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는 천만이 봤다는데, 우리 강은..."

지율 스님과 낙동강 숨결을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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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임(laborworld)등록 2010.04.02 15:57
많은 동물들이 모여 살던 산에 불이 났습니다.
불길은 맹렬한 바람을 불러 숲을 태웠고
모든 동물들은 무서운 불길을 피해 이리저리로 달아났습니다.
그런데 작은 새 한 마리가 10리 밖 먼 곳에 있는 저수지에서
물을 입에 물고 와 불을 끄고 있었습니다.
물론, 불길은 점점 더 커졌지요.
그러나 그 작은 새는 그래도 밤새 물을 입에 물어다 불타고 있는 산에 뿌렸습니다.
이 모습을 본 달아나던 다른 동물들이 작은 새에게 왜 혼자 끄지도 못할 불을
끄겠다고 고생을 하고 있느냐고 묻자 작은 새가 울면서 대답했습니다.
저 불길 속에 타고 있는 나무와 꽃과 작은 벌레들은 이제까지 나의 가장 친한 벗이었다고, 지금 친구들이 불에 타고 있다고.
- <초록의 공명>(지율 지음, 2005) 중

숲을 떠나지 못하던 새가 숲을 떠났다. 그 새가 다시 둥지를 튼 곳은 강가. 이유도 모른 채 잘려나가는 나무들을 보며 흐느끼는 산을 위로하던 새는 이제 포클레인으로 마구 파헤쳐지고 있는 강의 울음을 듣고 그 곁에 있다.

공사장 앞에서 설명하고 있는 지율 스님 ⓒ 윤성희


그 새는 바로 도룡뇽 소송으로 유명한 천성산 지킴이 지율(53) 스님이다. 그는 지난 2006년 6월, 대법원에서 도룡뇽 소송이 기각된 후 대중적인 활동을 접은 채 경북 영덕의 한 산골로 홀연 사라졌다. 다시 언론을 통해 그의 소식이 전해진 건 작년 9월이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을 상대로 한 명예훼손 소송으로 '정정 보도' 결정은 물론 배상금까지 받아냈던 것.

다시 11월, 이번에는 지율 스님이 4대강 사업으로 훼손되고 있는 낙동강 순례를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모두가 패배했다고 여겼던 싸움을 홀로 3년째 이어가고 있었고, 모두들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 손 놓고 있던 싸움을 새로 시작하고 있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그 힘의 원동력을 알고 싶었다.

그 답을 얻기 위해 지율 스님 곁 강가로 내려갔다. 지난 2월 6일부터 7일까지 진행한 지율 스님과 함께하는 '낙동강 숨결 느끼기' 열한 번 째 순례에 함께 했다. 강의 숨결과 함께 지율 스님의 마음결도 느낄 수 있었다.

"일단 강의 숨결을 느끼세요"

2월 6일, 토요일 오전 10시 상주 버스터미널, 새벽부터 서울, 안양, 진주, 대구 등지에서 올라온 순례 참가자들로 북적인다. 참가자들이 도착하자마자 두 손을 모은다. 그들의 맞은편에서 지율 스님이 합장하고 있다. 아담한 온 몸을 거의 다 가린 회색 장삼을 걸치고 있는 그의 등엔 작은 가방이 찰싹 달라붙어 있다. 어깨엔 사진기가 걸려 있다.

'낙동강 숨결 느끼기'엔 코리안 타임이 없다. 상주 터미널 앞에 준비된 버스에 올라타면 진행을 돕는 이국진 '강과 습지를 사랑하는 상주사람들(상주사람들)' 사무국장이 미리 신청한 사람들의 명단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출발이다.

출발과 함께 지율 스님이 일정 안내를 한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 "저희는 중간에 인원 점검을 안 해요. 혹시 일행과 떨어지게 되면 안내지에 있는 이국진씨 핸드폰으로 연락주세요." 이 순례 만만찮을 것 같은 느낌이 팍 온다.

첫 번째 코스인 강창교 위에 섰다. 비가 오면 빗물에 잠기는 다리다. 4대강 사업으로 상주보가 들어서면 강바닥을 10m 정도 올려야하는 곳이다. 인간이 자연을 개조하는 현장에 서 있다. 스님이 순례단을 이끄는 틈틈이 인터뷰를 진행했다.

