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처럼 진짜인 우리들 삶, 그 믿음! 그 사랑!

영화 '피쉬 스토리'를 보고

검토 완료

이현숙(freevn)등록 2009.12.21 11:37
물고기는 잘 때도 지느러미를 조금씩 움직이고 있을까? 왠지 사람처럼 순간이나마 꼼짝도 하지 않는다면 스르륵 가라앉아버릴 것만 같은 '사람다운' 상상을 해본다.

유독 물고기처럼 힘찬 유영을 하며 살아있음을 더욱 과시하고 싶은 일요일, 영화 <피쉬 스토리(Fish Story)>를 봤다. 눈총 깨나 받아가며 담배 팔아 번 돈으로 지어진 젊은이들의 유희공간 상상마당에서 공짜로 보여준 영화인 데다 밥과 커피까지 인심 좋게 대접받고 나니 단잠을 떨치고 극성을 부린 휴일 오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가끔은 오염되고 사람값도 쳐주지 않는 서울에 산다는 것, 얽매인 직장이 없다는 것에 감사할 때가 이렇게 생기곤 한다.

쫀득하고 찰진 찹쌀떡을 먹고 난 느낌에 낯선 이들과 합석해 날밤을 새며 술을 마시고 난 후의 알싸한 새벽공기 같았다. 미각과 후각은 모두 추억에서 근거한다는 말을 떠올리며 곱씹게 하는 영화였다. 흡연실에 갇혀있다 나온 것처럼 머릿속이 지끈거리는 뒷맛이 아니어서 좋기도 하고 그 명랑한 힘을 끌어내는 스토리텔링의 치밀함에 잠시 주눅이 들기도 했다. 오타쿠의 천국이어도 역시 만만치 않은 일본이다. 가늘고 긴 칼로 깊숙한 곳까지 치고 들어오는 어이없는 한 방이 있으니까.

만화 속 캐릭터와 상상력의 총집합 같은 발랄함과 재채기 같은 웃음이 터지는 스크린을 열고 들어서면 그물처럼 촘촘한 영화 속 장치들, 그 안에서 살아 돌아다니는 소소한 듯 중요한 주인공들, 부제로 써도 될 듯한 '지구를 수호하는 정의의 사도' 되짚어보기 여정 등이 관객을 내내 붙잡아 매둔다. 낄낄대며 한 눈 팔다가 어느새 돌멩이처럼 자잘한 일상 속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묵직한 메시지에 정면으로 부딪혀버린 작지만 큰 충격!

우연을 가장한 채 삶 속으로 날카롭게 파고드는 절대적인 힘, 그것은 제압할 수 있다는 것을 영화라는 도구로 보여준 감독과 원작자 이시카 코타로의 고집스'운명'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인간의 끈질긴 '믿음'이고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시대의 주목을 받지 못하더라도 해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음악으로 고집스럽게 움켜쥔 '피쉬 스토리' 노래에는 펄떡이는 생명력이 있다. 그 생명력이 작은 물고기처럼 시공간을 초월해서 종말을 앞둔 지구의 성난 해일을 가라앉히는 거대한 고래로 형상화된 것이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현실의 벽을 뚫고 나가는 것은 일말의 상상력이다. 가벼움이 무거움을 런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엔카를 불러야 출연료를 건질 수 있는 클럽에서 하드락을 부르는 밴드를 알아보고 끝까지 그들 음악의 열정을 지켜주고자 한 음반회사의 기획자, 겁많고 유약한 성격을 한 번만이라도 극복해보고 싶었던 대학생과 그에 의해 강철같은 근력을 기르며 성장한 아들, 그 아들에 의해 목숨을 구한 여고생의 열공과 혁혁한 공헌.. 이들 모든 장치는 이 영화의 시작과 끝을 가능케 한 '음악이 세상을 구할 것이다'라는 작은 레코드점 젊은이의 믿음의 근거들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이들의 모습은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배척까지 당하는 불운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2009년이 지나가는 것을 암담하게 지켜보는 한국의 젊은이들과 겹쳐진다.

부당하게 일할 권리를 박탈당한 오늘의 '무취업'청년들과 적령기를 훨씬 지나서도 결혼하지 못하는 젊은이들, 고생한 보람은 커녕 젊은이들 등골 빼먹으며 질기게 오래 산다는 눈총에 억울한 노인들, 집안팎의 압박과 무시로 설 곳을 잃고 공중부양하는 백수와 백조들, 국가의 위신이 높아져도 어찌된 일인지 더욱 늘어만 가는 노숙자와 결식아동, 독거노인들.

99% '돈' 때문에 사단이 나고야마는 가정과 개인의 파멸을 흔하게 지켜보면서도 역설적으로 그 안에서 '피쉬 스토리'의 해피앤딩을 가능하게 했던 소시민들의 작고 유별난 '믿음'을 기대한다. 결핍이 갖고 있는 풍요의 열망, 창조의 근원을 믿듯이 빼앗겨 보고, 밟혀 본 이들의 소중한 믿음과 그들의 연대를 꿈꾸게 된다. 한 번이라도 잃어본 경험이 있어야 소중함을 깨닫게 되지 않는가! 가진 자의 포식과 허영이 아니라 최소한의 권리를 함께 누리고자 하는 이들이 꿈꾸는 세상, 그 세상으로 끊임없이 날아오르려는 몸짓이 진정한 '비약'이다.    

물고기였던 '곤'이 거대한 상상의 '붕새'로 변신하는 [장자]의 첫 장을 만났을 때의 뻐근한 감동이 살아난다. 어쩌면 물고기가 새로 변한다는 이야기조차 영화 '피쉬 스토리'의 원래 뜻인 "허풍"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허풍이냐, 사실이냐를 밝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구만리를 날아오르기 위해 '붕새'가 견뎌내야 하는 오랜 인내와 두터운 바람, 메추라기의 조롱까지 감수하는 굳건함에 주목해야 한다. 남의 이야기는 모두 허풍이고 거짓말이라고 치부해버리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거짓말처럼 믿어지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우리들은 여기, 이렇게 살아있지 않은가? 아버지의 얘기일수도 있고 자식의 얘기일수도 있는 영화를 보며 울고, 웃는 우리의 삶이 진짜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처럼. 헛된 것에 대한 믿음과 사랑보다 따뜻한 심장과 피가 도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사람의 몸과 마음이 거리낌 없이 나아가고자 하는 순수한 그 도약을 믿어본다. 날개도 없이 날아가지만 목숨을 건 비약을 감행하고야 마는 불가해한 '사랑', 그 강력한 힘을 배후로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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