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 브로커들 ‘인간시장’ 만행 여전

현장에서 사례를 통해 본 베트남 국제결혼 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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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shyoo)등록 2010.08.03 20:28
이 기사는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인 2008년 7월 베트남 호치민에서 직접 취재했지만 출고하지 않은 글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로 시집 온 앳된 베트남 신부의 죽음으로 인해 국제결혼이 다시 사회 문제화 되고 있다. 하루 빨리 바로잡지 않으면 국제결혼은 우리사회를 병들게 하는 악성종양이 될 것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국제결혼 행태는 변함없기에 현실을 알리자는 차원에서 묵은 기사를 내보낸다. 폐기되어야 할 기사가 살아나는 현실이 안타깝다.<기자 주> 

2008년 7월 18일 베트남 경찰은 호치민시 딴푸 한 호텔에서 한국인 예비신랑 4명과 베트남 모집책등 국제결혼 브로커 조직 7명을 적발했다.  이와 함께 브로커들이 시골에서 모집해 온 베트남 처녀 121명을 함께 붙잡았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 베트남 모집책 중 한 명은 호텔을 직접 운영하면서 그곳을 맞선과 예식장소로 이용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신붓감 모집을 하던 소위 '전문가'다. 메콩 델타 지역 시골에서 모집돼 온 121명의 신붓감들은 그곳에서 먹고 자면서 '간택훈련'을 받았다. 한국어 교육을 위해 통역까지 배치했다.

이번에 붙잡힌 여성 모집책인 리엔(40)의 신붓감 모집은 치밀하고 교묘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그녀는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활동 장소와 시간을 수시로 바꿨고 때로는 야간을 이용했다. 그녀는 또 몇 명의 모집책을 고용해 시골을 다니면서 외국인과 결혼을 원하는 신붓감을 모아 오도록 했다.

베트남 신붓감 집단 기숙 '간택훈련' 받아...결혼 못하면 비용 물어내야 귀향

호치민으로 모인 신붓감들은 한국어, 요리, 집안일 하는 요령 등을 배운다. 여기에 드는 모든 비용은 일단 모집책이 댄다. 그리고 신붓감이 결혼에 성공하면 그들로부터 돌려받는다. 만약 간택되지 못할 경우 집으로 돌려보내진다. 이 경우 고향집에서 비용을 송금해 줘야만 귀향이 가능하다.

때문에 121명의 신붓감들은 간택되기 위해 필사적인 경쟁을 벌인다. 18~25세 여성이 대부분인 이들은 일단 시험에 통과해야 간택 받을 자격이 생긴다. 시험은 일정 교육을 마친 후 1대 1 면접을 통해 '엄격히'(?) 치러진다. 예비 신랑들과 면접 때는 보다 나은 선택을 위해 몸 구석구석을 더듬으며 상처 등을 살피는 심각한 인권유린이 자행된다.

현지 경찰은 이들 여성들이 "우린 시골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더 이상 못사는 시골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외국인과 결혼해 인생을 바꾸고 많은 돈을 고향집에 보내고 싶었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베트남 경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 겉은 호텔이면서 안은 신붓감 대기소인 이곳을 오래전부터 이상히 여겨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고 밝혀 이 같은 불법행위에 대해 기획수사를 진행하고 있음을 암시했다.

한국남성 다중 맞선하다가 현행범 체포...여성 옷 벗겨 보는 등 인권유린 심각

이와 관련해 베트남 현지 언론에는 종종 한국인 체포 소식이 실린다. 이들은 대부분 '신부간택' 현장에서 붙잡힌 예비신랑들이다. 단순 맞선인 줄 알고 왔다가 브로커들의 농간에 어쩔 수 없이 휘말린 경우다. 한편으론 수십에서 백 여 명에 이르는 앳된 신붓감을 앞세운 브로커의 은밀한 유혹을 물리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들 한국인 예비신랑들이 현행범으로 붙잡히는 이유는 다중맞선 자체가 불법인 점도 있지만 심각한 인권유린이 자행되는 맞선 방법과 브로커들의 만행 때문이다. 맞선 현장에서 붙잡힌 한 여성 경찰 조서 내용은 충격적이다.

