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남자로 만들어 주겠어!" 이거 성희롱 아니야?

가장 양성불평등한 존재. 불쌍한 남자들.

검토 완료

오찬호(och7896)등록 2010.04.20 17:27
이민호의 광신도인 아내 때문에 요즘 MBC 수목드라마 <개인의 취향>을 어쩔 수 없이 보고 있다. 이 드라마 역시 최근의 파격적 방송 트렌드를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있어서인지 그 내용들이 아주 '리얼'하게 다가온다(나는 이러한 드라마가 훨씬 현실적이라고 생각함).

눈길을 끄는 장면 하나. 박개인(손예진 분)이 "(오늘 밤) 날 여자로 만들어 달라"고 하자 전진호(이민호 분)가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그러느냐!"고 다그친다. 전진호가 '성전환 수술 전문의'도 아니고, 박개인이 트랜스젠더도 아니니, 아마도 이 말은 '함께 잠을 자는 것'을 뜻하는 것일 듯.

이 문장이 한 때 사회적 이슈였던 적이 있었다. S대 K교수의 성희롱 사건. K교수는 회식자리에서 박사과정 여학생에게 "오늘 널 여자로 만들어 주겠어~"라는 발언을 했고 이것이 문제되어 소송에 소송이 반복되는 일이 발생했다(물론 이 발언은 당일의 여러 언행 중 아주 일부에 불과).

이 사건의 전말이 무엇이든, 그리고 이 발언의 의미를 개인적으로 어떻게 판단하든 이 문장은 21세기에 들어 '양성평등'을 판단하는 하나의 기준이 되었다. 직접적인 성폭행이 없어도, 충분히 '더 큰 수치스러움'을 피해자가 느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셈이다. 지금에야 당연한 논리지만, 10년 전의 사회는 이를 '한번 따져보고 결정할 일'이라면서 아주 멍청한 티를 냈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양성평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학습 받은바 없는 남성들에게, 특히 그 감각을 따지는 것을 오히려 문제 삼았던 교수사회에는 일종의 경각심이 되었다. 당시 피해자에게는 죄송한 말이지만, 사회는 꼭 이런 빅뉴스가 터져야지 성숙을 하는 법. 이렇게 혼쭐이 한번 나야지만, "그 발언이 사실은 이런 의미~", 혹은 "원래는 착한 사람인데~"등의 어처구니없는 변명이 통용되지 않는 법.

불과 10년 전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의 폐쇄성을 증명하지만, 어쨋든 이 충격요법은 많은 남성들을 계몽(?)시켰다. 나 역시도 꼴통마초이지만 이 발언은 '절대로 삼가'해야 된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특히나 여대에서 강의를 할 때면 한없이 더 조심해진다. 단순히 이 문장만이 아니라 여기에서 파생되는 모든 응용문장에 대해서도 경계를 한다. "따로 이야기하자~", "커피나 하면서 고민해볼까" 등의 발언은 절대금지.

아마도 이런 발언을 삼가는 이유는 내 몸에 '양성평등'을 나름 추구하는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약간은 의아한 지점이 있다. 이게 분명히 '양성평등'의 차원에서 논의되는 것이 분명한데 나는 왜 내가 '남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가 '가해자가 될지도 모른다는'라는 가정법 안에서만 이 문제를 바라보는 것일까? 이것자체가 '남성은 원래 우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이건 양성평등이 아니라, "그러니 조심하자~"는 일종의 호신술 아닌가?

"널 남자로 만들어 주겠어!" 내가 피해자이지는 않을까?

내가 피해자이지는 않았을까? 한번 생각해보았다. "널 남자로 만들어주겠어" 이 말이 날 어떻게 억압했는지 말이다. 고민 3초 만에 머릿속은 혼비백산. 많아도 너무 많고 억울해도 너무 억울했고 수치스러워도 그렇게 수치스러울 수 없었던 지난 과거들. 그리고 궁금증 하나. 난 왜 문제제기를 할 생각조차 안 했을까?

초등학교 시절, 성당에서 '복사'라는 것을 했다. (복사는 사제 옆에서 시중을 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당시만 해도, 여자가 이 '복사단'에 들어간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성당에 다니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복사단에 소속되느냐 아니냐가 진정한 남자가 되는 중요한 자격요건이었다.

그렇게 남성적이었던 복사단은 군대식 상하복종이 철저했고 작은 실수에도 기합주기가 일쑤였다. 하지만 난 별로 불만이 없었다. 이렇게 힘든 모습이 '대외적으로' 확인될 때마다, 난 '진짜 남자'가 되는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교리교사들도 신부님들도 심지어 수녀님들도 "남자만이 할 수 있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라~"는 발언을 서슴없이 하셨다.

