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을때까지 루저녀에게 돌을 던지지 않겠다

<루저녀의 사회학> 양성평등? 낯간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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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찬호(och7896)등록 2010.06.19 15:42
LG 트윈스의 1번타자 이대형 선수. 그리고 탤런트 이민호. 내 아내는 이들이 무척이나 좋단다. 이유는 없다. 전문용어로 '그냥' 좋단다. 늘씬한 키. 아내의 표현을 빌리자면 90%는 일단 먹고 들어간다나? 이른바 '뻑' 간다는 거다. 그래서 '키'에 그렇게 민감한 이유가 뭐냐고 물어본다. 대답은 뻔하다.

"남자란 말이야~ 그러니까 여자를 말이야, 뭐랄까? 보호해 준다고 할까? 기대고 싶을 때 기댈 수 있는 그런 느낌 있잖아. 키 작으면 그런 맛이 없잖아."

일부 남성학자들은 이를 여자가 남자들에게 (매우 부담스럽게) 부과하는 스테레오 타입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간주한다. 이 때문에 남자, 특히 키 작은 남자는 사회적으로 불리할 수 밖에 없다는 거다. 과연?

나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생각해보자. 여성들의 이러한 '성향'은 과연 누가 길러준 것이란 말인가? 어떻게보면 여성들의 키 큰 남자 선호는 오히려 남자가 여성에게 (그렇게도 오랜 시절동안 강제적으로) 부과한 '나약한 여성으로 살아라~'라는 스테레오 타입의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 아닐까?

그러게 말이다. 왜 여자는 '키 큰 남자'를 좋아할까?

누가 그렇게 여성을 '날 지켜주는 남자를 원해요~'라는 가냘픈 존재로 만들었단 말인가? 여자 스스로는 도무지 '자신을 지킬 수 없는 개체'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그렇게 여성은 '약한 존재'임을 스스로 증명한단 말인가? 그녀들은 이른바 '듬직한 남성을 기다리는 인생'만이 허용된 삶을 살아왔다. 자신들의 운명을 언제나 '남자의 책임'에 의존해야만 했다.

이건 여성들이 무능력해서 그런것이 아니다. 남성앞에서 한없이 무능력해지는 것을 이 사회는 '현모양처'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경계선을 넘게되면 이 사회가 가만 두질 않았다. '개념 없는' 여성으로 순식간에 낙인을 시켰다. "어딜 여자가~"라는 그 무서운 분위기 하나에 여자들은 찍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그러니까 애초에 여자들은 '한없이 남성보다 못난 존재'로 규정되었고 그렇게 사회 안에서 스스로를 그렇게 '사회화'시켰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자신들보다 잘난 남성'에 의존할 뿐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키 큰 남자를 원해? 그것이 바로 이 땅의 여성들이 한없이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남자들은 '나약한 여성'을 좋아하니 나 이것 참.

이런 남자를 좋아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평등하지 못한 남녀관계가 이런 불상사(?)로 이어졌음을 명심해야 한다 ⓒ KBS


남성주도형 스테레오 타입

그런데 상식적으로 '키만 큰 남자'는 여자들에게 밥맛이다. 하지만 '키만 작은 남자'는 충분히 서바이벌 게임에서 생존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여성들이 지극히 소극적으로 남성들에게 특정한 스테레오 타입을 요구한다는 것을 말한다.

즉 여성들이 남자들에게 "키 작은 남자! 꺼져라!"라는 강제권고가 아니라, "그러니까~ 저를 지켜주기만 하면 되는~"이라는 지극히 위축된 심리상이 반영되어 있다는 거다. 그러니까 여성들이 "키가 작으면 루저"라고 말하든 말든 남성들이 실제로 그 '키'라는 스테레오 타입에 부담을 가질리 가 없다는 거다. 그냥 기분이 나쁜 거지. (그렇다면 답은 나왔다. 그냥 기분이 나쁘다고 한 여자를 그렇게 해도 되는거야?)

한국사회에서 '이것 아니면 여자를 지켜줄 수 없다!'는 남성부담형 스테레오 타입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오히려 '여성들의 위축'이라는 지극히 한국적 변수를 고려해 본다면, "보호를 원해? 그럼 이건 어때?" 라는 남성주도형 스테레오 타입의 탄생을 가능하게 한다. 내가 먹여 살려 준다니까!"라는 그 익숙한 남성들의 자신감 말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돈만 많아도' 결혼할 수 있는 것이다. 혹은 (요즘 세상에서는 드문 경우지만) '야망만 있어도' 결혼할 수 있다.