- 4대강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후, 낙동강 순례에 나섰는데, '낙동강 숨결 느끼기'가 담고 있는 의미는 뭔가요.
"우연히 2008년 12월 29일에 있었던 '4대강 살리기' 사업 착공식 뉴스를 봤어요. 경북 안동이었죠. 100일 넘게 단식하다 잠적했을 때, 한 지인에게 업혀 갔던 곳이 바로 안동 병산서원이에요. "죽기 전에 이런 아름다운 경치를 보는구나." 감탄했었죠. 그랬던 곳이 파헤쳐진다니 마음이 급했어요. '작은 일이 아니겠다'는 생각에 작년 3월6일 무작정 집을 나왔어요. 매일매일 낙동강 전 구간을 돌았죠. 낙동강을 도는 동안 느낀 것들을 말로 다할 수가 없었어요. '와서 한 번 봐라, 강의 숨결을 느껴라'는 게 사람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말의 전부였죠. 또 강의 현재 모습을 기억하고 강이 어떻게 변하는지 지켜봐달라는 거죠. 오늘도 80여 명 참여했고, 두 달 만에 벌써 800여 명이 이 강을 보고 갔어요."

- 천성산 때는 단식투쟁 같은 극한 방식을 택했는데 이번에는 낙동강 순례로 방식을 바꾼 이유가 있나요.
"천성산 때는 그런 투쟁 방식이 적합했고 이번에는 이런 방식이 맞는 거죠. 천성산 때는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주체가 돼서 싸웠던 거고, 이번에는 한 사람이 주장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국민적 공감대를 만드는 게 필요하니까요."

- 순례 코스에 대한 고민도 많았을 것 같은데 특별히 상주로 택한 이유가 있나요.
"낙동강 하류 쪽은 벌써 강 본연의 모습이 많이 훼손됐어요. 그나마 강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상주죠. 그래서 상주에서 안동으로 가는 이 코스를 만들었죠."

지율 스님은 "남들처럼 일이 많았으면 안 보였을 텐데…. '노는 사람'이어서 일이 없다 보니까 이런 게 계속 보이네요"라고 했다. 사실 자유롭다는 게 일이 없다는 뜻은 아닐 거다. 할 일을 찾아서 하는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것일 뿐. 그는 '노는 사람'이 아니라 '일을 너무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당부한다. "같은 시대 같은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책임도 같이 나눠지자"고.

카메라에 전선을 담다

스님은 낙동강을 그냥 돌기만 하는 게 아니다. 일일이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을 남긴다. 그가 찍은 수려한 강가의 모습에 마음을 뺏기다가 강이 파헤쳐지는 공사현장 장면을 보면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 따로 사진 찍는 법을 배웠나요.
"사진기가 가르쳐 줬죠. 사진기가 들면 찍게 돼 있더라고요. 사진을 잘 찍는 민족이 잘 산다고 해요. 잘 찍는다는 건 잘 볼 줄 안다는 거죠. 진실을 보는 민족이 잘 살 수 있어요. 카메라를 들면 더 많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스님은 똑같은 곳을 매일 찍으면서 강이 어떻게 파괴되고 있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한 언론에 소개됐듯 그에게 강은 아름다운 '정경'이 아니라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한복판인 '전선(戰線)'인 셈. 그 전선을 담은 그의 사진엔 '좋다'라는 말로만으로는 부족한 진실의 무게가 담겨있다. "사람들이 머릿속으로 강을 생각하면 깊은 강, 큰 강을 떠올려요.

그런데 가까이에서 실제로 물과 모래가 흘러가는 것을 보세요. 오기 전에 상상했던 그런 강이 아닐 거예요. 강은 부문만 보면 모든 게 직선처럼 보여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곡선으로 가고 있죠. 우리 삶도 마찬가지죠." 눈은 겨울 가뭄에 모래밭을 많이 드러낸 강을 보면서 귀로는 스님의 설명을 듣는다.

