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정(戀情) 표현

어느 지난 날들의 회상

검토 완료

박중신(papagoat)등록 2009.12.18 18:56
저녁을 준비하던 마을 아낙네들은 물론, 논밭에서 갓 돌아온 남정네들마저 몰려나와 ,그녀와 나를 둘러쌓고 있었다. 그녀는 강변 둑길 바닥에 질펀하니  주저앉아  땅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사설을 늘어놓았다. 

   ' 세상에, 아이고 세상에---- 나 못 살아.  외지에서 갓 이사 온 뜨내기마저  과부이다 얕보고 멸시하다니. 이제 농사도 못 지어 먹겠네. '

     그녀 말로 판단하자면 , '과부이다.'는 것을 미리 알고 내가 집적댄 것처럼 되었다. 하지만 '과부인지 유부녀인지', 갓 이사 온 내가 알 수도 없었고 또 드물게 마주친 그녀 외모가 내 관심을 끌 만큼 매력 있는 편도 못되었다.  아니! 애꾸눈에  좁은 이마와 뾰족한 턱에서  사나운 기가 아주 강하게 스며나기에, 두려워 고개를 돌리게 만드는 형이었다.

   마을 원주민이 뜨내기에게서 당하기에 분하고 원통하다 하소연하느라 그녀는 눈물 없는 마른 통곡을 계속 해댔다.  편협한 민족주의가 쇼비니즘에 의한  잔인한 집단 학살로 이끌듯, 시골 자연 부락의 맹목적인 이웃 편들기는  집단 폭행이나 이지메로 이끌기 마련이다.  그녀가 바란 것은 그런 무지막지한  폭력적 상황이었겠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그녀 주장을 거들지 아니하고 침묵을 지켰다.

     편들지는 못할지라도, 주저앉은 몸이라도 부축해서 일으키며 집으로 가자고 달랠 수는 있는데---.  여인네들이 많았지만 그 정도 다사로운 아량을 보이는 사람마저도 하나 없었다. 

   뿐만 아니었다.  나이가 지긋한 한 농부는 나를 가리키며 ' 저 분 참 좋은 분이던데----'라며 공공연하게 나를 두둔했다.  그것은 그녀에 대한 간접적인 적대감 표시이자 치명적인 공격이었다.

    동네 사람들 앞에서  회복하기 어려운 창피를 뜨내기인 나에게 안겨 주려고 저지른 그녀의 소란의 창끝이, 목적에서 빗나가 자신의 가슴 한 중앙을 정확하게 겨냥 향했다. 어느 누구이든지 나를 나무라는 시늉을 하며 그녀에게 참으라고 한다면 곧 바로 통곡을 멈출 수 있으련만----.  구경꾼들은 잔인할 정도로 이웃으로써 공동 의식에 있어서 인색했다.

   빠져나갈 명분이 없어 이웃의 냉대란 처참한 상황에서 허우적거리는 그녀가 불쌍했다.  평소 품는 뜻이 음흉하니 말과 행동에 구린내가 진동했고,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서 따돌림을 받아온 것이 분명해 보였다.  편협한 이웃 감싸기를 극복해냈다고 해서, 속 시원하게 여길 일도 아니었다.  실랑이를 듣고 몽땅 몰려든  마을 사람들에게 , 부부 사이 사랑싸움으로 비추일 것만 같아 어찌나 어색했는지!  정 영주 KBS 사장이나 한 명숙 전 총리가 검찰 체포영장 받은 것만으로도 치명타를 입은 것에 비교될지---.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그녀가 보여 온 여러 형태의 드잡이는, 나에게 '과부 신분'을 자연스럽게 알리기 위한 그녀 나름대로의 고단수(?) 방책이었나 보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는 생각과 더불어  웃음이 터져 나왔다.

   드넓은 논을  거의 매일 혼자돌보는 힘으로 미루어 보아,  기운(氣運)이 여느 여자보다 강해 보이기는 했다. 만약 음(陰)의 기운이 그에 비례한다면,  주체하기 힘들 정도일지도 몰랐다.

  그 기운을 풀어줄 대상을, 같은 성씨 일색인 자연 부락 남정네들 가운데에서  찾다보면,  마을에서 쫓겨날 정도로 곤란해질 수 있겠다.  그래서  갓 이사 왔고, 또 거의 혼자 생활하는 나에게서  어떤 가능성을 찾았을까?  논과 밭을 마주한  농사 이웃으로 마주친 인연이,  '묻지 마 관광'에 가서 전혀 모르는 남정네를 만난 것에 버금간다고  여겼나 보았다.  

