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 죽었다!

그들은 치밀한 계획으로 대학생들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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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신(js042)등록 2009.06.30 10:47
대학생이 죽었다!

80년대의 상황은 지금의 상황보다 오히려 민주주의에 대한 토대는 단단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7년 6월항쟁은 우리 역사속에서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금자탑을 새웠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을 보라!
도도한 역사의 수레바퀴가 거꾸로 돌고 있고, 민주주의의 퇴보가 곳곳에서 전염병 번지듯이 모든 분야로 번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것을 타개하려는 민주주의의 열기는 80년대 그때만 못하다.
독재타도의 열기는 타오르다 스스로가 힘에 겨워 자진 수그러 든다.
경찰의 원천봉쇄를 걷어찰 만한 역동적인 주체도 없다.
단순히 비분강개하여 행동하는 정의로운 젊은이도 없다.

80년대는 군부 독재고 지금은 문민 독재이니 독재의 강도가 더 약하니까 그러한 것인가?
민주주의의 일정 정도 퇴보는 아쉽되, 87년 6월 항쟁처럼 뭔가 행동으로 옮길만한 뚜렷한 이슈가 없다고 보는 것인가?

전두환 군사정권과 이명박 정권의 독재 정도 차이가 상당히 크다고 보는 것인가?
이명박의 포크레인에 뭉개진 인권이 전두환의 군화발에 짓밟힌 인권 보다는 약하다는 것인가 ?

이명박 정권은 21세기 보기 드문 독재정권이다

오히려 전두환 정권 시절의 독재는 권력의 정당성이 없어서 그런지 다분히 수세적이었다.
80년 광주의 진압은 무자비 했지만, 정권의 비도덕적 탈취 과정에서 발생했고, 정권 이후의 통치 스타일은 적어도 수세적 통치였고, 방어적 통치에 가깝다.

시끄러운 일 잘못된 것에는 과감히 인적 쇄신 조치를 했다.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에 책임질 사람, 장영자 사건에 책임질 사람에게는 책임을 물었다.
화염병이 난무해도 물대포는 없었다(아마 지금 화염병 던지면 총을 쏠지도..).

이한열 열사 추도식에는 서울광장을 봉쇄하지도 않았다.
돌도 없고, 화염병도 없는 시민을 방패로 내려찍진 않았다.
실수로라도 철거민을 사지로 내몰면 적어도 책임자 처벌로 무마하려는 노력은 보였다.
우익 매국노 동원해서 영정사진 훔쳐가고, 분향소를 파괴하는 비인륜도 자행하지 않았다.

우리 국민은 지금 전두환 군사독재보다 더욱 진일보한 독재를 맛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막나가는 독재앞에 우린 왜 무기력한가?
2012년 대선을 기다리는가?
독재가 타도 되면 2012년 대선은 오지 않는가?
그래서 잠자코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인가?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80년대 국민은 이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분신했고, 다치고, 죽더라도 싸웠다.

그때는 민주주의에 대한 불타는 열망이 있었다. 저자 80년대 총학생회장 출마 사진 ⓒ 이재신


그러나 작금 무엇이 민주주의의 동력을 끊어놓고 있는가?
왜? 적어도 마음속에 있는 분노조차 표출하지 못하는가?

오죽하면 국가의 원로인 김대중 전대통령이 행동하는 양심을 외쳤겠는가?
오죽 답답했으면 노구의 몸으로 하다 못해 "벽에다 대고 욕이라도 하라"고 피를 토하는 일갈을 했을까?

 국민 모두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국민의 전반적인 민주주의 의식이 퇴보한 것일까?
그렇다! 전반적이지 않더라도 유독 민주의식이 퇴보한 그룹이 있다.

바로 야당과, 대학생들이다.

 대학생들이 잠자고 있다.

 6월 민주항쟁의 주역은 단연 피끓는 대학생 이었다.
지금 전경과 대치하는 시민단체, 그들이 바로 그때의 학교 정문에서 전경과 대치하던 그들이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항의하는 대학생 박종철 고문 은폐 조작 사건에 대학 본관 건물을 점거하여 항의하는 대학생들 ⓒ 김주은 경남일보 기자


그러나 아쉽게도 민주의식은 대를 잇지 못하는 것일까? 재생산이 안되고 있다

작금의 대학들을 보라! 그리고 대학생들을 보라!
먼저 앞서서 주도하고 외치며 국민들을 이끌어 나갈 대학생들이  뒤에서 따라오지도 못하고 있다.

