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후들이 봄빛을 독점한다면

서민들 거처에도 봄빛이 이르는 사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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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동(khd6091)등록 2010.09.19 15:36

조선조 성종 때의 이야기라고 한다. 어느 화창한 봄날 후원을 거닐던 성종 임금이 문득 춘흥에 겨워 다음과 같은 칠언시 두 구절을 벽에 걸어두었다.

 

녹라전작삼춘류(綠羅剪作三春柳)

홍금재성이월화(紅錦裁成二月花)

 

푸른 비단 잘라내어 봄보들을 드리우고

붉은 비단 오려내어 이월의 꽃 만들었네

 

며칠 후 이 두 구절 뒤에 누군가 짝을 이루는 대구를 걸었는데 다음과 같았다.

 

약사공후쟁차색(若使公侯爭此色)

춘광부도야인가(春光不到野人家) 

 

만약 공후들이 이 춘색을 서로 차지하려 든다면

서민들 거처엔 봄빛이 이르지 못한다네.

 

『기문총화(奇文叢話)』에 따르면 뒤 두 구절은 귀원(貴元)이란 후원 문지기가 창화(唱和)한 것이라고 한다.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 특채 논란으로 장관이 사임하고 그에 이은 행정안전부의 감사로 불공정 행위가 밝혀졌으며 여타 특채 불공정 의혹에 대해서도 감사가 진행 중이다. 항간에는 외교통상부를 '외교가족부'라고 비아냥거리는 소리까지 나오고 또 이런 일이 비단 외교통상부에만 국한된 일인가 하는 얘기도 들린다. 비등하는 비난 여론 속에서 특채 비율을 50퍼센트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골자로 하는 행정고시 개편안도 백지화되고 정부 및 정치권에서는 뒤늦게 고급공무원 채용시험의 공정성,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한다.

 

90년대에 우리사회에 몰아친 신자유주의 물결과 두 차례의 경제위기로 우리사회의 양극화 현상은 그 어느 때보다 심화되어 이제 개천에서 용나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 항간의 정설이다. 그래서 열심히 노력하여 시험을 통해 신분 상승의 기회를 잡는다는 것은 공정한 게임의 법칙을 지킨다는 당위 이상이다. 그것은 소위 백없고 가진 것 없는 보통 집 자식들에겐 희망의 등불이기 때문이다. 

 

한쪽에서 배경을 동원해 고위 관직을 대물림하고 독점하는 현상이 일반화될 때 힘없는 사람들이 느끼는 좌절과 분노는 결국 언젠가는 폭발할지도 모를 잠재적 불안요인이다. 이러한 사회가 건강한 성장을 이루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 불공정 게임으로 관직과 권력을 독점하는 사회는 거기에서 배제된 사람들의 박탈감을 키우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그것을 누리는 계층의 이익도 보호할 수 없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은 약 반세기 전 그의 취임사에서 '만약 자유 사회가 가난한 다수를 돕지 못하면 소수의 부자도 구하지 못할 것'(If a free society cannot help the many who are poor, it cannot save the few who are rich.)이라고 경고했다.

 

최근의 총리 및 각료 인준 청문회에서도 드러났지만 우리 사회 엘리트층들의 도덕적 수준은 국민들의 요구 수준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다. 압축성장의 과정에서 지도적 위치에 올라간 사람치고 도덕적 문제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느냐고 하는 말이 일각에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그것이 과거의 방식에 머물러야할 이유는 물론 아닐 터이다. 식민지배, 전쟁과 냉전, 독재와 폭력의 시대를 청산하고 어려운 가운데서 한국이 이룬 그간의 성취를 보전하고 거기에 또 하나의 벽돌을 쌓는 일은 진일보한 규칙과 사고방식 및 행동양식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이 한국이 성숙한 어른으로 한 걸음 성장하는 일일 것이다.

 

현정부가 집권 후반기의 정책 목표로 내건 '공정사회' 건설은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이라는데는 이의가 없다. 어디로도 기울지 않은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의 마당을 닦는 일이 그 출발점이 아닐까 한다. 이런 정부의 다짐이 한낱 구호나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야 서민들 거처에도 봄빛이 이르는 사회가 될 것이다. 

 

 

 

2010.09.19 15:36 ⓒ 2010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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