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리그가 되어가는 교육계

교육은 정말 경쟁으로 정상화될 수 있을까?

검토 완료

고영주(ericrow)등록 2009.12.08 11:53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개는 깨끗하고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기 때문에 세상사와는 다르고, 그래서 좋다고 하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과연 스포츠의 세계는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는 곳일까?

내가 생각하기론 아닌것 같다. 많은 주장이 있을 수 있겠지만, 스포츠의 세계에 되도록 많은 장치들을 만들어 최대한 외부효과를 줄이고 선수들의 실력을 통해서만 승패가 결정되도록 한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있겠지만 수많은 외부효과가 스포츠의 승패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또 그것이 극적인 재미를 주기도 한다. 따라서, 스포츠에서 기대하는 공정한 경쟁, 또는 오직 선수들이 흘린 땀과 자신들이 가진 재능 만으로 승부를 보는 곳이라는 생각은 관객의 바램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승부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효과로는 첫째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운이라는 것이 있다. 스포츠의 세계도 사람사는 곳인지라, 한 팀의 에이스가 중요한 순간에 실책을 하여 승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물론 집중력이 부족한 것도 실력의 일부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아무리 집중력이 좋은 선수도 어쩔 수 없는, 재수가 없다라는 말로 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두번째로는 관객의 호감도가 있다. 선수의 실력에 따라 인기도 내지는 호감도가 결정되지는 않는다. 그저 미모가 빼어나서 인기가 있기도 하고, 실력이 부족하지만 열심히 뛰는 성실한 모습에 반하기도 한다.

그러나 관객의 호감도에 따른 응원은 선수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이 외부효과는 선수들의 노력과 재능에 의해 결정된 것이 아닌 외부효과로서 승부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이를 막아주는 장치가 지역연고를 정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홈팀을 응원하게 함으로써 다른 요소를 최대한 줄이고, 홈과 원정경기에서의 경기 수를 조정하면 그 외부효과가 감소할 수 있다.

그러나, 스타 선수의 경우에는 홈팀에 대한 애정마저도 끊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프로농구에서 이상민 선수의 예를 들 수 있다. KCC가 삼성으로 이상민을 트레이드 시켰을 때, 많은 팬들이 삼성으로 응원팀을 옯겼던 적이 있었다. 그들은 전주에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후 KCC 홈 경기에서도 삼성을 응원했고, 때로는 KCC 경기에서 삼성의 응원이 매우 거세서 승부처에서 선수들의 집중력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적이 있었다. 이 외에도 자본의 힘이라던가 심판들의 오심들이 있을 수 있겠다.

이렇듯 스포츠를 건전한 경쟁의 체계로 보는 견해가 많지만 이 세계에서도 완전한 경쟁은 이뤄지지 않는다. 다만 최대한 다른 외부 효과의 영향을 줄이는 장치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그에 비슷해 지려는 경향이 있을 뿐인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세계에서 경쟁을 주장하고 있는 분야의 경우는 어떤가? 먼저 경쟁을 강조하는 곳은 시장경제일 것이다. 시장경제에서는 가격결정의 원리에 의해 최대한 자율적으로 경쟁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고 믿고있다. 따라서 기업들이 최대한 정부의 규제로부터 벗어나야 효율적인 자원분배가 일어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경쟁 상태에서 이기는 기업이 진정한 승자가 된다고 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각종 외부효과에 의해 시장은 왜곡되기 마련이다. 이때 스포츠의 경우처럼 여러 장치를 통해 외부효과의 영향을 줄이는 쪽으로 정부가 규제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특히 부정적인 외부효과의 경우 규제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심판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스포츠에서 심판이 오심을 하면 경기의 재미가 떨어지고 결국 이기기는 하겠지만 관객이 재미없는 경기가 되고 관객은 떠날 것이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적절한 규제를 하여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도록 하지 않는다면 경제 주체들은 해도 안되는 구나 하는 좌절감을 맛보게 된다. 스포츠는 안 보면 되지만 경제는 떠날 수가 없다. 그 좌절의 깊이는 더 해가게 된다.

