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난만한 '올드보이'께, 연민을 담아

국민행동본부 서정갑 본부장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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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원(jungs21)등록 2009.06.25 20:35

 

서정갑 국민행동본부장님, 안녕하세요? 당신은(사회인 대 사회인이기에 '당신'이란 호칭을 쓰는 걸 양해해 주세요) 고작 한 시민인 저를 잘 모르시겠지만, 저는 당신의 존함과 얼굴을 잘 알아요. 어제(6월 24일) 서 본부장님이 저지른 '거사' 덕분이죠. 저 말고도 이제 온 국민이 서 본부장님의 얼굴과 목소리를 알게 되었어요. 정말이지 대단한 거사였어요. 이렇게요.


 아, 정말이지 카리스마가 철철 넘치시는군요. 마치 적장의 목을 단칼에 잘라 장병들 앞에서 들어보이는 옛날 장군 같아요. <삼국연의>의 관운장이 화웅의 목을 베고 당당하게 개선하는 것처럼요. 아니, '마치'가 아니겠죠. 이 사진을 보면 서 본부장님은 분명히 그런 장면을 염두에 두고 있었어요. 맞죠? 남자다움도 박력도 없는 '좌익 빨갱이', '반란 세력'을 멋지게 제압하고, 그 '적장'의 목이나 다름없는 사진을 당당히 들고, '장병들'에게 '승리'를 선포하는 장면. 선글라스로도 감출 수 없는 서 본부장님의 복받쳐오르는 감동이, 사진을 넘어서 저한테까지 전해지는군요.


 그런데요, 서 본부장님. 저도 서 본부장님의 복받쳐오르는 감동을 함께 나누고 싶지만(저도 영웅담, 사나이다움 이런 것 굉장히 좋아해요. 물론 전 대체복무제도 찬성하고 미사일을 엿 바꿔 먹는 세상이 빨리 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삼국연의>나 <스타크래프트> 싫어해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요?), 왠지 그럴 수가 없네요. 아니, 오히려 신성하고 장엄해야 할 이 순간을 지켜보면서 전 자꾸 경박한 웃음이 나오려고 해요. 왜 그럴까요?

 

 서 본부장님, 폼은 그만 잡으시고 그 손에 든 사진을 한 번 찬찬히 보세요. 그 사진이 뭐죠? 그 사진이 노무현 대통령인가요? 아니죠. 그건 그저 사진일 뿐이에요. 노무현 대통령은 장례식을 무사히 치른 뒤, 지금 봉하마을에 편안히 묻혀 계세요. 사진을 경찰에 넘기신다고요? 마음대로 하세요. 사진은 인터넷에서 얼마든지 더 뽑을 수 있으니까요. 중요한 건 사진이 아니에요. 서 본부장님의 너무나 '천진난만'한 사고방식이에요. TV 화면을 진짜라고 여기고 소리를 질러대는, 어린아이같은 사고방식이에요.

 

 서 본부장님, 당신이 노무현 대통령을 상처입혔다고 생각하세요? 유감이지만 당신은 그의 눈썹 하나도 건드리지 못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당신은 노무현 대통령을 건드릴 수 없어요. 국민본부인가 뭔가의 꼬마친구들과 노느라, 가끔 청와대 가서 명박이 '횽'하고 농담따먹기 하느라 책 읽을 시간 따윈 없으시겠지만, 혹시 시간나시면 '빨갱이 잡지' <한겨레 21>의 이 칼럼을 읽어보세요( 기사보기 ).

