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침뜸의 효과

검토 완료

김현숙(maria12)등록 2010.05.04 18:42
평소에 음식을 먹으면 더부룩하고 속이 쓰려서 지난 2007년 5월 말, 위 내시경을 한 결과 위암초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주치의는 바로 수술을 권했고, 위 절반을 절제한 후 10일 만에 퇴원했다. 초기가 아니었으면 수술을 받지 않으려고 했으나 초기는 그 부위만 잘라내면 문제가 없을 것 같아 쉽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리고 한 달 후 일터에 복귀했다. 내일이 보장된 일자리는 아니었지만 생활을 위해서는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것이 무리였는지 식욕이 없어지고 체중이 알아보게 줄기 시작했다. 그리고 1년 후인 2008년 6월, 세수를 하는데 갑자기 허리에 심한 통증이 왔다. 다친 일도 없는데 허리가 너무 아파서 혼자서는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다. 걷기는 물론,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앉기도 어려웠다. 다시 병원을 찾아 PET-CT 촬영을 한 결과 암세포가 척추를 공격하는 골수암 판정을 받았다.

암세포가 이미 척추 여러 곳을 침범해서 움직일 때마다 신경을 누르니 그렇게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2개월 입원으로 세 번에 걸쳐 무너진 척추에 인공보강 척추시술을 하고 나서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주치의는 내가 앓고 있는 골수암은 완치가 되지 않는 병으로 평생을 항암 치료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도 일주일에 두 번씩 항암주사를 맞고 있다.

그해 11월 중순, 내  사정을 잘 아시는 선생님께서 침뜸 학교에 입교하시고는 <무극보양뜸>이란 소책자와 뜸쑥과 향을 준비해 뜸자리를 잡아주고 뜸을 떠주셨다. 몸 앞쪽에 곡지, 족삼리 등 7자리를 잡아주시고, 등 쪽에는 6자리를 잡아주시면서 뜸이 어떤 것인지 설명을 해주셨다.

나는 평소 선생님의 친환경적이고 자연치유적 삶을 알고 있기에 권하시는 그대로 믿고 받아들였다. 항암치료를 받고 나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지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면서 견디곤 했다. 항암치료로 유발되는 불면과 변비는 모두 약으로 해결해야 했다. 거기다 평생 이런 치료를 계속해야 한다는 말에 절망하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 병원에만 모든 것을 맡기고 평생을 그렇게 살 수는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해보고 싶은 때였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뜸을 뜬다고 하니까 깜짝 놀라면서 절대 하지 말라고 했다. 의사 말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는 남편 역시 의사말만 믿고 말렸다. 항암 치료 중에 뜸을 떠서 상처를 내면 염증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남편 몰래, 의사 몰래 혼자서 뜸을 뜨기 시작했다. 등 쪽은 누군가 떠주지 않으면 뜰 수가 없지만 앞쪽은 혼자서 할 수 있으니 날마다 열성으로 뜸을 떴다.

뜸의 장점 중 나를 가장 매료시켰던 것은 면역력을 길러준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항암주사를 자주 맞아서 바닥난 면역력을  다시 되돌려 살려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덕분에 예전에는 병원 가는 일이 그렇게도 무섭고 두려웠는데 지금은 뜸을 믿고 걱정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간다. 뜸이 가진 이 탁월하면서도 단순한 장점이은 면역력을 길러준다는 것이 나로 하여금 주치의와 남편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계속할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이다. 

그렇게 일 년여 뜨고 있는데 아무런 염증도 생기지 않았고 변화가 서서히 나타났다. 뜸은 신통하게도 몸에 온기가 돌게 했다. 나는 몸이 차가운 편인데 뜸을 뜨자 몸이 많이 따뜻해졌다. 어느 날은 너무 피곤해서 뜸을 뜨지 못하고 자리에 누웠는데 갑자기 얼마나 추운지 몸이 오그라들었다. 벌떡 일어나 뜸을 떴다. 그러자 온 혈관에 따스한 물이 흘러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솟았다.

선생님께서는 뜸은 통증을 누그려주니 항암주사로 망가진 몸을 되살리는 길은 뜸뿐이라고 누누이 강조하시면서 날마다 전화로 내 상태를 체크하셨다. 항암치료 한 사이클 32회가 끝나자 주사를 멈추고 한 달에 한 번씩 검사만 하자고 했다. 그때부터 "이제 주사를 쉬고 있으니 나도 회복을 위해 병원만 바라보지 않고 무언가 하고 싶다"면서 남편에게 등 쪽도 떠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니 마지못해 떠주었다.

족삼리 뜸뜨기 족삼리에 뜸을 뜨면 다리에 힘이 생긴다 ⓒ 김현숙


족삼리에 뜸을 뜨면 뜨거우면서도 그 따끔한 자극 뒤로 기분이 좋았다. 김홍경 선생님은 EBS강좌에서 족삼리에 뜸을 뜨면 수만 가지 이상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하셨다. 항암치료를 유예 받은 사이에 또 한 번의 위기가 닥쳤다. 식욕이 없어 체중이 36kg까지 떨어지더니 2009년 7월 대상포진으로 재입원해야 했던 것이다. 일주일간 치료가 끝나자 주치의는 수치가 올라 항암치료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고생을 다시 겪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고 눈물만 쉴 새 없이 흘렀다.

다시 32번의 두 번째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있는데 다행인 것은 예전처럼 못 견딜 정도의 고통이 없다는 것이다. 임상적으로 내가 맞는 항암제가 갈수록 고통을 덜하다고는 하나 실제로는 뜸이 주는 통증 완화 나는 침뜸의 효과가 크다는 것을 믿는다.