현실의 예 중 하나를 더 들어보자. 사교육비의 문제를 들 수 있다. 요즘 교육계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말 중 하나가 경쟁이다. 일제고사, 외고문제, 고교등급제, 교원평가 이런 일련의 교육 정책의 중심에는 경쟁이 들어있다.

교육에서도 건전한 경쟁을 통해 학생들과 교사들의 실력을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이 말씀은 옳다고 생각한다. 건전한 경쟁은 노력의 가치와 재능의 건전한 발현이 실현되도록 하기 때문에 교육의 잠재력 발현이라는 이상과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제고사의 경우 일단 성취도 평가를 위해 전집평가가 꼭 필요한가에 대한 논의는 경쟁 자체에 대한 논의와 관련이 없으므로 논외로 하면, 일제고사 성적이 우수한 고등학교에 돌아가는 인센티브를 받기 위한 각종 교육 공무원들의 행태가 이미 외부효과로 나타나 이를 위한 다양한 규제가 이뤄지는 실정이다.

이런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정한 경쟁인가에 대한 실효성 논란은 계속되고 있고, 신문 지상에는 일제고사 관련한 교육공무원들의 백태가 나오는 실정이다. 이는 보수진영에서 말하는 정부의 규제가 없는 상태에서 시장의 원리대로 잘 돌아가야할 교육계가 어렵게 돌아가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경쟁을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면밀한 검토와 고민 끝에 예상되는 외부효과를 최대한 줄이는 쪽으로 정책을 입안해야 했었던 것은 아닐까? 일단 저질러 보고 잘못되는 것은 고쳐가자고 하기에는 교육을 통해 피해를 입는 학생에게는 너무나 큰 고통이다. 학생들은 언제나 일생에 한번뿐인 학교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일제 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하여 여유있는 집 자제들은 학원에서 보강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이들은 부모의 경제력에 힘입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이는 마치 스포츠 구단이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곳이 각종 지원을 통해 좋은 성적을 유지하는 것이나 매 한가지다.

물론 불법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열심히 운동해서 실력으로 인정받고 더 비싼 몸 값으로 이적해 가는 것이 스포츠 선수들의 꿈이기도 하다. 그러나, 관객은 알고있다. 그렇게 한 쪽으로 모든 것이 치우치면 매번 한 팀이 우승할 것이고 재미도 없다는 것을, 경쟁은 하나마나 한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축구에서는 바르셀로나와 같은 시민구단이 생겨났는지 모른다.

돈으로 밀어부치는 구단에 대항해 시민들이 원하는 구단을 만들기 위해 모금하고 뭉쳐서 축구장에서도 돈많은 사람들 마음대로 꼭 되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교육에서도 마찬지다. 규제를 풀어서 사교육을 맘대로 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해서 완전한 경쟁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사교육의 외부효과를 줄여야 한다. 교육에서의 경쟁이란 온전히 학생의 재능과 능력 그리고 노력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교육에서 경쟁이 과연 추구해야할 목표인가를 따지자면 여러 논의를 통해 지양해야 할 원리라고 주장할 수 있고, 실제로 나도 그렇게 믿고 있다. 하지만 백번 양보하여 교육에서 경쟁이 꼭 필요한 원리라고 주장하는 이들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정말 공정한 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규칙과 그 규칙을 공정하게 적용해주는 심판이 있어야 한다고. 그 규칙이란 법을 지키는 것이며, 헌법에서 보장한 국민이 동등하게 배울 수 있는 권리를 누리게 하는 법일 것이다.

또 심판이란 정부와 사법부가 될 것이다. 실력이외의 것으로 경쟁하려는 것을 정부는 최대한 규제해야 한다. 승부가 정해진 경기는 뻔하고 재미없고 속임수에 불과하다. 관객은 외면한다. 교육의 승부가 사교육이란 외부효과에 의해 정해진다면(물론 이 얘기는 근거가 없는 일종의 신화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결과는 이미 정해진 것이다. 그러니 점점 관객과 선수들이 떠난다. 즉 부모와 학생들이 떠난다. 그들은 대안학교를 찾아 경쟁이 없는 곳에서 진정한 교육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한다. 그러는 사이, 공교육은 점점 더 외고와 같은 특목고 중심의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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