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무연장을 주장하는 예비역들에게 묻는다

우리들의 솔직한 군생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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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찬호(och7896)등록 2010.09.14 14:13
"군대 가면 사람 된다!"는 것처럼 우스운 소리도 없다. 그럼 군대 가지 않은 인간은 짐승이란 말이야? 어떻게든 군복무의 억울함을, 내 청춘을 뺏은 시간에 대한 보상을, 이렇게 '가지 않은 자'를 멸시하면서 버둥거리는 모습은 솔직히 가련함 그 자체다. 결국 "군 복무 이전, 난 사람이 아니었다!"는 무식한 자기고백 아닌가. 아니면 "한국은 군대 안 가면 사람취급 못 받습니다!"라는 아주 심각한 사회문제에 대한 완벽한 증명이기도 하고.

군복무 연장. 예비역들의 찬성 분위기

최근 대통령 직속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에서 '군복무 연장추진'을 MB에게 건의했다. 그러자 조금이라도 군 생활이 저렴(?)할 때, 입대하겠다는 입영대기자들이 병무청 홈페이지에서 '입영일자 본인선택' 코너를 다운시키는 등 난리가 아니란다.

당연히 사회는 찬반논쟁으로 난리법석. 군복무기간을 단축하면서 군의 선진화를 도모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와 "그러다가 전쟁나면 다 죽는다!"라는 사실상의 협박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그런데 '단축 금지!' 정도라면 이해라도 하겠는데, '연장 추진!'이라니. 아무리 우리 사회가 후퇴했다고 하지만 군 복무를 '연장'시킬 정도였단 말인가.

내가 주목하는 것은 군복무 연장을 찬성하는 담론을 주도하는 집단들 중에 예비역들이 상당하는 것이다. 그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나 군대생활 해 봐서 다 안다! 18개월은 택도 없다!"면서. 그리고 부연설명이 붙는다. "군대의 특성상 초반에는 적응하는 데, 그리고 심리적으로도 쫄아(?) 있어서 능동적 업무파악이 되지 않는다!"는 것.

이는 결국 군대의 '특성'을 개조하면 될 일을 개인의 희생으로 이를 보완하자는 어처구니 없는 모순에 대한 증명일 뿐이다. 조직의 특성이 문제인데, 국민의 개고생이 어떻게 당연할 수 있느냐 말이다.

그런데 정말 웃긴 것은 다음 이유다. 어이! 예비역들! 우리 서로 군 생활 어떻게 했는지 다 알고 있는데 어떻게 너네들 입에서 "최근의 남북관계가 좋지 않으니~", "전문적인 업무숙달로 전시태세를 대비하는~" 등의 가당치도 않은 말들을 할 수 있어?

우리가 언제 그렇게 나라사랑이 극진했다고, 언제부터 그렇게 군대를 가지고 장난치는 행정가들을 존중했지? 정말 웃겨. 우리 까놓고 말하자. 왜 그래? 하루라도 빨리 제대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던 사람들이.

우리의 이등병, 병장 시절 말이야. 솔직하게 기억해 보자

26개월인 내 기준으로 말할께. 이등병 6개월과 병장 6개월 시절을 한번 생각해 보자고. 이등병 시절. 맞아. 업무를 제대로 배울 시간 참 없어. 사회랑 다르더라. 사회는 그래도 상식은 통하지만 여기는 선임자의 법칙만 통해. 젠장. 시키는 것만 하면 창의성 없다고 욕먹는 데가 사회인데 군대는 시키는 것 '외'의 것을 했다고 난리야. 선임들이 자기 입으로 수백 번 실토했다니까! "여기는 사회와 달라!" 내가 뭐쫌 능동적으로 할려면 항상 그랬어. "잘난척 하지 마!"

그래서 시키는 것만 하려고 했어. 그런데 '시키는 놈'은 있지만 그걸 '할 시간'은 없더라. 그러니 업무숙달은 개뿔. 무슨 작업이 그렇게 많아? 이등병은 늘 작업에 대기해야 해. 그런데 웃긴 게 이 작업이라는 것이 차마 입으로 말하기 민망한 것들이 너무 많아. 풀 뽑기. 돌 줍기. 농구장에 선 그리기. 테니스장 볼보이. 주임원사 집에서 페인트칠 하기. 행정관 이사할 때  짐 날라주기. 대대장 관사 화장실 막힌 거 뚫어주기. 이처럼 6시에 눈을 떠서 잠 잘 때까지 '업무' 말고 다른 거 하다가 시간 다 가.

