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자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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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숙(maria12)등록 2010.04.27 15:01
좋은 추억이 있는 사람은 좋은 추억이 없는 사람보다 몇 배로 행복하다고 한다. 직접 겪을 때도 행복하지만 그 추억을 떠올릴 때마다 늘 행복하다고 한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본의 아니게 수많은 일들을 겪는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기억의 금고 안에 저장되어 있다가 언제든 튀어나와 우리를 행복하게도 하고 힘들고 우울하게도 한다. 지울 수도 없는 그런 기억들은 시공을 초월하여 항상 우리와 함께 존재하고 있다. 더구나 충격적인 일들은 영혼을 병들게까지 하여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80년 5월, 광주에서의 일을 겪은 사람들은 오랫동안 슬픔에 시달려야 했다. 나 역시 꽃다운 신부로서 겪어야 했던 그때의 슬픔은 예나 지금이나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항상 의무처럼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지만 토해지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언젠가 한번은 치러야할 의식 같은 것이지만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그래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5.18이 성년의 나이를 훌쩍 넘은 지금도 여전하다. 세월이 약이라고 하지만 강도만 달라졌을 뿐 지금도 여전하다.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이 또다시 나를 안타깝게 했었다. 지금은 아득하게 잊혀져버렸으나 2001년 5월에 일어난 예지학원 참사는 꽃다운 아이들의 귀중한 목숨을 화마에 빼앗겨버린 사고와 함께 또 하나의 깊은 슬픔을 남겼었다. 사건발생 당시 당국에서는 관계기관과 공무원들을 문책한다고 떠들고 있었지만 살아남은 그들은 각양각색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데 사후약방死後 藥房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친구들의 빛나는 우정으로 더 클 수 있었던 피해를 줄였다지만 살아남은 그들은 대학입시를 위해 동고동락하던 친구들이 아비규환 속에서 스러져갔던 모습을 떨치지 못한 채 슬픔과 자괴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불길을 탈출한 후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한 채 방에 틀어박혀 눈물만 흘리고 있다고도 했고, 자신을 구하려다 친구가 죽었다고 계속 울고만 있다고도 했고, 친구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지긴 했으나 실어증 증세를 보이며 멍하니 앉아있다고도 했다. 또 워낙 급박한 상황이라서 무작정 자욱한 연기와 불 속을 빠져 나왔지만 숨진 친구들을 생각하면 자신이 비겁하게 느껴진다고도 했다.

절친했던 친구들이 하얀 천에 덮인 채 들것에 실려 나가는 것을 목도한 그들이 어떻게 말짱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이 이 잔인한 슬픔에서 무디어지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들이 흘러야 할지 가슴이 아팠었다. 남겨진 그들의 슬픔은 그 무엇으로 달래주고 위로해줄 수 있을까. 죽은 자를 위해서는 애도하지만 살아남은 자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그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런데 다시 또 대형 참사가 터졌다. 꽃다운 나이에 비명으로 숨진 천안함 사망자들과 그 유족들을 보는 것이 우울하고 고통스럽다.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마음자리도 안쓰럽다. 그들은 또 이 깊고 큰 슬픔과 공포를 어떻게 견디어낼까. 꿈속에서조차도 괴로울 텐데 얼마나 오랜 세월을 견뎌야 조금씩이나마 무디어질까. 기억의 금고 안에 저장되어 매일 매순간 떠오를 텐데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독일의 시인이며 극작가인 브레히트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이렇게 노래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브레히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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