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직업 선택 10계명이 뭐야? 무슨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거창고등학교 직업 선택의 10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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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길(kaerong)등록 2010.04.10 19:18
얼마전 초등학교 5학년인 둘째 딸이 이해가 안된다는 투로 씩씩거리며 물어왔다...

"아빠~ 선생님이 숙제를 나눠줬는데 무슨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아빠, 거창고등학교 나왔지? 이게 무슨말이야? 무슨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하면서 출력물 하나를 던져주는 것이었다...

받아서 보니 그 안에는 '거창고등학교 직업 선택의 10계명' 이 담겨져 있었다...
학교를 졸업한지 20년이 훌쩍 지나간 시점에 딸을 통해 모교의 흔적을 접한 느낌은 참으로 이상 야릇했다...

거창고가 전국적으로 유명해져서 이제 입시를 앞둔 학부모 사이에서는 거창고를 모르면 왕따 취급받는 시절인지라 특별하거나 새로울 건 없는데도 초등학교에서 그것도 나의 분신인 딸을 통해 전해 듣다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때는 물론이고 지금 봐도 언뜻 봐서는 미친 짓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현실과 동떨어진 무모한 얘기 뿐인데 초등학생 수준에서 이해할려니 당연히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딸에게의 설명을 뒤로하고 그 10계명이 나의 현재 모습에 얼마나 투영되어 있나 하고 곰곰히 들여다 보았지만 전혀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월급이 적은곳으로 가라' 와 '가장자리로 가라'(비주류 인생) 는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실천되고 있었지만...)

25년 전, 거창이라는 시골 깡촌에서 예수쟁이 학교라 조상 제사도 안지낸다, 거창고에 가면 전부 빨갱이 된다(설립자인 전영창 교장선생님을 비롯하여 거창고 출신 선배들의 이력을 보면 정부의 비민주적인 정책과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맞서싸우거나 시위에 참가하다가 투옥, 제적을 당한 사례가 많아서인지 당시 거창 지역 정서는 빨갱이 학교로 통했습니다),

남녀공학이라 공부는 안하고 연애만 할것이다 라는 세간의 따가운 눈총에도 불구하고 3형제를 모두 거창고에 입학시킬 만큼 거창고등학교와 전영창 교장 선생님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부친 덕에(중학교 때부터 아버지께서는 전영창 선생님께서 설파하셨던 '소년들이여 야망을 품어라'(BOYS BE AMBITIOUS!) 를 들려주시며 전영창 선생님의 일화라든가, 거창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자연스럽게 거창고에 진학하였지만 어린 나이에 그 어려운 가르침을 이해할리 만무했다.

이제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에 다시금 그 가르침을 되새겨 보니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선생님들의 가르침 하나 하나, 수업 커리컬륨들 하나 하나에 담긴 의미와 정신을 이해할 수 있을것 같았다.

졸업생들 중 글귀에 언급된 내용 그대로 살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를 잠깐 생각해봤지만 금새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10계명에 담긴 정신은 도전하고, 희생하고, 봉사하면서 불의에 맞서 정의롭게 살아가라는 것이지 글귀에 나온 그대로 살라고 하는 의미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성직자(기독교인)도 아닌 내가 거고정신을 올곧이 실천하면서 살아간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그래도 거고정신을 가슴에 품고, 한발짝이라도 더 거고정신에 근접한 삶을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된 계기가 된 것 같다.

지금은 거창고에 가고 싶다고 쉽게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지만 두 딸도 아버지처럼 아버지의 학교 거창고에서 아버지가 호흡하고 땀흘렸던 광장에서 거고정신을 배웠으면 하는 욕심을 내어 본다.

현재는 타지 학생의 구성비가 현지 거주 학생에 비해 월등히 많고 전인교육보다는 입시교육에 무게가 많이 실리다 보니 전영창 교장 선생님께서 학교를 세우면서 내거신 '전인교육' 의 가르침이 많이 퇴색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거창고 60여년 역사에 유유히 흐르는 '거고정신' 은 후배들도 영원히 이어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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