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지나친 숭배는 곤란하다

우리는 조선 '백성'이 아니라 21세기 '민주 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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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원(jungs21)등록 2009.10.16 09:31
  '가장 훌륭한 조선왕'을 뽑으라면 대부분 세종을 뽑을 것이다. 학자도대중도 그의 정치를 거의 완벽한 유교 도덕 정치, 국가와 백성을 편안하게 한 '요순 정치'로 여긴다.

하지만 질문을 약간 바꿔, '가장인기있는' 조선 왕을 뽑으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 같다. 여전히세종을 꼽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경우 강력한 대항마가 나타난다. 요즘인기가 높아진 정조다.

몇몇 젊은 지식인과 의협심 있는심복들과 함께 조선을 근본부터 바꾸려고 했던 개혁가, 새로운 문물도 받아 들일 줄 알았던 신세대 지도자, 그러나 노론 양반들과 정순 왕후의 방해 공작을 힘겹게 막아내야 했으며,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하고 요절한 비운의 군주…… '캐릭터'만 본다면 세종보다도 더 매력있는 왕이 정조다. 대중만 그를 좋아하는 게아니다. 학자와 저술가들도 그를 칭송하고 많은 연구 자료를 내놓고 있다. 몇몇 사람들은 그를'근대인'으로까지 평가한다.오늘날 지도자들이 그를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분명히 정조는 시대를 앞서간 임금이었다. 그러나 그를 완벽한 지도자로 여겨선 곤란하다. 어떤 사람도 시대의한계를 벗어날 순 없다. 정조 역시 신분제의 맨 위에 있는 전제 군주였다.자신에게, 또는 왕조의 질서에 반대하는 사람은 고문(사극에선'문초'라는 말로 얼버무리는!)하고 귀양보내거나 처형하는 건, 이전 군주들과 다를 게 없었다. 정조는 정순왕후나대원군처럼 천주교 신자를 많이 죽이진 않았다. 윤지충을 죽인 걸로 끝났으며 되도록 많은 사람을 살리려고애썼다. 그러나 단 한 사람이라도, 지배자와 다른 신념을가졌다고 그 생명을 앗아간 건 폭압이며 전제 정치다. 더욱이 정조가 천주교 박해를 피한건 인간의 생명을 소중히 해서가 아니었다. 노론 양반들이 자신의 심복들까지 천주교와 얽어매서 공격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앞에서 세종을 완벽한 군주라고 설명했지만, 이것도 사실이 아니다. 세종 역시 전제 군주의 어두운 면모를 가지고 있다. '사민 정책'이 그것이다. 북방 국경 지대를 탄탄히 한다는 명분 때문에, 많은 백성들이 억지로 고향을 버리고 북쪽에서 살아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북방의 거친 환경에서 비참하게 죽었다. 도망치면 대죄인으로 몰려 처형당했다. '현군'이 나라를 다스릴 때도 이런 인륜에 어긋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물론 이런 비판에 반대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 때는 21세기가 아니라 조선 시대가 아니었는가? 그렇다면 세종이 공화국을세우고 의회 민주 정치를 해야 했단 말인가? 정조가 인권 선언이라도 발표해야 했는가? 그런 생각이 과거 군주나 학자들은 무조건 '반동', '봉건 지배층'이라고만 평가하며 그 업적도 무시한 공산주의자들의생각과 무엇이 다른가?"

그렇다. 정조는 분명히 21세기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또한 조선 시대 사람이 아니라, '민주 공화국' 한국 사람이다. 조선 왕조는 이미 멸망했다. 우리가 정말 새 시대를 만들고 더 좋은세상을 가꾸고 싶다면, 본보기가 될 사람은 더 가까운 시대에도 많이 있다. 조선시대 군주들만 바라보면, 우린 애써 이룩한 민주공화정을 우습게 여기고,강력한 지배자가 모든 권력을 잡는 게 더 '효율이 높다'고여기는 무서운 착각에 빠질 수 있다. 정조를 좋게 보는 사람이 모두 박정희를 찬양하는 건 아니지만, 박정희를 찬양하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정조를 끌어들인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오히려 우리가 바라봐야 할 지도자는 20세기 이후, 민주공화정을 세우고 인권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세계 여러 나라의 지도자들이다. 특히 서유럽, 북유럽의 지도자들은 민주공화정을 건설했으면서 경제발전까지 이룩했다. 이런 사례들을 공부하고 배우면, 툭하면'선(先)경제 후(後)민주주의(요즘엔 '後인권'으로 바뀌었다!)'를 외치는 극우논객이나 전경련의 어용 학자들이 사람들을 속이는 것도 막을 수 있다. '국부'가 필요하다면 여운형이나 조봉암이 딱 좋다. 본보기가 필요하다면 차라리 스웨덴을 복지 국가로 만든 올로프 팔메를 모셔오자, 먼 옛날에 살았던 전제 군주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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