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생만 좋아한 대학강사의 고백

학점에 대한 여학생들의 간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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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찬호(och7896)등록 2010.07.07 14:29
지난 학기였던가? 120명이 수강했던 과목의 강의평가 중에, '교수님은 여자만 좋아함. 남자로서 심한 소외감을 느꼈던 한 학기'라는 내용이 있었다. 평소 강의평가를 나름 선방하던 나로서는 약간의 당혹스러움이 들었다. 이거 혹시 학교에서 조치 취하는 것 아니야? 언제나 눈치인생 시간강사. 학생들이 한줄 갈겨주시는 강의평가에 이렇게 민감하다니.

나 늑대 아니다 

그러나 사회학 전공자로서 이 상황을 피해갈 냉정(?)을 찾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사회학이 무엇인가? '개인'의 목소리가 무엇인들, 이를 '사회구조적 차원'에 연결시켜 이해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를 어쩌나. 생각해 보니, 내가 여학생들을 '더' 좋아한 것은 인정해야 할 듯. 그것도 무척이나. 걱정마라. 나의 '도덕적 불감증'도 사회적인 변수'탓' 아니겠는가? 그러게 왜 내가 여학생만 좋아하는 사회를 만들어 놓았니?

빠져나갈 구멍을 생각하고 강의평가 내용을 재차 확인하니 단서(?) 포착은 시간문제. 내가 여학생들만 좋아한 것에 '다른 의도'가 없었다는 것이 바로 증명된다. 처음 제기된 불만에는  '왜 여학생들한테만 질문하세요?' 라는 단서가 있었다. 그럼 그렇지. 나는 여학생에게 질문을 '더' 했을 뿐이지, '전화번호 교환'을 원했던 것이 아니다. 다 수업이 잘되라고 그랬을 뿐. 나 늑대 아님.

그리고 결정적 증거 발견. "선생님~ 저 다영이예요. 한 학기 동안 질문 너무 자주 하셔서 힘들어 죽을 뻔 했어요. 이러면 앞에 앉기 곤란해요." 물론 다영이는 여학생. 매번 앞자리에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아주 수업에 집중한다. 최근 익숙해진 용어로 표현하자면 이보다 확실한 '스모킹 건'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 나는 '여학생'을 좋아한 것이 아니라, '앞자리에서 수업 열심히 듣는 아무개 학생'에게 호감을 가졌을 뿐. 이래도 내가 잘못이야? 강사가 이왕이면 '수업 잘 듣는' 아무개에게 질문하는 것이 당연한 거 아니야?

실제로 내가 강의하는 '앞자리'는 이러한 '모범생'이 대부분이다. 간혹 '외로운' 복학생이 산발적으로 있으나, 오래가지 못한다. 이 상황에서 노트북 펼쳐놓고 오늘의 증권시장을 분석 중이신 남학생들에게 내가 미쳤다고 관심을? 그랬다가는 학생은 자기 리듬 깨져서 짜증, 나는 수업리듬 망쳐서 화가 나겠지. 그러니 우리 서로 윈-윈 전략. 고로 앞에 앉은 학생만 매일 질문공세.

이 과정이 몇 번 반복되다 보면 나는 자연스럽게 학생의 이름을 외우게 되고, 때로는 심층적인 대화로 인해서 다른 학생들이 피해를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이따가 커피나 한잔 하면서 이야기 하자'로 마무리. 그리고 우리는 강의 후 커피 한잔 하면서 오순도순 데이트.

신자유주의 경쟁사회는 여학생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 권기웅


여학생들은 왜 강의실 앞자리에 앉아서 내 질문을 받고 있는 것일까?

<한겨레 21> 805호의 '여학생은 스펙에 목마르다'라는 기사를 보자.

대학생 1천 명에 대한 생활·정치이념 실태 조사를 한 결과인데, 결론만 말하자면, '스펙관리'에 더 민감한 쪽은 여학생, 실제로 투자시간이 많은 쪽도 여학생, 그 여파 때문인지 성적장학금의 70%가 여학생, 은밀히(?) 교수를 따로 찾아와 강의내용을 개별적으로 질문하는 경우가 많은 쪽도 여학생(그만큼 공개적인 자료공유를 꺼린다는 것), 수업노트를 안 빌려주는 쪽도 여학생, 취업노하우를 굳이 공유하지 않겠다는 쪽도 여학생이라는 것이다.

아이고, 마음 여리기로 유명한 우리 여대생들. 어쩌다가 이렇게 독한 년이 되었냐? 기사는 그 이유를 친절히 설명한다. 문제는 남자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기업이 같은 조건이라면 남자를 선호하니까 여성은 객관적으로 좋은 조건을 보유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 것. '남자가 가진 최고의 스펙은 남자'라는 말은 괜한 소문이 아니다. 그러니 당연히 수치적으로 '우위'를 증명할 수 있는 '스펙'에 목숨을 건다.

그렇다면 목숨을 걸어 완성한 '강의노트'를 쉽게 빌려줄 수 있을까? 이 노트를 완성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공로를 들였단 말인가. 특히나, 그때 '딴 짓' 하던 녀석이 빌려달라는데 괘씸하지 않겠어? 물론 남학생은 '빌려주는 것'이 대세. 충분히 이해된다. 별로 적어놓은 것도 없는데 뭐가 대단하다고 감춘단 말인가? '같이 죽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기도 한데 말이다.

어쨌든, 여학생들이 내 수업에 귀를 쫑긋 세운 것은 '내가 좋아서'가 아니라 '내 수업의 학점'을 잘 받기 위함이라는 것인데, 이러한 '불성실한(?)' 강의수강 태도는 시험점수에 대한 반응에서도 확인된다. 여학생들은 성적 이의제기가 '아주 즉각적이고 감각적'이다.

보통 남학생들은 '이때만큼은' 예의가 바르다. 반드시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라는 버전으로 시작해서, '한번만 더 심사숙고 해 주시면~'이라는 간절함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여학생들의 이의제기는 사뭇 공격적이다. '왜 이 성적을 받아야 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한탄에서부터, '주관적으로 시험평가 하지 말라!'는 협박까지 등장한다.

태반이 '내가 한 번도 결석 없이 수업을 열심히 들었는데~'라는 비논리적인 하소연이다. 예민해진 그녀들, 이 순간만큼은 성적의 원인을 '답안지'에서 찾지 않는다. 슬프다. 아~ 그 초롱초롱한 눈빛 안에 아슈라 백작의 기질이 있었다니.

설마 죽기야 하겠어요?

간혹 남학생들과 술자리를 갖게 되면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뭐 하다가 안 되면 아버지가 가게라도 차려주시겠죠"(많이 잘 사는 집안), "뭐 하다가 안 되면 아버지가 가게라도 물려주시겠죠."(좀 잘 사는 집안), "설마 죽기야 하겠어요?"(별로 없는 집안). 우리는 이를 '호탕함'이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이런 이야기를 '여자의 입'을 통해서 들어본 기억이 없다. 똥폼은 늘 남자의 몫이다. 여자들은 '구석에서도' 절대 물지 못한다. 그러니 애초에 '구석'으로 가지 말아야 한다.

다영이 아버지는 돼지갈비 장사를 하신다. 그녀에게는 남동생이 한 명 있다. 다영이는 그랬다. "단 한 번도 이 가게를 물려받는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동생은 간혹 마치 물려받는 것을 전제로 미래를 설계한다. 이게 나와 내 동생의 차이 아닐까?" 이제 왜 그녀들이 이렇게 간절한 '학점관리'를 하는지 이해가 되냐?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온라인 이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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