제일먼저 학내집회를 열고, 죽어가는 민주주의 지키겠노라고 동맹 휴업이라도 해야 할 대학생들이 오히려 시민단체, 교수들 뒤를 이어 시국선언 하는 정도다...

가슴 아픈 일이다.

4.19를 보라! 고대생들이 아니었더라면..
6월 민주항쟁을 보라! 전대협이 아니였다면..

  대학생이 죽었다!

대학생이 달라졌다. 아니 대학에 대학생이 없다.
6월 항쟁은 대학교부터였다.
시대의 모든 불의는 대학생들이 맞섰다.
가장 우직하고 때 뭍지않은 그들이기에 대학생의 외침에 국민은 귀를 귀울였고, 민주주의와 정의를 부르짖으며 분신하는 대학생들을 보며 내 자식의 죽음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대학이 죽었다. 시인이 죽은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대학생이 죽었고, 우리 조국의 미래가 죽은 것이다.

조중동의 치밀한 대학생 죽이기가 있었다

왜 일까?  대학생이 자살한 것일까?
아니면 누가 우리 대학생들을 죽였는가?

누가 경제의 위기를 부각 시켰으며, 누가 불투명한 미래와 취업에 대한 중압감에 우리 대학생을 쪼들리게 했는가?
누가 조국이니 국가니 민주주의니 하는 것보다,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절박하다고 짖어댔는가?

누가 취업난 바늘구멍이라며 대서특필 해 대고, 9급공무원 시험 몇백대일이라며, 대학생들을 옥조여 왔는가?
취업대란으로 도서관에 새벽부터 줄을 서는 대학생들의 모습을 누가 공부하는 대학의 미담으로 내보냈는가?

이 모든 것이 바로 조'중'동의 치밀한 대학생 죽이기였다.

 야당이 죽었다

또한 그룹은 야당인 민주당이다.

87년 6월 민주항쟁은 헙법쟁취 국민운동본부가 터를 마련해 주고, 그곳에 대학생들과 민주시민이 하나 되어 이룬 성과이다.

당시 야당의원들이 민추협과 민주산악회 두패로 나뉘어 있었지만, 직선제 개헌이라는 깃발로 하나가 되었고, 개헌 현판식이라는 실천의 장을 제주도부터 시작해 전국적으로 확산시켜 나갔던 것이다.

대통령 직선제 쟁취를 위해 국회의원들이 거리로 나온 것이다. 그곳에 김대중 선생과 김영삼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의 민주당을 보자!
국회 박차고 국민속으로 달려갈 리더가 있는가?

 현재 민주당 정세균 당대표의 이명박 정권에 대한 항거의식은 과거로 말하면 들러리 야당 이철승, 이기택, 이민우와 같이 여당의 2중대 역할로 오해를 사기에 충분할 정도로 앞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아니, 최소한의 야당 다운 모습조차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거리로 나가는 것을 부끄러워해서는 야당 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단군 이래  민주주의의 최대 위기에 봉착했는데, 국회라는 장이 도대체 무슨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그나마 타오르려는 민주주의의 열망을 희석시키고 왜곡시키는 정도 아니겠는가?
국회라는 제도권 안에서 민생법안을 논할 정도로 작금의 상황을 낙관하고 있는가?

노구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망령끼가 있어, 현 시국을 잘못 본 것인가?
행동 안해도 되는 시기인데, 행동하는 양심을 외쳐 혼란만 준 것인가?

아니면..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적의 편이라했는데.. 정말 적의 편에 서고 싶은 것인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눈물 노무현 대통령님의 영결식에서 권양숙여사를 위로하며 ⓒ 오마이뉴스 오연호 기자


잘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야당은 당장 국회를 포기하고 거리로 나와 독재 타도의 선봉에 서야 할 것이다.

대학생들은 사랑하는 조국의 민주주의의 위기를 뼈절이게 느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시대가 요구하는 정의감으로 쓰러져가는 민주주의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잠시 책을 접어야 할 것이다.

                                            충북 제천에서 왕죽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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