  그날 입씨름이 있기 전까지 , 그녀의 도전은 매우 다양하고 노골적이었다. 어려서부터 부모나 친척에게서, ' 아가, 예쁜 짓!' 하며 귀여운 동작을 배운 것이 아니라, '아가 나쁜 짓!'하면서 악한 행동을 갈고 닦은 것처럼 여겨질 정도였으니까.

    지금도 매우 의아하다. 내가 차를 타고 내 땅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려고 왜 그다지 안간힘을 썼는지----.

    처음엔 비료나 농기구 등등 여러 가지 물품을 길 위에 놓아 내 차량이 그 앞에서 멈추게 했다. 그러나 그 시도는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일하는 사람을 번거롭게 할 수 없으니, 내가 내려 가벼운 인사말과 함께 직접 옆으로 치우고 지나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머리가 아주 모자란 아들을 이용해서 트럭이나 트랙터로 길을 막기 시작했다. 하지만 앞에 차를 대놓고 말없이 비켜주기를 기다리면, 결국 치워주지 않을 수 없었다.  때로는 기다리는 시간이 매우 길어지기도 했다. 8시간 이용에 40만원하는 포크레인 중장비를 임대해왔기에 빨리 작업을 시작해야 할 터인데--  농약 살포를 이유로 그녀가 아들과 함께 한 시간 넘게  트럭으로 막은 적도 있으니까--.

     그녀 심술은 이에 그치지 아니했다. 내 밭에 이르는 폭 5미터 정도의 농로를 사이에 두고 그녀의 논은  두 배미로 갈려 있었다.  그리고 그 길가  전신주 밑에 관정을 파서 가뭄이 심할 때면, 그 물을 이용해 양쪽 논  농사를 지었다.

   관정이 있는 쪽 논은 곧 바로 물을 뽑아 이용하지만 , 그 길 건너편에 있는 논은 길을 가로 질러 물을 끌어와야 한다. 그녀는 그 상황도 악 이용했다.

    물을 보내는 관을 해마다 새로 설치하는 것이 번거로웠기 때문이리라. 그 녀 남편은  살아있을 때, 이미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관을 길 밑 땅속에 묻어 두었었다. 그 관을 이용하면 편하련만---. 그녀는 굳이 찢어지기 쉬운 농업용 비닐 호스를 길 표면에 깔아 사용하기를 고집했었다.

   해 마다 비닐 호스를 따로 설치하자면 힘이 들겠지만,  남에게 불편을 줄 수만 있다면 그까짓 수고야 문제가 안 되나 보았다.

    어느 시점에서부터인지 --  그리고 왜 터졌는지 모르지만, 그 호스에서 물이 나와 논둑길을 온통 물바다로 만들더니 깊은 웅덩이가 되었다. 그리고  승용차가 다닐 때마다 웅덩이 흙탕물이 튀어 차아래 부분이 항상 지저분하게 되었고.

   모든 말과 행동은 생각에서 나오련만--- 따라서 그녀의 말과 행동을 보면 그녀의 생각과 의지가 보이는데, 어찌나 지저분하고 험악해 보이는지 !
   
   아무튼  그녀가 '과부이다.'는 사실을 나에게  알리고,  또 다툼을 통해 좀 더 진한 인간관계로 발전시키려 의도했다면---   그 방법이 아주 강한 혐오감만 불러일으켰다!  그 집 큰 아들이, '묻지 마 관광'에 그녀를 좀 자주 보내 주면 해소되려나.

   이 여자의 심리 흐름과 비슷한 모습을 학생들에게서도 발견한 적이 있었다.

    남자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던  어느 봄이었다.  교과 담임이자 생활 지도부 교사이기에 , 제주도로 가는 2학년 수학여행을 따라가게 되었다.  저녁 무렵 모텔의  정원을 거닐고 있는데,  나이가 지긋한 신사 한분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물었다.  ' 혹시 이곳에 머무는 남학생들  인솔하시는 선생님 중 한분이신지요?'

' 네. 그렇습니다만---.'

' 저는 길 건너편에  마주보고 있는 모텔에 머물고 있는데요.  저도 충남 대전 ** 전문대학 여학생들을 인솔해서 왔습니다.  잠시 저와 함께 저 삼층 방에 좀 가볼까요?'