"스님, 강 하나도 안 아름답습니다" 했던 주민들 바뀌어

멀리 모래밭을 파헤치는 공사현장이 보인다. 상주보가 들어설 자리다. 스님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바로 앞에 보이는 컨테이너 박스는 한 달 전에는 없었던 거예요. 그 만큼 이 정부가 이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는 거죠." 그러면서 당부를 덧붙인다. "이제 공사현장 근처를 지나갈 거예요. 그런데 공사현장을 보면 까닭 없이 격분하게 되더라고요. 공사하는 분들도 그분들 일을 하고 있는 거니까 마찰을 피해주세요. 저는 여기서 자전거를 타면 20분 가는 거리에 살고 있어요. 우리가 더 많이 참아야 해요." 지율 스님은 지난 11월 중순부터 상주에서 빈집을 얻어 살고 있다.

- 아예 거처까지 옮긴 이유는 뭔가요.
"하루종일 낙동강 주변을 돌아다녔는데 11월쯤 되니 날이 짧아져서 하루 도는 거리가 얼마 안 되더라고요. 계속 밖에 있다 보니 추워서 쉴 곳이 필요하기도 하고…. 또 '어디서 온 스님'이 아니라 '우리 마을에 사는 스님'이 돼서 직접 관계있는 지역농민과 함께 하려고요."

- 스님이 머물면서 동네 주민들이 좀 바뀌었나요.
"처음에 마을 분들이 그러셨어요. "스님, 우리집 앞에도 강, 뒤에도 강인데 강 하나도 안 아름답습니다." 그랬던 분들이 동네에 포클레인이 들어오고 생각한 것보다 너무 많이 훼손되니까 당황들 하셔요. "우리집 앞에 있던 강이 아니"라고요. 그러면서 함께 하게 된 주민들도 있죠."

스님이 상주에 자리를 잡으니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4대강 사업 공사 예정지는 이 사업에 대해 반대보다 찬성이 많다. 개발이익에 대한 기대심리 때문이다. 이런 지역여론 탓에 쉽게 움직이지 못했던 상주 지역주민들이 스님의 순례를 도와 나섰다. 지난 12월, 지역생태운동 모임인 '상주사람들'도 만들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스님이 그들을 돕고 있다는 게 맞겠다. 스님의 작은 오두막은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는 베이스캠프다.

철근 콘크리트가 꽃이라고?

상주보 건설현장 앞에 다다랐다. 그 앞에는 공사가 끝난 후의 청사진을 담은 안내판이 세워져있다. 조감도를 보니 모래가 없다. 2/3가 모래였던 강에서 모래를 없앤다는 뜻이다. 안내판은 '유토피아를 꿈꾸는 5가지 락(즐거움. 樂)'을 설명하고 있다.

'신과 자연의 조화'란다. 지율 스님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이 문구를 보세요. 자연스러웠던 물길을 럭키 플라워(행운의 꽃. lucky flower)로 연출한다고 해요. 철근 콘크리트로 세운 조형물을 꽃으로 보는 사람들에 의해 이런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거예요." 참가자들의 몸이 부르르 떨린다.

검은머리 물떼새가 머리 위로 나른다. 스님은 "새가 알을 낳는 곳을 없애는 공사를 하고 있는 거예요"라면서 작년 3월부터 낙동강을 계속 돌면서 "하루 천 그루 이상의 나무가 베어지는 걸 봤어요. 그 현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라며 안타까워했다.

스님의 설명을 듣다가 한 참가자가 묻는다. "스님, 이제는 막을 수 없는 거죠?" 스님이 답한다. "그건 좋은 질문이 아니에요. 사람들은 여기서는 분노하다가도 지금 본 걸 금방 잊어버려요. 전부를 걸고 이 문제를 대하느냐가 중요해요. 그러면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해야죠" 인간의 이기로 50년 이상 된 나무들의 역사를 베어내고 있다. 이럴 때 질문이 필요하다. '우린 지금 어떤 선택을 하고 있나.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좋은 질문을 갖는다는 건 좋은 답을 얻는다는 뜻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상도' 촬영지도 정신도 찾기 힘들어질 세상

상주보가 한 눈에 들어오는 청룡사 전망대를 지나 상도촬영지로 가기 위해 산을 넘는다. 사진기자가 연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니 스님 한 마디 하신다. "너무 많이 찍는 거 아닌가. 강에서 찍어야지. 산에서 찍으면 아직도 지율 스님이 천성산에 있는 줄 알아."

