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생긴 여자의 '사랑'은 없다?

박민규의 기적같은 사랑의 드라마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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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준연(withsj)등록 2009.08.16 12:08
어느날 작가의 아내가 작가에게 던진 질문.

"그래도 절 사랑해 줄건가요"

그 질문은 오랫동안 저를 괴롭히는 화두가 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남자와 마찬가지로 저는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 또 결코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을 한다 해도 잔인한 진실은 변하지 않는 법이니까요. 어쩔 수 없이 미남과 부자가 좋은 당신이라면 그런 저 자신의 <어쩔 수 없음>에 대해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인간에겐 너무나 먼 <가야할 길>이 펼쳐져 있습니다.

책표지 벨라스케즈의 <시녀들>이라는 작품에서 못생긴 난장이 시녀를 부각시킨 그림. ⓒ 예담

'못생긴 여자와 못생긴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를 다루는 최초의 소설' 이라고 이야기 하는 저자의 평이 아니더라도 소설가 '박민규'를 아는 이라면 약자나 소수자, 아웃사이더에 대한 시선이 어떠할지는 가늠해 보는 것이 가능할 수 있겠다. 하지만 실제로는 책을 읽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다.'사랑'의 현실에 대한 풍자, 결코 '불가능할 것 같은' 픽션의 '가능성'이 어떻게 스토리를 통해 세상의 수많은 독자들에게 다가오는지 말이다.

'우리'가 아닌 '나'는 비록 잘, 편안하게 살고 있다하더라도 어려운 처지와 환경에 놓인 소설속의 화자를 쉽게 이해하고 동정과 함께 애정을 흠뻑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현실 속에 '나'는 소설속의 타자, 그들과 마찬가지이므로 결코 주인공인 '그'나 '그녀'가 이야기하는 현실속의 비현실, 그러니까 '지독하게 못생긴 여자와 연애하는 것'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미(美)에 대한 끊임없는 인간의 욕구가 문명, 문화가 역사와 함께 발전하는 힘이었다고 하는 것과 같이 추함, 못남에 대한 혐오와 증오의 정도도 꾸준히 그려지지 않은 선을 넘어서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마치 내가 아름다워야 하고 아름답지 못한 모든 것들은 세상에서 없어져야 마땅하고 특히 내 눈앞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극단의 행동이 실제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현실이 오늘의 사회다. (<백설 공주>의 경우와 비교해 볼만 하다. 왕비가 자신보다 더 아름다운 백설 공주를 죽이려 하니까) 특히 '법'과 익숙한 사회적 '눈치'의 경력의 경험이 덜 된 학생들 사이에서 심각성을 띠기도 한다.

개그우먼 박지선(KBS 개그콘서트 출연자)이 성공한다고 해서 '못생긴 얼굴'이 '성공'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할 수는 없다. 오늘도 여전히 여자들에겐 안내데스크와 로비에 서있는, 레이싱걸 엘리베이터걸과 같은 '걸'과 항공승무원의 '원'이 붙은 직업을 얻기 위해서는 일정 정도의 '면'을 갖춘 외모와 일정 이상의 높이가 요구되는 키를 가진 '몸'이 필요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변호사, 판사, 검사, 의사, 건축사, 변리사 등의 사가 붙거나 삼성, 엘지, 포스코 등의 브랜드를 아로새긴 한 쪽의 그림에 나란히 새겨진 이름이 있는 명함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위해 스펙, 스펙하며 몇 번 써먹지도 못할 외국어와, 몇 번은 쓸 수 있는 졸업증명서와 한 번도 제대로 써먹지 못할 '발성연습, 면접대비' 같은 학원까지 다녀야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만 하면서는 도무지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세상. 공부하고 학원을 다니고, 피아노와 태권도, 체육활동과 봉사활동, 특기활동과 외국여행 등을 가방한쪽에 교과서를 차곡차곡 쌓아서 넣어 두는 것과 수능시험을 잘 보기위한 입시대비반에 다닌다거나 결국은 토익시험을 위한 외국어 학원에 다닌다거나 학점을 높이기 위한 술수를 찾아서 주변과 선배의 옆구리를 찌르거나 그것도 안 되면 나는 도무지 마실 일 없을 것 같은 술이 담긴 술병을 교수의 선물로 준비한다거나 하는 것.