     잔잔한 그의 표정에서 분노는 볼 수 없었지만, 우리 학교 학생들에 의한 어떤 실수가 있어 보였다. 그래서 그를 따라 삼층에 올라갔다.

    전문대 학생들이 머무는 모텔 쪽으로 향한 어느 방 앞에 이르렀다. 방문은 열려 있었다. 그래서 복도에서 그 방안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학교에서 '내노라.' 하는 문제 아동들 4명이 함께 뭉쳐서,  맞은편에 있는 모텔 건물을 향해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쏟아 내고 있었다.  집안에서 물이 새는 쪽박, 밖에서도 샌다는 말이 있듯이,  학교 안에서 말썽꾸러기였기에, 밖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욕설 내용이 어찌나 다양하고 또 거친지, 상상을 초월했다.

   욕설에 열중하다보니, 그들은 우리가 바로 뒤에 있어도 눈치 채지 못했다. 평소 말썽을 일으켜 나에게 불려오면 , 간곡히 타일렀다.

    ' 과거는 지나갔기에 ,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에 내가 소유할 수 없는 법이다.  소유할 수 있는 현재에 충실해야한다. ' 라고---.

     아마 '현재에 충실해라.'는  가르침에 충실하다보니, 욕설하는 행위 이외엔  헛 눈을 팔지 못하는 가 보았다.

    그 교수님에게 어찌나 미안하든지! 그분에게 철저히 해결하겠다는 의지와 진지한 사과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 녀석들을 향해  소리를  '꽥' 질렀다.

     ' 동작~  계속!'

    그 학생들은 귀에 익은 내 목소리에 깜짝 놀라며 뒤를 바라보다가 우리를 발견하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 어쭈?  동작이 멈추었어? '

     '-------------. '

     ' 빨리 계속 안 해?'  

    그 학생들은  나를 향해 돌아서서 조폭 두목 앞에선 똘마니 행동대원들처럼 왼손을 오른 손 위에 얹은 자세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

    ' 여기 나와 함께 계신 분은 너희들이 욕설을 퍼부어댄  전문대학교 누나들 졸업 여행을 인솔해서 오신  교수님이셔. ' 

      '----------.'

     ' 여행까지 와서 억세게 통제하는 학교 분위기로 너희들 기분을 망쳐놓으면 좋지 않다만---.  다른 사람들 기분을 매우 불쾌하게 만들어서, 교수님이 이곳까지 오시게 만들었거든. '

     ' -----------. '

     ' 다른 사람들 기분을 망치지 못하게 하려면--, 타인에 의해 너희들 기분이 망쳐졌을 때,  얼마나 싫은지 알아야 너희들도 조심하거든.  너희들은 이 순간 여기가 모텔이 아니라  학교 교실이라고 생각해야한다.  무슨 말인지 알았어? '

     ' 네. '

     ' 그러면  너희들 모두 함께 지구를 든다.   실시!' 
  
     그 녀석들은 신속하게 벽을 바라보고 엎드리더니, 물구나무를 서서 발을 벽에 기대었다. 이런 모습을 보자 교수는  돌아섰다.

      ' 선생님.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 아, 예.  죄송합니다. 애들이라서 철딱서니가 없다보니 그 런 것이니 용서해 주십시오.  대신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오늘 철저히 지도하겠습니다.'

      그 교수가 떠나고 난 이후였다.  그들의 팔은 지구 무게에 짓눌려 신음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그들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들이 뚝뚝 떨어졌다.  그래서 일으켜 세우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타이르기 시작 했다.

       ' 저 여학생들에게 조상 대대로 쌓여진 원한이라도 있니?  저 건물과 이 건물 사이가 20여 미터는 될법한데--- 도대체 이 짧은 시간 동안 어떤  진한 접촉이 있어서 그렇게 진한 원한으로 발전했어? '

       ' 원한은 없어요. '

        ' 그런데 왜 그다지 욕을 퍼부어댔지? '

        '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만---'

   이성(異性)으로써 느끼는 호기심이나 호감을 욕설로 표현하는 정서---  무식하니 막된 행동이고, 그것을 짧게 '무지막지(無知莫知)하다'고 표현하나보다.

