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안에 '강자' '약자' 없다?

불공정 심사 의혹에 대한 '영진위' 입장과 '시민영상문화기구'의 마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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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은(jieunstyle)등록 2010.02.02 20:42
조희문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위원장은 "부당한 논란이 제기되는 부분에 대해서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지난 달 25일 발표된 영상미디어센터 운영 사업자 선정이 졸속적이고 불공정했다는 의혹에 대해서 영진위가 기자회견을 통해 직접 해명하고 나선 것이다.

이날 기자회견의 주된 논쟁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심사과정이 과연 공정했느냐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8년 동안 미디어센터를 운영해왔던 미디액트가 선정되지 못했던 배경이다. 조 위원장은 이 배경으로 "미디액트와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가 같은 운영진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한독협의 문제를 미디액트에도 동일하게 적용해 심사 결과에 반영했다고 말했다.  

조희문 기자회견 중 조 위원장의 '한독협 발언'에 반발하는 한독협 사무처장이 일어나서 조 위원장에게 자신의 입장을 말하고 있다. ⓒ 권지은


해명에도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은 심사과정 의혹

기자회견 내내 다양한 의혹들이 계속해서 제기되었다. "심사위원단은 언제 구성되었냐"는 질문에 조희문 위원장은 "일찍 연락을 받은 경우 심사 3~4일 전, 늦은 경우는 심사 당일 날 아침까지도 연락이 갔다"고 말했다. 이는 "심사위원이 심사를 준비하기에는 너무 부족한 시간이 아니냐"는 반문에 조 위원장은 "사실 미리 자료를 주고, 준비 기간이 길어지면 오히려 외부로 정보가 흘러갈 수도 있다"고 대답했다.

심사 과정 중 가장 논란이 되었던 문제는 선정 단체가 심사 이전에 이미 예정돼있었고, 여기에 조 위원장의 개인 인맥이 작동했다는 의혹이었다. 이에 대해 조희문 위원장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리겠다"며 간단히 대답했다.

영진위 측은 또 '영상미디어센터 운영계획의 충실도, 교육 계획의 합리성, 영상장비 운영계획의 적정성, 지원파생효과와 사업수행능력, 예산 및 인력운영과 강의 계획의 적정성, 기업관련 항목'을 따져서 "시민영상문화기구가 총점 78점으로 1위가 되었다"고 처음으로 심사 점수를 밝혔다.

하지만 조 위원장은 미디액트 등 다른 지원 단체의 점수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한국영상미디어교육협회(미디액트)는 2위를, 한국영화감독협회는 3위를 평가를 받았다"고 하면서 "심사위원들이 어렵게 결정을 내렸을 만큼 경쟁이 상당히 치열했다"고 말했다.

한독협 미디액트 기자회견이 끝난 후, 조희문 영진위 위원장과 미디액트 수강생들이 대면했다. ⓒ 권지은


미디액트는 '한독협'이면서 '한독협' 아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가장 불명확한 설명으로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내용은 역시나 8년 간 미디어센터를 운영해 온 미디액트의 선정 탈락 문제였다. 영진위 측은 심사과정을 설명할 때 "1위와 큰 편차 없는 점수로 2위에 한국영상미디어교육협회(미디액트)가 올랐다"고 밝혔다.

하지만 보도 자료를 통해서도, 답변을 통해서도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는 지난 2009년 국회가 감사원에 청구한 감사 요구와 관련하여 감사원의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며 "사실상 미디액트는 한독협과 연관된 단체이기 때문에 이번 공모에 있어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이유로 미디액트가 순위 2위에 머무른 것인지, 순위와는 관계없이 공모 자격이 없다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또 영진위 측은 보도 자료에 "한독협과의 관계 때문에 미디액트는 공모 자격이 없다"고 강조해 드러냈지만, 취재진들에게는 "이건 이번 선정과정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배경일 뿐"이라면서 '한독협 내용'에 대해서는 '엠바고'(일정 시점까지 보도금지를 뜻하는 매스컴 용어)를 요청했다.

그러면서 조 위원장은 "미디액트가 공모에 지원한 다른 단체들과 마찬가지로 신생된 단체의 자격으로 공모에 지원했기 때문에, 한국영상미디어교육협회는 8년 간의 미디액트의 성과와 연관 지어 판단할 수는 없는 문제"라고 했다. 미디액트의 성과와 전문성은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다.

