체적 능력은 감소한다. 한편 대웅이의 몸에 들어간 구슬은 죽어가는 대웅이를 치료한다.

그렇게 미호는 대웅이가 치료될 때까지 대웅이 곁에 있게 된다. 그러면서 미호는 대웅을 좋아하게 된다. 미호는 영원을 사는 존재지만 대웅이와 현재를 살며 사랑하고 싶어 사람이 되길 바란다. 대웅도 미호와 함께 지내며 미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그래서 미호는 동주선생(인간이 아닌 영원을 사는 존재)에게 사람이 되는 방법을 듣는다. 

사람이 구슬을 100일간 품으면 그 구슬에 사람의 기운이 채워진다. 한편 미호는 극약을 먹고 100일 동안 서서히 구미호의 능력을 잃어가며 죽음으로 향해간다. 그리고 마지막 100일이 되는 날, 구미호의 능력이 사라지고 죽음에 이르게 되었을 때 사람이 품은 구슬을 다시 받으면 구미호는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미호는 100일간 서서히 능력을 잃어가고 대웅은 미호의 구슬을 몸에 품고 지낸다.  그런데 100일 후 대웅이 미호에게 구슬을 주면 미호는 사람이 되지만 대웅이 죽는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다. 두 사람 중에 한 사람만 살 수 있게 된 상황.

이 사실을 먼저 알게 된 미호는 100일 후 대웅이를 살리고 자신이 죽겠다는 결심을 하고 대웅이 곁을 떠난다. 대웅이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크게 상심한 대웅은 50일이 되던 날, 뒤늦게 미호가 자신을 위해 죽음을 선택했다는 걸 알고 미호를 찾아가 이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며 함께 살게 될지 함께 죽게 될지 모르지만 자신의 몸에서 구슬을 가져가라고 한다. 그렇게 대웅은 미호를 살리기 위해 자기 생명의 절반을 미호에게 넘긴다. 그러나 미호의 신체는 극약으로 인해 죽음으로 향해가는 걸음이 멈추지 않는다.

동주선생은 죽음을 멈추는 길은 인간이 되고자하는 마음을 멈추어야한다고 대웅에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미호에게 인간이 되고자하는 마음은 대웅을 사랑하는 마음과 같기 때문에 멈출 수 없다. 대웅은 미호를 살리고자 미호에게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미호를 떠난다.

미호의 마음을 멈추기 위해 미호를 떠났으나 미호의 마음은 멈추지 않는다. 미호는 자신의 구슬을 병에 담아 꺼내놓고 동주선생에게 이 구슬을 다시 대웅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자신은 죽음을 선택하고 대웅이 자신에게 준 절반의 생명을 다시 대웅에게 주고자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웅이 이 구슬을 가지게 되면 미호가 죽는다는 걸 잘 알 것이기 때문에 대웅에게 이 구슬을 마실 수 있도록 거짓말 해달고 부탁한다.
동주선생은 대웅을 만나 미호의 구슬을 품고 남은 사람의 기를 다 채워 미호에게 주라고 한다. 이렇게하고 대웅이 죽는 게 미호를 살리는 유일한 길이라고 꾸며 말한다. 대웅은 한치도 망설임없이 미호의 구슬을 마신다. 미호를 살리고자 자신의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그 모습을 미호가 숨어서 지켜본다. 그들의 사랑은 목숨을 건 사랑이다. 이렇게 작가들은 구슬을 통해 '사랑'의 실체가 감정이 아닌 목숨이라고 이야기한다.

사랑은 자기를 비어 다른 이를 살리는 것

아이를 키우며 알게 된 사실은 이거다. 아픈 아이를 걱정하며 지새우는 밤들,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더러워진 아이의 옷들을 빨아 널고, 쉽게 상하는 이유식을 정성껏 만들고, 육아를 위해 하던 일을 휴직하고, 때론 아이가 바르게 자라기 위해 눈물이 나도록 혼을 내기도 하는 이 모든 일들은 자신의 기운을 상대방에게 쏟아 붓는 과정이라는 거다. 나를 비워 다른 이를 살리는 구체적 행동이 사랑이다. 

극 중에서 미호와 대웅은 서로 사랑하지만 상대방을 살리기 위해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냉정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감정은 미움 또는 냉정함으로 보일지 모르나 미호와 대웅은 상대방을 살리고자하는 마음에서 그런 감정으로 자신을 표현했던 것이다.

이렇게 감정을 사랑의 실체로 보면 사랑은 잡히지 않는 바람처럼 모호하다. 그러나 미호와 대웅에게 드러나는 감정에 주목하지 않고 구슬에 주목하면 그들의 사랑은 한결같았다는 걸 알 수 있다. 구슬은 바로 상대방을 살리고자 자신의 목숨과 기운을 내어주는 구체적 행동들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상대방이 잘 사는 게 행복해서 내 목숨이 사라져도 아쉽지 않는 맘과 행동이다. 아내를 처음 만난 때의 설렘이 희미해지고 팬티 바람이 익숙해지는 가족이란 이름이 딱 맞아 떨어지는 즈음... 사랑이란 설렘이 아니라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구체적 행동이란 걸 <여친구>를 통해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설렘이란 '기꺼이 자신을 다 내어주어도 아쉽지 않을 마음' 아니었나? 그러고 보면 난 잠든 아내와 아이를 보며 매일 밤 두근거린다. 자신을 다 내어주어도 아쉽지 않을 것 같다. 미호와 대웅이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다면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미호와 대웅이가 나눈 사랑의 설렘과 짜릿함이 나는 부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덧붙이는 글 뉴스앤조이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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