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이 아니면, '최선'이 아니면 뭐 어때?

내멋대로 달리기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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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원(jungs21)등록 2009.10.16 15:00

이미 한계(?)에 다다른 듯한 호머 심슨 씨 내 운동 능력은 이 사람과 거의 맞먹는 것 같다. 어쩌면 더 떨어질지도? ⓒ 정동원


가만 생각해보면, 난 보통 '남자'가 되기엔 한참 모자른 것 같다. 특히 운동을 매우 싫어하고 잘 못한다는 게 뼈아프다.한때는 운동을 잘하진 못해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국가대표 축구경기는 당연히 빠짐없이 봤고, 새벽에 중계하는 '유로컵'까지 졸린 눈 비비며 보던 때였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다(지금 다시 그러라면.......'절대 무리'다). 하지만 웹툰<마음의 소리>가 통렬하게 지적한대로, "축구는 보는 게 아니라 하는 것"이 아닌가? 다른운동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무리 프로농구를 좋아하며 경기를 즐겨본다고 해도, 그건 '구경'이란 취미일 뿐이다. 그런 식으로따져보니 역시 결론은 하나였다. 난 운동을 아주 싫어한다. 요즘엔 보는 것조차 시들시들해졌다. 영화 <소림 축구>를 좋아하는 건 이미 운동하곤 아무 상관도 없는 영역인 것 같고.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본인에게도 좋아하는 운동이 하나 있다. 달리기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아마도 피식 웃을것이다. 특히 부모님이라면 '대략 어이없어하시지' 않을까. 운동회 때 여학생들에게도 진 화려한 달리기 경력을 가졌으니 말이다(여성을 낮춰 보는 게 아니다. 사실이 그렇다는 거다. 그리고 여기는 남성이 여성보다 운동을 못하면 뭔가 부족한 사람 취급까지 받아야 하는 나라가 아니던가?). 18살 이후론 100미터 달리기 기록을 재보지않았는데, 아마 지금도 18초에 턱걸이 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뚱뚱한 건 아니다. 짧은방황의 시절 때문에 지금은 좀 뱃살이 나오긴 했다만, 그래도 옷을 입으면 두드러지지 않는다(그러나 이런 생각 떄문에 얼마나 많은사람들이 파멸의 늪에 빠지는가!).

내 달리기가 느린 건 많이 뛰어보지도 않았고, 열심히 뛰지도 않기 때문이다. "1등이 아니어도 최선을 다하면 된다!"라고 위로해준 분들도 있었지만, 난 사실 최선을 다할 생각도 없다. 그냥 달리고 싶을 때까지만 달리고, 숨이 좀 가빠질 정도가 되면 그만두는 게 내 방식이다. 그러다 다시 기운이 돌아오면 다시 달리고, 아니면 그만둔다. 당연히 달리기 시합은 싫어하고, 혼자 달린다고 해서 기록을 단축하거나 오래 달리려는 생각도 안 한다. 한 마디로 아예 '목표'가 없는 제멋대로 달리기다. 건강? 얻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내 달리기는 운동도 못되는 놀이, 어쩌면 그것도 못 되는 시간 때우기인 것 같다. 하지만 그러면 좀 어떤가? 이게 아니더라도 내겐 수많은 목표와 과제, 의무가 있다. 그 가운데엔 내가 스스로 정한 것도 있고 남이 정해 준 것도 있으며, 사회가 내게 요구하는 것도 있다. 그것들만으로도 고민하고 애써야 할 대상은 충분하다.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아무 목표도 성과도 없이, 하지만 조금은 생각없이 즐거운 시간이 있는 것도 좋지 않을까? 거기다 기분도 상쾌해진다면 말이다. 난 대개 한밤의 공원 같은 곳에서, 또는 한적한 골목길에서 전력으로 달린다. 5분만 지나도 지쳐버린다. 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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