조 위원장이 "미디액트가 한독협과 운영을 함께 하는 단체기 때문에 공모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면 한국영상미디어교육협회(미디액트)를 신생단체라고 보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런데, 영진위는 또 '성과'의 측면에서는 지난 8년의 미디액트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사안에 따라 서로 다른 잣대를 들이댔다.

계속되는 조 위원장의 '한독협' 이야기에 강당 뒤쪽에 있던 한 사람이 흥분해서 일어나 조 위원장을 향해 소리를 쳤다.

"한독협 사무청장인데요, 한독협 공문 참여 안했거든요? 왜 특정 단체를 그렇게 움직이시고...감사원은 아직 감사결과 발표도 안했거든요? 왜 보도자료에 이런 걸 명기하시면서 한독협 얘기를 계속 꺼내시는 거죠? 이거 명예훼손감이에요! 좀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미디액트 미디액트 기자회견이 끝난 후, 조희문 영진위 위원장과 미디액트 수강생들이 대면했다. ⓒ 권지은

소외계층을 위한 '퍼블릭 엑세스'는 우리 개념 아냐

조희문 위원장이 계속되는 취재진들의 질문을 마무리 짓고 기자회견이 끝이 났다. 복도에서는 시민영상문화기구의 이사진 중 한명인 김종국 문화미래포럼 사무국장과 피켓을 들고 영진위에 항의하던 미디액트 기존 수강생들 사이의 얼마 간 논쟁이 있었다.

"말씀하신대로 영상미디어 문제를 10년 전부터 고민해 온 전문가시라면, 누구보다 미디액트에서 진행해왔던 소외계층 미디어 교육이라던가, 미디어 접근권을 가지지 못했던 사람들을 찾아가서 했던 교육이 얼마나 그 지역에 천착해서 해왔는지 잘 아실 거잖아요. 그럼 그 연속성이 끊어지면 안 된다는 거 너무 잘 아시잖아요..."

한 수강생은 김종국 사무국장을 향해 애원하듯 낮은 목소리로 항의했다. 하지만 김 사무국장은 미디액트 수강생들과 생각을 달리 했다.

"기본적으로 영상교육은 시민 중심의 영상교육이어야 하죠. 그런데 미디액트가 추구하는 '퍼블릭 엑세스(Public Access : 빈부의 격차에 의해서 영상물을 접하거나 생산하는 능력의 격차가 발생하지 않도록 영상제작 교육과 각종 장비를 대여하고 매체 참여를 지원하는 것)라는 개념이 뭐냐면, 이건 사회를 항상 이분법으로 나눠요. 강자와 약자로 나누는 식이죠. 그 개념은 저희 개념이 아니에요. 시민들이 원하는 개념이 아니에요."

김 사무국장의 주장에 수강생들은 흥분했다. "지금까지 '퍼블릭 액세스'라는 개념과 '시민을 위한 영상교육 개념'이 혼동되고 있다"는 그의 말에 한 수강생은 "퍼블릭과 시민의 차이가 뭐냐"며 반발했다. 또 다른 수강생은 "그럼 (시민영상문화기구)는 '강자'를 대변하겠다는 거냐"며 그의 입장을 꼬집어 묻기도 했다.

김종국 김종국 사무국장 김종국 사무국장이 미디액트 수강생들과 서로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있다. ⓒ 권지은


31일 미디액트의 관계자들과 8년의 살림살이들이 다 빠져나간 공간에는 이날부터 시민영상문화기구 관계자들이 들어왔다. 김 사무국장은 "오늘과 내일은 수업이 없다"고 밝혔지만 수업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 수강생들도 꽤 많았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에 대해서 그는 "이종훈 사무국장(미디액트)이 아프다 해서 인수인계가 빨리 이루어지지 않아서 그렇다"고 수강생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이날 1시 20분 경 미디어센터에 도착한 이종훈 사무국장은 "영진위 측에서 1시 30분에 인수인계를 시작하자고 해서 지금 온 것"이라면서 "영진위 측에 그런 말 한적 없다"며 힘없는 웃음을 지었다. 그는 "(현재 부당한 상황에 대해) 앞으로 모든 법적, 행정적 문제를 검토해 대응해 나갈 것"이라면서도 "수강생들이 겪는 불편을 줄이기 위해 인수인계에는 잘 협조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권지은 기자는 오마이뉴스 11기 인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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