'까마우가 고향인 트이(20). 그녀는 옷을 벗어보란 소리에 윗옷을 올렸지만 충분치 않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하나 둘 씩 옷을 벗었다. 한국 남자(예비신랑)가 유심히 살펴보고 몸 구석구석을 만졌다. 두렵고 수치스러웠다'

국제결혼 브로커들의 만행에 애먼 한국 총각들이 범법자가 되고 베트남 어린 처녀들의 인권이 심각하게 훼손당하고 있다. 아울러 인신매매 성격이 강한 결합으로 인해 다문화가정의 건강성에도 영향을 미침에 따라 정부가 적극 개입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말이 통하지 않아 미칠 지경"
국제결혼 가정 화두는 '소통'

베트남 호치민 한 작은 호텔 로비. 마주 앉은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흐른다. 두 사람은 시선을 애써 외면한다. 남자는 연신 담배 연기만 내뿜고 있다. 여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시선 둘 곳을 찾고 있다. 이들은 불과 몇 시간 전 국제결혼을 한 부부다.

남자는 한국인이고 여자는 국적이 베트남이다. 이들은 언어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이도 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을 맞고 있다. 객실에 둘만 있자니 답답해서 내려왔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남남처럼 딴 곳에 시선을 두고 있는 중이다. 잠시 후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끈 남자가 신음과 함께 머리를 쥐어짜며 한 마디 내뱉는다.

"말이 통해야 뭘 해먹지. 정말 미치겠네."

남자는 경상북도 한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 황 모씨(42). 국내에서 신붓감 찾기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 보다 힘든 상황이 된지 오래. 황 씨 역시 우선은 국내에서 배우자감을 찾느라 갖은 애를 썼지만 허사였다. 그래서 결국 국제결혼 중개업체를 통해 베트남 신부를 얻게 됐다.

황 씨는 베트남 신부와 맞선 방법에 대해 마치 술집에서 파트너 정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예닐곱 명씩 한꺼번에 선보이기를 몇 번 반복하면서 1차 간택을 한다. 이를 통해 3~4명으로 신붓감을 압축하고 2차에서 결혼 상대를 확정한다. 불과 몇십 분 안에 신부가 결정되고 몇 시간 후 다음날이면 인륜지대사를 치른다.

이날 만난 황 씨는 이미 적당히 술에 취해 있었다. 결혼 피로연이 흥에 겨워 마신 술로는 보이지 않았다. 짐작컨대 인생의 반려자 선택이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이뤄진 데 대한 황망함이 황 씨를 취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게다가 자신의 감정을 전달할 수 없는 소통의 부재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황 씨의 표정에서 소통의 부재가 주는 괴로움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신부의 나이 22세. 황 씨와 정확히 20년 차이다. 신부 역시 한국말을 단 한 마디도 쓰지 않고 있다. 한국 남성과 결혼하기 위해서는 기초적인 한국어를 할 줄 알아야 인터뷰를 통과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부의 침묵은 술 취해 비틀거리는 신랑 때문으로 보인다. 신부는 불안과 경계를 늦추지 않는 눈빛이다.

어린 신부는 잠시 후면 남편과 헤어져야 한다. 결혼을 했다고 당장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는 없다. 한두 달 후면 어린 신부는 귓가를 스치던 익숙한 언어를 뒤로 하고 생소한 한국말 속에서 외로움과 친해져야 하는 순간이 온다. 기댈 곳이라고는 오로지 남편뿐이다. 그런데 지금 술에 취해 머리만 쥐어뜯는 남편을 바라보는 그녀의 마음은 어떨까.

그녀의 무표정 속에는 두려움과 분노가 뒤섞여 있는 듯 보였다. 결국 이들은 단 한 마디말도 나누지 못한 채 다시 방으로 올라갔다. 잠시 후 이들은 짐을 싸 들고 내려와 호텔을 떠났다. 여전히 한 마디 말도 없이 몸만 움직였다. 택시에 몸을 싣고 떠나는 이들의 뒤에는 소통 부재가 주는 '침묵의 공포'가 따라가고 있었다./유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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