  '이 녀석들아.  좋아한다는 뜻을 그렇게 거칠고 험악하게 표현하면 되겠어? 그저 은밀히 한 번 더 부드럽게 바라보는 시선으로 뜻을 전달하면 훨씬 더 효과적인데--- 하다 못하면 손수건을  슬쩍 떨어뜨려 보거나.'

  그 들 중, 한 해 꿇었기에 , 선배라면서 두목 노릇을 하는 녀석이 말을 받았다.

 ' 요즈음처럼 , 스피드 시대에  그런 방법은 안 먹혀요. '

 ' 꿩이나 공작 혹은 다른 짐승들도 애정이나 호감을  표시하는 방법이 매우 부드럽던데---.  그 짐승들이야 곧 바로 번식을 위한 짝짓기 행동에 돌입할 정도로 조급함이 있을 지라도 그렇게  부드러운 예비 단계를 두거든.  짐승이다 보니,  네 말대로 스피드 시대에 걸맞을 정도로 빠르게  짝짓기를 하는 편이지만 말이다.  '

 ' ------.'

 '그런데 이성이 있는 인간이라는 녀석들이 최소한의 과정마저 생략하려 했다니 ! 이것이 뭐야? '

 ' ------------. '

 ' 사내다움이 여자들에겐 매력이지. 그러나  너희들처럼 호감을 욕설로 표현하는 행동은,  대장부처럼 보여 의지하고 싶은  믿음과 호감을 일으킬 모습이 아니야.  곧 바로  침대로 끌고 가 성욕을 채우는데 온 정신이 쏠린 강간범이나 깡패 모습으로 강한 분노와 혐오감을 일으키지.'

 '-------------. '

 ' 학교에서 대장부다운 모습을 갈고 닦아야지,  사나운 조폭 행동대원 모습을 배워서는 안 돼. 더 잔소리 들을래?  '

 '죄송해요. 이제 더 이상 말썽 안 피울께요.'

   과부와 이 남학생들이 매우 닮아 보였다. 이런 거친 모습을  애 띤 여고생에게서도 발견할 수도 있었다.

     27살 총각으로 여자 고등학교에 갓 부임해 갔을 때였다.  첫날, 첫 시간부터 여학생들에게 제압당하면 , 학교생활이 끝장이라고 들었다. 학생들이 수업시간마다  선생이 아니라 남자로 여기기 때문이라나. 결국 첫날 총각의 순진함이 전혀 없는 -- 어쩌면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능글능글한  모습으로 학생들을 제압하라는 말을 듣곤 했었다.

  첫 수업은  내가 좋아하는 선배의 학급이었는데---. 교실 문을 밀치고 들어가기 전,  다시 한 번 새롭게 선배들 말을 떠올리며 내 자신을 가다듬었다. 

   수업이 시작되어 내 이름을 말하고 간단하게 앞으로 성실한 교사 생활 자세를 다짐하고 이제 교과 진도를 나가려 했을 때였다. 한 학생이 '선생님!' 하고 손을 들었다.

  보나마나 교과 진도 대신 나에 대해 추가로 알아보고 싶다는 의사 표현임에 분명했다.  그래서 눈길을 그 쪽으로 보내자 잠시 멈칫 하더니 물었다.

  ' 선생님 나이가 어떻게 되지요?'

  ' 응, 그것---. 나는 이미 미성년이 아닌데. 그래서  내 나이를 물어보는 것은 에티켓 위반이 아닐까?'

 ' 여자들에게 나이를 묻는 것은 잘못이지만, 여자가 남자에게 묻는 것은 괜찮아요. '

 그러자 이곳저곳에서 ' 남자란다! 애, 선생님이 남자래 ! ' 라고 킥킥 거렸다.  아무래도 남자라는 표현이 예상한 것보다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 모양이었다.

 ' 첫 날이다 보니 , 자기소개 시간을 늘여보자는 뜻과 또 수업 진도를 늦추자는 뜻이 함께 결합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데--- .  순진한 척 속아 넘어가 줄까?  정말로 내 나이를 알고 싶은 거야? '

  학생들은  일제히 대답했다.

 ' 예 !'

 ' 이왕 인사 소개 시간을 길게 늘어 뜨려 수업을 변형시켜보자는 뜻이라면--   내 외모를 통해 나이를 추측해보는 것이 더 많은 시간을 잡아먹을 거야.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이 내 나이를 맞추어봐.'

