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복원과 위조의 경계에 서다

500년을 넘나드는 미술가의 삶을 담은 <여자 그림 위조자>

검토 완료

임준연(withsj)등록 2010.07.14 15:45

책표지 ⓒ 바다출판사

스페인 마드리드에 위치한 프라도 미술관.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미술품을 관람하던 한 중년여성이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온몸을 휘두르며 난동을 부린다. 담당자가 와보지만 소용이 없다. 경비가 출동해 억지로 끌고 나간다. 쉴 새 없이 고함을 지른다. "엘 그레코가 아냐" 그녀의 주장은 한 미술 코디네이터에게 동의를 얻게 된다. 그 작품을 그린 화가는 '소포니스바 앙구이솔라'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당시에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했던 초상화를 전문으로 하는 16세기 화가는 역사에 묻혀 있었다. 둘의 의기투합은 결국 유럽전역에 퍼져 있는 그녀의 그림을 찾아 전시하는 기획으로 이어지고 결국 오늘에 재조명된 르네상스 시대의 여성화가의 그림들은 성황리에 전시전을 마치게 된다.

어느 소장자는 전시회소식을 보도로 접하고는 전시 목록 중에 앙구이솔라의 남동생 아스드루발레의 초상을 본인이 소유하고 있으며 전시된 그림은 위조작이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전시회 기획자이자 르네상스 그림 복원가이고 전시된 그림의 소유자인 소피렌치는 긴급 체포되어 마리엔바르트 여자교도소에 수감된다. 소설의 첫 장면은 주인공인 소피렌치가 막 수감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르네상스 그림이 가지는 가치는 따로 말할 것이 없다. 경매시장에서 수백억을 호가하는 거장들의 그림은 당시에 대한 현세의 평가를 나타내는 기준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소포니스바 앙구이솔라. 16세기 여성화가(최초의 직업화가라고도 혹자는 이야기하지만 기준이 모호하다)를 오늘에 되살려낸 이야기다. 그녀와 오늘을 사는 소피렌치는 동일인물이 한 몸에 존재하는 듯하다. 본인이 아니면 알기 힘든 서명의 위치라든지 당시 남편과 함께 했던 와인에 들어간 재료가 무엇이었는지 정확하게 짚어내는 일은 아무리 편집증이 있는 수집가라고 해도 알기 힘든 정보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친절하게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을 내 놓지는 않는다. 대신 일반인은 접근하기 힘든 미술품 복원이라는 전문분야를 생생하게 묘사해 일반인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킨다. 마치 요즘 '과학수사'의 기법이 드라마의 소재로 이용될 만큼 호황을 누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몇 장면의 훔쳐보기 식의 묘사가 전부인 영화나 드라마와는 달리 깊고 오묘한 당대의 물감제조기법이나 코팅기법 등이 자세하게 나와 있어 당시의 화가가 그림그리기 위해 준비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머릿속에 펼쳐진다.

소피렌치의 자아는 셋이다. 현대를 사는 복원가인 본인과 잘못된 종교의식과 현실을 비판하다 중세시대 마녀사냥에 희생되었던 마그리트 포레트,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소포니스바 앙구이솔라가 같이 공존한다. 덕택에 표현된 대사와 서사에 대한 이해가 생소하기도 하다. 이런 어려움은 익숙해지면 오히려 흡입력을 높인다. 흔히 쓰이는 천사와 악마의 자아가 동시에 등장해 싸우는 것과 같이 위기나 사건에 닥쳐서 세자아가 대화하는 모습은 이채롭다. 중세와 르네상스와 21세기라니…….

스페인 필립2세의 초상화 앙구이솔라가 그린 작품. 연인관계로 묘사된다. ⓒ wikitree.com



두 권의 소설은 감옥에 들어가면서 나올 때까지의 여정을 담고 있으며 회상과 피드백형식으로 앙구이솔라의 삶과 사랑을 담고 그녀의 열정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이 예술 혼으로 이어졌음을 묘사한다. 소피렌치와 그녀를 조사하는 형사 프리더 니겔과의 갈등과 러브라인이 적절히 긴장감과 호기심을 고조시켜준다.

르네상스시대의 회화와 문화, 음식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축적하고 소포니스바 앙구이솔라라는 대접받지 못하는 거장의 인생을 살려놓는데에 필요한 공부와 노고가 존경스럽다. 소외받고 대접받지 못하는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생각하게 만드는 주제의 구성은 잔잔한 뒷감흥이 책표지의 자화상을 매만지게 한다.

덧붙이는 글 | 여자 그림 위조자/ 베아테 뤼기어트 지음·조이한·김정근 옮김/ 바다출판사/ 409쪽·411쪽/ 각권 13,800\


덧붙이는 글 여자 그림 위조자/ 베아테 뤼기어트 지음·조이한·김정근 옮김/ 바다출판사/ 409쪽·411쪽/ 각권 1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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