중학교 1학년 때. 당시 체육을 담당했던 ㄱ교사는 신체검사를 빙자한 '성기 콘테스트'를 즐겼다. 13~14세의 아이들. 2차 성징이 제각기 나타나고 있는 시점 아니겠는가. 그만큼 예민한 시기. 씨름선수 출신인 ㄱ교사는 사실상 신체학적 이론이 전무했지만, 팬티를 벗긴 후 성기를 주물럭 주물럭 거렸다.

그리고 이미 '어른'(?)이 된 한 친구는 책상 위에 올라가 '묵직한 남근'을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수치심을 경험했다. 잠깐만. 수치심? 그 친구는 매우 당당했다. 수치스러워한 것은 아직 '어린이'에 불과했던 구경꾼들이었다. 그리고 ㄱ교사의 한마디. "너희들도 조금 있으면 이렇게 된다. 걱정마라."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 K교사는 개학 후 첫날에 1분 지각한 나를 엎드려뻗쳐 자세에서 풀스윙으로 30대를 때렸다.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수치심. 그런데 신기한 것은 첫날에 '확실하게 맞아주니', 그리고 '잘 참으니까' 나에게는 이전까지는 없었던 캐릭터가 하나 생기게 되었다. "저 자식 생긴 것하고는 다르게 남자답다"는 주변의 응원들. 괜찮았다. 남자로 인정받는 것 말이다. 엉덩이에 불 좀 나면 어떠냐.

20대가 되면서부터는 나를 남자로 만들어주겠다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술을 마셔도 남자다운 것이 있었고 담배 한 대에도 남자만의 법칙이 있었다. 남자끼리 있으면 뭔가 더 진한 감정을 느껴야 했고 그 감정은 아주 이상한 행동들을 합리화시키기에 충분했다.

전문용어로 '겉멋'이라고 하는 행동들. 술 마시고 깽판치고 사고치고 또 술 마시면서 그것을 추억삼아 희희낙락거리는 모습들. 이 시점에서 군대를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지. 이건 아예 정부가 인증한 '남자 만들기' 공식 단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제기는 절대 금지!

자. 문제는 심각하다. 당연히 일찌감치 문제가 불거졌어야 했다. 그러면 우리 사회는 한걸음 더 '진보'했을 것이다. 내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남자로부터 그러한 대우를 받는 것이 당연할리 없잖아. 하지만 절대 시끄러워지면 안 될 일이다. 왜?

다시 군대 이야기를 해 보자. 군대는 피해자로서, 그리고 가해자로서의 경험을 2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체험시켜 준다. 그리고 이 혼란스러운 '간격'을 정리해주면서 군대는 진정한 남자를 완성시킨다. 논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감성적으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남자만의 문화'는 이렇게 탄생한다.

그리고 제대 후에는 이 문화를 평생 각자 맡은 위치에서 교육시켜야 할 임무가 주어진다. 그곳이 종교단체이든, 학교이든 그것은 상관없다. 남자들 둘만 모이면 '남자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한다.

내가 제대한지가 10년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피해자임을 어떻게 주장하겠는가? 가해자 인생 10년째인데, 이거 불거지면 나부터가 '쪽팔려서 고개를 못 들고' 다니지 않겠는가. 나에게 피해를 받은 '남자'들을 생각하니 참으로 부끄럽다.

난 여자 앞에서는 '절대 하지 않을' 욕설도 남자 앞에서는 "이게 남자들만의 세계지!"라고 외치면서 퍼붓기 일쑤였다. 여자 앞에서는 '절대 하지 않을' 행동도 남자 앞에서는 "우리는 여자와는 다르다"고 외치면서 아주 큰 무례를 저지른 것이 부지기수다.

웃긴 것은 이렇게 비논리적일수록, "저 선배는 아주 남자다워서 좋아~"라는 남자 동맹군들이 늘어났다는 사실. 그만큼 내가 '교육'을 잘 한 증거일 것이다. 비극적인 것은 지금까지 이것이 '리더십'인줄 알았다는 것.

"오늘밤 널 남자로 만들어 주겠다."라는 것을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결과가 지금 이 모양 이 꼴이다. 본인이 가장 양성불평등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인식조차 못하는 남성들. 이 정도면 사태가 아주 심각하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개인블로그(http://blog.daum.net/och7896/8726084) 및 온라인이프(http://onlineif.com/main/bbs/view.php?wuser_id=new_femlet_project&category_no=112&no=15965&u_no=67)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