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영,수는 지식이 아니다.

생각을 길들이는 정답을 강요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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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응상(aitoy)등록 2009.11.28 13:11
최승호 시인의 가르침을 단순 논리로 접근하는 것부터가 교육의 본질에 의문이 인다. 단순 국어는 지식이 아니다. 국어 교육학회 회장은 국어와 지식의 차이를 오독하고는 국어로 지식을 지배하려는 정답밖에 모르는 문제이다. 정답으로 인간의 생각을 풀어 내려는 게 문제를 풀수없는 문제만 남긴다.

배우는 학생도 정답을 원하지는 않는다. 유일하게 가르치는 사람들이 원하는 정답을 교육의 지표로 삼자는 논리로 들린다. 처음부터 정답이 없는 것인데 자기 생각의 한계 범주 안에서 똑 같은 생각을 하라고 강요하는 시험문제의 출제 의도가 문제이다.

굳이 정답을 원한다면 "자네 생각을 말해보게"하고 문제를 출제해야 한다. 본질에 가 닿을 수 없는 위치에서 자기 생각의 한계 범주 내에서 문제를 출제하는 건 횡포다. 누구나 생각할 자유가 있다. 작가는 굳이 정답을 원하지 않는데 감히 누가 정답을 원하는가. 독자도 정답을 원하지 않는다. 다만 문제가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제출한다.

협소한 정답으로 어찌 생각의 한계를 정하는지 문제를 출제하고 싶다. 정답이라는 짧은 생각 속으로 무궁무진한 생각을 가두려고 하는지 묻고 싶다. 아무리 명민한 정답이라도 이미 한계를 정해 놓은 것, 짧고 협소한 생각으로 인간의 생각을 길들이려 하는지, 먼저 이 문제부터 풀어 보기를 청한다.

시인에게 정답을 묻는 것 자체가 파렴치하다. 정답에 길들여 뭐하자는 건지 문제를 내고 싶다. 정답을 찾으려고 또 머리를 짤 것이다. 자기 생각을 정답으로 정해 놓고 남의 생각을 정답 안에서만 생각하라고 강요하는 건 생각의 식민지화를 획책하는 것이다.

100편의 시를 암기한다고 자랑하지만 가슴이 울리지 않는다. 한 줄이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단 한편이라도 가슴 깊숙한 언저리를 울린다면 한편의 시를 아는 것만으로 예술 전체를 아는 것이다. 단 한편이라도 시를 품을 수 있는 가슴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다.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다면 무궁무진한 생각의 자유를 누릴 것이다. 어찌 한 사람의 생각으로 인류의 생각을 지배하려 하는가. 정답을 묻기보다 "자네 생각을 말해 보게" 하고 조용히 들어준다면 어마어마한 지식이 탄생할 것이다.

[박응상/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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