스님이 카메라를 매만지면서 말을 잇는다. "사진을 계속 찍다 보니 좋은 카메라에 대한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럴 때면 생각하죠. '사진은 카메라가 찍는 게 아니다. 사람이 찍는 거다'라고."

스님은 두 달 전에야 휴대폰이 생겼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여기저기서 연락이 와서 큰 맘 먹고 공짜폰을 하나 장만했다. 그런데 지난 10번째 순례에 함께한 희망제작소 박원순 상임이사가 '큰 휴대폰(아이폰)'을 갖고 와서 순례하면서 찍은 사진을 바로 홈페이지에 올리는 걸 보여주더란다.

그게 너무 신기해 스님이 "핸드폰 산 지 두 달밖에 안 됐는데 이렇게 좋은 게 나왔으니 어쩌냐"고 아쉬워했더니 한 참가자가 "스님, 재래식 화장실에 빠뜨리세요" 하더란다. 물론 스님이 그 말을 따랐을 일은 없다.

"기계 발달 속도를 좇다 보면 우리는 계속 가난하게 돼요. 난 공짜폰도 만족해요."

드라마 <상도>와 <황진이> 촬영지에 다다랐다. 이곳도 물에 잠길 예정이다.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다"면서 말년에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상도>의 주인공, 조선 최대의 거상 임상옥의 정신도 현재엔 좀처럼 찾기 힘들 듯이 이곳의 수려한 경관도 이젠 옛 드라마에서나 찾을 수 있게 될 거다.

'악착같이' 10원을 받아낸 이유

상주보 건설현장 앞 조감도. '유토피아를 꿈꾸는 5가지 즐거움' '신과 자연의 조화'라는 안내문구로 4대강 사업을 포장하고 있다. ⓒ 윤성희


낙동강의 마지막 주막이라는 삼강으로 가는 길, 궁금했던 명예훼손 소송에 대해 물었다. 스님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상대로 '천성산 터널공사 반대 단식농성을 악의적으로 다뤄 명예를 훼손했다.'면서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했다. 스님은 2003년 2월부터 2005년 2월까지 총 241일 동안 단식농성을 진행했다. 이들 매체는 400회 이상 스님의 단식을 기사화하면서 단식으로 공사가 지연돼 2조원대의 손해가 났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보도된 손실액은 500배 이상 부풀려진 것으로 밝혀졌다.

- 다들 천성산 투쟁이 졌다고 낙담할 때 스님은 명예훼손 소송을 준비했었던 건가요.
"변호사도 없이 나홀로 소송을 했어요. 언론사나 법조인들도 내가 장난치는 줄 알았죠. '비구니 스님이 집착이 대단하다'는 반응이었어요."

- 그런 오해에도 불구하고 소송을 진행했던 이유는 뭔가요.
"대책위원장이었으니 결론을 내줘야 했죠. <조선일보> 소송할 때 심리만 9번을 했어요. 변호사도 없이 <조선일보> 논설위원을 증인으로 신청해서 사실 관계를 따졌죠. 판사나 상대측 변호사도 내용 검토를 거의 안 한 것 같더라고요. 그래 최후 변론 때 판사님께 이렇게 말했어요. "저는 41만 도룡뇽의 친구들과 종교인을 대표해서 이 자리에 선 겁니다. 국민은 진실을 알 권리가 있습니다. 이 문제는 앞으로 환경문제를 풀 때 중요한 단서가 될 겁니다. 제발 저 혼자만 보지 마시고 제 뒤를 봐주십시오"라고요."

결국 재판부는 '생태와 환경을 무시한 경제 중심의 관념에 경종을 울린다'는 취지로 두 언론사에 청구한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렇게 해서 스님이 <조선일보>에서 받은 위자료는 이자까지 합쳐 12원. "10원 소송을 하면 공탁금이 없을 줄 알았는데 20여만 원 내야하더라고요." 10원 소송을 진행한 이유다.

