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는 보수도 진보도 없다.

정치적 논리로 교육의 미래를 지배할 권능은 누구에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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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응상(aitoy)등록 2010.03.18 10:06
우리는 정답 속을 헤매다 길을 잃고, 세계 시민의 노동자로 추락했다. 우리가 길들인 노동자를 스스로 생각하는 세계 시민들이 써먹고 있으며, 사육된 아이들은 고작 정답 몇 개 들고 지구를 떠도는 유령이 되 버렸다.

가장 예민한 교육 표를 얻기 위해 공약을 남발하고, 당선 되면 자기 생각을 주입 시키는
유일사상과 파벌 싸움으로 숭고한 학습권을 박탈하는 월권을 휘두른다.

교육은 없고 권력만 존재하는 투쟁과 당파 싸움 틈새로 돈독 오른 사교육이 판을 벌린다. 휩쓸린 학생들은 보수와 진보 사이를 오가며 휘청거리며 떠돌 뿐이다. 마지막 남은 선생님의 투쟁은 빛이 바래고, 교권 회복으로 변질 된 파벌 싸움으로 학생들을 희생 시킨다. 누구 하나 믿을 사람 없는 학생들은 길을 잃는다.

파벌 싸움만 창궐하는 정치적 논리로 교육의 미래를 지배할 권능은 누구에게도 없다. 교육이 보수와 진보, 개혁과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리면 틈새로 사교육이 돈 판을 벌인다. 학생은 보수와 진보를 넘나들며 돈을 주고 춤추는 곡예사가 아니다. 아무리 큰 소리쳐도 하루아침에 뒤집는 정치적 개혁을 해치우고, 자기 생각을 주입 시키는 합리화 된 유일사상으로 학습권은 몰락시킨다. 항상 불안한 학습권은 위태롭고, 두려워 눈치 보는 학생들은 평생 떠돌 뿐이다. 

교육은 보수와 진보가 파벌 싸움하는 현장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가 있는 곳이다. 보수든 진보든, 중도까지 학습권 아래다. 당선 되어 교육계 수장이 바뀔 때 마다 혁명 같은 개혁을 하지만, 정답만 묻는 방식은 변하지 않는다.

새로운 교육 정책 역시 정답을 벗어나지 못하고 정답 찾기를 한다. 정답을 찍기 위해 돈에 길들여진 학습권은 사교육의 번창에 놀아나고. 의무와 권력의 두 얼굴의 양육권을 쥔 부모들도 학습권을 침략한다. 새로운 정답 속을 헤집고 다니는 학생들은 찍어주는 정답을 찾아 돈을 싸들고 정답이 판을 치는 사교육 시장에서 답을 찾는다. 정답 앞에 학생은 생각의 길을 잃고, 점수에 상처 입은 생각은 떠돌 뿐이다.

특목고, 자사고, 국제고, 평등 교육. 민주화 교육, 자율교육, 수월성 교육, 영재 교육 등등 수없이 많은 혼선을 자초한 것은 정답을 원했기 때문이다. 정답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교육 시장이 창궐할 수밖에 없다. 정답으로는 해결 되지 않는 개혁의 악순환을 반복한다.

아무리 좋은 교육 일지라도 스스로 생각하지 못한다면 결국 한계를 드러내고, 혁명 같은 개혁을 부르짖는 강도 높은 혼란으로 빠져들 뿐이다. 또 다른 개혁을 부르짖으며 단순히 표를 얻기 위해 스스로 생각할 세계 시민권을 박탈하는 과오가 되풀이 되고, 당선자의 능력 발휘 보다 권력을 위한 집권 욕에 사로잡혀 자기 생각을 주입하는 위장된 유일사상을 펼쳐 세계 시민권을 박탈한다.