  이에 한쪽에서 ' 스물 네 살! ' 이라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세 살이나 아래로 보아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아무 말 없이 빙긋이 웃으며 반응을 보이지 않자 다른 여학생이 말을 했다.

  ' 그 애 시집 안간 언니가 있는데, 스물 네 살 이래요.'

  아마 '언니'를 끌어 들인 것은 , 내가 결혼 했는지 안 했는지를 간접적으로 알아보려는 기교로 보였다. 


   이런 때 얼굴 붉히며 시선이 벽으로 향하면, 학생들에게 질질 끌려 다닌다고 배웠었다. 그래서 나는 그 학생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아주 능글능글하게 대답했다.

  ' 아, 그래요.  그 언니라는 분에게 관심이 끌리는 데요. 동생 되는 학생 얼굴이 예쁜 것을 보니까 언니 되는 분도 아주 고우실 것 같은데---.  하지만 남자와 여자 성이 달라야 교제나 결혼을 할 수 있다면서요?  나는 박씨인데 저 학생은 성이 어떻게 되지요?'

  그러자 다른 학생이 말을 받았다.

  ' 성만 달라서는 안 되고요---.   원래 남자보다 여자가 나이도 어려야 한데요. 그러니까 제 말은 요--- 저 애 언니는 대상에서 '실격이다.'는 뜻이에요.'

   다른 쪽에서 또 말을 받았다.

  ' 무슨 대상? '

  그러자 모두가 까르르 웃었다.

   ' 여자가 남자보다 나이가 어려야 한다? '

   '----------.'

   ' 아 , 그렇구나. 그러면 내 나이가 스물넷이라면 , 여자는 얼마나 더 어려야할까? '

   ' 아마 4-5세 정도는 --.'
   
    다른 여 학생이 그렇게 대답했다.  어떤 통계나 이유에서 4-5세 차이를 말했는지 모르나 그 말은 나에게서  갑자기 짓궂은 장난 끼를 불러 일으켰다.

   ' 4-5세차이라---. 만약 내 나이가 24이라면  4-5세를 빼면 20 내지 19살인데. 에게! 그러면 미래의 내 결혼 상대는 지금쯤 고3 아니면 대학교 1학년 이네.  조금만 더 에누리하면 고2 학년이 될 수도 있고---. '

   이런 표현에 이르자 교실엔 깊은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나는 좀 더 능청을 떨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라면 , 지금 내 앞에 앉은  여러분이 2학년인데---. 아이 미! 이 중에서 나올지도 모르겠네! 그런 의미에서 모두 고개를 들어봐. 얼굴을 다시 보아야 겠어!'

    이 말을 듣자 여학생들은 ' 에구머니나 !' 하고 기겁을 하며, 고개를 깊이 내리 숙였다.  그리고 옆 친구 옆구리를 찌르며, 어서 고개를 들고 얼굴을 보이라고 킥킥거렸다.

  수업을 마치고 교실을 나오면서 , 이만하면 아주 효과적으로 학생들의 기세를 내리 눌렀다고 자평을 하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나 그 자신감은 약 2개월이 지난 후 한 여학생에 의해 깡그리 무너졌다.  그 학생과의 관계가 험악하게 변한 과정을 보면 참 묘하다.

    기초학력이나 예습이 부족하면, 수업 시간에 풀이 죽기 마련이다. 그래서 대개 수업 시간 내내 침묵을 지키고---.  그런 학생이 , 수업이 없는 스승의 날이면, 신바람 나게 교정 전체를 휘젓고 다니기 마련이다. 유난히 스승의 은혜를 강조하면서---.

   그 학생 역시 첫날  내 신상에 대한 질문을 할 때 매우 활기를 보였었다.  그런데 평소 수업 시간에도 어찌나 발표력이 뛰어나든지! 집에 가면 그냥 영어 과목  예습과 복습에 모든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다.  아무튼 내 강의는 복습에 불과한 것 같았다. 그런 학생에 대한 교사의 신뢰와 친밀감은 더 깊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학생을 모범생이라 평가하기엔 조금 혼란스러웠었다.  영어 학습활동으로만 평가하면 최우수 모범생인데,  학생부실에 이따금 불려가 꾸중 듣는 모습이나 눈썹을 밀어버리고 화장 연필로 그리며 성인 세계를 넘겨다보려는 태도를 보면, 학교생활이  깔끔하고 무난하다 볼 수 없게 만들었으니까--.
   