<동아일보>에선 좀 더 많은 700만원을 받았다. <동아일보>에서 이자는 깎자고 했다는 후문이다. '상주사람들'의 한 관계자는 "스님은 700만원을 70억쯤으로 아세요. '나 돈 있다'면서 만날 '순례 회비 내리자. 아이들은 받지 말자'고 하시죠"라면서 보좌의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내 것'이 없는 승려에게 700만원은 아마 70억 보다 더 큰 돈일지도 모르겠다.

"쓰러질 만큼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해"

강가에서 해넘이를 보며 즐거워하고 있는 '낙동강 숨결느끼기' 참가자들 ⓒ 신정임


내성천을 따라 걷는다. 모래를 스쳐 지나온 강물이 '쨍강' 얼음을 깨고 시원하게 흐른다. 4대강 사업은 큰 강만 바꾸는 게 아니다. 작은 실개천도 파낸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작은 물고기들과 생물체도 같이 덜어낸다. 그리고선 물고기를 어항에서 키워 방류한단다.

버스가 다시 회룡포로 향한다. 스님이 버스 기사에게 "그 회사는 기사님이 몇 분이나 계세요? 여기 갔다 오면 너무 여기저기 내려서 고생스럽다고 하지 않아요?"라면서 말을 건넨다. 남에 대한 배려가 몸에 뱄다. 이국진 사무국장이 움직이는데 바지가 찢어졌다고 지적한다. "어쩌나 집에 가면 바느질 해줄 사람도 없는데…."

스님이 옆 좌석 참가자와 도란거린다. "저는 꿈을 잘 안 꿔요. 꿈 꿀 시간이 없어요. 사는 게 꿈이야."(스님) "이런 공사들이 꿈이었으면 좋겠어요."(참가자) "그럼 난 너무 허무하잖아. 이렇게 피터지게 싸우고 있는데 이게 꿈이라면…."(스님)

2달 여를 비워둔 경북 영덕에 있는 스님의 집이 무너졌단다. 보일러가 터져 부엌이 물바다가 됐다고. 스님은 계속 "수리하러 가야하는데…." 하면서 몸은 상주에 있다. 다시 작은 산을 넘는다. 이번 순례 최연소 참가자 열 살 세진이가 힘든가 보다. 스님이 세진이를 옆에 끼고 걷는다. "세진아 발걸음을 또박또박하고 무릎을 굽히고 천천히 가면 돼. 와, 세진이 정말 잘 왔다."

항상 맨 앞에서 순례단을 이끄는 스님이 걱정된 참가자가 한 마디 한다. "스님, 계속 이렇게 다니시다가 쓰러지시는 거 아니에요?" 스님의 대답이 마음을 울린다. "쓰러지면 그때부터 일이 시작되는 거죠. 쓰러질 만큼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해요. 체력, 에너지는 고정된 게 아니에요. 100일 넘게 단식할 때는 다시 걸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 못 했어요. 그런데 지금 이렇게 잘 걷잖아요." 죽음의 선을 넘나들었던 한 수행자의 깨달음이다. "조금 힘들지 않으면 앞으로 나갈 수 없어요. 조금 높아 산이 되고 조금 깊어 물이 되듯이 일도 자기가 가진 걸 조금 넘을 때 힘이 되는 것 같아요."

강가에 살지 않았던 100년 전 조상들의 지혜

4대강 사업으로 그 모습이 많이 바뀔 회룡포 마을 ⓒ 윤성희


멀리 육지 속 섬마을, 회룡포 마을이 보인다. 최근까지도 논두렁 밭두렁에서 소 끌고 농사지었다는 그곳에 곧 펜션단지가 들어선단다. 옛것들이 상업성에 먹히고 있다. 스님은 "관광지를 가면 지형적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게 아니라 '1박2일 촬영지'라고 홍보하죠. 오죽헌에 가니 '5천원 권 지폐 주인공을 배출한 곳'이란 안내판 뒤에 사자소학에 나오는 '이득이 보이면 의를 생각하라'가 쓰여 있더라고요"라며 그런 세태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멀리서 바라봤던 회룡포 마을에 철다리를 건너 직접 들어섰다. 스님이 사람들이 다리를 건너오는 동안 모래밭에 낙동강 줄기를 그린다. 큰 강과 큰 강 사이에 도시가 형성돼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100년 전엔 강가에 살지 않았어요. 200년에 한 번씩 오는 큰 홍수에 대비한다고요. 그런데 지금은 강 가까이에 대도시를 짓고 있어요. 100년 전 조상들의 삶의 지혜를 깨닫지 못하는 거죠."