학생에게 주어진 신성한 학습권은 정부와 정치. 경제의 논리의 사교육. 교권은 물론 양육권으로부터 완전 독립 돼야 한다. 감히 누가 미래를 지배하려 하는 가, 교육은 우리의 미래가 있는 절대 영역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세계 시민을 선발하는 대학은 아직 없다. 대학은 생각도 없는 아이들을 선발하고 길들여 세계 시민의 노동자를 사육하고 있을 뿐이다. 그야 말로 교양 정도로 숙지하면 되는 교양과목 속에서 정답을 찾아 맴돌고 있고. 대학이 정답을 원하기 때문에 스스로 생각하고 싶어도 자신도 모르게 길들여진 정답을 찾는다. 아무도 찾지 않는 정답을 찾아 그 비좁은 교양과목 속을 헤집고 다닌다. 기본 교양만 갖추고, 그 다음은 스스로 생각하여 개척하는 것이다.

대학이 중심을 잡고 변하면 초,중,고의 학습 방식은 자동으로 변하고, 유치원은 물론 태교까지 달라 질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수업이 진행되면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학생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세계 시민이 될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과제물을 주면 자기 생각을 드러낸 작품까지 창조해낼 것이다.

생각 없는 정답으로 선발하기 때문에 생각할 필요가 없다. 정답 맞추기도 급급한 학생들은 10대 시절 전부를 생각 한번 못해보고 대학에 들어가지만 길을 잃고 떠돈다. 정답은 알지만 자기 생각을 모르는 학생들. 점수만 있고 자기 생각이 없다.

수년 동안 공들인 점수 탑은 스스로 생각하는 세계 시민 앞에 무너지는 바벨탑이다. 자기 생각보다 더 높은 고득점 모래성을 돈을 주고 쌓고 있다. 고작 몇 점 이상의 컷드라인을 자랑하는 것은 세계 대학의 수치다. 우수한 학생을 선발했다고 자랑하는 대학은 생각도 없는 학생들 모아 놓고 등록금 받는 경영을 한다. 취업을 미끼로 수없이 많은 노동자를 생산하면서 세계 대학 운운한다.

세상이 대학에 요구하는 것은 세계 시민을 배출하는 역할을 기대한다. 학생들이 세계 시민이 써먹기 좋은 노동자로 전락하기 위해 등록금을 내는 것은 아니다. 대학의 경쟁력은 세계 시민을 얼마나 배출하느냐로 판가름 난다.

아무도 관심 없는 정답을 찾느라. 너무나 좋은 생각들을 잃었다. 대가는 크다. 정답의 덫에 걸려 입시용 논술에 길들여진 학생은 논문을 표절하고, 묶은 정답에 찌든 교육은 세계 시민의 살아있는 생각을 당할 재간이 없어 세계를 떠도는 국제 유령이 된다.

써먹기 좋은 노동자를 배출하는 대학은 취업 학원으로 추락해 경쟁력을 상실했다. 생각 있는 학생들에게 배척당했고. 생각 없는 유령들만 떠돌 뿐이다. 생각도 없는 학생을 뽑은 대가는 캠퍼스를 떠도는 유령들에게 짓눌려 몰락하고 있다.

대학에 생각 없는 유령들이 떠돌고 있다. 스스로 생각 할줄 아는 학생을 탈락 시킨 상아탑은 빛이 바랬다. 대학은 스스로 생각하는 세계 시민의 자격을 갖춘 학생들만 선발해야 한다. 입학 사정관은 또 다시 정답을 묻는 과오를 범하기보다 미세한 자기 생각의 징조를 감지해야 한다. 대학의 꿈이 세계 시민이 써먹기 좋은 노동자를 양성하는 것이라면 자기 생각도 존재하지 않는 학생을 선발하고도 고득점을 자랑 할 것이다. 생각 없이 대학을 떠돌든 학생은 사회를 떠돌고 지구를 떠돌다 유령 인생으로 살 뿐이다.

생각하는 대학이 스스로 생각하는 학생과 손을 맞잡고 세계 시민으로 성숙해 질 때 세계 대학으로 성장 할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학생들만 선발하는 세계 대학이 있으면 안 되는 것인지. 세계 시민을 이끌 우주인을 배출한 야심 찬 대학은 없는지.

