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당신은 군대에서 무엇을 배웠습니까?

EBS 군대비하 강사논란에 대해서

검토 완료

오찬호(och7896)등록 2010.07.26 19:58

그래. EBS 강사가 멍청했다. 현대사회에서 정보가 어떻게 유통되는지를 몰라도 너무도 몰랐다. 그것도 '군대'라는 콘텐츠로. 자폭이 따로 없다. 물론 '군살녀'라고 불리는 그녀를 두둔할 생각은 없다. 이런 식으로 결국 기존의 군대속성만 강화시켜 주는 그녀의 치밀하지 못함에 나도 무척이나 화가 났으니.

 

어쨌든 이미 초토화 된 그녀를 언급하지는 않을거다. 그런데 나 되게 궁금한 게 있다. 솔직히 이런 논란마다 되게 놀래. 잉? 남자들이 군대를 이렇게 좋아했단 말이야? 뭐야? 군대에서 배워 온 것들이 굉장하단 말이야? 젠장할. 나만 엿 같았던 거야? 술 마실 때 흥분하던 그 이야기들은 다 뭐야? 거짓말이었어?

 

우리나라 남자들이 누군가? '개 같은 군대' 이야기를 밥 먹듯 하면서, 같은 이야기를 '여자'가 하면 정말 개처럼 거품을 문다. 그리고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아주 저질스러운 담론을 갖다 붙인다.

 

"공인이 해서는 안 될 말이다", "'교사가 해서는 안 될 말이다", "그런 여자를 지켜주기 위해서 군인이 존재한다", "평화는 그저 온 것이 아니다" 등등의 오버들. 그리고 "그녀가 전교조라서 그렇다"는 등의 유치빤스들.

 

난 10년 전에 제대했다. 그러니 이제부터 '군대 안 간 놈의 헛소리'라는 이의제기는 기각. 그리고 26개월 다 채운 육군현역이니 '공익 아닌가?'라는 유치한 자격논쟁도 의미 없음. 그럼 군 생활 어떻게 했냐고? 전역할 때, 말뚝 박으라는 소릴 들었으니 뭐 고문관은 아니었겠지.

 

왜 이런 말 하냐고? 한국에서 이 자격을 공개해야지만 '군대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주잖아. 그러니 나 보고 "군대는 가 보고 그런 말 해라~"라는 해괴망측한 소리는 하지 마!

 

군대 가면 정신 차린다?

 

"군대 가면 정신 차린다" 혹은 "군대 가서 정신 차려야지" 같은 말은 우리가 자주 듣는, 혹은 하는 말이다. 물론 '발화자'는 99%가 예비역들이고 나머지 1%는 이러한 예비역문화에 세뇌당한 사람들이다. 얼핏 들으면 '군대'라는 곳이 정신을 아주 깨끗하게 해 주는 곳 같다. 물론 전혀 아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군대에서 정신 차리는 이유는 군대가 'X 같은 곳'이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일상'에 대한 소중함을 '정신 바짝 들게' 느낀단다.

 

그러니까 '정신 차린다'는 말의 속뜻은, "개새끼, 군대 가서 개고생하면 얼마나 인생이 소중한지 알지" 정도다. 이건 내가 최소 예비역 천명에게는 들어 본 말이다. 충분히 일반화할 수 있는 표본이다. 고로 군대는 '장점'이 별로 없다.

 

그렇다면 남자들이 군대를 'X 같은 곳'이라고 인정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열에 아홉이 이렇게 말한다. "졸라 말도 안 되는 고생시키면서 이게 다 국가를 위한 것이라고 구라를 치잖아요!" 맞다. 이런 면에서 '군살녀'는 틀렸다.

 

왜냐하면 실상 군대에서 '사람 죽이는 거'는 별로 관심이 없다. 실상 '주업무'는 선임들의 부당한 명령에 복종하기, 간부들의 트집에 속수무책 바보되기, 작년에 복구 작업한 곳을 올해 또 하기, 심심하면 제초작업, 주임원사 이사할 때 짐 옮겨주기 등이다. 대대장 자녀 공부 가르쳐주기 등도 간혹 포함된다. 에잇. 논란을 피하기위해 '나의 경우' 이랬다는 것을 굳이 강조한다.

 

이 정도면 최소한 '전쟁에서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누구를 죽이는 것'을 배우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웃긴 것은 이 땅의 예비역들께서 술만 마시면 너도나도 이런 상황을 아주 정확히 기억해낸다. 그리고 외친다. "내가 더 힘들었다고. 그런 것으로 뻐기지 마라!"고. 그런데 군가산점이니 뭐니 논쟁만 터지면 "풀 뜯는 작업이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 하면서 자폭한다. 가련해.

 

진짜 남자가 된다고?

 

지금쯤이면 아주 흥분된 상태에서 '군대의 장점'을 나열하실 분들이 꽤 있을 듯. 뭐 내용은  뻔하다. "인생을 알 수 있다", "위계질서를 배운다", "조직문화를 체험하며 그 안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등.

 

그런데 이러한 논리들은 좀 애처롭다. 왜냐하면, "그걸 굳이 군대에 가서 배워야 합니까?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배울 수 있는 목록 아닌가요?"라고 물으면 더 이상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군대에서 배울 수 있다는 장점들. 그런데 그 내용들을 보면 지극히 '사회'에서 당연히 이루어져야 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만약, 군대에 가지 않고서는 '사람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 사회가 있다면 무엇을 탓해야 하는 것일까? 이는 군대라는 속성을 사회에 침투시켜 인간의 정체성을 완성시키려고 하는 이 사회의 문제 아닌가?

 

그리고 제일 흔하게 제시되는 장점은 "진짜로 남자가 된다!"는 것. 뭐야? 군대에서 성기확대 수술이라도 했다는 거야? 왜 군대는 이런 거 명예훼손으로 고소 안 하는지 몰라. 웃겨.

 

물론 군대 문화를 몸에 익힌 것이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었다는 말이겠지. 그런데 징병제가 아닌 국가의 남자들은? 장애가 있어서 가지 못한 남자들은? 이들은 미완성? 이런 담론은 결국 우리나라는 '군대'를 경험하지 않으면 '인간'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 이 정도면 국가정체성 모독이다. 국가보안법 적용대상 아닌가?

 

그게 군대라는 말, 이제 그만.

 

남자들은 매번 그런다. 천안함 사건에서 드러난 군의 문제들을 보고 하나같이 치를 떤다. 그런데 결론은 "그게 군대야"로 끝난다. 그러니 '진짜 남자'라는 말이 얼마나 무색해지겠는가? 그러니까 이런 남자들을 그저 바라보는 여자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나라도 "바보 아니야?"라고 쓴웃음을 지을 듯.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온라인 이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0.07.26 19:59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온라인 이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