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것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강함이다

노자의 水德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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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숙(maria12)등록 2009.12.06 15:25

부채 노자의 수덕송 78장을 적어넣은 부채 ⓒ 김현숙


김연아가 파이널 경기에서 역전승으로 금메달을 수상한 소식을 들으면서 연약하면서 강한 것의 힘을 다시 보았다. 전날 쇼트프로그램서의 2위라는 부담을 안고 있는 그녀가 조지 거쉬인의 피아노 협주곡 바장조에 맞춰 어떤 모습을 보일 지 궁금했던 프리스케이트 경기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반전과 깊은 감동을 안겨 주었다. 김연아 선수는 5일 일본 도쿄에서 치러진 대회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123.22점을 얻어 전날 쇼트프로그램(65.64점) 점수를 합쳐 총점 188.86점으로 안도 미키(일본.185.94점)를 2.92점 차로 제치고 종합 1위를 차지했다. 이제는 밴쿠버의 금메달이 우리를 또 행복하게 해줄 것이다.

산길을 걷다 보면 여리디 여린 풀뿌리가 돌을 파고들어 쪼개내고 그곳에 생명을 탄생시키는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이처럼 가녀린 것이 굳센 것을 이기는 이런 현상들은 늘 우리를 즐겁게 한다. 작은 것의 아름다움, 작은 것의 승리가 아닌가 싶다. 귀엽고 연약해만 보이던 김연아 선수가 한 걸음 한 걸음 성장해가더니 어느 날 세계정상에 우뚝 선 당당한 모습을 보면서 부드럽고 연약한 것의 강함을 본다.

여리고 부드럽고 변화무쌍한 것을 생명의 원리로 본 중국의 사상가 노자는 유약함이 굳건함을 이기는 원인을 가녀림에서 찾았다. <도덕경>에 따르면, 살아 있는 사람의 몸과 자라나는 식물의 새싹은 부드럽고 연하다. 그러나 죽은 몸과 죽은 나무는 굳고 단단하다. 단단한 나무는 부러질 뿐이다(76장).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물체인 물이 단단한 바위를 변형시키는 것이다(43장과 78장). '부드러움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강함이다(守柔曰强).'(52장)고 했다. 이렇게 물을 칭송한 부드러움의 사상가 노자가 그립다. 새삼스럽게 노자를 그리워하게 된 것은 지난 경험 때문이다.

3년 전 건강을 잃고 나서부터 수시 입원은 물론 일주일에도 몇 번씩 병원을 드나드니 이제는 병원이 집처럼 편안한 곳이 되어버렸다. 어제는 수술시부터 달고 있던 주머니를 제거하고 일어나서 그의 부축을 받고 걸어보았다. 새 세상을 향한 첫걸음이었다. 아가처럼 불안한 걸음으로 그의 팔에 매달려 아장아장 걸었다. 어지럽고 비위가 돌았다. 걷기가 힘들어 몇 걸음 걷다가 다시 병실로 들어와 버렸다.

오늘은 어제와는 다르게 모든 것이 새롭고 상쾌했다. 목이 타서 몹시 힘들었다. 물 한 모금이 절박하고 절실했다.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 가장 귀하고 소중했다. 그러나 물은 4일 동안 마실 수 없다. 평소에 물 먹는 것을 게을리 했더니 이런 체험을 하게 해주는가 보다. 물 한 모금만 마시면 소원이 없겠다 싶을 정도로 간절했다.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았고 오직 물만 보였다. 그런 내 앞에서 물을 꿀꺽 꿀꺽 마셔대는 그에게 제발 물병이 눈에 보이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오늘이 둘째 날인데 앞으로도 이틀을 마실 수 없다니 어찌 견딜까. 해서 힘들면 가재에 물을 묻혀 입에 물고 견뎠다. 한 방울의 물이 이렇게도 귀하고 소중한 생명수구나 싶어 다시금 물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경외심에 이르렀다.

노자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水德頌수덕송이 있다.

천하에 물보다 유약한 것은 없다. 그러나 단단하고 강한 것을 공격하는데 물을 능가할 것이 없다. 그 점 때문에 물과 대치할 만한 것이 없는 것이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단단한 것을 이긴다. 천하에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나 실행하지를 못한다. 그래서 성인이 말하기를 "나라의 더러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을 사직의 주인이라고 일컫고, 나라의 상서롭지 않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천하의 王이라고 일컫는다." 올바른 말은 반대로 보인다. 노자 78장에 나오는 이 말이 얼마나 깊은 공감을 자아냈는지 모른다. 그런데 여기다 문병을 오신 은사님께서 해석해주신 더 멋진 글이 있다.

損有餘而補不足.  不盈科不行.  觀於海者難爲水.
물은 낮은 곳, 아래로 아래로 흐른다. 평등성이 있어 항상 평평하게 채워야 앞으로 나아간다. 정해진 모양이 없다. 그릇이나 기온에 따라 얼음, 물, 수증기로 존재한다. 싸우지 않는다. 장애를 만나면 돌아가거나 갈라져 간다. 모든 생명을 키우지만 가지려하거나 지배하지 않는다. 늘 끊임없어 바위 같이 단단하거나 강한 것도 뚫는다. 가장 자연스럽다. 멈춤이 없다. 계속 흐른다. 항상 새롭다.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인다.

물에 대한 갈증에 시달리고 시달리다가 다시금 물의 덕德에 고요히 머물렀다.

      天下 莫柔弱于水
       而攻堅强者
       莫之能勝
       以其無以易之
       弱之勝强
       柔之勝剛
       天下 莫不知
       莫能行

세상에 물보다 약하고 부드러운 것이 없다.
그러면서도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기는 데
물보다 더 나은 것도 없다.
무엇도 그 본성을 바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약한 것이 억센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단단한 것을 이기는 것을
세상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능히 실행하는 사람도 없다.

윗 그림은 지지난 해 원단에 명퇴하고 시골에 내려와 살고 계시는 오빠가 부채에 선물로 써준 글이다. 글도 그림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물에 대한 좋은 글들이 참 많은데 이 글을 선택한 것은 아마도 병마에 시달리는 내게 물처럼 부드럽고 강인하게 살아가라는 뜻을 전해주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도 곁에 두고 가끔씩 마음이 흔들리고 어지러울 때면 이 글을 열어서 보곤 한다. 그러면 잔잔한 물처럼 마음이 평온해진다. 노자의 이 글 아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이어지고 있다.

是以聖人云(시이성인운) : 그러므로 성인은 말한다
受國之垢(수국지구) : 나라의 더러운 일을 떠맡는 사람이
是謂社稷主(시위사직주) : 사직을 맡을 사람이요
受國不祥(수국불상) : 나라의 궂은일을 떠맡은 사람이
是謂天下王(시위천하왕) : 세상의 임금이라고
正言若反(정언약반) : 바른말은 반대처럼 들린다

요즘 물 문제로 말들이 무성하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바른 말은 반대로만 들리는지 들을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다. 심지어 정책을 둘러싼 뜨거운 논쟁은 민주정치에서는 '공기'와도 같은 것을 이 대통령은 이를 매우 낭비적인 것라고까지 말한다. 물을 잘 다스리는 임금이 어진 임금이라는 건 예전부터 내려오는 진리인데 이렇게 물 때문에 오락가락 백성을 어지럽게 하는 것은 혹 어진 임금이 아니기 때문일까? 병상에 누워서 부드러우나 강한 물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 어진 군주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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