최근 기상이변에 따른 대홍수 관련 해외뉴스를 자주 접한다. 4대강 사업이 다 끝난 후, 한국에 하루 1천mm씩 비가 내리면 어떻게 될까. 강폭을 인간의 필요에 따라 넓히고, 좁힌 채 제방을 쌓고 있는 저 공사장의 소음이 위태롭다.

낙동강순례의 참 맛은 땅을 걷는 거다. 아스팔트길에 익숙한 도시인들에겐 먼지 폴폴 날리는 흙길 위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허리까지 차오른 갈대밭을 헤친다. 스님이 맨 앞에서 없는 길을 만들고 있다. 조금 전 강가에서 봤던 해넘이가 갈대밭으로 스미며 붉은 기운을 더한다. 갈대밭의 끝, 스님이 "온 길을 되돌아보세요" 한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길이다.

1000만 명 본 <아바타>, 800명이 본 우리 강

하루 종일 걸어 꿀맛 같은 저녁상을 받았다. 상 둘레에 모여 앉은 사람들 사이에서 영화 <아바타> 얘기가 피어오른다. 역시 강에 폭 빠져 계신 지율 스님 한마디 하신다. "<아바타>를 천 만 명이 봤다는데 우리 강이 <아바타>보다 못하단 말이야." 스님한테는 당찬 포부가 있다. 관광객 10만 명 온 적이 없다는 '자전거도시' 상주에 이 순례를 통해 10만 명이 오도록 하겠단 것.

- 낙동강 순례는 언제까지 진행할 계획인가요.
"하다가 안 하면 다시 하기 힘들어져요.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죠. 1월2~3일 연휴에도 채 열 명 안 되는 사람이지만 진행했어요. 우리집에서 라면 끓여 먹으면서…. 이후에는 제주 올레길처럼 2~3명 씩 와서 거닐 수 있는 코스를 만들려고 해요."

- 산골에서 태어나 자연과 많이 벗하며 자라서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건가요.
"꼭 환경문제라기보다는 인간의 본성이 삭막해지고 있는 게 안타까워요. 예전에는 나무나 꽃을 귀하게 여기듯이 사람도 소중히 여겼죠. 이웃과 나누는 게 당연했고요. 그런데 요즘은 서로들 배려하지 않아요. 자본의 논리가 우리의 삶까지 영향을 미치는 거죠. 이런 길을 택했던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이 일을 하고 있어요."

- 순례에 구호나 정치적인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데….
"작년에 TV에서 태국 스님들 투쟁을 보다가 깜짝 놀랐어요. 쏟아지는 포탄 속에서 한 스님이 마이크를 쥐고 비명처럼 외치는 구호가 '반정부'가 아니었어요. "생명 있는 모든 것이 자유로워지기를. 번뇌와 두려움과 가난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이라고 하더라고요. 순례에 오시는 분들이 낙동강에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아름다운 평화를 봤길 바라요. 그걸 제대로 봤다면 사람들이 우리의 기도가 이렇게 되는 걸 보고만 있진 않을 테죠."

- 낙동강 순례를 대중적으로 알려내기 위해 계획하고 있는 일이 있나요.
"국립지리원에 여러 번 다녀왔어요. 온라인상에 낙동강 길을 지도화해서 100만 조각으로 나눌 생각이에요. 그리고선 1000원에 '낙동강 땅 한 평 사기' 캠페인을 하는 거죠. 순례가 계속돼서 좀 더 많이 알려지면 인간띠잇기 행사도 계획도 해보려고요."

스님은 꿈꾸고 있었다. '수만 명이 낙동강에서 손을 잡는다. 하얀 모래밭에 그랜드피아노를 갖다 놓고 하얀 드레스를 입은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를 친다.' 이미 피아니스트도 섭외해놨단다.

