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허리 어깨 옆구리야.

오뉴월 땡볕에 오미자 밭에서 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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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영(ddsan)등록 2010.06.06 12:09
봄볕에 오미자와 풀은 쑥쑥 자라는데 일손이 느리고 딸려 따라가지 못한다. 엎친데 덥친 격으로 남편은 농가 주택 수리 하는 것 배우러 2박3일 일정으로 상주로 연수를 떠났다. 가서 보니 우리 마을 바로 위라고 오라고 날 부른다. 밭일이 급하니 대중교통 이용해서 오란다.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보은으로 가서 상주 가는 버스를 타고가다 화령에서 내려 다시 화북으로 가기, 상주에서 화북으로 가기. 이거나 저거나 새벽부터 서둘러도 대전에서 가려면 여러 번 차를 옮겨 타야하고 차 시간을 맞추다 보면 점심 전에 도착하면 다행이다.

내가 국경선 넘듯이 기를 쓰고 가고 있는 오미자밭 ⓒ 김혜영


잘라낸 오미자에 그물망을 씌우는 것이 급하긴 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해 둘러 둘러 갈 수는 없다. 가는데 힘 다 써서 일할 기운 없으면 간 보람이 없다.포기하고 있는데  품앗이 신청한 글에 지인이 답글을 달았다. 화령으로 일이 있어 가기 때문에 일손을 보탤 수 없다는. 염치불구하고 태워 달라 부탁을 했다. 화령까지만 가면 다 간 길이다. 화서 인터체인지로 우회해서 돌아가 주시는 친절을 베풀어 주셔서 화서까지 쉽게 도착했다. 우리밭이 문장대 가는 길에 있으니 관광버스를 불러 세워서라도 갈 수 있을 것 같다. 길을 따라 걷다보니 스무살 때 친구와 전라도로 무전여행 떠났던 기억이 난다.이렇게 길을 따라 걷다가 트럭 같은 것 얻어타고 다녔는데. 연수중인 남편이 잠깜 나와(그래도 오고가고 1시간이다)  함께 화북으로 왔다.다리를 내 보일 일도 없었다.허긴 40대 아줌마 다리보고 차 세울 남자라면 문제가 있다.길 가운데로 몸을 던져야 세울둥 말둥이다.

오미자 밭에는 풀천지다.
이 놈의 풀은 밤낮없이 새끼만 놓고 자라기만 하나보다. 오뉴월 땡볕에 낫으로 풀을 베는데 내 일이니 하지 못할 노릇이다. 오뉴월 땡볕에는 며느리 내 보내고 가을볕에는 딸 내 보낸다는데 그 밭의 소출이 오로지 내 것이라면 이 볕 저 볕 가릴 처지도 아니다. 밭일을 도와주시는 분들이 없다면 이 막노동을 어찌 감당할까.

선거날에는 산천경계도 좋다하니 일손도 도울겸 지인이 왔습니다. ⓒ 김혜영


시골어르신들이 오며가며 말씀을 보태신다.
"이 밭은 임자가 없는 줄 알았는데 임자가 있네요."
"낫 쓰는 것 보이 아주마이 상일꾼 다 됐네요."
오미자 그물망 씌우기도 몇 번 해보니 그 새 요령이 생긴다. 나름 과학적 방법 고안한다고 잔머리 굴리다 더 힘들기도 했지만 쉽게 익혔다.
"저 그물망 씌우기 기술자 되었어요. 아저씨 밭에 씌우실 때 저 부르세요."

자주 갈 수가 없어 한 번 가면 죽기살기로 일하게 된다. 투표하러 간 날 일하고 어제 일했는데도 우리 오미자는 꼭 엄마 없는 애들 같다. 남의 밭에는 풀도 없는데 우리 밭엔 풀천지고 이제 손가락 굵기가 되어가는 열매는 우리 집은 작아 보이고 남의 것은 커 보인다. 우리 밭에는 조금 열렸는데 남의 밭에는 조롱조롱 많이도 열렸다.
"내 건 유기농이야. 그래서 그래."그래보지만 기가 죽고 배가 아프다.

오미자가 열렸습니다.이 작은 것이 가을에 붉게 익을겁니다. ⓒ 김혜영


허리 펼 기운도 시간도 없이 일하고 있는데 남편이 교육 일정으로 귀농자 일터를 돌아보러 왔다. 마누라는 죽기 살기로 일하고 있고 남편은 한량같다.

남편이 교육받고 있는 상주귀농센터 앞마당에는 개집이 있습니다. 개도 한량같습니다. ⓒ 김혜영


"나도 강의실에서 교육받고 잡다."
"많이 했네."
그러면서 바로 일행에게 이렇게 말한다.
"전에는 내가 다 했는데 내가 없으니 오늘 힘든가 봐요."
허걱, 자기 풀벨 때 나는 놀았나 보다. 허긴 첫 애 키울 때를 이야기 하면 꼭 하는 말이 "너, 기저귀는 아빠가 다 빨았다."
"엄마는 뭐 했어요? 직장 다녔어요?"
"그래, 우리 딸은 일 주일에 똥과 오줌을 딱 하루만 쌌어.아빠가 출장간 날은 이 주일이든 한 달이든 참았다 몰아쌌어."

긴긴 하루가 가고 집에 돌아와 누웠는데 얼굴이 햇볕에 익었는지 열이 풀풀 난다. 아침에 일어나니 안 아픈 데가 없다. 미모는 지켜야 하는데 내 미모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고 보이니 이 노릇을 어찌 할꼬?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제 블로거 향나무집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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