   1개월 반이 지나 중간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답안지 채점이 시작되었을 때 나는 그 학생의 답안지를 가장 먼저 채점했다.  그러나 귀신에 홀린 듯했다.  최우수 그룹에 속하리라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채점 결과가 나왔다.  내 자신의 꼼꼼한 집중력이 미덥지 않아, 여러 번 다시 채점했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장 기대한 학생의 점수가 그러하니 맥이 빠져버렸다. 그래서 다음 날 그 학생을 교무실로 불렀다. 그리고  실수가 왜 그다지 많았는지 물어 보았다.  그녀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 고집스레 침묵을 지키다가 나와의 면담을 마쳤다.

  그 이후 부터였다.  그 학생 수업 태도에 큰 변화가 왔다.  걸핏하면 그리움이 창밖 저 너머 먼 산에서 영글었으니까---. 옛날 수업 태도와는 전혀 달랐다.

    그런 태도 변화가 너무도 안타까웠다.  그래서 학습에 열중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조금 전에 설명한 부분에 대해 기습적으로  질문을 해보곤 했다.

    처음엔 그 방법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미안하게 여기고 교과서에 정신을 집중하는 듯 보였으니까.  그러나 그것도 어느 한 순간--- 조금 지나면 다시 눈길은 창문 너머 먼 산봉우리에 머무르고 있었다.  너무도 빈번하다보니 지적하는 역할에 지쳤다.  또 지적할 때 오히려 교사인 내가, 지적받는 학생의 눈치를 살펴야하는 정 반대의 현상에 이르렀다.

    그래도 그 정도는  낳은 편이었다.  어느 순간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질문을 받아도 '몰라서 죄송하다.'는  낌새가 아예 없어 졌었다.  오히려 '왜 질문으로 사람을 괴롭히느냐?' 는 듯 철저히 내 질문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  그 침묵이 너무도 완강하다보니,  반항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나 역시 삐진 나머지, '네 인생 네가 알아서 하겠다는데 낸들 어찌 할 수 있겠니? 어디 한번 네 멋대로 해봐!' 라는 상태에 빠진 듯 했다.

  그러나 교사가 그대로 방치하는 것--- 보통 힘이 드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하루는  좀 더 부드러운 방법으로 달래 보기로 했다. 

   '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우리 마을에 내가 좋아하던 여학생이 있었거든---. 그런데  이 학급에 그와 매우 닮은 학생이 한 명 있어. '

   학생들은  문법 설명을 하다가 갑자기 옛 고향에 같이 살던 여학생 타령이 튀어나오자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 또 다른 한편 닮은 사람이 그 교실에 있다니 호기심 때문에 귀를 쫑긋 세우는 듯 했다. 그리고 성미가 급한 학생이 하나 물어 보았다.

  ' 그게 누구인데요? '

  ' 응 ---  그게 말이야 누구냐 하면----.  김 미선이거든. '
  
  먼 산을 바라보고 있던 그 학생은 자신의 이름이 내 입에서 갑자기 튀어 나오자 얼굴이 빨개지더니 고개를 숙였다.

  ' 와 ! 선생님 첫 사랑하고 미선이하고 닮았어요? 애, 미선아 ! 너 오늘 한턱 쏘아야겠다. '
  나는 씨익 웃으면서 그 다음 말을 이었다.

  ' 그런데 말이야.   옛날에, 옛날에 내가 좋아하던 그 사람은 영어를 참 잘했거든.  옛날에, 옛날에 내가 좋아하던 그 사람을 닮은  김 미선---, 네가 조금 전에 설명했던 가정법 과거인 이 문장을  직설법 표현으로 바꾸어 봐. '

   아이들은 그 때에서야 내 말 뜻을 알아듣고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학생은 오랜만에  고집스런 침묵을 깼다.  그리고 ' 죄송해요.  다른 생각하느라 설명을 못 들어서---' 라고 다소곳이  사과했다.

   그 이후 부터였다.  그 아이가 헛짓하는 모습이 보이면, 으레 '옛날 아주 먼 옛날, 내가 좋아했던 사람을 닮은 애야! 네가 이 부분을 좀 해 볼래?' 라고 했다.  그리고 그 애는 곳 시선을 교과서로 돌렸고---.