언젠가 남자들 중 90%는 자신이 잘 생겼다고 생각하고 여자들 중 90%는 외모에 불만을 가진다는 통계자료를 본 적이 있다. 성별에 따른 스테레오 타입이 남성의 경우 얼마나 '자기주도적'으로 형성되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스스로에게 남들과 구별되는 대단한 2%가 있다고 믿는다. 여자들이 2%가 부족하여 '불만'을 가지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경우다.

우리가 흔히 여자들을 보고 옷을 '잘' 입는다고 할 때, 이 기준은 매우 보편적이다. 이른바 여성들의 패션에 대한 평가는 철저하게 '사회에서' 설정되어 있고 그 기준에 부합하느냐가 평가의 절대적 이유가 된다. 물론 이 사회에서 설정한 기준은 아주 간단하다.

이른바 남자들이 좋아하는 '예쁜 여자' 스타일에 가장 근접한 것이 옷 '잘' 입는 경우가 된다. 이 기준을 무시하고 '본인의 입맛'을 고수하면 평가는 딱 두가지다. "지금이 조선시대냐?"(너무 평범한 복장일 경우), "혹시 술집여자 아니야?" (너무 노출이 심한 경우).

말 그대로 '자유롭게', '멋대로' 옷을 입는 경우는 남자가 훨씬 많다. 아무리 꽃미남, 짐승남이 대세라고 하지만, 이러한 트렌드에 굴하지 않는 '그냥 남자들'이 여전히 거리를 활보한다.

배가 나온들, 가슴이 출렁거린들, 다리가 짧든, 샌들을 신으면서 양말을 고집하든, 한 옷만을 고집하든, 이처럼 멋없는 남성패션들이 '언제나' 남자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이른바 남자들은 '옷의 사회적 기준'에 최소한 여성들보다는 민감하지 않다는 것이다.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다른 것'이라는 장점으로 스스로를 돋보이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기도 하다. 그래서 옷 하나 입을 때도 불쌍한 쪽은 여자다. 여자는 옷'만' 못 입어도 남자에게 관심받기 힘드니까.

'꿰매고 싶은 입?' 그런 것은 아무도 모른다.

일부 남성학자들은 루저녀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지나치다는 비판'에는 동의하지만, 그녀의 '양성불평등적인 발언'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른바 '성평등주의자'들이 남성이 여성을 상대로 '헛소리'를 하는 것에는 난리를 치면서 루저녀와 같은 반대의 경우에는 왜 이렇게 침묵하는가를 문제삼는다.

예를 들어, 과거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여성들이 직업을 가지기보다 현모양처가 되기를 바란다"는 언급을 했다가 여성단체에게 호되게 당했고, 결국 '사과'까지 하게 되었는데 왜 같은 맥락을 루저녀에게 적용시키지 않는냐를 따지는 식이다.

여기서 양성평등 논쟁을 사회학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재미있는 지점이 등장한다. 말 그대로 여성단체의 그러한 '공격적 대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직무수행에 전혀 문제가 없이 방송계에서 여전히 핵심적 인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최위원장의 모습이야말로 완전 인생자체를 '끝내버릴 듯한' 네티즌들의 공격을 받은 루저녀, 패륜녀와 구별되는, '달라도 너무 다른' 비대칭적인 현실을 증명하는 것 아닌가? 여기서 "왜 그럴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게 되면 지극히 '한국적'인 변수들을 추출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단체가 매년 선정하는 '꿰매고 싶은 입'이라는 것이 있다. 여성비하 발언을 한 사람이 주로 수상자다. 남자 '루저녀'같은 경우다. 그런데 이러한 불명예에 도대체 누가 신경이라도 쓴단 말인가?

지나가는 사람 100명을 붙들고 물어봐라. 영광의 수상자가 과연 누구인지 아는지. 오히려 몇명은 왜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하느냐면서 구박을 줄지도 모르니 조심하길. 그런데 10명만 붙들고 '루저녀, 패륜녀'를 물어봐라. 최소 9명은 거품을 물고 쓰러질꺼다. 이런 상황에서 양성평등? 낯간지럽다.

ps) 이 글은 <온라인이프 : 남자가 바라보는 남성계 제7회 - 패륜녀? 누가 그녀에게 돌을 던지는가?>에 대한 남성운동가 <한지환씨의 반론글>에 재반론 글입니다. 원문을 약간 수정하여 오마이뉴스에 올립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온라인이프>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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