 

글을 조금만 읽어도 눈이 아프시다고요? 그럼 옆에 그림만 한 번 봐보세요. 노무현 대통령은 지금 이 곳에 없어요. 절벽에서 뛰어내려서 더러운 세상을 벗어난 뒤, 지금은 여유롭게, 신발도 벗고 먼 곳으로 떠나고 있어요. 서 본부장님이 여기서 사진 갖고 '저주 놀이' 해 봐도 아무 일도 안 생겨요. 그보다 노 대통령이 서 본부장님 이름이라도 알까 모르겠네요. 노무현 대통령은 이제 한국사에 영원히 남게 되었고, 그 정신은 앞으로도 여러 사람에게 이어지면서 더 보기좋고 훌륭하게 다듬어 질 거예요. 그런데 서 본부장님은요? 사람들이 얼마나 서 본부장님의 '무용담'을 기억해 줄까요? 1주? 5시간?

 

 만약 노무현 대통령께 뭔가 '억장'이 쌓인 일이 있었다면, 뭔가 막 꾸짖어주고 싶은 일(아, 말실수, '응석부리고 싶은 일'이죠?)이 있었다면, 노무현 대통령이 있을 때 이런 '무용담'을 펼쳐보시고 마이크 잡고 폼도 잡아 보시지 그랬어요? 버릇 없고 머리도 없는 검사 꼬마들과도 소탈한 대화를 나눴던 노무현 대통령인데, 그 분이 부르실 때는 어디 숨어계셨다가 지금 이렇게 안쓰러운 1인극을 하세요? '고도'는 오지 않은 게 아니라 이미 떠나 버렸는데, 왜 때늦은 '블라디미르' 놀이를 하세요?

 

 예, 물론 이해해요. 전 서 본부장님이 어떤 분이신가 대충 알겠거든요. 서 본부장님은 선글라스를 끼고 굉장히 카리스마 있는 척 하시지만, 사실은 연약하고 천진난만한 분이라는 걸요. 어린아이와 같아요. 사람이 육체만 늙고 정신이 자라지 않으면, 어린아이로 남는 게 당연하죠. 어린아이는 자기만 생각해요. 먹을 것, 주위의 관심이 없으면 소리지르며 난리쳐요. 서 본부장님도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 '응석'을 부리셨을 거에요. 하지만 어른들도 소리만 지르는 아이보단 착한 아이를 더 좋아하잖아요? 착하고 똑똑한 아이들과 놀아주느라 노무현 대통령은 그만 서 본부장님을 잊어버린 거예요. 서 본부장님이 이해해 주세요. 대통령이라고 모든 아이들을 일일이 돌볼 순 없잖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소리를 지르고, 집안을 어지럽혀서 관심을 끌려고 하면 안되죠. 이런 응석은 정말 곤란해요. 어른들 참아주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네? 지금 어른인 이*박 씨가 뒤를 봐주는데 뭐가 무섭겠냐고요? 저런, 이*박 씨가 어른인 줄 아셨어요? 분명히 사춘기는 이르렀지만, 아직 '질풍노도' 시기의 불안정한 정신상태를 가지신 분이에요. 이 분도 혼자선 불안하니까, 저 바다 건너 어른께 인정받고 사랑받으려고 떼 쓴 거, 서 본부장님은 못 보셨어요? 그런데 이*박 씨는 정말 공손해야 할 이 땅의 어른들, '국민'이란 어른들께는 너무 불손하더군요.

 

 서 본부장님도 못된 '형'만 믿고 그런 버릇을 배우려고 하시는데, 안 돼요. '국민'이란 어른들은 분명 너무 물러요. 너무 오냐오냐 해주고요. 하지만 뭐든지 한도라는 게 있어요. 조심하세요. 이미 서 본부장님과 '꼬마 친구들'의 응석, 귀엽다고 봐주기엔 한참 도를 넘었거든요. 어린아이고 사춘기 소년이고, 흉기 들고 어른을 때리려고 하면 볼기를 맞아야 해요. 그러니까 앞으로는 착한 어린이가 되도록 노력해 보세요. 본부장님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모르면서, 다른 '꼬마친구들' 괜히 끌고다니면서 난장판 만드는 짓도 그만두고요. 그리고 되도록이면, 꼬마가 아니라 '어른'이 되도록 앞으론 노력해 보세요. 아셨죠?

2009.06.25 20:18 ⓒ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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