    그런데 당연히 진부한 표현이다 느껴질 만큼, 그 호칭이 자주 사용되어야만 했다. 새로운 명칭을 개발하지 못하는 창의력 빈약에 대한 냉소였는지 ,아니면  어느 여인과 데이트하는 모습이  학교에 떠돌았기 때문인지---.

   아무튼 어느 날 먼 산을 바라보는 그 학생을 그렇게 불렀다. 그러자 그 학생은 '흥'하고 코웃음을 쳐 버렸다.

  세상 인연이란 것이 이렇게 허무했다. 겨우 3개월 만에 그 학생과 나의 관계는  ' 상대가 존재하기에 불편한 적(?)'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문제아로 교무실에 자주 불려와 꾸중 듣는 모습이 원래 그 학생의 본 모습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그런 갈등 속에서도 세월이 흘러 2학기 기말이 다가오며 날씨가 매우 싸늘해졌다. 어느 때부터인지 그 애는 내 수업 시간에 털실을 아예 책상 위에 올려놓고 털장갑을 짜기 시작 했었다.  ' 제발 나 꾸중을 좀 해주세요.'라는 매조이즘의  한 형태로 보였기에 , 철저하게 그 행동을 무시 해버렸다.

    이 정도로는 내 꾸중을 유발할 수 없다 여겼기에 한 단계 높였는지-- .  큰 소리로 콧  노래를 불러 수업 방해를 시작했다. 다른 학생들도 그 학생의 심리를 엿 본 듯, 내가 어떻게 이 상황을 처리할지 내 눈치를 살피는 것 같았다.  그래서 뜨개질 깜을 압수했다.  ' 나머지 부분은 내 애인에게 부탁해서 마무리 지어 두었다가 3학년에 올라가는 날 줄거야.' 라고 말했다.

  그것이 불씨였다 . ' 선생님, 그것 돌려주세요. ' 그 애는 당당하게 요구했다. 내 그 말 한마디로 자신의 잘못은 모두 사면되었다고 여기는 것이었다.

  ' 아쭈! 되돌려 달라는 말이 너무도 당당하니 내가 더 당황스럽네.   잘못했으면, 앞으로 두 번 다시 안할 터이니 용서해주세요.'라고 말해야 하는 것 아냐?'
 
  그 애는 입을 삐죽이며 '피!'하고 말했다.  이대로 방치하면 도저히 다른 여학생들을 통솔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단호한 모습을 보이기로 했다.

  '어 ?  뭐라고 ? 선생님 말에 피라니! 안 되겠네. 손바닥을 좀 맞아야겠어. 손 내밀어.'

  엄하게 말하는 태도에 그 애도 더 이상 사랑싸움 비슷한 분위기 연출을 포기했나보다. 그리고 얌전히 손을 내밀었다. 나는 30센티 대나무 자로 손바닥을 한 대 가볍게 때렸다. 그런데 약해서였는지, 아니면 나에게서 맞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거나 매 맞는 어색함을 무마하기 위해서였는지 -- 그 애는 또 장난으로 몰아갔다. 그리고 교태가 철철 흘러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 아이 아파.'

  화를 낸 내 모습에 긴장감이 돌던 교실 분위기는 순식간에 밀려나 버렸다.  그리고 학생들은 책상을 치고, 의자를 들먹이며 깔깔 대고 웃었다.  아마 '아이 아파'라는 표현에서 침실의 성적인  장면을 떠 올렸나 보다.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  상황에 당황한 것은 오히려 나였다. 그래서 얼굴에 더욱 엄한 표정을 띠고 손바닥을 더 세게 여러 대 이어서 때렸다.

   이 모습을 옆에서 보던 학생들은 일시에 숨을 죽였다., 그리고 그 아이 역시 얼굴을 찡그렸고---.  그러더니 눈물방울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니 또 안쓰러웠다. 게다가 팽팽한 긴장 분위기에서 헐떡이는  죄 없는 다른 학생들에게 미안하고---.  그래서  그 학생을 향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한 마디 했다.

   '김 미선 ! 자기 많이 아파?'

  그 말을 듣자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던 그 애는 눈을 들어 빙긋이 웃는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눈이 찢어지게 나를 향해 눈을 흘겼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는 사이 '아이 머리 아파!' 하고 한숨을 내 쉬었다.

    이런 경험에 비해 , 지금도 미소를 짓게 하는 다른 종류의 경험도 있다.