"스님, 소심한 복수라도 하고 싶어요"

순례단의 하룻밤을 책임질 안동 하회황토 건축학교로 향하는 길. 가로등 없는 시골길이 깜깜하다. 초등학생들이 "어휴 무서워" 하자 스님이 이들의 손을 잡으면서 걷는다. "깜깜한 건 좋은 거야. 동물들은 밤에 이동하지. 그리고 휴식이 있어야 다음날 다시 활동도 할 수 있고…. 우리 오리온자리 찾아볼까. 저건 북극성이네." 머리 위 밤하늘에 은하수가 하얗게 흐른다.

밤이 이슥한 시간, 전체 참가자들이 둥그렇게 둘러앉았다. 서로를 소개하고 소감을 나누는 시간. 진행은 옆마을 영주에서 오신 천경배 신부님이 맡았다. 순례의 의미를 설명한다. "낙동강순례 카페에 들어가면 '이 동영상을 공명해주세요'라고 나와요. 우린 선전에 익숙해요. '내가 옳다, 내가 정당하다, 그러니 내 편이 되라'고 강요하죠. 그런데 공명은 그냥 내가 우는 거예요. 나의 울림이 어떻게 가는지 부탁은 가능하지만 강요할 수는 없어요. 선전을 계속하다보면 내 설득이 먹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바짝바짝 말라가지만 울고 있으면 다른 이의 울림을 들을 수 있게 돼요. 공명은 느린 듯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방식이죠."

50대인 네 명의 강 트래킹 여성 동호회원들이 말을 잇는다. "스님이나 신부님은 천천히 가자고 하시는데 이렇게 매주 한 번씩 걷는다고 무엇이 바뀔지 마음이 답답해요." "저희는 강을 너무 사랑해서 강 트래킹으로 회룡포만 7~8번 와 봤어요. 그런데 너무 많이 바뀌었어요." "부끄럽지만 올 때는 어차피 잠길 거 잠기기 전에 눈에라도 넣어두자는 마음이었어요.

그런데 스님 말씀 들으면서 다니다 보면 울컥울컥하다가 아름다운 광경 속에서 녹아나고 또 어느 대목에 가면 울컥해지고…. 해가 다 져서 버스에 오를 때는 제 마음이 아마조네스(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여무사족)도 되고 잔다르크도 될 것 같더라고요. 소심한 복수라도 하고 싶어요. 만약 스님이 뭔가 임무를 주신다면 뭐라도…."

스님이 답한다. "제 눈에 피눈물이 나야 해요. 제 희생이 없으면 누가 따라오려고 하겠어요? 그런데 '소심한 복수' 제가 찾던 말이에요.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참가자들의 소감이 끝이 없다. 못 다한 이야기는 뒤풀이로 이어진다. 스님도 함께한다. 스님은 지리산에 있는 대안학교 교사에게로 간다. 정부는 4대강 사업으로 부족해진 식수를 지리산댐 등 여러 댐으로 충당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리산댐 사업이 얼마나 진행됐는지 들으려고 했던 스님이 얼마 있지 못하고 자리를 일어선다. 눈에 열이 올라 힘이 들어서다. 하루 종일 맨 앞에서 걸으면서 '감기 한 번 안 걸린다'고 의연한 모습을 보였던 스님이다. 그 오랜 단식을 했던 몸이 고장나지 않았다면 그건 기적일 거다.

5억 년의 역사를 무덤으로 만들겠다고?

아침이 밝았다. 아직 해도 떠오르지 않아 어둑한데 다들 거뜬히 일어난다. 스님이 전날의 피로를 풀어주겠다고 모두 그대로 누워있으라고 한다. "제가 차가 뒤집히는 사고를 당한 적이 있어요. 그때 다친 허리를 고치려고 많은 치료를 받았는데 이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더라고요." 그 비법은 바로 '기지개'다. "어느 날 아침에 자고 일어나서 선방을 나서는데 강아지가 기지개를 펴는 모습이 너무 시원해 보이더라고요. 그때부터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서기전에 기지개를 폈는데 허리 아픈 게 낫더라고요." 방 곳곳에서 '으라차차' 기지개 펴는 소리가 돌림노래처럼 들려온다.

