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의 한켠에서, 신기한 학교를 발견하다

[강화도에서 만난 사람] 황덕명씨가 제도교육에 저항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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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여진(sweethyj)등록 2009.07.06 09:46

강화도 마을학교 황덕명씨 구수한 말투와 옷차림의 황덕명씨 모습. 그의 등 뒤로 그가 직접 깍아 만든 나무 달력이 보인다. ⓒ 홍여진


"왜 이렇게 사냐고요? 이게 교육에 대한 내 관심이자 저항입니다."
강화도에서 '또 하나의 대안교육'을 하고 있다는 황덕명씨(45)를 찾아갔을 때 그는 귀농을 준비하고 있는 지인들과 막걸리 잔을 나누고 있었다.

황덕명씨는 도장리(인천광역시 강화군 부릅면)에서 생활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했다. 차 한 대 들어가기 힘든 농토길의 한 구석에 자리한 크지 않는 집에 보란 듯 '생활학교'라는 명패를 달아 놓았지만 '학교'라는 선입견에 어울리는 모습은 전혀 없었다. 그냥 농촌의 일반 가정집 같았다. 마당엔 닭장이 있고, 고무신짝과 나무, 톱 등이 널부러져 있다. 그나마 '학교'라고 조금 생각이 들 만한 것이 있다면 2층 건물 벽면에 빼곡히 꽂혀진 책들이다. 그리고 그 책들을 뒹굴면서 읽을 수 있는 넓지 않은 방. 황씨는 이곳을 '마을 도서관'이라고 부른다.

처음엔 정말 '이게 무슨 학교야'했다. 그런데 황씨와 두시간여동안 대화를 나누다보니, 꾸임없고 격식없는, 그냥 '사는 그대로의 모습'의 공간이야말로 좋은 학교의 한 모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덥수룩한 수염에, 일터에서 막 돌아온 농부의 차림새를 한 황씨의 모습과 이 생활학교는 닮아있었다.  

"취재한다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늦어! 약속 제대로 지켜야지. 농사꾼에게 결례 아냐?"

예정보다 1시간 늦게, 어스름해진 저녁시간에 도착한 우리에게 인사라며 건넨 그의 첫마디였다. 꾸짖은 투였지만 한없이 정겨웠다.
그는 이곳에 온지 10년쯤 됐다. 그 전에는 서울에서 교육 전문 출판사 '내일을 여는 집'을 운영했다. 서울을 떠나 강화도의 시골에 정착한 그는 이 생활학교에서 무엇을 추구해나가고 있을까?

황씨는 "이 생활학교는 학교교육과 생활현장의 중간 이음새"라고 했다.

"도시 아이들은 학교에서, 그리고 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하지만 일상적인 일로부터 소외 되어있어요. 아이들이 생태적 감수성 느끼도록 숨통 트게 해주자는 취지로 이 곳을 만들었지요."

그는 "이곳을 찾는 학생들은 교사나 학부모의 인솔로 한번에 10여명정도 된다"고 했다. 그럼 어떤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을까?

"정해진 프로그램은 없어요. 날씨에 따라 계절에 따라 놀이가 바뀌죠. 날씨 좋으면 밭에 나가서 고구마도 캐고 닭 모이도 주고, 몇 달 뒤엔 다시 와서 그 닭을 직접 잡아서 아이들과 함께 먹기도 하죠. 이러면서 아이들이 치킨 만드는 사람의 고충도 아는 거 아니겠어요? 노동을 놀이 삼아 할 수 있는 곳이 생활학교의 취지라고 할 수 있죠. 아 그래도 기본적인 준비는 하죠. 대상 학생에 맞는 생활놀이를 준비하죠."

마을학교 닭장 마을학교 내부에 있는 닭장의 모습. 이곳에 온 아이들은 직접 모이를 주고 닭이 자라면 함께 잡아서 먹기도 한다. ⓒ 홍여진


생활학교라는 말 그대로, 아이들은 이곳에서 우리들의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 배운다. 정해진 틀 없이 자연이 주는 대로 농촌체험을 하며 시골정취를 맘껏 느낄 수 있는 이곳은 이용 요금 또한 정해진 것이 없다. 황씨는 "날씨 좋은 봄, 여름에는 거의 무료고, 서늘해지는 가을이나 추운 겨울이면 으레 선생님들이 난방비를 요금대신 들고 온다"고 한다.

황씨가 신경쓰는 것은 이용요금이 아니라 이용에 대한 진정성이고 지속성이다. "1년에 한 번 오는 것은 안돼요. 적어도 서너 번은 와서 강화도 자연이 변하는 것도 보고, 농촌 사람의 정도 느껴보고, 아 그래야 그게 진정한 현장교육이죠!"

황씨는 자신의 교육이 '특별하지 않음'을 강조한다.

"내가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것은 학교 교육이 빼앗아 간 우리 일상생활이에요. 교과서 이외의 나머지를 전하고 싶어요. 내가 말하는 교육은 특별한 것이 없어요."

하지만 그는 그의 방식대로 '저항'을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을 바꾸려면 교사가 제대로 된 철학을 가져야 해요. 아이들에게 묻고 싶어요. 대량살상무기 제조하는 과학자가 될 거냐, 그런 사회현상에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이 될 거냐.... 정상에서 벗어나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정상일 수 있어요. 나는 내가 이렇게 사는 것 자체가 교육에 대한 관심이고 저항이라고 생각해요."

황씨는 그러나 자신의 선택에 어떤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꺼려한다. 그가 거리낌없이 "나는 도시에서 삶의 경쟁에서 패배해 이곳으로 왔다"고 말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는 "출판사 사정이 어려워져 이곳에 처음 발을 디디게 됐다"면서 "만약 베스트셀러를 많이 냈다면 내 선택은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씨는 그가 처음으로 교육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이 대학시절이었다고 했다. 독재정권 시절에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교육문제에 주목했다는 것이다. 황씨는 "그 시절 함께 민주화운동을 했던 선후배들이 지금도 이곳에 찾아와 이야기를 나눈다"고 했다.

거창한 의미부여를 거부하는 그이지만 두시간동안 마주한 후 우리는 그가 늘 '처음처럼' 살고 싶은 꿈을 간직하고 있음을 느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눈 '생활학교 교실'의 벽면에는 책들이 빼곡히 꽂혀져 있었는데 그 중에는 <처음처럼>도 있었다. 그가 2004년부터 만들어온 교육관련 잡지다. 지금은 자금 난 등으로 발행이 중단됐다.

"소주 '처음처럼'이 나오기 전에 내가 먼저 <처음처럼>이란 책을 냈지요. 그런데 지금 소주이름은 유명해졌지만 내가 만든 책은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훨씬 더 많지요, 허허허."

그렇게 웃어넘기는 황씨의 모습 속에 지난 세월에 대한 아쉬움과 오늘을 사는 그의 잠잠한 열정이 함께 섞여 있었다.

마을학교 명패 어둑해진 저녁, 작은 조명빛이 마을학교의 명패를 비춰주고 있다. 작은 명패 하나에서도 그의 따스한 손길이 느껴진다. ⓒ 홍여진


황씨와 헤어질 때 다시 한 번 생활학교를 둘러봤다. 마당, 마루 등에는 그가 스스로 만들었다는 목공예품들이 유난히 많았다. 그 중에는 나무로 만든 달력도 있었다. 도시를 떠나, 농촌의 한 켠에서 나무를 깎고 깎으면서, 세월의 시간표를 만들면서 그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의 집을 뒤로하고 어둠이 짙어진 농토길을 걸어 나오는데 한 40대 중반 사나이의 선택이 자꾸만 되돌아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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