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꾸똥꾸' 해리를 야단치면, 하루아침에 개과천선 할까?

방통위의 '지붕킥' 권고 조치에서 나타난 우리 사회의 한 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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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섭(neopenta)등록 2009.12.24 18:19
# 1
초등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친구 놈을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다가 학교에서 애들 가르치는 어려움을 이야기하더니,
요즘 애들 보면 기가 찬다고 한 마디 꺼낸다.

'개그야'가 한창 인기를 끌고 있을 당시, 그 반 아이들 사이에서 '죄민수' 흉내를 내는 것이 유행이었단다. 수업 시간에 교실에 들어가면 일부 학생들은 죄민수 특유의 그 삐딱하게 의자에 반만 걸쳐 앉은 자세로  앉아 있다가 자기가 들어가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렇게 앉아 있는단다. 몇 마디 야단을 치면 그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똥그랗게 눈을 뜨고 자기를 쳐다본다면서 요즘 애들은 개념을 안드로메다보다 더 머나먼 차원 어딘가로 보낸 것 같다고 하소연을 해댄다.

나야 뭐 당하는 입장이 아니니, 수업 시간에 의자에 축 늘어진 채로 앉아 있을 학생들을 상상하면서 친구 약도 좀 올릴 겸해서, "왜? 재미있구만?"이라고 한 마디 했다. 물론 욕만 한 바가지로 얻어 먹었다. 장난이었으니 진정하라고 친구를 달래고는

"뭘 몰라서 그러는 애들이 무슨 잘못이냐? 잘못이 있다면 연령 제한이 있는 프로그램인데도 그 시간까지 애들이 그걸 보도록 가만 냅두고, 설령 보는 건 냅뒀다 치더라도 나중에 그 애를 제대로 교육 못 시킨 부모 잘못이 더 큰 거 아냐? 또 학생들이 그런 행동 하면 무작정 야단부터 치기 전에 교정시켜 주는 게 너의 맡은 바 사명이잖어."라고 지극히 원칙적인 말을 했다.

친구는 "야, 암만 그래도 우리 학교 다닐 때 비하면 요즘 애들은 좀 너무한 것 같다."라며 투덜투덜거린다.

#2
방통위가 '지붕뚫고 하이킥'의 유행어 가운데 하나인 '빵꾸똥꾸'에 권고 조치를 내린 후,
뉴스 중에 '빵꾸똥꾸'를 읽다가 웃음을 터트리는 방송사고를 비롯해, 빵꾸똥꾸가 뭇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빵꾸똥꾸' 방송사고 이종구 앵커의 훈훈한 방송사고 ⓒ 뉴스한국


사실 TV를 비롯한 대중매체가 대중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한다면, (특히 가치 판단의 기준이 확립되지 않은 어린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했을 때는) 방송의 계도적인 기능을 간과할 수는 없다. 방통위가 이번에 권고 조치를 내린 까닭도 해리의 언행을 보는 어린이 시청자들이 모방할 가능성 있고, 이것이 결국 아이들의 행동 양식과 올바른 가치관 형성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방통위의 권고에 대해 '하이킥'의 제작진은 '하이킥' 자체가 해리와 같이 하자가 있는 캐릭터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보여주는 내용이고, 해리의 버릇 없음은 가족에게 관심 받지 못 했던 과거의 기억 때문이며 앞으로의 내용에서는 이를 극복하고 성장하는 내용을 보여줄 것이라 밝혔다.

#3
방통위의 권고 조치에 대해서 반대하는 시청자들이 "방통위는 '하이킥'을 제대로 보기라도 했냐?"라며 지적하고 있듯이 방통위는 전체 맥락과는 상관없이 특정 캐릭터의 행동과 표현만을 문제 삼고 있는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즉 여기서도 제작진의 의도에 대한 이해 과정 없이 오로지 방통위가 정해 놓은 기준만을 가지고 그것을 위반하는 특정한 상황에 대해 경고를 하고 처벌을 하는 이번과 같은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난 이러한 방통위의 행태를 보면 소위 '꼰대'라 불리는 나이 먹은 어른들이 생각난다. 물론 모든 어르신들이 다 그러는 것은 결코 아니고, "요즘 것들 버르장머리 하고는..."을 입에 달고 다니는 어른들에게만 해당된다. 이런 '꼰대'어른들, 다른 세대에 대한 이해는 없이 오로지 자기 세대가 정해 놓은 기준만을 가지고 그 아이가 보여주는 특정 행동만을 문제 삼고 그 아이를 일방적으로 판단하고 야단친다. 그 모습이 방통위의 행태와 너무나도 닮지 않았는가?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는 것도 같다만, 조금 더 이야기를 확장하자면 이러한 방통위의 '꼰대'스러운 행태...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그렇다.

상대방의 처지와 상황에 대한 배려와 이해는 뒷전이고 일방적으로 '법과 원칙'만을 강조함으로써 곳곳에서 '갈등'과 '논란', '소통 부재'가 연출되고 있는 이 사회의 모습이다.

#4
만약에 해리와 같은 말썽꾸러기가 '꼰대' 어른을 만나서 엄청 혼이 난다면 정신을 차리고 하루 아침에 개과천선을 할까? 그래서 '빵꾸똥꾸' 대신에 '바른 말, 고운 말'만을 사용하는 말 잘 듣는 모범 어린이가 될까? 경험 상 그럴 리는 없다. 겁이 나서 당분간은 고분고분하겠지만, 속에서 썩어 들어가고 있는 그 상처는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언젠가는 더욱 위험한 형태로 분출될 것이다. '하이킥'을 아끼는 시청자라면 해리가 그런 '꼰대' 어른을 만나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시청자들이 바라는 것은 해리가 진정으로 자신을 이해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만나 과거의 상처를 치유함으로써 개과천선하는 정신 건강한 아이로 성숙하는 것 아닐까?

'해리' 역할의 진지희 어린이 '지붕킥'에서 성인 연기자 못지 않은 열연을 펼쳐 보이는 '해리' 역할의 진지희 어린이 ⓒ 경인일보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http://www.cyworld.com/neopenta97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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