행정병이었던 나는 이등병 시절, 밥 먹듯 야근을 했어. 5시에 업무가 끝나면 점호시간까지 몇 시간이 있지만 그 시간에 자기 일하면 죽어. 청소하고 고참 심부름 대기해야 해. 점호 전 단체청소 시간은 언제나 초긴장 상태야.

특히나 화장실 청소일때는 상병쯤 되는 청소반장이 "정리해라~" 말 한다디면 일렬로 줄을 쫙 서서 일종의 따까리를 받아. 우리는 화장실 변기에 머리박고 물 내리기가 전통(?)이었어. 청소를 대충하면 똥찌꺼끼가 머리에 묻을수도 있기 때문에 다들 얼마나 청소를 열심히 했는지. 비극은 그 따까리를 나중에는 내가 주고 있다는 거야.

그리고 점호가 끝나면 사무실로 내려와서 야근을 했어. 새벽에 내무반으로 들어오면 1시간 정도 자다가 경계근무 나갔어. 근무지에서는 고참 위해서 신나게 노래 부르고 여자친구와 어디까지 스킨십이 있었는지 아주 자세하게 말해야 해.

젠장. 이 상황이 업무숙달을 위한 쾌적한 환경은 아니잖아? 우리가 이 개고생 함께 했잖아! 그 고참 아무개 때문에 힘들었잖아! 그 지독한 군대란 조직적 특성 때문에 고생했잖아! 그런데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어서 전투능력이 배양되지 않는다고? 섭섭하네.

우리 병장일 때는 어땠니? 지겨워 죽을 뻔 했잖아. 전투력 상승? 에이, 민망하지도 않냐? 우리가 병장 6개월을 어떻게 살았니? 어떻게든 전투력 '축적'을 피하기 위해 요리조리 미꾸라지처럼 빠지면서 버텼잖아.

왜? 제대하면 아무 소용없는데 우리가 미쳤어? 그저 D-day 만을 기다리면서 몸조심할 뿐. 조금이라도 고참의 경험이 필요한 일이 떨어져도 우리는 짱박히기 천재였잖아. 그 당시 우리는 군대와 관련된 사회적 이슈에 같이 거품을 물었잖아. 1999년 당시 군 가산점 논쟁이 한창일 때, '미친년들, 하루만 군 생활 해 보면 알 것!'이라고 의기투합 했잖아.

우리 군대의 '하루'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24시간이었잖아. 이럴 바에야 집에나 빨리 보내주는 것이 세금도 절약되고 더 효율적이라고 그랬잖아.

말년병장시절을 한번만 생각해보자니까요 영화<기다리다지쳐>에서 캡처 ⓒ (주)아이필름


그럼 무엇 때문에 이러는 것일까?

그런데 이렇게 뭐 같았던 군대였는데, 신기하게도 제대를 하니까 그 시절을 감히 함부로 말하지 못하게 되더라고. 어? 만나는 사람마다 나를 '진짜 남자'라고 그래. 후배들은 '리더십'이 있다고 해. 솔직히 군대는 그런 것과는 하나도 상관없는 곳이라고 말하고 싶었어. 그런데 가만있어도 본전인데 굳이 자폭을 할 필요는 없잖아. 그렇게 난 이 사회의 '예비역' 프리미엄을 누리기 시작했어.

그런데 지금 군복무 논쟁이 등장했어. 이것 참. 입장 난처해. 그래 맞아. 사람은 언제나 일관성 있는 것이 좋다고 했지? 제대하면서 나도 모르게 '군 홍보대사'가 되어 버렸는데, 지금 와서 다른 말 하면 좀 그렇지 뭐.

에라, 모르겠다. 그냥 평소처럼 하자. "진정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24개월은 필요합니다!" 예비역 분들! 당신들 지금 이런 심리상태지? 앞으로 우리 조금만 더 솔직해 지자니까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페미니즘 웹진-온라인이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페미니즘 웹진-온라인이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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