호박죽으로 빈속을 덥히고 안동 하회마을로 들어가는 강가에 선다. 우리를 맞는 건 강 위로 떠오르는 붉은 해. 전날 "1박2일이지만 늘 지는 해들이 어떤 모습으로 지고 늘 뜨는 해가 어떻게 다가오는지 제대로 봤으면 좋겠다."고 했던 지율 스님의 말뜻을 조금 알 수도 있을 듯하다. 만날 보던 해가 아니다. 이제 강을 건너기 위해 나룻배를 탄다. 이 강의 마지막 뱃사공이 될지 모르는 이의 노 젓는 팔에 힘이 들어간다.

오늘은 버스도 없이 내내 걷는다. 이제 이쯤 문제없다는 참가자들의 발걸음이 가볍다. 걸으면서 단연 화제는 '소심한 복수'로 모아진다. 누군가 "만약 전쟁 나서 저 많은 댐들 폭파되면 그 피해는 어떻게 할 거냐?"는 걱정을 한다. 그걸 놓치지 않고 "그럼 상주댐에 구멍 잘 뚫는 생쥐를 풀어놓을까?" 이런 식이다. 낙동강 순례 카페에 소심한 복수 시리즈를 올리자는 의견들도 오간다.

2시간여를 걸어 순례의 마지막 코스, 마애박물관에 들어섰다. 구석기시대부터의 역사가 담긴 곳이다. "이 곳을 마지막 코스로 잡은 건 강은 구석기 때부터 존재해 5억 년의 역사를 갖고 있단 걸 보여주고 싶어서죠. 그런데 채 100년도 안 사는 우리가 그 오랜 역사를 무덤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는 거죠."

이제 낙동강 순례는 끝났다. 5억 년의 역사를 지켜야 하는 책임을 받아 안고 버스터미널에 다시 섰다. 스님은 다시 상주로, 참가자들은 각자의 집으로 떠나는 시간. 그런데 다들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질긴 게 정이라고, 이틀 만에 벌써 정이 들었나. 헤어지기 왜 이리 힘드노." 스님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그리고선 스님은 벌써 순례가 3번째인 중학교 3학년 참가자와 고1 친구에게 한주 남은 설날 세뱃돈을 찔러준다.

여성 참가자들이 "스님 손 한 번 만져 봐요." 하면서 스님의 손을 덥석 잡는다. "내 별명이 난로에요. 온 몸이 따뜻해."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타기 전 스님의 손을 잡았다. 정말 따뜻하고 단단했다. 그 작은 손이 저 거대한 정부의 정책을 되돌리려 하고 있다. 하나의 손이라면 불가능하지만 그 손을 잡고 또 잡는 손들이 이어진다면 가능할 것이다.

상상해 보자. 낙동강 하얀 모래밭, 반짝이는 물빛에 눈 부셔하며 수만 명이 손을 잡고 있다. 그 손들 사이로 피아노반주와 함께 지율 스님의 노래가 퍼져나간다.

"우리가 크면 흙이 되어주자. 꽃을 심을 수 있게. 동물들이 땅을 밟을 수 있게. 풀들이 내 안에서 행복하면 좋겠다. 바람이 나를 지나면 향기로워지면 좋겠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환해졌으면 좋겠다."

- 도룡뇽 소송: 경북고속철도 원효터널이 많은 희귀 야생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경북 양산 천성산을 통과하는 노선을 확정하자 천성산 환경보존대책위원장이었던 지율 스님을 비롯해 환경단체들은 천성산에 서식하는 '꼬리치레 도룡뇽'을 신청인으로 터널공사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 지율 스님과 함께 하는 '낙동강 숨결 느끼기 순례'는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상주터미널에서 출발한다. 서울은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오전 7시5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면 제 시각에 상주터미널에 도착한다. 순례는 청룡사, 경천대, 삼강, 회룡포-내성천, 병산서원 등으로 이어져 이튿날 오후 3시에 끝난다. (참가 문의: http://cafe.daum.net/chorok9, 010-8969-5051(이국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월간 <노동세상> 3월호에도 실렸습니다. 기사 전문은 www.laborworld.co.kr에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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