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 가정 화두는 '소통'
베트남 호치민 한 작은 호텔 로비. 마주 앉은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흐른다. 두 사람은 시선을 애써 외면한다. 남자는 연신 담배 연기만 내뿜고 있다. 여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시선 둘 곳을 찾고 있다. 이들은 불과 몇 시간 전 국제결혼을 한 부부다.
남자는 한국인이고 여자는 국적이 베트남이다. 이들은 언어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이도 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을 맞고 있다. 객실에 둘만 있자니 답답해서 내려왔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남남처럼 딴 곳에 시선을 두고 있는 중이다. 잠시 후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끈 남자가 신음과 함께 머리를 쥐어짜며 한 마디 내뱉는다.
"말이 통해야 뭘 해먹지. 정말 미치겠네."
남자는 경상북도 한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 황 모씨(42). 국내에서 신붓감 찾기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 보다 힘든 상황이 된지 오래. 황 씨 역시 우선은 국내에서 배우자감을 찾느라 갖은 애를 썼지만 허사였다. 그래서 결국 국제결혼 중개업체를 통해 베트남 신부를 얻게 됐다.
황 씨는 베트남 신부와 맞선 방법에 대해 마치 술집에서 파트너 정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예닐곱 명씩 한꺼번에 선보이기를 몇 번 반복하면서 1차 간택을 한다. 이를 통해 3~4명으로 신붓감을 압축하고 2차에서 결혼 상대를 확정한다. 불과 몇십 분 안에 신부가 결정되고 몇 시간 후 다음날이면 인륜지대사를 치른다.
이날 만난 황 씨는 이미 적당히 술에 취해 있었다. 결혼 피로연이 흥에 겨워 마신 술로는 보이지 않았다. 짐작컨대 인생의 반려자 선택이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이뤄진 데 대한 황망함이 황 씨를 취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게다가 자신의 감정을 전달할 수 없는 소통의 부재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황 씨의 표정에서 소통의 부재가 주는 괴로움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신부의 나이 22세. 황 씨와 정확히 20년 차이다. 신부 역시 한국말을 단 한 마디도 쓰지 않고 있다. 한국 남성과 결혼하기 위해서는 기초적인 한국어를 할 줄 알아야 인터뷰를 통과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부의 침묵은 술 취해 비틀거리는 신랑 때문으로 보인다. 신부는 불안과 경계를 늦추지 않는 눈빛이다.
어린 신부는 잠시 후면 남편과 헤어져야 한다. 결혼을 했다고 당장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는 없다. 한두 달 후면 어린 신부는 귓가를 스치던 익숙한 언어를 뒤로 하고 생소한 한국말 속에서 외로움과 친해져야 하는 순간이 온다. 기댈 곳이라고는 오로지 남편뿐이다. 그런데 지금 술에 취해 머리만 쥐어뜯는 남편을 바라보는 그녀의 마음은 어떨까.
그녀의 무표정 속에는 두려움과 분노가 뒤섞여 있는 듯 보였다. 결국 이들은 단 한 마디말도 나누지 못한 채 다시 방으로 올라갔다. 잠시 후 이들은 짐을 싸 들고 내려와 호텔을 떠났다. 여전히 한 마디 말도 없이 몸만 움직였다. 택시에 몸을 싣고 떠나는 이들의 뒤에는 소통 부재가 주는 '침묵의 공포'가 따라가고 있었다./유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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