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유령선'이 있다, 없다?

고양시 어민들, 한강운하를 반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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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암(blurrytie)등록 2009.10.16 15:27
한국에는 유령선이 있다? 없다?

1990년, 영국의 작은 항구도시 윌립톤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대형 여객선이 나타났다. 조사 결과 이 '라스 트레스 마리아스 호'는 1974년 스페인 앞바다에서 침몰됐던 배였음이 밝혀졌다. 게다가 조사 당시 배 안에는 아무도 없었으나 식탁 위의 음식들에선 방금 차린 것처럼 김이 나고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유령선. 더운 여름에 등골이 오싹해지는 이야기다. 이 유령선 외에도 빅토리아 호, 뱅가드 호, 플라잉 더치맨 호, 메리 실레스트 호 등 외국에는 널리 알려진 유령선 미스터리가 전해오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과연 유령선이 있다? 없다?

정답은, 있다. 그것도 우리나라는 미스터리가 아닌 실제이다.

어민들, "우리의 존재 자체가 부정된 것"

서울시와 평가용역을 맡은 동일기술공사가 지난 13일, 한강운하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이하 평가서)을 공개했다. 이 평가서에 바로 '유령선'의 증거가 뚜렷이 제시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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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의 어업 현황을 보면 어선은 있지만 어가는 없다. 즉 배는 있지만 사람은 없다는 말이다. 평가서에 의하면, 유령선이다.

"내가 3대째 여기서 고기잡이를 혀. 코흘리개 적부터 아부지 따라 돛배를 타고 다녔어. 그런데 어떻게 어민이 없다고 혀!"

쉰여덟 살의 고양시 어민 유정태 씨가 분통을 터트린다. 다른 어민들도 '배는 있지만 사람은 없는' 평가서에 "우리의 존재 자체가 부정된 것"이라며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행주대교 북단의 다리 밑. 서울시청에서 불과 직선거리 15km인 이곳에서는 32명의 어민들이 고기잡이로 가족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봄에는 실뱀장어, 황복, 위어 여름에는 자연산뱀장어, 잉어, 붕어 가을에는 참게 겨울에는 숭어 등 고기잡이의 재미도 쏠쏠하다고 한다.
유정태 씨는 "서울사람들은 한강이 더럽다며 고기가 없는 줄 알지. 허지만 4대강 중 한강처럼 고기가 많은 곳이 없어."라며 행주나루터의 역사를 죽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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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의 어민들은 허가 신고 및 소득 신고와 그에 따른 세금 제출도 계속 해왔다. 행주어촌계장 임정욱 씨는 "경기지방통계청에 어민 수를 보고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평가서에서 고양시 어민이 없다고 한 건 그만큼 부실하게, 졸속으로 조사한 엉터리 보고서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양환경운동연합 박평수 집행위원장에 의하면 "고양시 관계자조차 사적인 자리에서 평가서의 부실함을 지적했다"고 한다.

몇몇 어민들은 "보상을 피해가기 위한 서울시의 꼼수가 아니냐"며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평가서에는 고양시 어민 집계가 누락되다보니 어민 의견수렴 대상에서도 그들은 제외되어 있다.

이에 대해 평가서 용역을 맡은 한강기술공사 환경사업부의 한 관계자는 "고양시의 통계연보 자료를 인용했는데 그 자료에 어가 및 어가인구 현황이 누락되어 있었다", "고양시에 어민이 있는 걸 알았으니 평가서 보완시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의 최동필 생태계획과장은 "아직 초안이다. 주민들 의견을 반영해서 보완하겠다."고 했다.

평가서 보완하겠다 vs 믿을 수 없다

그러나 어민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평가서에는 "운항 예정 선박(5,000톤급, 속도 10knot)을 기준으로 항주파(배의 운항에 따른 물결) 영향을 검토한 결과 이격거리 200m에서 8㎝의 파고가 생기는 것으로 예측됨. 다만, 한강밤섬 통과구간의 경우는 8knot의 속도로 운항할 예정이므로 항주파 영향은 약 4㎝ 이내로 예측"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어민들의 주장은 판이하게 다르다. 임종욱 계장은 "25t급 예인선이 10knot로 지나가는 물결에도 우리가 타는 1t급 배는 크게 흔들린다."고 했다. 다른 어민들도 "그래서 예인선은 우리를 보면 돌아간다", "예인선이 지나가도 (물결 때문에) 10분 정도는 조업을 못한다", "유람선(300톤급)만 지나가도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고 말했다.