  교사 경력이 2년차에 접어들었을 때, 고등학교 1학년 담임으로 배정되었다.  학급 학생 중,  결석이 잦은 학생이 하나 있었다. 

   학부형 도장이 찍힌 결석계야 어김없이 제출했지만, 내용이 대개 감기 몸살이기에 의아했다.  특별히 건강미가 넘치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자주 감기에 걸릴 정도로 병약해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겉으로 나타난 결석 원인과 진짜 결석 원인이 일치하는지 점검해보고, 문제가 있으면 해결책을 가급적이면 빠른 시기에 마련해야 학교에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어느 날, 또 결석을 했다. 다음 날 분명히 결석계를 내겠지만 현재로서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무래도 불시에 방문해서 몸 병인지 마음병인지 구분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학생들을 집으로 보낸 후에, 곧 바로 동료 교사 자전거를 빌려 타고  그 학생 집에 도달했다. 아직 해가 동동 떠있는 시간이니 부모님들이야 논이나 밭에 나가있을 법했다. 그런 때 아이와 그의 방에서 오손 도손 이야기를 하다보면 문제점이 쉽게 발견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여러 선생님들이 있는 교무실 분위기는 너무 딱딱하기에 대화를 하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 애 집은 학교에서 2키로 정도 떨어진 마을에 있었다.  그리고 주변 농가들에 비하면 집이 깔끔하고 다소 큰 기와집이었다. 대문 앞에 서서 집안에 대고 아이를 불렀다.

  ' 진호야! 김 진호! 집에 있니?'

  부르는 소리를 듣고 문을 연 것은  20대 초반의 아가씨였다.  그리고 나를 보자 ' 어마나 !' 하더니 방에서 뛰어 나왔다. 나를 맞이하기 위한 행동으로 생각했는데--- 그녀는  인사할 틈도 주지 않고, 마루에서 내려와 신을 신고 부엌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부엌문을 꼭 닫았다.

 '남동생의 담임선생이다.' 는 것을 알아챘기에 수줍은 나마지 그렇게 숨은 모양이었다.  어색했지만, 어찌나 훈훈하게 느껴지든지!  이런 때 나 역시 얼굴을 붉히면 , 더욱 어색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부엌문 저 너머에 숨어 있는 그녀를 향해 말했다.

  ' 저기요. 진호 담임이거든요. '

  '-----------. '

   안에서는 아무 말도 없었다. 

   ' 저---.  오늘은 진호 담임선생으로 진호를 만나러 왔거든요.'

  안에선 역시 아무 응답이 없었다.  그래서 혼자 말로 지꺼렸다.

   ' 총각으로 찾아온 것은 아닌데---.'

  그 말을 안에서 듣고 그녀는 한동안 곰곰 생각했나보았다. 드디어 부엌문이 슬그머니 열리면서 그 처녀는 눈을 내리 깔고 나에게 말을 했다.

  ' 저-- 진호는 숙제 물어본다고 친구들 집에 갔어요. '

   겨우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수줍은 나머지 얼굴이 빨개졌다. 그런 그녀를 상대로 마루에 혹은 방에 들어가  함께 앉아서 진호 문제를 상담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 부모님들을 만나 이야기하는 편이 바람직해 보였다. 

 ' 그럼 부모님들이나 한번 뵙고 싶은데요. 혹시 집에 계시는지요?'

 ' 두 분 함께 밭에 가셨는데---. 바로 마을 입구에 있는 밭이거든요. '

 ' ------------.'

 ' 모시고 가기에 좀 ----.'

 '알았습니다. 밭일 하시는데 번거롭게 해드릴 순 없고--- 그저 학교로 돌아가는 길에 뵙고,  간단하게 몇 마디만 여쭙고 가겠습니다. '

 ' --------. '

 '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내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자 그녀는 매우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답례했다.

 처음 본 총각에게 그녀가 보이는 호감 표시가 어찌나 훈훈하게 느껴지든지! 돌아오는 길 내내 눈에 아른 거렸다.

   요즈음 거칠기 그지없는 그 과부를 볼 때마다 , 거칠었던  남학생들과 문제성 여학생이 떠오르곤 한다.  뒤 이어 그 시골 처녀의  고은 모습도 떠오르고---.

  * 노 무현 대통령을 괴롭히고 나아가  한 명숙 전 총리를  괴롭히는 한국 검찰의 음흉함이나  기교의 천박함이  꼭  옆집 과부와 비슷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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