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매'가 불쌍해

무한도전을 보며 대변자 없는 사람의 슬픔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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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재(vacsoj)등록 2010.06.22 13:52
우연찮게, 케이블방송에서 틀어주는 예전 <무한도전>을 봤다. 다시봐도 재미있는 프로그램이기에 눈이 갔다. 특히나 더욱 재미있게 봤었던 1년농사 프로젝트였기에 재미있게 다시봤다. 멤버들이 모내기를 직접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은 방송이었다.

무한도전 멤버들과 초대손님인 2PM 멤버들이 춤도추고, 게임도하고, 씨름도하고 즐겁게 농사를 짓는 모습이 펼쳐졌다. 방송을 보면서 예전에 볼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출연자들이 함께 춤을 추는 장면에서였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테크노댄스를 가르쳐준다고 하면서 나온 노래가 있었는데, 팝송인 그 노래의 가사중에 'HOLD ME'라는 가사가 '월매'라는 발음과 비슷해서 출연자 모두가 즐거워하며 '월매~ 월매~'를 다같이 외치며 신나는 한판 잔치를 벌이는 장면이었다.

이 노래를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이 <무한도전> 방송 덕분에 '월매송'으로 유명해져있었다. 그 노래는 'Tonight is The Night'이라는 노래인데 정말 '월매~ 월매~'하면서 흥겨운 노래다. 그런데 나는 문득 이 장면을 보면서 월매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변해주는 사람이 없는 사람의 슬픔을 느꼈기 때문이다.

월매, 춘향이의 엄마. 퇴물기생으로 방정맞은 주책바가지의 이미지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는 인생. 누구도 고귀하게 생각하지 않는 인생. 누구도 본받겠다고 기념하지 않는 인생. 그저 춘향전을 맛깔나게하는 양념같은 캐릭터로 그렇게 여전히 사람들의 입방아에 마음껏 농락당하고 있는 한 여자.

평생을 약자의 설움을 겪으며 고된 인생을 살았을 그 월매는 그의 후세들이 가장 좋아하는 예능프로에서도 팝송가사와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여전히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었다. 월매가 그렇게 우리에게 여전한 즐거움을 준다는 게 심각하게 생각할 일인가하는 생각도 들지만, 나는 그 즐거움속에서 서글프다. 그리고 월매가 불쌍하다. 힘없는 약자와 대변해주는 사람이 없는 소외된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얼마전 개봉한 <방자전>이라는 영화는 기존의 춘향전의 내용을 전혀 다른 이야기로 만들어내서 화제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춘향과 몽룡의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로 각색된 춘향전의 뒤에는 춘향과 방자의 뜨거운 사랑이 실제하고 있다는 도발적인 내용이라고 한다.

영화라는 것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니, 자유롭게 각색된 이야기를 펼치는 게 논란거리가 될 일도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춘향이의 정절을 기념하고, 계승한다는 '춘향문화선양회'라는 단체에서는 규탄성명과 상영금지요청까지하면서 이 영화가 춘향이와 춘향전을 욕보였다고 진지하게 항의했다고 한다. 실제 이 단체의 홈페이지에 가보니 규탄성명이 게시되어있는데, 그 중에 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한국인과 남원시민의 삶의 일부로서 자리잡아온 춘향전은 이제는 로미오와 줄리엣과 쌍벽을 이루는 세계적인 고전으로 자리잡기 위해 다양한 노력들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창극과 판소리 그리고 발레와 뮤지컬, 오페라, 번역문학 등 순수성과 예술성을 기반으로 헤아릴 수조차 없는 많은 문화 예술적 작품들이 매년 생성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민족적 노력과 헌신에도 불구하고 귀 제작사는 상업적 영리만을 목적으로 방자전이라는 영화를 제작함에 춘향이 방자와 놀아나는 것으로 묘사하여 민족의 얼과 상징을 훼손하고 민족이 지키고 계승하고자했던 불멸의 춘향 사랑을 단순 노리개 감으로 모독하였습니다. 또한 이를 간과하고 허가를 내준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역사와 민족의 정신을 훼손한 책임을 반드시 져야할 것입니다."

춘향이를 좋아하고, 존경하고, 대변하는 사람들은 춘향이가 없는 지금도 이렇게 춘향이의 이름과 삶이 자신들의 생각과 달리 왜곡되고 더렵혀진다고 판단할 때 "민족의 얼과 상징을 훼손했다"며 엄중하게 항의하고 춘향이를 대변하고 있다.

그런데 월매는? 방정맞고 주책을 부리는 월매는 그를 계승하고 따르는 사람들도, 그를 대변해주는 사람들도 없다. 그래서 팝송가사와 비슷해서 마음껏 이름이 우스개로 다루어져도 사람들은 그냥 웃고 넘길뿐 아무도 월매의 삶에 대해 대변해주거나, 그 이름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만약에 그 팝송가사의 이름이 '명박', '대중', '무현'과 비슷했다면 그렇게 쉽게 부를 수 있었을까?

그래서 월매는 불쌍하다. 누구하나 기억해주고, 소중하게 생각해주고, 대변해주지 않는 월매는 불쌍하다. 그리고 그 월매는 지금도 힘없고 서럽게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 닮았다. 함부로 다루어지고 빈곤의 늪으로 빠져들어가는 비정규직과 근로빈곤층, 발암물질이 떠다니는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백혈병에 암에 걸려 한을 가지고 세상과 이별하는 노동자들, 하찮은 청소부라고 자식같은 학생들의 천대에 시달리는 어머니들, 돈이 없고 빽이없고 대변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학교에서 군대에서 서러움을 곱씹으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그렇게 이 시대의 월매들도 힘이 없고, 대변자가 없어서 소중한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살아간다. 힘있는 사람들의 자녀와 친지가 공장과 군대에 있고, 대학의 화장실에서 청소를 하고 있다면 이들의 삶과 환경은 분명 좋아질 것이다. 하지만 힘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약자를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면 생각을 조금 바꾸어, 그런 사람들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들을 힘있게 만들면 어떨까? 그런 힘이 약자들에게도 있다는 걸 선거라는 제도는 말하고 있다. 대변자가 있어야 조금이라도 서럽지 않게 살 수 있다. 지금도 월매는 후세의 놀림감이 되고 있는게 얼마나 서럽겠는가.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권오재의 블로그 '오재의 화원' (http://vacsoj.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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