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분에 가득 찬 영웅

영화 '아저씨'

검토 완료

노광우(nkw88)등록 2010.08.24 16:56
영화 속의 액션에 대해 말하자면 위에서 아래로 뛰어내리는 장면들은 대체로 '제이슨 본' 시리즈와 흡사하고, 격투장면들은 스티븐 시걸의 초기 영화들(복수무정, 형사 니코)하고 비슷하다. 격투장면들도 제이슨 본 시리즈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만 오히려 스티븐 시걸의 초기 영화하고 더 비슷하다고 보는 까닭은 첫째는 격투장면 자체의 잔인성때문이기도 하지만 둘째는 스티븐 시걸의 초기영화들은 그래도 미국사회 하층계급 남성들의 울분과 분노, 고독감을 잘 드러냈고 '아저씨'도 그와 비슷한 한국 남성들의 피해의식과 고독감, 책임감, 자책감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액션이나 설정같은 것이야 다른 나라 영화에서 얼마든지 차용할 지 있는데 문제는 차용한 그 내용이 얼마나 그 사회의 현실이나 맥락과 맞아떨어지는가를 따져봐야하고 잘 맞아떨어지면 그것은 단순한 차용이 아니라 창조적 변용이나 수용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에서 차태식과 정소미의 관계는 영화 '레옹'의 레옹과 마틸다나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와 아이리스의 관계하고 설정은 비슷하다. 그런데 '아저씨'가 '레옹'이나 '택시 드라이버'하고 다른 점은 마틸다와 아이리스가 남성 주인공이 보호해야할 대상인 동시에 남성 주인공과 관객의 시선에 묘하게 롤리타스러운 성적인 매력이 풍기는데 비해 정소미는 그냥 어린 여식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30대 남성과 십대도 채 안된 어린 여자아이가 보호자와 피보호자로 등장하는 영화로는 제프 브리지스가 나오는 '사랑의 행로The Fabulous Baker Boys'라는 영화가 있다. 물론 여기서는 제프 브리지스와 여자아이의 관계가 주된 이야기 축이 아니지만 황량한 도시에서 교감하는 존재라는 설정이 비슷하다. 대신 나이어린 여성을 찾아내기 위해 죽기살기로 돌아다니는 집념의 영웅의 원형은 존 포드의 '수색자The Searchers'이다. 인디언이 유괴해간 조카를 찾기위해 서부의 광야를 떠돌아다니는 피곤과 땀에 쩛은 존 웨인의 얼굴이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자책감을 잘 형상화한다. 배우 원빈은 2000년대 초반에 꽃미남 이미지를 벗고 이제 그런 입체적인 캐릭터를 받아내고 있다.

영화 속의 공간을 보면 범죄의 소굴로서 등장하는 차이나타운, 그리고 마약밀수하는 공간으로 등장하는 항구, 슬럼화되었거나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허름한 변두리, 만석이가 차태식을 만나는 폐허가 된 건물, 정소미가 8백만원을 인출해가는 은행이 있는 가산역, 옛지명으로는 가리봉동이 눈에 띈다. 가리봉동 지역은 90년대까지만 해도 구로공단이 있던 지역으로 박종원 감독의 '구로아리랑'의 배경이 되는 지역인데 산업화시대에는 이런 서울의 변두리에 공장들이 많았다. 세계화와 정보화의 시대가 된 지금은 이 지역에 공장은 마이클 무어의 '로저 앤 미'에 나오는 GM계 회사들이 문을 닫듯이 해외로 이전하거나 거의 없어지고 테크노-디지탈 업체가 들어섰다. 그 시절에 공장노동자들이 머물던 곳은 지금은 중국계 이주 노동자들이 거주함으로써 차이나타운이 되었다. 따라서 그런 공간의 이미지들은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가중되는 한국 남성들의 피로감과 소외감을 함축한다. '미수다' 따루가 그렇게 말하지않았던가. 가족부양의 의무를 다 짊어진 한국남성들이 가장 불쌍하다고.

그나마 영화 속에서 차태식을 인정하고 경외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것은 당장의 이익에 눈이 먼 만석이와 종석이가 아니라 그와 한합을 겨룬 태국용병 람로완이다. 그것이 폭력이건간에 무엇이건간에 직접 차태식과 대면한 사람은 람로완과 또치인데 또치가 조직의 일원으로서 조직의 논리에 따라 차태식을 바라보기때문에 차태식을 그냥 두려워할 뿐이지만, 람로완은 마치 오우삼의 '영웅본색2'나 '첩혈쌍웅'에 나오는 호적수에 대해 열광하는 아시아 남성들의 상호인정의 가능성을 품는다. 물론 영화 속에서는 이 둘의 대결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영화 속에서는 서로를 죽일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만나게 되었지만 현실에서는 좋게 만나기를 바란다.

그렇게 영화는 세계화시대에 이익을 추구하느라 또는 가족을 지키지못했다는 자책감과 상처때문에 죽기살기로 뛰어다니는 남성들을 보여주느라 여성들은 그렇게 크게 부각시키지는 않는다. 그저 한몫챙겨보겠다고 괜히 마약밀매에 끼어들었다가 피를 보는 소미엄마 효정이나 아니면 나쁜 일을 시켜도 별생각이 없고 경찰이 들이닥쳐도 무덤덤하게 컵라면을 먹는 개미굴 할머니가 전부이다. 허우적대는 남성들의 세계에 발 잘못들여놓았다가 신세망치는 여성 한 사람과 이미 쓴 맛 단 맛 다봐서 그런 문제에 대해 초탈이나 체념단계에 들어선 늙은 여자 한 사람만이 있다. 개미굴 소굴 할머니는 어떻게 보면 '헨젤과 그레텔'같은 서양동화에 나오는 늙은 마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서양동화들을 보면 아이들을 유괴해서 잡아먹는 마녀들이 종종 등장한다.

즉, 이 영화는 차태식의 입장에서는 정소미를 찾아나서는 영웅신화이지만, 정소미의 입장에서는 마녀의 손아귀에 끌려가서 겪게 되는 잔혹동화인 셈이다. 그리이스 신화나 길가메시 서사시, 그리고 아라비안 나이트같은 고대의 영웅신화나 모험담은 보통 전세계를 무대로 펼쳐진다. 그런데 '아저씨'는 세계가 한나라, 한 장소로 축소되어 나타난다. 즉, 영웅이 전세계를 돌아다니든 전세계가 축소되어 영웅앞에 나타나든간에 영웅은 다른 인종, 다른 문화에 끊임없이 조우하게 된다. 잔혹동화의 공간은 보통 마을 근처의 숲인 경우가 많은데 황폐해져버린 서울의 변두리는 정소미에게는 온갖 위험이 가득찬 숲과 같은 곳으로 등장하게 된다. 그럼, 옛날에는 동네에서 애들이 그냥 뛰어놀아도 별 문제가 없었는데 이제는 조심해야할 것들이 얼마나 많아졌는데. '아저씨'는 그러저러한 사정들을 다 직간접적으로 드러내는 텍스트인 셈이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시네21 블로그 '사과애'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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