지난 8월 28일에 나에게 행운이 왔다. 선생님께서 고급반 강의 중에 한 두 사람 치료를 해주시겠다고 하니 받아보라는 것이었다. 담당교수는 내 상태가 침을 놓지 못할 정도로 허약하다고해 침을 놓을 수 없다고 하셨다. 그러나 우선 밥을 먹을 수 있게 해달라는 나의 간청에 침을 몇 군데 놓으시고 뜸자리도 다시 잡아주셨다. 하루 이틀은 힘이 들었는데 신기하게도 입맛이 살아나고 체중도 늘기 시작했다.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몰라보게 좋아져 환자 같지 않다고 한다. 손을 잡아보고는 많이 따뜻해졌다고도 한다. 그때마다 나는 뜸사랑 봉사실에서 이런 희망을 만났다고 말해주곤 한다. 10월 17일 다시 뜸사랑 봉사실에서 침구사 선생님에게 그간 조금씩 빗나간 뜸자리를 고쳐 받고 뜸도 받고 왔다. 생각할수록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지금은 체중도 지금은 많이 올라 43~44kg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여기다 3년째 견비통으로 팔이 올라가지 않아 고생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사이 알아보게 통증이 완화되었다. 어느 날 선생님께서 팔이 뒤로 하면 아프다고 했더니 견비통이 있는 어깨 쪽에 침을 한 방 놓아주셨다. 그 침 한 번이 신기하게도 통증이 사라지게 했다. 조금만 올려도 통증이 심했는데 지금은 뒤로도 90도 이상 올라가고 아파서 양손으로 철봉을 잡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5초, 10초, 15초 매달리기도 한다. 거짓말 같아서 앞으로 뒤로 옆으로 자주 움직여본다. 이 얼마나 놀라운 침뜸의 효과인가. 

고황과 폐유 뜸뜨기 폐유는 피부에 좋고, 고황은 묵은 병에 좋은 혈자리다 ⓒ 김현숙


피부는 허연 껍질이  심하게 일어나고 도자기의 겉 표면에 나타나는 잔금 같은 균열상에 딱딱하고 메마른 건조가 심했는데 각질도 많이 없어지고 매끄러워졌다. 이런 나의 모든 변화를 지켜본 남편은 이제 뜸에 적극적이 되어 날마다 떠주고 있다. 요즘 나는 뜸뜨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구당 김남수 선생님께서 "뜸떠라. 뜸뜨면 낫는다(좋아진다)"는데 나는 그 믿음으로 살고 있다. 나에게 주어진 삶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모르나 죽는 날까지 뜸을 떠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리고 나 같은 중병환자에게는 뜸밖에 없다는 것을 전하며 살아야겠다.

꾸준히 뜸을 뜨니까 알게 모르게 많은 것들이 좋아졌다. 더구나 항암주사를 자주 맞으니 면역 체계가 교란되고 떨어져 버렸는데 그것을 복원시켜 면역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져있는데 뜸으로 면역력을 높여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덕분에 예전에는 병원 가는 일이 그렇게도 무섭고 두려웠는데 지금은 뜸이 항암치료의와 약물의존에서 오는 부작용을  복구해주니 걱정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간다. 환자 치료에 현대의학과 우리의 전통민족의학을 병행하면 치료의 효과가 훨씬 빠를 텐데 양의사들은 침뜸은 무조건 못하게만 하니 안타깝다. 억울하다

나 같은 사례를 통해 민족의술인 침뜸과 현대의학이 경계를 허물고 협진을 통해 고통 받는 환자들을 회복시켜 많은 사람들이 고통에서 해방되는 세상을 열어갔으면 한다. 주치의도 내 뜸자리를 보고 못마땅해 하는 것을 넘어 하지 말라고 했고 그래서 남편도 싫어했는데 나는 뜸의 효능을 믿기에 흔들리지 않고 계속 뜰 수 있었다.

내가 병들기 전에 뜸을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좋은 것은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하늘이 나에게 값진 깨달음을 주려고 아프게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모두가 이 좋은 침뜸의 효능을 알고 나처럼 병들기 전에 일상생활에 자주 활용해 건강한 몸으로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하는 소망이다.

언젠가 광주 MBC에 당시 94살이신 김남수 선생님께서 출연하셨는데 진행자인 왕종근 아나운서를 업고 스튜디오를 오가시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구당 선생님에게는 나이를 상징하는 돋보기도 지팡이도 없었다. 허리는 어쩜 그리도 반듯하시고 표정도 말도 청춘처럼 발랄하신지. 노쇠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이 피부도 곱고 맑았다. 그 얼굴을 보면서 94살이라는 나이도 믿기지 않았지만 도대체 저런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었다.

강의를 들으면서, 그리고 내가 침뜸의 효능을 체험하면서 그 모든 힘의 원천은 바로 침뜸의 결과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얼마 전에 침사 자격으로 뜸을 떠주었다는 이유로 고발당해 침사 자격까지 영업정지했다는 법원의 판결소식을 들었다. 그리고는 국내에서는 환자치료를 할 수 없어 미국으로 가셔 한국에서 금지한 침뜸의술을 그곳 환자들에게 펼치시는 모습을 보았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국내의 한 환자는 비싼 비행기를 타고 15시간을 달려 김남수 선생님에게 이틀이라는 짧은 시간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이건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민족의술인 침뜸치료를 국내에서 하지 못하고 외국으로 나갈 수밖에 없게 만드는 작금의 현실이 우리나라에 두고두고 얼마나 큰 손실인지 답답하기 그지없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