무엇을 가르치든 어떤 것을 배우든 스스로 생각 할 수 있어야 비로소 교육이다. 세계 시민을 이끌 우주적 인물은 스스로 생각해서 거대한 자기 세계를 개척한다. 10대 시절 이미 스스로 생각 할 줄 알아 버렸고, 벌써 자기 생각을 펼치는 생각이 살아 있는 학생을 선발해야 할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자아를 가진 학생들은 외롭게 투쟁하고 있다. 정답을 거부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학생은 자기 생각을 펼치기 위해 비좁은 정답 속을 헤매지도 않고 시시한 정답가지고 장난치는 어른들에게 놀아나지 않는다. 정답을 벗어나 처절하게 투쟁하며 자기 세계를 찾아 치열하게 투쟁할 뿐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학생은 생각 자체를 추방시키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 외로운 투사가 돼야 한다. 정답을 벗어나면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는 생각을 가진 이단자로 몰아붙인다. 세상의 문제아로 전락한 성숙한 자아들이 쓸데없는 점수 따위에 희생당하고 있다.

스스로 생각해 자기 세계를 개척하며 잠재력을 발휘하는 학생은 분명 뭔가에 미쳐있다. 뭔가에 미쳐 스스로 생각하는 자아는 자기 생각을 펼쳐 자아실현을 이룬다. 뭔가에 미쳐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해온 학생은 차원이 다르다. 정답 속에서 창의성을 찾아 헤매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식상한 창의성엔 관심 없다. 단순히 보고 정답을 소비만 하는 학생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해 문제를 만들고 풀어내서 뭔가 작품을 만드는 창조적 학생이다.

단순히 대학 합격을 목적으로 한 전략은 없다. 대학은 거대한 자기 세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 여긴다. 어쩌면 유령들이 떠도는 대학 진학 자체가 방해가 될지 모른다. 살아 있는 생각을 선발 하는 입학 사정관의 역할은 세계 시민을 발탁하는 것이다. 써먹기 좋은 사람들만 사육해 세계 시민의 노동자를 양산하는 퇴보를 거듭하지 않기 위해 대학은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대학의 학습권 마저 인기에 몰두해 갈팡질팡 한다면 세계 시민은 누가 배출한 것인가.

입학 사정관제 라는 또 하나의 미래를 준비하면서 가르치는 한계와 스스로 생각하는 무한 경쟁이 충동하는 소용돌이가 인다. 학생 선발의 객관성과 변별력을 요구하는 반대와 저항이 따를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객관성 확보를 위해 더 큰 것을 잃는 과오를 범하면, 모두가 정체하다 전체가 잠식되는 돌이 킬 수 없는 사태에 직면한다.  

세계 시민이 되느냐, 세계 시민의 노동자가 되느냐는 스스로 생각하는 교육에 달려 있다. 스스로 생각하는 창의적 학생을 찾아내는 헤드 헌터의 활약에 대학의 경쟁력이 판가름 난다.

학생이 교수를 선택하는 권한을 부여하는 포괄적 학습권도 부여해야 한다. 교권보다 우위에 있는 학생의 학습 권은 그 어떤 경우도 신성하게 존중 받아야 한다. 스스로 생각하는 학생 선발을 위한 과제는 자유 주제로 해야 한다. 주제부터 정해 버리는 한계를 드러내면 스스로 생각 할 수 없다. 던져주는 주제는 결국 정답을 요구하는 파행으로 치닫는다. 스스로 생각하는 학생은 누가 던져주는 썩은 먹이는 먹지 않는다.

스스로 생각하는 대학이 생각이 살아있는 학생을 선발하고, 자기 생각을 펼칠 무대를 제공하고, 생각의 날개를 달아 주면 스스로 생각하는 세계 시민이 될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학생은 이미 자기만의 주제를 가졌다는 것이다. 평생 동안 운명을 받힐 자기 주제를 가진 학생이 자기 생각을 개척할 때 세계 시민을 이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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