취업은 승진을 위한 자격증을 준비한다거나 매주, 매달 반복되는 회사의 테스트를 견딘다거나 점점 말도 되지 않는 업무지시를 내리는 상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쓸게, 콩팥을 밖에 내 놓는 일 따위. 모두가 배우자를 잘 맞기 위한 준비라고 하면, 결코 '사랑'하기에 함께 있고, 그래서 미래를 약속하고 하나가 된 둘을 닮은 아이를 낳고 하는 일 따위도 '행복한 나의 인생'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 아닐까.

끊임없는 경쟁을 요구하는 사회에 놓인 젊음이 '사랑'을 일찍 선택하고 철이 들면 '사랑'보다는 다른 '필요한 것'을 위해 '선택'을 하게 되는 이 사회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내가 다가가서 가까워지고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리는 드라마는, 어쩌면 황당하다기보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치고 지금 이세상의 이치에 절어있는 내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가 않을 뿐이다.

외모에 대한 세세한 묘사는 별로 없다. 벨라스케즈가 그렸다는 '시녀들'의 그림 중에 등장하는 난쟁이 시녀를 보고 유추해 볼뿐, 그저 '어'하고 놀랄 정도의 최악의 조건을 지닌 여자를, 그녀와 가족으로 인한 상처를 가지고 있는 남자둘이 어울리고, 그중 하나와 결국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된다는 '익숙하지 않은' 이야기다.

화가 Velazquez의 작품은 독특한 구성으로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자아내게 한다. 이 작품을 패러디한 근대작가들의 작품도 많다. ⓒ Velazquez


다소 불편하고 머리에 거슬리는 상황의 이야기는, 그저 우리가 익숙하지 않을 뿐이라고 그리고 이런 상황이 지금 세상 속에서 작은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달랜다. 그럴 수 있다고, 그녀의 얼굴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풍부한 내면의 교양과 인성, 따뜻함과 부드러움, 풍부한 교양과 학식으로 가려질 것이라고 상상을 해보지만 그러다 얼굴을 마주 보았을 때의 느낌은 어떨까라고 상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

크리스마스 겨울에 시작하여 스무 살 겨울로 돌아오는 작은 러브스토리가 뫼비우스의 띠 처럼 제자리로 돌고 있는 특이한 이야기. 피아노곡 음악을 제목으로 선택하고 스무곡 가까운 팝 넘버가 이야기와 함께 자연스럽게 흐르는 소설.

'무규칙 이종'이라는(작가의 데뷔이래로 계속되는 실험처럼) 파격적인 쓰임새를 보이는 '문장, 문단 나누기'는 읽는 이의 호흡을 제멋대로 '조종'하며 <가장 적절한 형태의 문장 읽기에 대한 텍스트디자인 활용>은 어떤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리포트를 읽는 느낌이다. 400여 페이지에 이르는 '양' 속에서 차츰 그의 이야기에 익숙해질라 치면 마지막 책을 덮는 순간에 이르러서는 아, 한숨을 크게 쉬며 다시 책 밖으로 내 몸을 끄집어내거나 책의 모서리를 잡고 기어 나와야 하는 것 같이 빠져 나오기 힘들다.

사랑받지 못하는 자신에게 기적처럼 다가온 사랑과, 열정을 다해 살아가는 '열린' 연인들과, '사랑의 가치'를 가정에서, 사회에서, 국가너머 실현하고 계신 모든 분들을 떠올리게 하는, 참한 소설이다.

덧붙이는 글 죽은왕녀를 위한 파반느/박민규/예담/1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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