어민들은 "5천톤급 배가 지나갈 때 이는 물결이 4cm라는 건 말이 안 된다", "5천톤급 배가 지나가면 우리 배는 전복 된다", "4cm라는 건 우리를 갖고 노는 것"이라며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도 "평가서는 한강운하가 주변에 미치는 영향을 축소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파랑의 크기가 최소 50cm를 넘을 것"으로 분석해 어민들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한편 평가용역을 맡은 동일기술공사 측은 "4cm 분석에 대한 근거는 평가서에 나와있다. 50cm 분석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라"고 말했고, 이에 대해 박 교수는 "평가서에는 4cm 분석에 대한 세부내용이 안나와있다. 세부내용을 공개해야한다"고 응수했다. 박 교수는 "50cm는 한국해양연구원과 함께 분석한 수치"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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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주파만이 문제가 아니다. 40대 어민 김하진 씨는 "물고기는 소리에 민감하다. 낚시할 때 왜 조용히 하겠나? 1톤급 배가 지나가도 물고기들은 놀라 도망간다"며 5천톤급 배로 인한 소음, 준설(물속 바닥을 파내서 깊게함)에 의한 수중생태계 교란 등을 걱정했다.
박평수 집행위원장은 "평가서에는 소음, 부유사 등의 피해가 제시되지 않았다. 고양시 주민설명회 때도 한강사업본부 측에선 시종일관 '피해없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평가서에는 소음 및 부유사가 어민들에 미칠 영향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여객운항은 주 3회 정도 운영할 계획으로 여객운항 소음영향은 경미할 것으로 판단되어 예측에서 제외함.
공사시 준설에 의한 부유사 영향으로 어류의 이동, 저서동물의 피해가 예상되나 그 영향은 경미할 것으로 예상됨.

또한 평가서에는 어민이 입을 피해에 대한 대책으로 '이중오탁방지막 설치'만이 기술되어 있다. 임정욱 계장이 고양시 주민설명회 때 한강사업본부 측에 어민 피해에 대한 대책이 전무함을 지적하자 돌아온 답은 "피해는 미미하다. 준설 시 피해가 생기면 그때 반영하겠다" 였다고 한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 최동필 과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현 평가서에는 어민의 피해 자체가 안 생기게 하는 방법이 나와있다. 피해가 생길 경우의 대책은 보완시 추가하겠다"고 밝히며 "환경부의 승인도 받아야한다. 조사용역사와 협력해 보완 중이니 신뢰해달라"고 말했다. 환경영향평가법에 의하면 평가서는 주민의 의견을 반영해 재작성된 후 환경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한편 한강운하백지화 서울행동은 평가서에 대해 "아직 기본계획도 확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선행절차인 사업타당성 평가, 사전환경성검토 등조차 누락"된, "단 한 차례의 현장조사만 실시한 부실 조사"라고 지적했다. 이는 곧 "한강운하 사업의 무모함을 확인하는 증거"라고 주장하며 평가서의 보완에도 기대를 걸지 않았다.

어민들, "우리 배는 우리의 삶 자체"

임정욱 행주어촌계장 역시 서울시의 "신뢰 해달라"는 말을 신뢰하지 않았다.
임 계장은 "결국 생계대책 얘기 없이 단지 피해 없을 거란 말만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라며 "어민들은 크게 노해있다"고 전했다. 어민들은 "공사가 진행되면 이제 고기잡이는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어민들은 "이건 우리보고 죽으란 말이다. 앉아서 죽을 수 있나", "저들에겐 몇 푼 이득의 문제겠지만 우리에겐 생존권의 문제다"라며 분노했다. 임 계장도 "우리가 가진 건 배밖에 없다. 일방적으로 개발을 진행한다면 강 위에서 공사 자체를 못하게 막아버리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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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풍족하게 잘 살지는 못하지만 고기잡이로 먹고 사는데 지장은 없어요. 남한테 손 안 벌리고, 굽실거리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아, 가슴이 답답합니다."

"하나뿐인 아들이 내년에 중학교에 가요. 아, 이제 더 열심히 배타야 될 텐데......"

"3대째 여기서 배 탔고 내 나이 육십이 다 됐지만 난 아직 젊어. 나는 내 직업에 최선을 다했고 자부심도 있다구. 내가 하고 싶은 일하며 소박하게나마 주변과 나누며 살게, 그냥 우릴 놔두란 말여."

1톤급 FRP 고기잡이배. 누군가의 기준에 의하면 그 배는 5000톤급 국제선에 비해 너무나 작고, '돈벌이'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고양시 어민들에겐 그 작은 배가 결코, 유령선이 아니었다.

그들은 말한다. 이 1t급 고기잡이배는 가정의 밥줄이자, 자식들의 학비이자, 삐끗했던 삶의 재기이자, 집안의 역사이자, 생의 자부심의 원천인, 그들의 삶 전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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